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지 한국교회 내에서는 "신학대학은 목사를 양성하는 곳이고 신학대학을 나오면 반드시 목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지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생각에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참고로 저는 신학생입니다.
보통 신학에 대해서 생각할 때, 신학은 목회와 선교를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신학은 단지 목회와 선교만을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닐 뿐더러 목회와 선교를 이해할 때도 좀 더 광범위한 이해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보통 신학대학을 나오면 단독목회를 하거나 아니면 해외선교 혹은 신학자가 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인 실정입니다. 그러나 신학은 그 성격 자체가 매우 톡특하면서도 내용이 매우 광범위하다고 생각되어집니다. 신학은 말 그대로 신에 관한 학문,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학문인데 하나님 또는 하나님의 말씀을 다룬다고 해서 단순히 인간의 내면적이고 영적인 문제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역사와 세계의 총체적인 문제를 결국 다루는 것이 아닐까요?
역사와 세계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궁극적으로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목표로 가지고 계시므로 신학의 주제도 단순히 인간의 영혼이나 교회와 관련된 것일 수만은 없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관심이 과연 단지 인간의 내적 구원이나 교회성장이겠습니까? 하나님의 관심은 그것들을 포괄하는 더 큰 "하나님의 나라", 곧 하나님의 전우주적 통치가 아닙니까? 그러므로 신학의 목적이나 목표도 단순히 목회와 선교만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학대학은 단순히 교역자만 양성하는 학교가 아니라 교역자를 포함해서 교회와 사회를 위해 봉사할 모든 '기독교 지도자'를 양성하는 학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즉, 다시 말해서 영성과 전문성을 겸비한 목회자와 평신도 지도자들을 훈련시키고 길러내는 학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커리큘럼(교과과정)도 수정하고 보완해야 할 것입니다. 21세기는 목회자와 평신도가 함께 협력해서 사역하는 시대이며 특히 전문인선교가 요구되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또한 목회도 단독목회 뿐만 아니라 보다 더 다양한 목회와 목회의 전문화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어린이선교목사, 청소년선교목사, 장애인선교목사, 이주노동자선교목사, 가정선교목사, 음악목사, 상담목사, 사회선교목사, 문화선교목사 등 다양한 방법으로 목회하는 목회자들도 필요한 시대입니다.
목사는 분명 하나님이 기름부어 세우시는 주의 종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목사만이 주의 종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주의 종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며 이제는 목회자와 평신도를 차별하지 말고 신학적 소명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신학대학에 들어가서 신학을 연구하고 훈련받아서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 교회와 사회에 봉사하는 기독교 지도자들이 되도록 신학대학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해서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입니다.
첫댓글저의 의견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신학교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을 조금이라도 더 구체적으로 전문적으로 배운다는 취지에서 세워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학교라는 것이 성경에서 정한 것도 아니며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이런 양성기관이 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학교자체가 성경적 권위를 갖는다고 생각하면 않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통과 유전으로 내려온 신학교의 관점은.. 너무 지나친 권위를 두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편으로 긍정적 측면이 없지 않는 것은 아니나 이것의 폐단성도 결코 간과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목적은 주님과 말씀이지... 그외의 조건과 요소들은.. 지극히 부차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신학교뿐 아니라.. 모든 것에 진리적인 것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다른 무엇이 더 권위를 받게되고.. 그리스도의 영과 그분의 십자가외에.. 다른 무엇이 더 권세를 갖게 된다면... 이것은 아무리 좋은 무엇이라 할찌라도.. 옳지 않으며 잘못된 것입니다.. 결국 잘 못된 것은... 터지게 되어 있고 부패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논리라는게 항상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자손을 주시겠다하였지만..
그것이 더디다하여.. 아브라함과 사라가 육신적 방법을 쓰다가 이스마엘을 놓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전통이 무엇이든 우리의 유전이 무엇이든... 어떤 것이라도... 진리(알레데이아=참)를 대적할 수 없고 '참'위에 권위를 두어서도 않됩니다.. 다소 글올리신 분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이지만.. 글올리신 분이 제시한 것의 근원적인 부분을 논하고 있다고 여기시면 고맙겠습니다.. 신학생이라고 하셨나요?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추구하시길 바랍니다.. 주안에서 더욱 하나님의 진리가 열려지시고.. 그분의 계시하심이 더욱 풍성해지시길 기도합니다.. *^^*
더불어 한 말씀만 부연합니다.. 그리스도안에서는 계급이 없답니다..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구약의 그림자가 열려지지 않으니.. 구약적 개념으로 영적인 것을 해석하다보니.. 성직자 평신도의 계급적 개념으로 유전되어 온 것입니다.. 이는 스스로 아직 율법(그림자,모형)의 수건이 벗겨지지 못했음을 자인하는 것뿐입니다.. 그리스도안에서는 모두 형제요 자매일 뿐입니다.. 다만 그리스도안에서 몇여가지 구분되어지는 것이 있는데.. 가장 중요한 부분 중에 하나가.. 성숙도입니다.. 동일한 형제,자매라도.. 영적 지식과 성숙도는 다 다릅니다.. 이 구분은 계급적 잣대가 아닌.. 생명적 잣대입니다.. 그리하여..
