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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가는 가을에 성인의 한소식을 보내드립니다.
님들 안녕하신지요 ...... 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우주의 가을도 문덕 이렇게 저희들에게 와닿겠죠
문제는 지구1년의 가을은 작은서릿발이 낙엽을 떨어뜨리고 열매를 맺지만 우주1년의 가을은 우주의 서릿발이 종교와 선악을 초월하여 인간열매를 제외하고는 명줄을 끊어간다는 대자연의 섭리앞에 숙연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조상선령신의 가호가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각민족마다 민족의 고유한 경전들이 있습니다. 불경 성경 사서오경 도덕경.......등등
어떤분이 말씀하시길 지구촌 각나라중에서 대한민국이 최고인것이 엄청나게 많다고합니다...
물맛 산삼 한복 김치 한옥 .................삼성 반도체까지......
저희 종도사님께서는(증산도 최고지도자님) 대한민국이 지구의 혈자리라고 자주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오죽 첫째가는 으뜸이 많겠습니까
인걸은 지령이라고 혈자리에서 생겨나는 대한의 사람중에 어찌 유불선의 성인보다 위대한 성인이 없다 할수 있겠습니까?
증산도를 하나의 종교단체로만 보시면 도전내용이 잘들어오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증산도는 결코 종교로서 세상을 교화하고자 하는 종교단체가 아닙니다.
종교와 사상을 초월한 대경대법의 대도진리로서 보시면 기절초풍할 충격적인 내용들이지요
고서에 천지는 음양의 前體 일월은 음양의 對用이라 하셨습니다...
인간과 만물이 생겨나는 바탕인 천지일월의 변화운동(= 대자연의 섭리)를 모르고서 어떻게 인간의 근본과 세상사를 알수있겠습니까 어떻게 성인과 성인들이 열려고 하였던 대동세계를 알수 있겠습니까
선생님 도전을 몇회 정독하시면 모든인간들이 꿈꾸고 찾고자 하는 용화세계가 눈앞에 펼쳐지리라 확신합니다...
그리고 지구촌에서 인간에게 던지는 가장큰 비극중하나는 각 종교의 신관의 차이 입니다 신관이 통일되지 못하면(인위적인것이 아니라 진리적인것) 영원한 화평의 세계는 불가능한것 일것입니다. 병의 근원은 치료하지 못한채 매번 임시방편에만 그치게되겠죠
우리나라에 일제 암흑기에 600만명의 신도를 거느렸던 증산도의 보천교가 현실역사에 엄연히 살아 있습니다 김구의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의 절반이상이 태을주 읽던 보천교에서 들어갔습니다 (임시정부의 요원들중 상당수가 보천교에 입교했던 분들이지요 이기록은 현존하는 사실입니다)
증산도의 출발은 진표율사의 미륵신앙에서 출발합니다.(1200년전) 전라북도 모악산 금산사 입니다.. 증산도는 미륵신앙의 출발지인 금산사에서 출발하는것이지요
진표율사와 미륵신앙에 대한 좋은 강의 자료가 있어 메일을 보내드립니다... 깊은밤에 찬찬히 보시면 깊은 인연의 기운이 발동될것입니다.
늘상 건강하시고 천지신명과 조상선령신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기도 올립니다...
목차 1. 머리말 2. 진표율사의 생애 1) 진표율사에 대한 기록 2) 출가와 구도 과정 3. 진표율사와 금산사 1) 모악산 금산사의 역사 2) 금산사 미륵전 3) 미륵신앙의 유래 4) 진표율사 이후 미륵신앙의 흐름 4. 증산도 사상으로 본 진표율사 1) 증산 상제님과 진표율사 2) 증산상제님과 금산사 미륵불 5. 맺음말 사회자 강의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증산도 사상으로 본 진표율사”를 강의를 할 강사님과 인사가 있겠습니다. 인사. 1. 머리말 안녕하십니까 진주에서 조금 전에 올라온 박 정숙입니다. 진주에서 올라 오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해 봤거든요,. 10여년 전에 증산 상제님 도를 처음 만나서 대전 오르내리면서 태사부님, 사부님의 강의도 많이 듣고요. 법문을 만이 들어서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을 무한한 감사를 드렸구요. 증산도가 발전하는 것이 더디다고 생각을 해 왔는데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도통 일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옛날 괴정동에 가서 교육 받을 때 가마솥에 밥을 해 주시던 때가 기억이 납니다. 하루 두 번 오는 차를 대롱 대롱 매달려서 멀미가 나면서도 공부가 재미 있어서 오고 갔던 기억이 납니다. 