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26년 설 연휴 특강
여호와께 제단을 쌓은 노아
말씀 / 창세기 8:13-9:17
요절 / 창세기 8:20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
설 연휴가 시작되었습니다. 주 안에서 복된 설 연휴 되시길 기도합니다. 우리나라의 전래 풍습에 의하면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한 살로 칩니다. 그리고 주된 풍습에 따라 음력으로 해가 바뀌어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첫날인 설 명절을 쇨 때마다 한 살씩 더 먹는다고 합니다. 이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음력 새해 첫날 아침에 떡국을 끓여 먹습니다. 원시 농경 문화에서부터 우리 선조들은 한 해의 농사가 풍작을 이루고 가정에 평안과 행운이 함께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늘신과 조상들에게 비는 풍속이 있었습니다. 음력으로 새해를 시작하는 설은 이런 의미에서 하늘의 복을 받기 위해 곱고 깨끗한 새 옷으로 설빔을 지어 입고 여러 다양한 민속과 함께 아름답게 지켜 왔습니다. 집을 주관하는 신과 조상들에게 제사를 드리고 나서 집안 어른들과 동네 어른들에게 세배하고 어른들은 새해를 맞아 축복하며 덕담을 해줍니다. 한 해의 시작과 더불어 한 해 동안 잘되도록 복을 비는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 선조들의 마음가짐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기독교인으로서 전래 풍습을 따라 보내는 설 명절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보내면 좋을까요? 음력으로 새해를 시작하는 설 명절을 맞이하는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마음가짐과 자세를 새롭게 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먼저 창세기 7장 11절을 보면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2월 17일에 역사적인 대홍수 심판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사십 일 밤낮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지하수가 터지고 하늘에서는 물을 쏟아붓듯 비가 마구 쏟아져 내렸습니다. 역사상 보지 못한 대홍수에 당황해하면서 사람들은 24시간 비상근무 체제로 돌입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미리 노아에게 예고했고 노아는 주위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방주 짓는 일에 동참하도록 독려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심 가지고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마침내 하나님의 때가 되자 비를 쏟아붓기 시작했고 물이 땅에 차고 넘쳐 천하의 높은 산이 다 잠기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자랑하던 모든 지식과 문화, 기술, 건축, 지위 등도 무너져 내렸습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부인하던 자, 믿음으로 사는 자들을 조롱하던 자, 세상 욕망을 따라 죄악 가운데 살아왔던 자 등 노아의 가족을 제외한 모든 인간은 물을 잔뜩 먹고 가라앉았습니다. 땅 위에 코로 호흡하는 모든 인간과 동물들이 다 죽었습니다. 오직 방주에 들어간 노아와 그 가족들과 가축과 동물들만 구원받았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뒤덮은 물은 백오십 일 동안이나 땅에 넘쳤습니다.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약 일 년 동안 꼼짝없이 방주 안에서만 지내야 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이 노아와 노아의 가족들과 그들과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들을 기억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셔서 물이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문이 닫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쳤습니다. 솟구쳐 오르던 지하수와 하늘에서 쏟아붓던 빗물이 그친 것입니다. 노아와 가족들과 짐승들이 탄 방주는 아라랏산이라는 곳에 머물렀습니다. 물은 점차 줄어들어 산들의 봉우리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8장 13절을 보십시오. “육백일 년 첫째 달 곧 그달 초하룻날에 땅 위에서 물이 걷힌지라.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본즉 지면에서 물이 걷혔더니” 노아의 나이 601세 되던 1월 1일은 노아와 그의 가족들에게는 그야말로 기념비적인 날이었습니다. 우선 온 지면에서 물이 걷힌 날입니다. 땅에 있던 물은 하나님의 심판인 대홍수로 인한 물이었습니다. 그 물이 걷혔다는 것은 드디어 하나님의 심판이 멈추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가 그쳤다는 것입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구원받아 이 땅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된 1월 1일은 노아에게 있어 어떤 날이었을까요?
