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탄생
박연준
방은 혼자다 벽에 걸린 여인은 혼자다 누운 여인은 혼자다
피를 통과해 도달한 몸이 밖을 향해 대가리를 내밀 때
태어나고 있는 우리는 혼자다
어머니의 살을 헤집고 비어져 나온 내 머리를 보라,
삶을 향해 내가 내민 내 첫 주먹!
주먹!
주먹!
주먹!
삶은 보자기를 펴 나를 감싸고,
나는 졌다
지다니,
지면서 태어나다니 여자는 고통 속에서 여러 번 죽은 뒤, 내가 온전히 태어나는 순간 부활하리라.
미래에서 온 아기들이 머리맡에 와서 본다
쟤도 죽었네, 쟤도 나처럼 미리 죽었네
(죽음이 나와 동시에 태어난다)
위아래로 머리가 달린 슬픈 짐승
서로 분리되기 위해 기다래질 때
비명 속에서 해체되는 것,
탄생!
탄생이 성공하면 죽음이 가벼워지고
죽음이 성공하면 탄생이 가벼워지는
놀이, 데칼코마니처럼
서로를 머금고 쪼개지는
이별의 탄생
탄생의 이별
프리다 칼로, <나의 탄생>, 1932년 作.
------------------------------------------------------박연준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 시집으로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 『베누스 푸디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