많이 발전을 해 봤다고 생각 했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할 일이 많고 가야 할 길이 많습니다. 이 강의가 여러분들 천하사 하시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진표율사(眞表律師)는 증산도에서 매우 중요하신 분이지요. 증산 상제님 미륵불로 오신 증산 상제님과 가장 큰 인연을 맺으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통일 신라 시대 고승이신데요 진표 율사와 모악산 금산사를 말하지 않고 우리 나라 미륵신앙을 이야기 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합니다. 진표(眞表)의 이름처럼 참 진자에 ?贊?때 표 진리의 표본이 됩니다. 진리의 표상이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특히 율사(律師) 라는 말을 뒤에 붙이거든요. 이분께서는 삼장인 경장(經藏) 율장(律藏) 논장(論藏)에 능하셨는데 율사라 부르는 것은 계율에 능통하셨던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분이 금산사를 중창을 하신 것입니다. 창건을 하신 것이 아니라. 금상수라고 조그마한 절이었습니다. 진표율사(眞表律師)께서 원각 대도통을 하고 금산사를 중창 하시게 되고 그때부터 큰 대찰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됩니다. 진표율사는 증산상제님과 큰 인연이 있으신 분입니다. 미륵불이신 증산 상제님의 지상 강림에 최대로 공헌하신 분입니다. 진표율사는 동양의 수도승입니다. 동양의 승인 진표율사는 미륵불을 만나시게 되고 서양의 중 수도승인 이마두 신부는 천주 실의를 쓰면서 동양의 상제는 서양의 천주님과 같은 분이다. 고 썼습니다. 미륵은 도설천의 천주이십니다. 그래서 미륵과 천주가 만나게 됩니다. 같은 분이신 것입니다. 진표율사는 상제님을 우리 나라에 오시게 하셨고 이마두 신부는 이 땅에 상제님을 인간으로 오시게 모시게 한 분입니다. 이 두 분은 이 지구 땅 덩어리에 하나님을 강림 시킨 위대한 대 성사이십니다. 2. 진표율사의 생애 1) 진표율사에 대한 기록 삼국유사 “眞表傳簡”, “關東楓岳0淵0石記” 중국문헌 송고승전 : 백제국 금산사 진표전 신승전 : 진표 육학승전 : 진표전 진표율사는 많은 기적을 이행하고…… 금강산의 발현사 진표율사의 진신 뼈를 묻은 입석에 적혀있는 내용인 것 같습니다. 발현사 터에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승 일연이 그대로 적어 넣었기 때문에 내용 아는 대는 무리가 없습니다. 중국에 보면 송고승전 신승전 육학증전에 보면 백제국의 진표율사라고 되어 있습니다. 통일 신라 시대인대 진표의 전기를 보면 백제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만국의 한을 이어 받아서 망국의 한이 컸었던가 봐요. 망국의 한도 개인적으로 많이 가졌을 것 같고 이분의 기록을 보면 자신은 백제 유민인 것을 강조 했다고 하고 2) 출가와 구도 과정 출생지는 완산주 벽골군 두내산현 대정리로 되어 있고 지금의 만경입니다. 성은 우물 정井자인 정씨이고 아버지는 정진나마 (井眞奈末) 어머니는 길보랑 (吉寶娘)이십니다. 어떤 문헌에 보면 어머니 이름이 내말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때 당시에 신라로부터 받은 벼슬의 이름이 아닌가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게 보는 학설이 있습니다. 원래 성이 진씨고 어머니가 정씨가 아니었느냐하는 설도 있더라구요. 성에 관련된 내용은 애매한 상황으로 되어 있습니다. 출가 동기를 한번 알아 보지요. 이 내용이 kbs 에서 나온 좋은 동영상을 보면 좋겠는데.시간이 없어서. 어려서부터 활을 잘 쏘았다고 해요. 부모님도 대대로 사냥을 해 왔던 집안이다. 아버지인 진내말이 백제 유민을 이끌고 다니던 분이다라는 설도 있습니다. 진표율사께서 소시적에 사냥을 나갔다가 개구리 잡아요. 구어 먹으려고 30마리 꿰어 놓고 가지고 놀다가 사슴이 와서 물에 던져 놓고 갔는데 1년 뒤에 가더니 자기가 꿰어 놓은 30마리 개구리가 개굴 개굴 하고 있었더랍니다. 거기서 충격을 받고 산으로 들어 갔다는 설이 있고. 부모님께 허락을 받고 들어갔다는 설이 있습니다. 금산사에 순제 법사에게 백제에 순응을 한다는 순 백제를 모신다는 제. 아마도 그 당시 순제 법사님도 망국의 한이 있지 안았나 생각이 됩니다. 3) 구도 과정 27세 때 (경자년 760년, 경덕왕 19년) 변산에서 수행을 하십니다. 변산은 지금의 부안이에요. 부안은 전라북도에 속해 있고 모악산으로 부터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지도를 보시죠.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오다가 부안 I.C에서 빠져 나오면 됩니다.
