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8장 18절에 “고통은 곧 드러나려는 영광을 향하여 비교되기에 가치 있지 아니한 것을 내가 간주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크리스천들은 “지금 시간”만이 있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1) 지금 시간의 고통은 장차 드러날 영광과 비교되지 못합니다(롬 8:18). 지금 시간의 고통은 장차 드러날 영광과 비교되기에 족하지 아니합니다. 장차 드러날 영광을 위해 현재의 고통에 인내하여야 합니다.
김연아가 빙상의 여왕으로 국민의 찬사를 받으며 영광을 누리는 것은, 그녀가 땀을 흘려 운동하는 오랜 고통의 시간을 인내하였기 때문입니다. 전문가가 되려면 10,000시간을 투자해야 한다고 합니다.
“No cross, no crown”은 “십자가 없이 면류관도 없다”라는 말입니다. 크리스트와 함께하는 고난이 없을 때는 그와 함께하는 영광도 없습니다. 지금 시간의 고통(suffering)은 잠시나 장차 드러날 영광은 영원합니다. 우리의 고난의 가벼운 것이 영광의 영원한 중량을 이룹니다(고후 4:17). 영원한 영광의 무게에 비교하면 우리의 고난은 대단히 가벼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당하는 현재의 고통을 기쁘게 견딥시다!
“지금 시간의 고통”은 신앙고백 때문에 경험하게 되는 시련뿐 아니라, 질병, 굶주림, 재정난과 죽음을 포함한 고통의 전체 영역을 포함합니다. 파울이 여기에서 사용한 표현은 어떠한 형태의 고통에도 적용됩니다.2) 현재의 고통은 우리를 향하여 드러날 영광과는 비교되지 못합니다.3)
1. 피조물의 기대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남입니다.
로마서 8장 19~25절에 “이는 그 창조물의 그 간절한 기대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그 나타남(revealing)을 간절히 기다림이니. 이는 그 창조물이 그 헛됨에 복종시킴을(subject) 받은 까닭이며, 자진해서가 아니나 복종시킨 자 때문이니 소망 위라. 그 창조물도 부패의 종살이에서 영광의 자유로 해방될 것이기 때문이니. 모든 창조물이 지금까지 함께 탄식하고 함께 고통을 겪음을 알았음이라. 다만 아니나, 그 영(the Spirit)의 그 첫 열매를 가지는 우리도 탄식하니 양자결연을 간절하게 기다리는, 우리의 몸의 되찾음을 그러는 우리이니. 소망을 위해 우리가 구원함을 받았음이나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니니, 누군가가 보는 어떠한 것을 기대하느냐(hope for)? 보지 아니하는 바를 기대하면 인내를 통해 우리가 간절히 기다리나”라고 하였습니다.
“간절한 기대”(eager expectation, 아포카라도키아)는 사자성어로 “학수고대(鶴首苦待)”라고 합니다(롬 8:19).
“학수고대”는 학의 머리처럼 목을 길게 빼고 간절히 기다리는 것인데, 로마서 8장 19절은 그 피조물이 학수고대하는 바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피조물”은 생물과 무생물 양쪽이며, 사람 이하의 자연 전체입니다.4) 파울은 사람이 아닌 일반 피조물에 초점을 두었을 것입니다.5)
모든 것은 원래 완전한 상태에서 현재 상태와 조건으로 하향되었기에, 피조물들의 상태에 올바른 해답은 불완전한 발전의 상태가 아닙니다.6)
그 창조물이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남을 고대하는 이유는 왜입니까? 이는 그 창조물이 헛됨에 복종시킴을 받은 까닭입니다. 자진해서 아니나 복종시키신 분 때문에 소망 위에 그러합니다(롬 8:20).
왜 피조물이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남을 열심히 고대하고 있습니까? 사람 이하 피조물의 현재의 상태는 하나님의 의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피조물은 헛됨에 복종한 상태에 있습니다.
그 창조물이 만들어진 목적에 이르지 못하여 생긴 좌절을 표시합니다. 그 창조물은 지금 하나님께서 만드신 목적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익 없게 하나님을 숭배한 것입니다(마 15:8~9). 사도 파울은 우상들을 “헛된 것들”이라고 말하였습니다(행 14:15). 파울은 그 창조물이 헛됨에 복종시킴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만물은 진화론의 주장처럼 더 좋게 진화하는 것이 아니며 퇴보합니다. 열역학 제2 법칙(熱力學 第二 法則)에 의해서도 이 사실은 증명됩니다.
물리학에 있어, 열역학 제2 법칙(second law of thermodynamics)은 에너지 흐름의 양과 방향에 대하여 진술하고 있는 물리 법칙입니다.
