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체동심으로 광포에 전진
‘체(體)는 각각 다르지만 심(心)은 동일한 것’을 ‘이체동심(異體同心)’이라 말합니다.
우리들은 모두 각각 얼굴 모습이나 체격, 성격, 인생 경험 또 남녀노소의 차별 등등 모든 것이 다릅니다. 이러한 사실을 ‘이체(異體)’라 합니다.
그리고 각자가 ‘이체’라 해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신앙, 인생의 목적관, 뜻, 지향하는 바의 이상(理想)이 동일한 것을 ‘동심(同心)’이라 말합니다.
비근한 예로 말하면 우리들이 모두 함께 어서를 배독하며 광선유포를 추진하는 사명을 서로 확인하고 좌담회, 교학, 보은강의에 참가하거나 서로 격려하는 모습은 ‘이체동심’이라 하겠습니다.
이 ‘이체동심’의 원리에서 중요한 것은 첫 번째가 ‘이체’를 전제로 하고 있는 점입니다. 벚꽃나무에는 벛꽃나무의, 매화나무에는 매화나무로서의 꽃의 아름다움이 있는 것과 같이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이나 입장을 최고로 존중하며 각자를 빛나게 하는 것이 니치렌대성인님의 불법입니다.
우리들 묘법(妙法)의 동지는 상호간에 그 특질을 최대한으로 발휘케하여 서로 존중하며 매일 매일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세간에서 말하는 일반적인 조직이란 것은 ‘이체’를 거부하여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성을 억압해서 무리하게 동체화(同體化)를 도모하려고 하기 쉽습니다만 그와 같은 단결의 모습은 형태는 아무리 정돈되어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맥없이 무너져 버리기 쉬운 것입니다.
두 번째는 동일한 마음에 입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동심’이란 본존님을 믿는 마음이 동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본존님께 각자가 힘차게 창제해 가는 신심에 의해 자기의 생명 내에 갖추어져 있는 불계(佛界)의 대생명을 용현시킬 때 비로소 ‘이체’의 빛을 발휘시킬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 ‘동심’이란 광선유포라는 높은 이상(理想)을 지향하는 동일한 목적관에 입각하는 것입니다. 정법인 묘법(妙法)을 홍교(弘敎)하여 생명존엄의 불법을 기조(基調)로 해서 문화, 평화의 건설을 추진한다고 하는 광포의 활동을 힘써 나아가는 곳에 진실한 ‘이체동심’이 있습니다.
반대로 아견(我見), 에고(이기주의)를 중심으로 한다면 ‘이체이심(異體異心)’이 되어 불평, 불만이 소용돌이치게 될 것입니다.
‘저 사람은 저 사람의 입장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구나. 나도 나의 입장에서 나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자’라는 자세가 될 때 조직은 생생하게 되며 공덕의 꽃이 피워 향기로워질 것입니다.
니치렌대성인께서는 「이체동심(異體同心)이면 만사(萬事)를 이루고 동체이심(同體異心)이면 매사에 이루지는 일이 없느니라.」(신편어서 p.138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개인의 일생성불의 신심에도 광포 추진의 전도에도 수많은 시련을 만날 것입니다.
2025년 「서원관철의 해」에는 대원을 세우고 관철을 위해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우리들은 ’이체동심‘의 신심을 분기(奮起)하는 곳에 신앙 승리의 실증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상쾌하게 전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