진표 율사께서는 부안 변산에 선계산 부사의방(不思議方)이라는 곳에서 수행을 하게 됩니다. 먼저 여기가 변산입니다. 상당히 높아 보이죠?
이제 부사의 방을 잠시만 보도록 하겠습니다. 부사의 방은 깍아 지는 듯이 위험한 곳입니다. 굉장히 높지 않습니까? 이 부분은 가까이 가서 본 그림입니다. 그리고 이 부분이 부사의 방인데 지금도 저는 가지 못했는데 동국여지승람이 이규보가 기행한 기행문을 썼는데 진표율사가 수도하신 곳에 부안에 온 김에 가본 거에요. 사닥다리 타고 내려 가는데 너무나 무서워서 대롱 대롱 매달려서 부들 부들 떨었던 것을 썼는데 부시돌로 불을 킨 뒤 진표의 상에 절을 했다고 나옵니다.
여기서 처절한 수행을 합니다. 3년 동안 수도를 합니다. 수행에 앞서 숭제 법사에게 물어보니 “아마도 1년 만에 될 거다” 하지만 3년이나 했지만 안되니까 절망한 나머지 벼랑으로 몸을 날려요, 그때 푸른 옷을 입은 청의 동자가 나타나서 살립니다. 이에 다시 용기를 얻어 삼칠일 (21일)을 기약 하고 자신감을 갖고 망신창법 亡身懺法 을 하게 되는데 망신창법 몸을 다 부수러 트려서 참회하는 것을 망신 창법이하 하는데 3일 만에 손 발이 떨어져 나가서 피가 밑으로 철철 흘러 내립니다. 그런데 망신참법 수련한지 7일 째가 되자 지장 보살이 오셔서 덜어진 손 발을 붙여주시고 이에 감복한 진표율사께서 망신참법 수련을 더 진행을 합니다.
드디어 수련 21일에 미륵불께서 도솔천에서 지장보살을 포함한 도솔천에 있는 모든 선관들을 대동해서 진표율사에게 내려 오시셔 칭찬 하시고 점찰경 占察經 두 권과 점과간자 證果簡子 189개를 진표에게 내려 줍니다. 이 때 미륵불께서 점찰경 두권과 증과간자 189개를 진표에게 내려 주시며 말하기를 “너는 이것으로써 법을 세상에 전하여 남을 구제하는 똇목으로 삼으라. 이 뒤에 너는 이 몸을 버리고 대국왕의 몸을 받아 도솔천에 태어나리라.” 하고 하늘로 사라졌다. 증과간자 證果簡子라는 것은 불가에서 수행으로 얻은 열매라는 뜻이고 점찰경 占察經은 점 치는 거에요. 인류의 시원 문화에서 점을 치는 것은 필수였지요. 거북이 등에 점을 쳐서 다스렸거든요. 점을 쳐서 자기의 선악을 알게 하고 업보를 알게 합니다. 대중들이 스스로 알아서 자기가 깨닫고 자기가 선업을 짖게 하는 자율적인 신앙을 하게 한 대중적인 불교 원효 대사. 원효 대사는 노래를 지어서 불법을 가까이 하게 하신 공덕이 있지만 대중의 공덕보다는 타력적인 불법에서만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고 했는데 진표 율사는 모든 것을 자기 스스로 점을 치고 스스로 10승업 계율을 따르게 해서 실천을 하게 한 분 입니다. 미륵 신앙에서 일관되게 흐르는 것은 참회법과 미륵 존불 앞에 서려면 참회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금산사 꼭대기에서 죄 지은 놈은 여기 와서 빌지도 말아라. 남 탓 하기 전에 자기 스스로 깨닫고 실천하는 것이 바로 이 미륵 신앙의 핵심인 것이거든요. 목요산이라는 나무 막대기로 점을 치는 데 189개의 간자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것으로 구재 중생을 하라고,. 다음에 이 몸을 버리고 대국왕으로 도설천에 다시 태어 나리라. 미륵부처님이게 직접 계를 받고 미륵 부처를 직접 뵌 분은 진표율사 밖에 없거든요. 그리고 난 뒤 대 환란 대 개벽을 보고 미륵 부처님이 이 땅에 강세하시기를 기도 하고 그리고 자신도 큰 일꾼으로 써 달라고 기도 하십니다. 그 기도를 다 들어 주시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금산사를 다시 중창을 하고 미륵전을 연못에 7두락 정도 되는 연못을 메워서 터전을 만든 뒤에 미륵의 3회 설법의 구원 정신을 받들어 금산사를 1도장, 금강산 발연사를 제 2도장으로 속리산 길상사 (법주사)를 제 3도장으로 창건 만듭니다.
