선물
며칠 동안 책과 씨름하며 보냈습니다. 책을 읽으며 보낸 것이 아니고 책을 정리하며 보냈습니다. 고등학교 동창인 강동석 형이 한 해 전 내 카페에 들렀다가 여태껏 모은 책이 꽤 있는데 이제는 정리해야겠다는 것입니다. 내다 버리기는 마음이 내키지 않고 아깝기도 해 누군가에게 주었으면 좋겠다는 눈치였습니다. 카페 벽을 장식하고 있는 책이 그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모양입니다. 괜찮다면 나에게 보내라고 은근히 압박을 넣었습니다. 이심전심(以心傳心)!
친구는 암 수술을 하고 건강이 좋지 않던 차였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아내와 함께 운영하던 노인 보호 요양센터도 접을 요량이라며 이제는 다 정리하고 편하게 살겠다고 했습니다. 그 과정의 하나로 아끼던 책을 먼저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던 듯합니다.
올 1월 9일 책과 책장을 실어 보냈습니다. 마침 일 층 가운데 방이 비어 있어서 그곳에 몰아넣었습니다. 어제, 오늘 추위가 가시면서 정리를 시작했습니다. 서너 개나 되는 책장을 그가 정해 준 순서대로 놓았습니다. 얼마나 꼼꼼하던지 책장에 아래, 위를 표시해 두었고, 책장을 괴었던 플라스틱 조각까지도 싸 보냈습니다. ‘姜東錫 寄贈, 2023년 1월 9일’이라고 스탬프를 주문해 찍은 후 번호를 매겼습니다. 정리를 마치고 나니 모두 867권의 장서였습니다.
책은 친구의 성품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유아용 책도 적지 않은데, 이제는 모두 혼인해 아이들의 어미가 된 두 딸을 어떻게 키웠는지 잘 보여줍니다. 그리고는 친구의 박학다식한 지식은 물론이고 그의 성품을 그대로 보여주는 인문학 서적이 많았습니다. 그는 동양의 고전을 두루 읽었고, 카네기에 심취했으며, 소설가 이청준을 읽었습니다. 고려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경영학도답게 피터 드러커의 충고도 꽤 많이 받았습니다. 이런 유의 책이 삼 분의 일은 족히 넘습니다.
다음에는 건강에 관련한 책이 많았습니다. 자신의 건강도 건강이지만 요양원을 경영하면서 노인들의 건강이 걱정되어 관심을 두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노인들 걱정으로 노심초사하고는 했는데 이와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병을 얻은 후로는 한동안 치료에 전념했지만, 병이 깊어지고 암이 전이되자 병원 출입을 삼가고 몸과 마음을 스스로 다스리고 있다고 전해왔습니다. 우리 나이쯤이면 하던 사업도 정리하게 되는데 마치 건강이 나빠지자 하는 수 없이 일을 놓는 것 같아서 마음이 우울합니다. 건강이 회복되어 금실 좋은 내외가 국내외로 여행이라도 다녔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주위로부터 꽤 많은 책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직장의 동료나 부하 직원 그리고 친구와 교회의 성도들도 있습니다. 책을 선물한 이들이 덕담을 남겼는데 한결같이 성품을 칭찬하는 글입니다. 친구가 책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말할 것도 없고 그에게는 책이 선물로 잘 어울린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젊었던 시절 그를 만날 때면 항상 책을 들고 다녔는데 그의 취미나 성품을 잘 보여줍니다.
책을 정리하면서 친구의 성품이 이런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졌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온화하기 그지없어서 누구와도 다툼이 없고, 매사를 숙고해 앞서가거나 감정을 즉시 드러내지 않으며, 늘 웃는 얼굴이어서 주위를 편하게 해줍니다. 눈에는 선한 끼가 가시지 않습니다. 언제나 남의 말을 많이 듣고 제 주장을 하지 않는 편입니다. 언젠가 친구 하나가 그를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것을 듣고는 사람의 눈이 보는 것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만큼 훌륭한 인품을 지닌 친구입니다. 그의 인품이 자식에게도 전해졌을 것입니다.
그가 오래도록 건강했했으면 좋겠습니다. 주위의 칭송이 자자하고 존경을 받는 사람이기 때문에 남들에게 본보기가 되었으면 하기 때문입니다. 늘 조마조마합니다. 좋은 친구를 곁에 두기도 어려운 데 그런 친구를 잃는다면 그 손실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겠습니까. 살아 보니 평생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친구입니다. 다른 것은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그럭저럭 견디고 살면 그만이지만 친구는 그런 것들과는 다릅니다. 건강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