엔트로피(entropy)는 물체의 열역학적 상태를 나타내는 양을 말하며, 에너지의 감소 정도나 무효한 에너지의 증가 정도를 나타내는 양입니다. 일을 할 수 있는 에너지로 바꿀 수 없는 에너지의 양을 나타낸 것입니다. “사용 불가능한 에너지”의 일종으로 볼 수 있으며 에너지의 분산입니다.
물리가 진행되는 방향을 설명하는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에 따를 때, 우주의 무질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늘어나는 것입니다.
열역학 제2 법칙(second law of thermodynamics)에 비추어서 볼 때, 에너지는 “유용한 에너지”로부터 “사용 불가능한 에너지”로 변화됩니다. 우주의 무질서가 계속 증가한다는 것이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 우주를 창조하시면서 우주에 질서를 부여하셨으나 우주는 무질서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습니다.
인류가 저주함을 받은 때 피조물도 함께 저주함을 받았으며(창 3:17), 피조물이 헛됨에 복종하게 되었습니다. 만물에 죽음의 씨앗이 있습니다. 우주는 인류로 인하여 저주함을 받게 되어서 부패하고 죽음에 이릅니다.
사람들은 꽃이 잠시 피어 있다가 시들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그것은 슬픔의 미학(美學)입니다.
‘꽃은 꼭 시들 수밖에 없으며 젊음은 영원할 수 없다’라는 슬픈 숙명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늙고 썩는 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며 이 모든 것은 아담의 범죄 이후에 따라 들어온 슬픈 숙명입니다.
피조물들이 복종한 것은 그 자신의 선택이나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나, 그것을 복종시키신 분에 의해 소망 위에(in hope) 그러합니다.
“복종시키신 분”은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의 죄에 대한 심판으로 그 저주를 포고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만이 피조물들에 유죄판결을 내리실 수 있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죄 때문에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 판결은 소망 안에 발하여졌습니다(issue).7) 그 피조물은 자진하여서 복종한 것이 아니나 소망 안에 복종하였습니다.
피조물이 그 자체의 충분하고 최종적인 구출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도 부패의 종살이부터 영광의 자유로 해방될 것입니다(롬 8:21).8)
이 세상을 지배하는 그 부패의 예속된 피조물이 소망 안에 존재하는데 종말론적인 영광 안에 참가하기 위하여 해방될 것이라는 소망입니다.9)
“영광의 자유”는 영광의 상태에 속한 그 상태와 연합된 자유입니다.10) 피조물은 하나님의 자식들이 누리게 될 영광의 자유에 동참할 것이며, 피조물이 썩어질 본질의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해방될 것입니다.11)
모든 피조물이 지금껏 함께 탄식하고 함께 고통을 겪습니다(롬 8:22). 만물의 영장인 인류가 죄를 범하여 땅이 저주를 받게 된 때에(창 3:17), 모든 생물도 한꺼번에(with one accord) 저주를 받았습니다(왕상 18:5).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투쟁은 하나님께서 처음에 창조하신 보시기에 좋은 모습이 아닙니다. 인류가 죄를 지어서 땅이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창조물이 이러한 저주에서 해방될 때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사 11:6~8).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때 그 피조물이 저주에서 해방될 것입니다. 부패하지 아니하고 신음하거나 고통을 겪지 아니하는 때가 올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날 것을 그 피조물이 간절히 기대합니다.
봄마다 자연은 무엇인가 영구적인 것을 낳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봄이 오면 자연은 겨울에 짓눌렸던 모든 어두움에서부터 벗어납니다. 봄이 오면 완전한 피조물을 산출하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가련하고 늙은 자연은 매년 ‘허무한 것’과 싸워 이기기 위해 힘씁니다. 그러나 자연은 성공할 수 없고, 함께 탄식하고 함께 고통을 겪습니다.12)
“다만 아니나 또한 우리도”는 “그 피조물”로부터 “우리”를 제외하는데, 그 성령(the Spirit)의 첫 열매를 가지는 우리입니다(롬 8:23).
구약성경에서 “첫 열매”(ajparchv)는 제사장에게 주는 것인데(신 18:4), 첫 열매(first fruits)는 뒤따르는 열매들을 예고합니다.
“성령의”는 설명적 보어로 사용되어 “성령인 첫 열매”를 뜻합니다.13)
창조물뿐만이 아니라 또한 바로 우리도 우리 자신들 안에 신음합니다. 양자결연을, 우리의 몸의 되찾음을 간절히 기다리는 우리입니다.
신자들은 “첫 열매”인 “성령(the Spirit)”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므로 뒤따르는 열매인 “양자결연”, 즉 “우리의 몸의 되찾음”도 가질 것입니다.
우리는 양자결연의 영(Spirit)을 받았지만(8:15), 간절히 기다립니다. 파울은 8:23에서 “양자결연”을 “우리의 몸의 되찾음”이라고 설명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몸을 되찾지 못하였기에 그 되찾음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양자결연의 완성은 우리의 몸을 되찾을 때 있으므로 간절히 기다립니다.