3. 진표율사와 금산사 1) 모악산 금산사 절이라는 것은 앞에다가 산 이름을 많이 붙입니다. 지리산 화엄사 처럼요. 모악산은 원래 금산이었다고 합니다. 금이 많이 나는 곳이었고 금이 많은 곳은 물이 많으니까 엄뫼라고 큰 뫼라고 어머니가 되어서 금산이 되었다고 합니다.
원래 금산에서 비롯되어서 모악산이 되었고 모악산은 어머니 산. 회문산과 모악산은 부모산이다. 라고 말씀을 해 주지요.
그래서 금산사는 원래는 작은 절이었는데 진표 율사가 중창 한 뒤 혜공왕 때 중창을 크게 하지요. 하지만 뒤에 아이러니 하게도 법상종의 도량이 되죠. 그런데 이 진표율사를 법상종의 계조라고 하는데 백제의 율종으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백제가 율종이 발달했던 나라입니다. 계율에 대한 부분을 강조를 많이 하는 경향을 갖고 있는데 중국을 거치지 않고 인도에 직접 사람을 보내고 범어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을 키우고 했습니다. 백제는 율종의 주류가 된 불교의 나라입니다. 진표율사는 법상종과는 별 관계가 없고 백제의 율종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고승 진표를 법사라 하지 않고 율사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 법상종이냐. 법상종은 미륵 신앙을 중요시 합니다. 진표 율사의 제자인 영심, 석충 등의 10대 제자 및 심지왕사등에 의해 신라 불교에 새로운 미륵신앙의 바람을 일으킵니다. 고려 중기에 법상종으로 숭상으로 받게 되어서 법상종이 되었고 고려 시대 이후는 법상종에 대한 간행이 많이 되는데 진표 율사는 율종에 속한 사람이 아니었던가 합니다. 진표 율사에 대해서 하나 더 알아둘 것은 당시에 대현이라는 스님이 있었는데 대현 스님이 오히려 인도에 6가론을 만든 미륵을 믿었고 진표율사는 6가론의 창시자인 미륵불이 아니고 미래에 오는 미륵불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름은 같은 미륵이지만 신앙의 대상자가 완전히 다른 것이지요. 미륵이라는 분은 56억 7천 만년 뒤에 오시는 분이다라는 말도 있고 3천년 뒤에 오시는 부처라는 말도 있고 석가부처의 제자였다가 도솔천에 미륵 부처가 되기 위해 준비하는 분이다라고 많은 설이 있는데 상제님은 북방 불기로는 3000년에 이미 오셨다 가셨습니다. 남방 불기는 깍아 먹어서 2500년으로 보는데 북방 불기로 하면 지금 3030년이니까 이미 미륵 부처가 오셨다 가셨다는 말이 됩니다. 진표율사는 대현 스님과 같은 시대에 사셨는데 대현 스님과 다르게 대중적인 백제 유민 고구려 유민의 한을 보듬아 주는 설법을 하셨습니다. 대현 스님을 통일 신라의 법상종으로 보는 설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진표 율사는 율종 律宗에 속한 인물로 보지만 후에 제자 영심, 석충등의 계통은 고려 때 이르러 법상종 法相宗으로 추앙 됩니다. 그래서 금산사는 법상종에 속하는 사찰이다 규정하게 되었습니다.
임란(선조 31년)때 방화 되로 소실 되었다가 수문대사에 의해 재건하여 인조 13년에 이르러 낙성을 보게 되었습니다. 다시 고종 때 용명스님이 보수 하였고 지금 있는 항성열 주지 스님이 1934년 보수 공사 해서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2) 금산사 미륵전 미륵전은 국보 62호 입니다. 이 미륵전은 용화전 龍華殿, 산호전 山呼殿 , 장육전 丈六殿이라고 합니다. 신라 때 미륵 본존을 봉안한 절의 중심 건물입니다. 혜공왕 2년 (766년)에 만들어 졌다고 하는데 지금의 미륵전은 1635년 (인조 13년)에 지은 목조 건물로 외관은 3층으로 되어 있고 안은 하나로 통층 되어 있습니다. 굉장히 웅장한 절이요.
여기 보면 밖에는 편액이 3개 있죠. 3층은 미륵전 彌勒殿 2층은 용화지회 龍華支會 설법하는 회상이 용화 회상이어서 이렇게 쓰신 것입니다. 아래층 1층은 대자보존 大慈寶殿. 미륵이 자혜로운 분이라고 하시기 때문에 미륵의 성이 자씨 慈氏라고 하고 그래서 대자보존이라 쓰신 거구요. 태모님께서 당신의 전생을 자미원 내원궁 자씨 부인이라 밝히셨는데 이런 것으로 보아 상제님께서 미륵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미륵이 출현하는 장소가 바로 용화원의 용화수 아래에서 성도하여 모든 중생을 제도 하는데 이 때 3회 설법을 하여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는 유명한 용화 3회 설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미륵은 자씨이므로 대자보전, 또 설법하는 회상이 용화회상이므로 용화지회라고 한 것입니다. 통천으로 되어 있고 거대한 미륵불을 앉히게 되는데 미륵 존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굉장히 웅장하죠. 진표율사가 상제님을 뵙고 모셨던 미륵존불입니다. 경덕왕 23년 (764년) 진표율사에 의해 시주되어 혜공왕 2년 (766년)에 완성이 되었습니다. 손에 여의주를 들고 계시지요. 여의주는 조화를 상징하지요. 상제님께서 그러시죠. 나는 금산사 미륵불은 손에 여의주를 들었으나 나는 입에 여의주를 물었느니라.