첫째, 하나님을 예배한 날입니다. 지상의 물이 완전히 줄어들고 걷히자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방주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방주는 대홍수 심판에서 벗어나 살게 해준 구원의 방주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대 심판으로부터 구원받게 된 것입니다. 구원받고 이 세상에서 다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되는 그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구원의 은혜가 매우 컸을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심판을 목격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20절을 보십시오.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 오랜 기간 방주에 있다 나온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어떠했을까요? 구원의 은혜도 크지만 현실의 삶에 대한 걱정도 있었을 것입니다. 새롭게 의식주를 위해 집도 지어야 하고 농사도 지어야 하고 옷도 만들어 입어야 합니다. 의식주를 제대로 준비하는 데도 시간이 걸립니다. 당장 먹을거리부터도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와 가족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물론 현실적인 준비도 분명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들이 무엇을 했다고 기록합니까?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정결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다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예배한 것임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아는 영국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갔을 때 제일 먼저 뭐했습니까? 하나님을 예배할 교회를 먼저 짓고 다음 해에 자녀 교육을 위해 학교를 짓고 다음 해에는 그들이 거주할 집을 지었습니다. 이는 노아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성경은 노아가 예배드린 것을 왜 이렇게 기록하고 있을까요?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지만 그 가운데서 구원받은 은혜에 감사하므로 먼저 하나님을 예배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노아의 자세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함으로 드린 예배였습니다. 또 앞으로도 새로운 환경 속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면서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겠노라는 헌신과 결단의 표현입니다. 새로운 시작은 하나님을 예배함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배우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중심과 시작은 언제나 하나님을 향한 예배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새로운 일을 시작하거나 개업할 때, 새로운 차를 사거나 새로운 집을 장만했을 때, 제사를 지내거나 돼지머리에 고사를 지내는 것들을 많이 봅니다. 그러나 우리 신자들은 어떤 시작이든 하나님 앞에 예배로 시작해야 하고 하나님 앞의 예배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한 주의 시작도 예배부터 시작합니다. 작게는 하루의 시작도, 크게는 일 년의 시작도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예배함으로 시작하는 것, 이것이 우리의 하나님 앞의 마음가짐과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말씀과 기도로 시작하는 신앙이 건강하고 아름다운 신앙입니다.
독일의 신학자이자 교수이자 목사였던 ‘헬무트 틸리케’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새날의 모습이 그 윤곽을 드러내기 전에, 새날의 계획을 정하기 전에 노아와 같이 제단을 쌓지 않는 사람, 즉 성경 말씀도 읽지 않은 채 슬그머니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 그는 ‘악한’ 직장인, ‘악한’ 아버지, 또는 ‘악한’ 어머니로서 하루를 시작하는 자이다.” 물론 이 말이 좀 심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지 않았다고 해서 악하다고 치부해 버리는 것은 좀 심하지 않는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핵심은 그만큼 하나님 앞에서 예배로 말씀으로 기도로 시작하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노아가 드린 제사는 어떤 제사였습니까? 정결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다고 했습니다. 번제였습니다. 번제는 정결한 가축이나 정결한 새를 완전히 태워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번제의 의미는 완전한 헌신을 말합니다. 나를 태워서 드릴 순 없으니 나 대신 새나 가축을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번제를 드려야 합니다. 형식만 갖추는 예배가 아니라 형식 안에 온몸과 마음을 담아 예배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예배 시간에 참석해 주고 하나님의 말씀 들어주고 헌금 내주는 것이 아니라 피동적으로 마지못해 해주는 행위가 아니라 나를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는 행위입니다.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정결한 가축과 정결한 새를 취하여 번제로 드렸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헌신하고 자신의 모든 열정을 쏟아부어 예배하는 삶이 자신을 번제로 드리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게 사는 삶이 번제로 드리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배 피를 의지하며 대속해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므로 좀더 하나님 앞에 헌신하고자 하는 자세로 살아가는 삶이 번제로 드리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물론 주일예배도 귀하지만 주일예배 드리는 것으로 예배했다고 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삶 속에서 유일하신 하나님께 나의 모든 시간과 열정과 진심과 물질을 헌신하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노아의 예배를 어떻게 받으셨을까요? 2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 노아와 그의 가족이 하나님께 헌신의 예배인 번제를 드렸을 때 하나님이 그 향기를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진심과 열정이 담긴 헌신의 예배를 기뻐하심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 예배를 받으시고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는 않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대홍수 심판처럼 모든 생물을 멸하지는 않으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대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지 않을 때 하나님의 뜰 성전 마당만 밟을 뿐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제물 고기 그만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형식적 예배로 전락해 버린 이스라엘 백성들의 타락한 예배 자세를 강력히 경고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제물을 바치면서 자신을 함께 바쳐야 했습니다. 우리의 존재 자체를 하나님께 전폭적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제대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또 한 가지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뿌리 깊은 죄악 된 본성을 알고 계셨습니다. 저는 수영을 잘하지 못합니다. 래프팅하러 간 적이 있었는데 저는 수영을 못해서 두둥실 떠내려간 적이 있었습니다. 물이 두려웠습니다. 다행히 그때는 튜브라도 있었지만 어렸을 적 냇가에서 놀다가 제 키를 넘는 곳에 빠져 물을 한참 먹고 형들이 구해줘서 살아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래서 지금도 물을 두려워합니다. 물에 빠지는 것이 무섭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물놀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대홍수를 목격했으면서도 노아와 그의 가족들이 하나님 앞에서 완벽하게 죄 없는 삶을 살았을까요? 물론 한 해의 시작을 예배로 시작하고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여 예배하는 삶을 살았지만 인간의 죄악 된 본성은 금 새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듭니다. 그러나 이런 죄악 된 본성을 매로 경고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근본적으로 다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매와 채찍질의 경고가 일시적 효과가 있을지는 몰라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심판만으로는 죄를 본질적으로 없애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심판을 일단 유보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지혜로 구상하신 온전한 죄 사함의 해결책을 보이십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으심과 부활입니다.
