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제목이 부담스러웠습니다.
완벽주의라는 개념은, 아이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큰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얼마 전에도 공부와 성적에 대한 강박을 이기지 못하고, 투신 자살한 중고등학생들의 소식이, 어른들의 마음을 대단히 아프게 한 적이 있었죠.
"아이들 때부터 퍼펙트해져야 살아 남을 수 있는 이 세상인가?"
"아이도 아니고 이제는 베이비 시절부터 퍼펙트해져야 생존이 가능한가?"
아, 그런데.... 책을 펼쳐 보니 그런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아이건 어른이건, 남을 짓누르고 앞지르고 몰아세우는 경쟁에서 승리자가 되라는 퍼펙트함을 강요하는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자신도 행복해지고, 주변 사람들도 행복하게 만들며, 자신을 낳아 준 부모에게 참된 기쁨을 안기고, 나아가 언젠가는 자신도 그 신분을 취득할 부모가 되어, 훌륭한 양육의 본분까지 다할, 그런 아이를 낳고 기르려면 무엇이 필요할지,
이 책은
신생아를 낳아 기르기 시작하는 부모,
한창 커 가는 틴에이저를 키우는 부모,
앞으로 부모가 될 젊은 커플,
자녀를 혼인시킨 후 육아 과정을 돌이켜 보는 veteran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책은 크게 2부로 나뉘어 있습니다.
1부는 태아편입니다. 태교의 효과와 중요성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마다 아직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많은 임신부, 예비 맘들은 어쨌든 아이에게 최대한의 배려와 정성을 쏟으려고 하는 게 보통입니다. 그래서, 태교의 방법으로 좋다는 건 다 시도해 보곤 하죠.
이 책의 태아편은, 그간 식상할 만큼 흔히 알려진 정보 외에, 실증적이고 과학적인 놀라운 사실, 혹은 그간 확신을 갖지 못하던 몇 가지 사항에 대해, 분명한 물적 토대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2부는 발달편입니다. 세상에 고고의 성을 울리며 태어난 아이들을, 어떻게 해서 주위와 잘 융화하고 필요한 지식을 잘 습득하며, 자기 감정을 잘 조절하는 매력적이고 착한 아이로 키울까 하는 고민과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을 다 읽고, 이 책의 원전 격인 EBS 다큐멘터리 vod도 찾아 보았습니다.
다큐는 총 5부로 구성되어 있었구요. 1부가 이 책의 '태아편'이었으며, 2~5부가 이 책의 '발달편'에 해당합니다. 와이즈베리 출판사의 이 책은, 약간 산만하고 중복된 감을 주던 2~4부를 적절히 통합, 요약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고르신 분들은, EBS의 빼어난 다큐멘터리를 매우 인상깊게 보고, 자신의 느낌을 정리하기 위해, 혹은 일회성으로 휘발되기 쉬운 지식을 보다 체계적으로 접하려는 목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분들께 이 책은 아주 퍼펙트한 완결편 노릇을 해 줄 것입니다. 다큐멘터리의 내러티브를 최대한 살려 놓았기 때문에, 필요한 부분만 찾아서 집중적으로 '복습'할 수 있는 멋진 매뉴얼, 교과서 구실을 할 수 있습니다(TV 다큐는 러닝 타임의 배열에 따라 계속 지켜 봐야 하기 때문에, 바쁜 분들은 능동적으로 참고하기가 힘들죠). 게다가 종이의 질이 고급이고, 다큐멘터리의 화면을 여럿 살려 도판으로 제시하고 있어서, 방송을 전혀 보지 않은 분들에게도 그 자체로 유익하고 풍부한 정보원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 보겠습니다.
먼저 1부 태아편입니다. 이름하여, '태아 프로그래밍'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진보적이고 개방적인 국민성으로 유명한 네덜란드인들은, 최근에 암스테르담 메디컬센터 테사 로스붐(Tessa Roseboom)박사의 주도 아래 이끌어지는 어떤 연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연구의 목적은, ㄱ. 유전과 ㄴ. 태아기에 태아가 임신부의 배 속에서 겪은 체험, ㄷ. 출생 이후의 후천적 환경, 이 셋 중 어떤 것이, 인간의 체질과 건강, 기타의 상태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지를 밝히는 것입니다.
아이의 유전적 특질은, 이미 아빠와 엄마의 유전자 반씩을 물려 받을 때부터 결정됩니다. 이는 '결합 당시'의 염색체 보유자 양 당사자 외에는, 어떤 인간도 자신의 의지에 따라 결정할 수 없습니다.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를 결정하는 요소 중, 가장 '운명적'인 것입니다.
다음으로, 이미 유전자조합은 결정되었지만, 엄마의 자궁 안에서 280일을 보내는 동안 태아는 다양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 만약 엄마가 전쟁, 기근, 빈곤 등으로 태아에게 10달 동안 충분한 영양을 공급하지 못했다면, 태아는 이의 영향을 심각하게 받게 됩니다.
엄마 뱃속에서 태아가, 결핍된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면, 그 아이는 태어나면서 유전자의 기능이 차단된다는 것입니다. 지(방)질이 원활하게 공급되지 못하는 태아는 POMC 유전자의 '스위치'가 닫히게 되는데요, 그 이유는 지방질을 분해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태어난 아이는, 이후 지방을 섭취해도 스위치가 닫힌 유전자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어, 비만이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태아 상태에서 췌장이 발달하지 못한 아이는, 태어나서 인슐린을 원활히 분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인이 되어 당뇨병에 걸리거나, 아니면 소아당뇨로 고생하게 되는 거죠.