금산사 미륵 불은 3번에 걸쳐 완성 됩니다. 1) 진표율사가 처음 만드실 때는 33척입니다. 이때는 금동 불상으로 만듭니다. 2) 2번째는 선조 30년 정유병화로 소실 되어서 인조 5년(1627년) 때 수문대사에 의해 목불로서 조성이 됩니다. 이 때는 36척이 됩니다. 3) 3번째는 당시 나라를 잃었을 때 1934년 갑술년 태모님께서 살아 계셨을 때 입니다. 이때는 39척이 돕니다. 참 이상하지요. 3척씩 커집니다. 이게 우주 변화 원리로 상제님의 행적을 보면 그냥 하신 것이 아니에요. 철저하게 우주 원리로 계산을 해서 시공을 초월해서 과거 현재 미래를 넘나들면서 너무 너무 정확하게 공부 하면 할수록 아 하느님 아 상제님 이란 말이 안 튀어나올 수 없게 도수를 정해 놓으셨읍니다. 금극목 금은 나무를 극하지요. 그 다음에 목극토. 이러한 극 하는 기운을 가지고 있습니다. 선천의 상극 지리로 점차 커 가는 말씀이 커 가는 과정을, 선천 상극의 우주 변화 원리 완성 되어 가는 것을 불상으로 보여 주십니다. 1934년에는 알 수 없는 불로 하늘에서 불길이 치솟아서 미륵존불만 불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토불로 완성이 된다고 합니다. 누가 토불을 완성하냐면 김수곤 거사가 조각가 김복진으로 하여금 조성하게 합니다. 우리나라에 김복진이라는 분이 있는데 최초의 동경 미술학과에서 서양 조각을 공부한 분입니다. 이 불상은 서양 불상의 모양으로 되어 있습니다. 1940년에 완성이 됩니다.
이 토불인데 이 토불이 처음에는 흙으로 만들었는데 찰흙을 물로 개서 만들면 짝 쫙 갈라지게 되어서 석고를 넣어서 석고로서 완성이 된 것입니다. 지금의 미륵불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제가 미대를 나와서 한국 미술이 전공이라서 이런 부분까지 알게 된 것입니다. 조금 전문적인 부분이 되는데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처음에 뼈대를 세웁니다. 그런 다음에 찰흙을 붙입니다. 그래서 소조라고 합니다. 소조 불입니다. 이걸 가만히 놔 두면 부서지니까 마르기 전에 석고를 씌워요. 그리고 난 뒤에 속에 것을 다 파 내고 잿물로 닦아 낸 뒤에 이 안에다가 또 다시 석고를 입힙니다. 이건 틀이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밖에 있는 틀을 부수면 찰흙으로 만든 첫 모양이 그대로 나옵니다. 미륵 불은 너무 거대 하기 때문에 이 안에다가 대를 세우지 않았을 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이 대를 뭘로 세웠냐 하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이 부분을 상제님께서 공사를 보십니다. 청령한 은행 나무! 도전에 보면 상제님께서 살아 생전에 공사를 봐 두십니다. 상제님께서 1909년에 돌아 가시는데 미륵불 조성은 35년 뒤인 1934년에 시작 하거든요. 이미 몇 십년 전에 바칠 은행 나무를 상제님께서 직접 껴 안고 은행 나무를 칭찬 해 주시고 훌륭하다고 하시거든요. 청련암에 있는 은행나무에요. 그 은행나무가 받침대로 쓰여 질 것을 미리 아신 것이지요. 은행 나무를 청련암 주지가 목수한테 팝니다. 목수가 필요하니까 짜르려고 하니까 천둥 번개가 쳐서 못 자르고 도망 가 버렸답니다. 그냥 방치 되었던 것이지요. 뒤에 태모님께서 석고를 실어다 나르고 이 은행나무를 대로 바쳤다는 말이 나옵니다. 한국 미술을 전공을 안 하신 분께 도전을 잘 이해 하시라는 뜻에서 말씀 드립니다. 이렇게 토불로 조성이 되었다. 이야기를 하게 되는 거지요. 그래서 상제님의 천지 공사에 대해 새삼 감복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좌우 부처불과 함께 이러한 과정으로써 불상이 완성 됩니다. 3) 진표율사의 기적 이행 진표 율사가 상당히 도력이 높아서 조화권을 쓰셨는데 금산사에서 속리산 가는 길에 소 달구지 타고 가는 데 소가 꿈적 안 가고 눈물을 뚝뚝 흘립니다. 