또 노아에게 있어 이 땅에서의 새로운 시작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둘째, 하나님을 예배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됩니다. 9장 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노아가 받게 되는 복은 단순히 세상의 성공, 번영, 풍요 이런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노아가 받게 되는 복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들을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게 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들이 세상에 가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대홍수 심판 이전에 하나님은 인류의 조상인 아담을 창조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 27,28절을 보면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그런데 아담의 범죄 이후 세상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충만해지기보다는 가인의 후손인 죄악 된 인간들이 세상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시금 노아를 통해 아담에게 주신 복이 성취되기를 원하셨습니다.
9장 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다시 강조하여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가득하여 그중에서 번성하라 하였더라.” 현재 우리 인간의 생물학적 번성은 몇 십 억의 인구가 될 정도로 상당히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노아에게 하신 말씀은 단순히 사람이 이 세상에 많아지게 하라는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죄악 된 사람들이 많아졌을 때 하나님은 싹 쓸어버리시기도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공생애 사역을 마치시고 승천하시기 이전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자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복 중 하나는 이 세상에 예수님 믿는 신자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신자들로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 전파를 통해서만 이루어집니다. 설 연휴는 우리나라 대 명절이기에 대부분 가족끼리 모이게 됩니다. 이럴 때 서로 안부도 묻고 덕담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족을 잘 섬기고 복음을 전하는 기회로 삼는 것도 중요합니다. 꼭 이때만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끊임없이 가족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가족들에게 덕을 끼치므로 가족들이 주님께로 나아올 수 있도록 돕고 섬겨야 할 것입니다. 부모 가족 자녀 친지들이 복음을 영접하고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면 이 또한 하나님이 주시는 큰 복이 될 것입니다.
또 노아에게 있어 이 땅에서의 새로운 시작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셋째, 하나님은 노아와 노아의 가족들이 이 땅에서 새로운 시작이 소망의 날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대홍수 심판 가운데 1년 동안 망망대해를 떠돌던 노아와 그의 가족들을 새로운 환경으로 인도하시고 그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약속하시는 언약입니다. 언약은 노아 한 사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의 후손들에게도 적용됩니다. 그러므로 언약의 기간은 대대로 영원히 계속됩니다. 그러면 그 내용이 무엇입니까? 11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언약의 요지는 다시는 홍수로 심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거꾸로 생각하면 인간의 죄에도 불구하고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언약이기도 합니다. 인류 역사상 이 세상은 홍수도 있었고 여러 크고 작은 심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노아 시대와 같은 대홍수 심판은 없습니다. 그러면 이 언약의 증거가 무엇입니까? 13절을 보십시오.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하나님은 언약의 증거로 일곱 가지 빛줄기의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십니다. 그런데 왜 무지개를 증거로 삼으셨을까요? 우리에게 무지개는 비가 개고 햇볕이 날 때 생기기에 소망을 줍니다. 그래서 무지개를 ‘희망의 상징’이라고도 합니다. 일반적인 의미로 그렇지만 히브리인들의 생각으로 보면 어떨까요? 히브리어로 ‘무지개’는 ‘활’과 같은 의미로 쓰였습니다.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둔다는 것은 활을 벽에 걸어 둔다는 의미와 같았습니다. 활은 전쟁의 도구로 사냥할 때나 사람을 죽일 때도 사용되는 무기였습니다. 이처럼 심판의 도구인 그 활을 벽에 걸어 두십니다. 이는 ‘다시는 대홍수로 심판하지 않겠다’라는 하나님의 결심입니다. 그만큼 심판보다는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또 하나님은 무지개를 볼 때마다 자신의 언약을 기억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를 볼 때 무지개는 우리 죄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용서와 오래 참음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노아 시대에 무지개 언약을 주신 하나님은 신약 시대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향한 용서와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의 행위대로 하면 우리 인생들은 모두 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진멸되어야 마땅할 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인생들을 향한 당신의 진노를 예수님의 십자가에 다 쏟아부으셨습니다. 인간이 받을 심판을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에게 다 쏟아부으셨습니다.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다 뒤집어쓰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십자가는 무지개처럼 아름답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십자가는 잔인하고 처절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그치고 우리의 악한 죄를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신비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과 우리 인간 사이의 화평의 증거입니다. 그런즉 예수님의 십자가가 지금 우리 신자들에게 있어 하나님의 무지개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지개를 보시면서 인간을 홍수로 심판하지 않은 것처럼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시면서 우리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 우리의 진정한 소망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언약의 상징인 무지개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하고 진정한 소망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참된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새 인생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새출발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내 인생에 소망의 무지개가 떠오릅니다.
여러분! 우리가 노아처럼 하나님을 예배하고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붙들고 하나님이 주시는 신령한 은혜와 복들을 누리며 사는 삶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음력으로 1월 1일 설 연휴를 맞아 새로운 시작을 하면서 하나님께 예배를 삶의 가장 우선순위로 삼고 예수님께 참된 소망을 두며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복들로 충만한 새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