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면을 생각해서 보시하는 사람은
어떤 분은 체면을 생각해서 하기도 하고,
어떤 분은 주위 사람들의 칭송을 듣기 위해 보시를 하고,
어떤 분은 남이 알아주기 바라는 나머지
스스로 광고를 하고 다니는 분도 계시고,
절에 시주를 해도
현판이나 설판에 이름 내기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러한 보시공덕은 보시라고 하기에는
왠지 꺼름한 부분이 있는 큰 공덕이 안 되는 보시입니다.
달마대사가 처음 중국에 도착해서
양나라의 황제인 무제를 만났을 때의 일화가 있습니다.
본래 대사는 옛날 인도에 있었던
향지국의 임금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신 분이신데,
반야다라 존자의 법통을 이어받은 뒤
뱅골만서 배를 타고 인도를 떠나
3년이나 걸려서 중국 광동에 이르렀습니다.
그 때가 서력기원 527년경으로,
얼마 후 당시 중국 남쪽을 지배하던
양나라 무제의 영접을 받아 서울인 남경에 들어갔습니다.
양무제는 신앙심이 돈독한 황제였습니다.
얼마나 신심이 깊었던지 불심천자佛心天子라고 불리었던 분입니다.
불사를 일으켜 수없이 많은 절을 짓고
스님들에 대한 공양도 많이 베푼 황제였습니다.
황제는 멀리 인도에서
훌륭한 스님이 오셨으므로 기쁘게 맞아들였고,
만나자마자 이렇게 물었습니다.
“내가 즉위한 이래
많은 사람을 세우고 경전을 출간하였으며,
수많은 스님네들에게 공양을 하였는데
이는 모두가 커다란 공덕이 되겠지요?”
그러나 대사의 대답은 천만 뜻 밖이었습니다.
대사는 선뜻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아무런 공덕이 없습니다. (불공덕不恭德)”
무제는 이 뜻밖의 대답을 듣고
자기의 귀를 위심하면서
이상하다고 생각하여 다시 물었습니다.
“무슨 뜻인지요?”
“그러한 일들은 자질구레한
세속적인 인과응보에 지나지 않을 뿐
진정한 공덕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공덕이란 어떤 것이지요?”
대사가 대답했습니다.
“진정한 공덕이란 가장 원융圓融하고
청정한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
그 본체本體는 텅비고 고요한 것 공적空寂입니다.
이것은 세속적인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습니다.”
무제는 다시 물었습니다.
“불교의 교리 중에서 성스러운 원칙은 무엇이오?”
“텅비어 성스러운 것이 없습니다. (확연무성廓然無聖).”
“그렇다면 당신은 누구요?”
“모르겠습니다. (불식不識.)”
이렇게 대답하고는 달마 대사는 자리를 떠났습니다.
대사는 횡제와 인연이 없음을 알고
곧 양자강을 건너서
하남 땅의 숭산崇山으로 가서 소림사에 머물렀습니다.
여기서 9년 동안 면벽 관심을 하다가
혜가 대사를 만나 법을 전하게 됩니다.
달마대사의 허무한 죽음 뒤에 반전 스토리가 생깁니다.
‘(달마척리達摩隻履;달마의 짚신 한 짝)’
부처님께서 관 밖으로 발을 내 보여 주신 것도
달마 대사가 관 밖으로 나와 총령고개를 넘던 것도
불가에서는 불가사의한 일이라고는 합니다.
달마대사와 사신 송운이
파밭 사이로 난 길에서 주고받은
대화는 지극히 평범한 대사입니다.
“어디로 가시는 길입니까?”
“서천으로 돌아갑니다.”하지만
그 내용은 평범함 속에 비범함이 녹아있습니다.
대부분의 공안公案은 살아있는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공안은 반대로 망자亡者에게 내려주는
가장 인기있는 화두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야말로 생사가 둘이 아님을 보여주는 공안이라 하겠습니다.
“총령도중 수휴척리 무생멸지 일구마
蔥嶺途中 手携隻履 無生滅知 一句麽
총령 길 도중에 손에 들고 있는 한 짝의 짚신!
생멸이 없는 일구一句를 알겠는가?”
영가 천도 할 때 스님들은 그러하십니다.
짧은 침묵(양구良久)순간 후,
짧게 끊어지듯 울려 퍼지는 세 번의 요령소리.
딸그렁! 딸그렁! 딸그렁!
이것이 오늘의 따끈따끈한 글입니다.
2024년 06월 14일 오전 08:41분에
남지읍 무상사 토굴에서 雲月野人 진각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