진표 율사 알아뵙고는 뒤에 인간으로 태어나게 해 달라고 울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농부가 내려서 사연을 물어보고 진표율사가 그 사연을 이야기 해 주자 농부가 “소도 율사님을 알아보는데 율사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나는 소 만도 못한 사람이다.” 해서 머리를 짜르고 진표 율사를 따랐다고 합니다. 승고승전 진표전에 보며는 옛 백제 땅에 민중들의 지지를 많이 받았던지 사람들이 머리를 풀고 옷을 벗고 밝고 가게 하고 그 대중의 마음을 알고 하나씩 하나씩 밟고 지나 갔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물속에 사는 자라와 물고기가 나와서 노두를 놔서 그들을 위해서 불법을 설 했다는 그런 이야기도 있거든요. 이런 기행 이적들을 왕실에서 많이 들었을 거 아닙니까. 경덕왕 때에 경덕왕께서 진표율사를 친히 왕실에다가 모셔와서 보살계를 받습니다. 그러면서 많은 보시를 하지요. 금이라든지 비단이라든지 쌀 몇 천 섬을 바쳤다고 합니다. 진표율사께서는 그것을 미륵 신앙에 쓰셨다고 하고 그래서 그 짧은 시간에 절을 주앙하지 않았나 생각 됩니다. 뒤에 미륵을 등에 없고 혹세 무민을 하는 무리들이 많았는데 진표율사는 한번도 역성 혁명을 가르친 적이 없어요. 무혈로 왕까지도 엎드리게끔 하신 것이지요. 백제의 왕 진표율사에게 신라의 왕 경덕왕이 무릎을 꿇고 절을 한 것이지요. 정말 도를 잘 닦으면 수천 수만의 명장보다 나은 것이지요. 민중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민중들의 마음을 얻는 높은 덕을 쌓은 도인의 위력은 대단한 것이지요. 그런 진표율사의 대단한 도력이 곳 곳에서 나타납니다. 지금까지 금산사 미륵전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4) 미륵 신앙의 유래 미륵신앙의 유래를 살펴보죠. 미륵 신앙은 어디서 시작 됬나. 인도에서 시작 되었겠지만 민중적인 대 사상인 미륵 사상은 우리 나라에서 민중들 속에서 면면히 천년을 훨씬 넘게 있어 왔습니다. 미륵은 범어 마이트리아에서 자시라는 의역을 써서 미륵이라는 음역으로 생겨난 단어입니다. 마이트리아라는 단어는 태양이라는 미트라에서 왔다고 합니다. 석가 모니 뒤에 미륵 부처가 온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가득할 미자에 굴레 륵자. 삼계에 미리 짜서 내려오신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분은 어디에 사시냐면 9천 도솔천에 사십니다. 내원궁과 외원궁이 있는데 내원궁에 사시는데 수명이 무한대입니다. 불교는 모든 것은 계속 변하고 고통을 잃어버리기 위한 해탈을 이야기 하는 약간 허무한 신앙입니다. 또한 구체적인 신앙의 대상이 다른 종교에 비해서 약하지요. 하지만 불교에서 구체적인 신앙의 대상이 제시 되고 유토피아가 있는 것이 미륵 신앙입니다. 통속적 예언의 성질을 띄고 있으면서 구원론적인 구세주의 출현을 의미하는 신앙 형태가 미륵 신앙입니다. 그래서 힘이 들면 힘이 들수록 미륵 부처를 기다리고 염원을 하거든요. 구체적인 신앙의 대상이 있는 것. 불교의 헛 점을 뛰어 넘을 수 있는 통속적인 예언적인 성격을 띄고 있습니다. 그래서 굉장히 문제성도 많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이 미륵 신앙은 실제로 경전이 있습니다. 대략 6개의 경이 있습니다. 관미륵보살상생도솔천경 미륵하생성불경 미륵 대성불경 미륵하생경 미륵하생성불경 미륵내시경 그 중에서 관미륵보살상생도솔천경 미륵하생성불경 미륵 대성불경 이 3가지가 미륵 삼부경으로 알려 져 있습니다. 미륵 상생경은 팔만 억의 모든 하늘 궁중이 미륵존불을 따라서 하생하기를 기원하는 모습으로 도솔천 왕생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미륵 하생경은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 오시는 모습으로 미래에 미륵이 세상에 태어나 상카왕을 위시하여 많은 중생들을 교화한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구체적인 경이 존재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륵불 신앙은 유토피아적 이상향에 대한 희구가 있습니다. 