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1. 26. 주일
임은미 선교사 묵상
최고의 날~ "하나님은 왜 내 기도를 응답하지 않으시는가?" 사무엘상 8장
코스타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고 그들의 삶에 "하나님을 더 사랑하기로 결단"하는 시간들이 코스타 프로그램 순서 순서마다 함께 했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코스타에 참석하여 열심히 내가 해야 하는 설교, 강의, 상담의 사역들을 했지만 숙소로 돌아오면 밀려(?) 있는 카톡 사역 역시 했었다.
얼마 전에 아주 무거운 이야기로 상담의 메시지를 보내온 사람이 있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어둡고 무거운 메시지가 아닐 수 없었다.
일단 내가 그 상황을 대적할 수 있도록 "대적기도"가 있는 동영상을 보내 드리고 "대적기도"를 직접 실천해 보고 그래도 힘이 들면 다시 연락을 달라고 했더니
내가 보낸 동영상을 다 보고 난 다음에 아래와 같은 문자가 왔다.
***
믿지 않아도 승진 결혼 잘하고 갈수록 조금씩 잘 풀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래도 나는 구원받았지’ 하는 생각으로 위안(?) 삼는 것도 올바른 생각이 맞나.. 싶기도 합니다.
제일 화가 나고 억울함이 몰려 오는 부분은, 교회 다녀도 열심히 기도하지 않았는데도 인생의 단계들마다 착착 채워 주시는 삶을 사는 사람들을 볼 때 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기도를 더 하라는 말을 들을 때 너무나 비참합니다.
기도 안 해도 복 주시는 사람들 많네-
나는 기도 해도 하나도 안 주시는데 그럼 나도 안 하고 싶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라면서 내가 하나님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할 때도 응답 안 해주시고 내가 외로울 때 부르짖을 때 한 번이라도 응답해 주신 적 있나..
크리스천임을 드러낼 수록 초라한 내 인생을 보며 비웃음만 살 텐데 기도하고 초라한 인생보다는 기도 안 하고 초라한 인생이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실망 시키시는 하나님을 원망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요..
기대가 없으면 실망과 비참함은 덜할 테니까요..
**********
이렇게 글을 보낸 사람과 같은 심정의 사람들이 이 땅에 더 있지 않을까?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어떤 메시지를 드려야 도움이 될까?
나는 그분이 보낸 문자를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는 이분이 "예수님을 만나게 해 달라"는 기도를 드리겠다고 말했다.
내 생각에는 "예수님"을 정말로 인격적으로 만났다면 이런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을 또 읽어 보고 또 읽어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하나님 사랑하는 사람이 이 땅에서 초라하게 사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싫어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을 아예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이분의 메시지를 보면서 과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왜 기도를 하는가?"에 대한 생각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른 종교도 자신들 잘 되게 해 달라는 기도를 드린다.
각자의 신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말이다.
각자가 부르는 그 신들에게 돈도 갖다 준다.
그리고 그렇게 자기의 신을 부르고 난 다음 환경이 좋아지고 즉슨.. 세상이 말하는 성공, 부, 명예 이런 것들을 갖게 되면 그들은 그들이 부른 신이 "참된 신"이라고 믿어지게 되고 그리고 그것을 고백한다.
내가 부른 나의 신이 나의 기도를 응답해서 내가 이렇게 이 땅에서 "순탄하고 형통한 길"을 걷게 되었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하나님이나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이거 저거 내가 원하는 것들을 다 해 달라고 기도하고 그대로 응답이 되면?
자기가 믿는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 되는것인가?
우리에게 있어 "하나님"이라는 존재는 어떻게 이해 되어야 할까?
나는 한때 내 묵상에
"나는 예수님 안 믿는 사람들이 이 땅에 살 때 나보다 더 잘 살았으면 좋겠다!"라는 글을 쓴 적이 있었다.
이유는 참 간단한 것이다.
그들에게는 "영원"이라고 주어지는 곳이 "지옥이라는 불 못"이 된다.
영원이라는 것은 끝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땅의 삶은 끝이 있다.
내가 죽는 날까지 인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 안 믿는 사람들이 지옥을 간다고 한다면?
그들이 영원토록 고통 받아야 할 그 시간들을
생각한다면
이 땅에서 요즘 100세 인생이라고 한다면
겨우 정말 겨우 100년의 삶을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그렇게 싫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나는 내가 죽고 난 다음 영원의 시간을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천국"에서 살게 된다.
끝이 없는 시간들이다.
"영원"의 개념을 우리는 사실 잘 알지 못할 것 같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내가 이 땅에서 예수님 안 믿는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그들의 "가짐! 누림! 즐김!" 이런 것들이 정말 부러워야 할 이유가 있을까?
나는 그들이 나보다 더 잘 살았으면 좋겠다.
잠시의 이 땅의 삶이 나보다 더 부유하고 더 명예롭고 더 형통하고 더 건강했으면 좋겠다.
어차피 그들은 나중에 영원의 시간을 이루말할 수 없는 고통으로 보내게 될테니 말이다.
그 이루 말할 수 없이 겪을 고통에 비한다면
지금 내가 이 땅에서의 삶이 100년이라고 한다면 그 시간 조금 덜 먹고 덜 입고 덜 누리는 것이 그토록 안타까와야 할 일일 것인가?