선천적으로 유전자가 고정된 면을 주시하는 것보다, 후천적으로 유전자가 환경에 따라 변모를 겪을 가능성과 양태에 더 주목하는 학문 분야를 '후성유전학'이라고 부릅니다. 이 후성유전학은 일차적으로, 자궁 속에서의 후천적 환경으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는지를 집중적으로 연구합니다.
그러면, 선천적 유전자 특질보다 더 중요한, 자궁 속에서의 280일을, 바람직한 방법으로 보내지 못 한 아이는, 운명 아닌 운명에 평생 속박되어 살아가야 하며, 그 어머니는 일생을 죄책감 속에 지내야 할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후성유전학이 보내는 긍정적 메시지와 의의는 바로 이 부분입니다. 아이는 태어난 이후에도, 특히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계속 의미 있는 성장을 거칩니다. 이때, 이미 받은 나쁜 영향을 본인과 주변의 노력에 의해, 충분히 보상하고 극복할 수 있다는 게 후성 유전학자들의 일치된 주장입니다.
이 책은 이런 전제 하에, '태아프로그래밍' 편을 접고 2부, '발달'로 넘어갑니다. 사실 아무리 퍼펙트한 유전자, 퍼펙트한 자궁 내 체험을 보유, '이수'한 아이라도, 이후 과정이 험난하면 퍼펙트한 성인으로 자라날 수 없죠. 정작 중요한 건 지금부터입니다. 인간(즉 부모)의 의지와 노력, 정성이 가장 많이 개입할 수 있는 단계니까요.
1부 태아프로그래밍 편은, TV 다큐가 다룬 것 이상의 부분을 다룹니다. 캐나다 얼음폭풍의 사례, 임신 중 스트레스, 임부가 받은 스트레스가 아이의 감정 조절 능력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의 논의가, 각종 도표와 함께 상세히 다뤄집니다. 특히 '퍼펙트 정보' 파트는, 정확하고 분명한 추가 정보를 독자에게 전달하며, 많은 참고 자료를 제공합니다.
2부 '발달'에서는, 어떻게 하면 학습 능력이 증진되고 자기 감정을 잘 통제하여, 우수한 학생, 인기 있는 친구가 될 것인지를 자세히 적고 있습니다. 놀라운 점은, 자기 감정을 잘 통제하는 아이는 남의 감정을 읽어내는 능력도 뛰어나며, 이런 아이가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좋고, 리더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감정 조절 능력이란, 억울함이나 분노를 무조건 참기만 하는 게 아니라고 합니다. 과잉 분출도 문제지만, 과소 분출 역시 마찬가지로 문제입니다. 이런 감정 조절이 능숙한 아이가, 결국 학업 성취도 만족할 만한 수준을 보이게 된다는 게 연구진의 결론입니다.
학업 성취는 어떤 경우에 최대화할 수 있을까요? 전통적으로 경영학, 심리학에서는 인센티브 이론을 견지해 왔습니다. 작업 능률에 따라 성과급을 지불하면, 노동자들은 그에 비례해 생산성을 향상시킨다는 거죠. 그러나 생활 수준이 향상됨에 따라, 이 이론은 더 이상 그 효용을 유지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무작정 당근만 기계적으로 제시한다고, 그에 따라 결과를 내 놓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현대 심리학자들은, 인간이 자아 성취의 쾌감을 느낄 수 있을 때, 가장 높은 질적 성취를 이뤄 낸다는 점에 대체로 동의합니다. 남의 동기가 아니라, 나 자신의 동기에 의해 행동하는 사람이, 남보다 나은 결과를 낳고, 자신의 잠재 능력도 최고도로 발휘한다는 뜻이죠.
아이를 가르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하는 거짓말을 무섭게 알아챕니다. 진심이 아닌데도, 아이더러 공부를 잘 하게 만들기 위해, 마음에 없는 칭찬을 하는 순간을 감지한다는 것입니다.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은, 엄마 아빠를 기쁘게 해 주기 위해 공부하는 아이들이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 공부하는 아이들이라는 거죠. 이를 위해서는 동기가 외부적인 것이 아닌, 철저한 자발성에 기초한 내부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육아를 현재 진행 중이거나, 임박한 미래에 계획 중인 분들은 말할 것도 없고, 육아가 먼 미래에 있거나, 아니면 아예 아무 전망이 없는 이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책은, 우리 인간의 육체적 건강 여부가 어디에서 가장 먼 기원이 비롯하는지, 혹시 잘못되었다면 바로 잡을 방법은 없는지, 어떤 방식으로 소속 집단의 구성원, 동료들과 소통해야 하는지, 나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이끌어내는 방법이 뭔지, 아이의 예를 통해 되돌아 볼 수 있게 해 줍니다. 어린이는 어른의 스승이자 척도란 말이 있듯, 퍼펙트 베이비를 통해 우리는 불완전한 자신을 보다 바람직하고 나은 인간형으로 가다듬을 시간을 갖게 됩니다. 이 책은 세심하고 깔끔한 편집과 알찬 정보로, 미처 챙기지 못하고 지나친 소중한 지혜를 갈무리하게 도와 줍니다.
첫댓글 좋은 실용서입니다. 서평만으로도 필독서로 강추 !
강태규님, 정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