특이한 점은 미륵불 신앙은 우리의 현실과 유리되지 않는 생활의 개선, 생활의 향상을 부단한 노력 끝에 유토피아를 실현한다는 믿음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아까도 제가 말했듯이 현실하고 유리 되지 않고 현실의 생활 개선을 해서 유토 피아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 시대의 말법 시대가 되면 도덕적으로 타락한 시대가 오는데 이를 극복하면 미륵불의 이상세계가 도래 한다는 노력의 신앙, 끊임없이 정진하는 신앙이 됩니다. 그래서 민중들이 그렇게 갈망하는 신앙입니다. 56억 8만대 중 숫자 끝을 알 수 없는. 인도 사람들이 숫자 개념이 없었고 과장된 표현에서 이런 표기가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우리 나라는 1974년 스리랑카 불교도들 때문에 500년을 짤라 먹었습니다. 제가 지난 번 봄에 증사연에서 동화사에 갔었는데 동화사에 가 보니 북방 불기가 그대로 되어 있더라구요. 1974년이 꼭 3000년이 되는 해거든요. 1974년이면 태사부니 사부님께서 세상에 상제님의 도를 피기 시작하신 바로 그 해 입니다. (기록자인 제가 한국에 왔던 해이기도 합니다.) 미륵 부처님은 서방 정토를 상징 하지요. 서방 정토에서 걸어오신다. 상제님께서 “나는 서신 사명을 맡았다”고 하시거든요. 서신 사명. 가을 신 이라는 이야기에요. 가을 신의 사명을 맡았다. 가을 이라는 것은 추수죠, 열매 맺는 것입니다. 그리고 흰 빛 금색을 상징 합니다. 수자로는 4.9를 나타냅니다. 우주 변화원리로는 . 인간 추수 지으러 오시는 것입니다. 서신으로 오시는 것이에요. 봄에 인간으로 나으러 오셨다면 달라졌겠지요. 이러한 분이시죠. 그래서 그런지 굉장히 상징적 조짐, 기미가 굉장히 많이 볼 수 있어요. 갑자기 우담바라가 온 전국적에 우담바라 피었다고 하고 발견하죠. 왜 이때 이렇게 피느냐 회자되고. 우담바라는 3000년에 한번 피는 꽃입니다. 제가 사는 진주 옆에 곤양 다수사라는 곳이 있습니다. 그 법고에 우담바라를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신도에게 마이크를 갔다 대니까 “너무 신기해서 더욱 더 믿어야 겠습니다.”고 말했답니다. 아나운서가 스님에게 마이크 갔다 주니까 “우담바라는 3000년이 되면 피는 꽃인데 지금 어디에선가 이 땅에 새 부처님이 오신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하고 이야기 했습니다.
저는 그 인터뷰를 보고는 속으로 저 스님은 새 부처님 찾으러 가지 않고 왜 저기 있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상제님 오신 줄 알면서도 사실상 발 빼기가 어려운 것이거든요. 상제님을 따른 우리는 정신이 젊은가 봅니다. 실제로 그런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전국 사찰에 흰 개미들이 절을 갉아 먹는데 이번에는 한라산 백록담에 흰 사슴들이 작년부터 몰려 들기 시작했습니다. 백록이라는 것이 원래 뜻이 흰 사슴들이 몰려 오는 곳이거든요. 백록담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사연이 하늘나라 남자 신선들이 선녀가 목욕 하는 것을 훔쳐 보다가 흰 사슴이 되었다 해서 백록담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옥황상제에게 혼나서 흰 사슴이 되었다는 이야기지요. 흰 빛의 기운들이 굉장히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가을이 다 되었다는 뜻이 것 같애요. 5) 진표 율사 이후 미륵신앙의 흐름 자 이제 간단하게 이 진표 율사가 1200년 전에 오셔 가지고 그분이 그렇게 기다리든 미륵불이 인간으로 오시기 까지 1200년 기간동안 중생들이 어떻게 살았을까 보겠습니다.