내게 글을 보낸 사람은 아픈 사람 같지는 않았다.
하루 세끼 못 먹는 사람 같지도 않았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차이점이 무엇일까?
내 중보기도 카톡 방에 최재형이라는 집사님이 있으시다.
어제 밀려 있는 기도방 문자들을 보니 그분이 천국으로 이사를 가셨다는 "부고 소식"이 카톡 방에 올라 와 있었다.
항암 치료를 80번까지 하신 분이다.
항암 치료 받으러 갈 때마다 중보기도방 식구들에게 기도를 부탁하신 분이라 나는 그분을 개인적으로는 모르지만 그분의 이름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분이 중보기도방 식구들에게 사랑을 입은 이유는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항상 다른 환우들을 격려하고 자신의 아픔과 고통에 대한 불평은 단 1도 없으신 분으로 나는 기억을 하고 있다.
자신이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항암의 부작용을 몸으로 겪는 상황에서도
느을 그분이 기도 제목으로 올리는 문자에는 감사가 빠지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가 누리게 되는 "영생"에 대한 고마움을 알게 된다.
그 고마움이 깊으면 깊을수록
우리는 이 땅에서 우리가 기도한 것들을 다 응답 받지 못해도 마음에는 "감사의 고백"을 잊지 않게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네 인생.. 죽는 날까지 문제와 함께 동행하게 되어 있다.
그 동행의 시간들을 어찌 견디려고 하는가?
"감사"로 싸우지 못한다면 말이다!
나는 위에 문자를 보내신 분을 위해 기도를 드렸다.
케잌도 보내 드리면서
단 하루라도 마음에 좀 기쁨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씀 드렸다.
하나님이 내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면
"하나님"이 되는 것이 맞을까?
그러면 평생 살면서 단 한 번이라도 하나님이 내가 원하는 대로 안 해 주면
나는 "하나님"을 다른 "신"으로 바꾸고 싶어지는 것일까?
내가 바꾸고 싶을 때 바꿀 수 있는 "신"이라면
그 "신"은 나에게 "하나님"이 될 자격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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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 사무엘상 8장
18. 그 날에 너희는 너희가 택한 왕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되 그 날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니
When that day comes, you will cry out for relief from the king you have chosen, but the LORD will not answer you in that day.”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지 아니하시리라" 라는 이 말씀이 마음에 와 닿는다.
하나님이 우리가 기도를 해도 그 기도를 응답하지 않는다고 한 이 구절의 배경이 무엇인가?
하나님은 사무엘이라는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리시고자 하셨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 을 왕으로 모시기 보다는
사람을 "왕"으로 달라고 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옆을 보니 이웃 나라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사람"이 "왕"으로 세움을 입고 사람들을 다스리는 그 모습이 좋아 보인 것이다.
그래서 백성들이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고
사람을 왕으로 세워서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고자 하는 그들의 뜻을 확인 한 후에 하시는 말씀이
바로 위의 성경 구절인 것이다.
주님
오늘도 최고의 날입니다!
오늘 사무엘상 8장을 묵상하면서 과연 나의 삶에 "하나님"은 나를 다스리시는 "왕"이신가?
아니면?
나도 이방 사람들이 세워 놓은 "왕"을 부러워 하여 "하나님"의 생각과 법이 나를 다스리게 하기 보다는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고 따르는 것들로 내 마음이 지배 당하도록 허락하는 것이 없는지요?
내가 원하는 것들이 그대로 충족되지 않는다면 내가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분이 부끄러운 하나님이 되는것인지요?
나에게 "진정한 왕"은 누구인가? 라는 생각을 해 보지만
이 질문에
저는 "하나님"이 나의 왕이시라고 고백할 수 있어서 감사 드립니다!
주님!
사람들은 내가 좋아하는 내 하나님에 대한 불평 불만을 나에게 말할 때가 있습니다.
제가 상담 케이스 받을 때 가장 제 마음이 어려운 상담이 바로 이런 케이스들입니다.
이럴 땐 마치
누군가 내가 사랑하는 내 아버지를 원망하는데 내가
"정말 우리 아버지는 왜 그럴까요? 참 나쁜 분이시네요!" 이렇게 말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 아버지를 내 앞에서 싫다고 하는 사람을 달래(?) 주고 위로(?) 해 주는 일이 저에게는 참으로 힘든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망스런 사람은 그 누구에게도 원망의 소리를 할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사람들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원망스런 하나님의 백성들을 긍휼히 여겨 주시고 기다려 주시는 하나님이라서 참 감사합니다.
그런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라서 저는 참 든든합니다.
변치 않는 사랑을 감사 드립니다.
모든 사람을 오래 기다려주시는 그 사랑을 감사 드립니다.
오늘은 오클랜드 빅토리아 교회에서
1부 어른들 예배
2부 청년들 예배에 설교가 있습니다.
"좋으신 하나님"에 대하여 올바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그리고 이 땅에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건강하지 않고 왜곡된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을 하나님이 가르치고 싶어 하는 그대로 잘 배울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하나님을 올바로 알아가야 하는 길을 방해하는 모든 악한 마귀는 저주받고 도망가도록 주님이 명령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절대로 절대로 하나님을 원망하고 싶다는 그런 말은 안 하고 살도록 또한 도와 주옵소서!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 저를 보시면서 하루 종일 기쁘시면 참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