성경에선 이를 '장로'라고 불렀습니다.. 배드로도 자신을 '장로된 자'라 했고.. 기타 많은 사도들도.. 스스로를 장로라고 햇으며.. 각 교회마다 장로들이 교회의 감독자로.. 세워졌음을 말했습니다.. '장로'의 개념도.. 오늘날처럼.. 무슨 특별한 기름부음받은 자라는 식의 계급적 그런 개념이 아닙니다.. 모든 자가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그리스도인입니다... 구약의 그림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신학적 관점이 지나치게 유전에 의하며.. 지나치게.. 인간적 수단에 의해.. 결정됩니다.. 성경적이지 못한 부분들이.. 마치 성경적 진리인양.. 너무나 편만하게 침투되어 있기때문에... 우리가 앞으
로도 깊이... 반성해봐야하고.. 연구해봐야 할 것입니다... 어떠하든지.. 롬14장에서 바울이 증거한 바를 끝으로 소개하고 마칠까합니다..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날을 같게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해보시길 부탁드립니다.. 단순한 말같아도.. 결코 가벼운 말씀이 아니랍니다.. 오늘날은 목회자든.. 일반성도든.. 누구든지.. 말씀의 진리에는 관심을 않갖는 것 같습니다.. 왜 이러는지 도저히 이해가 않됩니다. 말씀의 진리탐구외에.. 우리가 할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관심이 철학이나 신학적 논문이나 혹여는 지나친 감상주의적인 글들 이런 것이 아닌데.. 정말 안타깝습니다...
첫댓글 저의 의견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신학교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을 조금이라도 더 구체적으로 전문적으로 배운다는 취지에서 세워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학교라는 것이 성경에서 정한 것도 아니며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이런 양성기관이 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학교자체가 성경적 권위를 갖는다고 생각하면 않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통과 유전으로 내려온 신학교의 관점은.. 너무 지나친 권위를 두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편으로 긍정적 측면이 없지 않는 것은 아니나 이것의 폐단성도 결코 간과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목적은 주님과 말씀이지... 그외의 조건과 요소들은.. 지극히 부차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신학교뿐 아니라.. 모든 것에 진리적인 것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다른 무엇이 더 권위를 받게되고.. 그리스도의 영과 그분의 십자가외에.. 다른 무엇이 더 권세를 갖게 된다면... 이것은 아무리 좋은 무엇이라 할찌라도.. 옳지 않으며 잘못된 것입니다.. 결국 잘 못된 것은... 터지게 되어 있고 부패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논리라는게 항상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자손을 주시겠다하였지만..
그것이 더디다하여.. 아브라함과 사라가 육신적 방법을 쓰다가 이스마엘을 놓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전통이 무엇이든 우리의 유전이 무엇이든... 어떤 것이라도... 진리(알레데이아=참)를 대적할 수 없고 '참'위에 권위를 두어서도 않됩니다.. 다소 글올리신 분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이지만.. 글올리신 분이 제시한 것의 근원적인 부분을 논하고 있다고 여기시면 고맙겠습니다.. 신학생이라고 하셨나요?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추구하시길 바랍니다.. 주안에서 더욱 하나님의 진리가 열려지시고.. 그분의 계시하심이 더욱 풍성해지시길 기도합니다.. *^^*
더불어 한 말씀만 부연합니다.. 그리스도안에서는 계급이 없답니다..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구약의 그림자가 열려지지 않으니.. 구약적 개념으로 영적인 것을 해석하다보니.. 성직자 평신도의 계급적 개념으로 유전되어 온 것입니다.. 이는 스스로 아직 율법(그림자,모형)의 수건이 벗겨지지 못했음을 자인하는 것뿐입니다.. 그리스도안에서는 모두 형제요 자매일 뿐입니다.. 다만 그리스도안에서 몇여가지 구분되어지는 것이 있는데.. 가장 중요한 부분 중에 하나가.. 성숙도입니다.. 동일한 형제,자매라도.. 영적 지식과 성숙도는 다 다릅니다.. 이 구분은 계급적 잣대가 아닌.. 생명적 잣대입니다.. 그리하여..
성경에선 이를 '장로'라고 불렀습니다.. 배드로도 자신을 '장로된 자'라 했고.. 기타 많은 사도들도.. 스스로를 장로라고 햇으며.. 각 교회마다 장로들이 교회의 감독자로.. 세워졌음을 말했습니다.. '장로'의 개념도.. 오늘날처럼.. 무슨 특별한 기름부음받은 자라는 식의 계급적 그런 개념이 아닙니다.. 모든 자가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그리스도인입니다... 구약의 그림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신학적 관점이 지나치게 유전에 의하며.. 지나치게.. 인간적 수단에 의해.. 결정됩니다.. 성경적이지 못한 부분들이.. 마치 성경적 진리인양.. 너무나 편만하게 침투되어 있기때문에... 우리가 앞으
로도 깊이... 반성해봐야하고.. 연구해봐야 할 것입니다... 어떠하든지.. 롬14장에서 바울이 증거한 바를 끝으로 소개하고 마칠까합니다..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날을 같게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해보시길 부탁드립니다.. 단순한 말같아도.. 결코 가벼운 말씀이 아니랍니다.. 오늘날은 목회자든.. 일반성도든.. 누구든지.. 말씀의 진리에는 관심을 않갖는 것 같습니다.. 왜 이러는지 도저히 이해가 않됩니다. 말씀의 진리탐구외에.. 우리가 할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관심이 철학이나 신학적 논문이나 혹여는 지나친 감상주의적인 글들 이런 것이 아닌데.. 정말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