2. 우리는 보이지 아니하는 소망에 구원함을 받았습니다.
로마서 8장 24~25절에 “이유는 우리가 소망에 구원함을 받았음이나,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니니, 어떤 사람이 보는 바를 누가 기대하느냐? 보지 아니하는 바를 기대하면, 인내를 통해 기다리나.”라고 하였습니다.
“소망(hope)”(엘피스)은 “소망”, “기대”(expectation)를 뜻하며 헬라어에서는 좋고 나쁜 모든 종류의 미래사에 대한 예상을 나타냅니다. 플라톤은 인간 존재는 미래에 대한 기대 때문에 결정된다고 말했습니다.
신비 종교는 사후의 복된 삶에 대한 약속과 더불어 “소망”에 기초하나 신비 종교가 약속한 신격화와 불멸은 사람의 허무한 몽상에 불과합니다.
아우구스투스는 옛 소망을 완성하며 새 소망에 불붙인 자로 칭송되나, 스토아 학자들은 소망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시편 16편 9~10절에 “나의 마음이 기뻐하고 나의 영광이 즐거워하며 또 나의 육체도 안전에 머무를 것이니(will rest secure). 이는 당신이 나의 영혼을 저승에 버리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여기서 “안전”이라는 의미를 지닌 히브리어(베타흐)를 “소망(hope)”이라는 헬라어(엘피스)로 인용하였습니다(행 2:26). 시인의 육체는 소망 위에(in hope) 장막을 칠(live) 것입니다.
“소망에”가 영어 성경들에는 “소망 안에”(in hope)로 번역되었습니다. “소망과 함께”(with hope)라는 “연합”을 뜻한다고도 주장됩니다.14)
신자들은 현재 구원받고 있으며 미래에 완전히 구원받을 것입니다.15)
“소망”은 ‘열심히 고대하는 것’이며 기다리며 발돋움하는 것입니다.16) 우리는 소망의 영역 안에 구원을 받았습니다.17)
소망 가운데(in) 우리가 구원되었으나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니니, 어떤 사람이 보는 바를 누가 기대합니까?
이미 성취가 되어 눈에 보이는 것은 실현이지 소망이 아닙니다. 아직 보이지 아니하는 것을 믿음으로 기다리는 때에 그것이 소망입니다. 소망이 실현되어서 현실에 보이게 된다면 그것은 이제 소망이 아닙니다.
우리는 혈과 육으로 기업을 이어받을 것으로 약속받지 않았습니다.18) 우리가 갈망하여야 하는 것은 ‘벗는 것’이 아니라 덧입는 것입니다.19)
만일 보지 아니하는 바를 기대하면 인내를 통해 기다립니다(롬 8:25). 보는 바를 기대하지 아니하고 보지 아니하는 바를 기대합니다(롬 8:24).
크리스천은 아직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을 소망하고 있는 자입니다.20) 우리가 보지 아니하는 바를 기대하면 인내를 통해 간절히 기다립니다. 이 단락에서 간절히 기다린다는 말로 수미상응하고 있습니다.
“학수고대(鶴首苦待)”는 학 머리처럼 목을 길게 빼고 기다리는 것인데 우리도 이렇게 우리의 목을 길게 빼고 몹시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는 “소망”을 가지고 있기에 인내합니다.21) 크리스천은 열심과 “인내”를 모두 가진 사람입니다.22) 크리스천은 인내를 통해 기다립니다.
1) D. M. Lloyd-Jones, 『로마서 강해 6』, 서문강 역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99), 51.
2) Douglas J.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W. B. Eerdmans, 1996), 511.
3) N. T. Wright, 『로마서』, 장용량, 최현만 역 (서울: 에클레시아북스, 2014), 353.
4) C. E. B. Cranfield, The Epistle to the Romans Volume 1, Romans 1-8 (New York: T&T Clark Ltd, 2004), 411-412.
5) 이한수, 『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 (서울: 이레서원, 2008), 816.
6) Lloyd-Jones, 『로마서 강해 6』, 82.
7)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516.
8)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517.
9)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517.
10)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517, n. 48.
11) Lloyd-Jones, 『로마서 강해 6』, 107.
12) Lloyd-Jones, 『로마서 강해 6』, 87.
13)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520, n. 61.
14)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521-522, n. 72.
15) Lloyd-Jones, 『로마서 강해 6』, 139.
16) Lloyd-Jones, 『로마서 강해 6』, 142.
17) Lloyd-Jones, 『로마서 강해 6』, 145.
18) Lloyd-Jones, 『로마서 강해 6』, 148.
19) Lloyd-Jones, 『로마서 강해 6』, 150.
20) Lloyd-Jones, 『로마서 강해 6』, 152.
21) Lloyd-Jones, 『로마서 강해 6』, 156.
22) Lloyd-Jones, 『로마서 강해 6』, 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