여기 부처님은 삼국시대 나온 미륵반가사유상 천상에 계신 미륵불의 상입니다. 하생 하시기 전에 모습입니다. 굉장히 젊고 생각이 많지요. 너무 너무 아름다우신 예술 품이에요. 일본에까지 영향을 받아서 우리나라는 금동불인데 일본은 목조불입니다. 일본 국보 1호. 그런데 손 가락이 너무 아름다워서 손가락을 베어 갔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는 “일본이 물에 빠지면 빨리 가서 보존 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미륵반가사유상이다.” 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삼국을 통해서 미륵 반가사유상이 만들어 졌습니다. 진표 율사 온 이후에 미륵의 흐름 미륵 신앙의 흐름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 나라에 불교 들어 온 것은 삼국 시대 때부터 입니다. 그 때는 거의 호국 적인 그런 신앙으로 많이 이어 졌거든요. 화랑 미륵불승을 국선으로 모시고 충담사에 대한 이야기 등이 나오지 않습니까? 백제나 고구려 미륵사지 절터가 컸던 것을 보면 대단히 흥했나 봅니다. 백제가 망하고 난 뒤에 통일 신라가 되면서 진표율사의 미륵불이 흥하다가 후백제 후고구려가 나오면서 궁예와 견훤이 전부 미륵불을 업습니다. 특히 궁예. 굉장하지 않았습니까. 민중들을 한번 우롱하는 사건이 있지요,. 고려로 이어집니다. 고려는 불교가 국교로 숭상 되면서 미륵불 법상종과 선종의 화엄종이 싸우다가 법상종이 밀려 나면서 고려 말이 되면 정치 기존 세력과 같이 하면 부패하게 되는데 절의 폐해가 너무 많다 보니 정치하고 결탁 하고 해서 그 부패하면 할수록 민중들을 점차 곪아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이때 땅에서 미륵이 솟아 오르기를 바라면서 나오게 된 것이 하체 미륵불 입니다. 화순의 은수사 천불 천탑이 많은 미륵 불상들이 이 당시의 민초들의 염원에 의해서 싹 트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조선 시대 오면서 불교 말살. 정도전 같은 분은 불교 자체를 굉장히 나쁘게 몰고 가지요. 이론적으로 불교를 나쁜 종교로 위신이 땅에 떨어지고 붙들려 가서 노역을 하게 되고 설움을 받게 되고. 물론 고승들이 있었지만 대채적으로는 굉장히 스님들이 핍박을 받았죠. 노비 출신도 많아지고 .
조선 시대 와서는 소외 받는 불교 세력과 민중 들과 합세 해서 조직적인 반란 사건이 몇 번 나옵니다 숙종 때 여완이라는 사람이 미륵의 계시를 받았다 해서 무당과 합세 해서 예언적 성향을 띄고 한양에 가다가 참수 되고 음부라는 늙은 중국 승녀가 금강산에 와서 장길산까지 포섭해서 유격대로 몰아서 정씨를 왕으로 세우려고 조직을 세우고 나중에 중국 까지 치고 가자 사회 변혁적인 조직적인 운동을 합니다. 미륵신앙의 칠성 신앙과 용 신앙과 합세를 민간 신앙 과 합세를 하면서 복잡 다단해 지면서 최수운이 나옵니다. 하늘의 음성을 최초로 들으신 분이지요. 최제우 선생이 상제님을 만나면서 동학이라는 대도를 받고 뒤에 참수를 받게 됐는데 최수운을 내려 보냈을 때 이미 이마두 수사랑 같이 금산사에 임어해 계셨다고 합니다. 4. 증산도 사상으로 본 진표율사 1) 증산 상제님과 지표율사 미륵불이신 상제님께서는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대에 어쩔 수 없이 내려 오실 수 밖에 없습니다. 추수를 해야 하니까. 하지만 상제님께서 처음부터 이땅으로 곧바로 오시지는 않으십니다.. 내가 서양 대법국 천계탑에 내려와 이마두를 데리고 삼께를 둘러보며 천하를 대선하다가 이 동토에 거쳐 중 진표가 석가모니의 당래불 찬탄설계에 의거하여 당래의 소식을 깨닫고 지심 기원하여 오던 모악산 금산사 미륵 금상에 임하여 30년을 지내면서 최수운에게 천명과 신교를 내려 대도를 세우게 하였더니 <도전 2 : 30>
로마 이탈리아에 바티칸 시티에 조그마한 왕국에 베드로 성당이 있습니다. 배드로 무덤이 지하가 있고 그 위에 천개탑을 세워 놓았거든요. 이 단상에 올라가서 교황이 설법을 합니다. 마테오리치 신부가 상제님을 모시고 여기로 일단 먼저 내려 오십니다.
내려 오셨다가 마테오 리치 신부랑 전 세계를 한번 도셨다가 “너희 동토에 너희 민중들이 너희 민중부터 구하려고 왔다”고 하시지만 이마두 대성사 상제님을 친히 뵙고 모셔오기 이전에 상제님은 이미 진표 율사와 한반도에 내려오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었고 진표율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이 땅에 내려 오셨습니다. 금산사에 내려 오셔서는 금산사에 30년간 임어를 해 계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상제님 1871년 생 이십니다. 그러면 1841년부터 금산사에 미륵전에 임어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랬던지 그 당시 민중들이 금산사에 기원을 하면 그렇게 잘 받아들이셨다고 합니다. 주인공은 먼저 나오지 않습니다. “최수운은 나의 앞길을 닦았다”는 말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최수운에게 천명과 신교를 내리시고 30년간 금산사 미륵전에 계십니다.
그러나 최수운이 유교의 틀에 박혀서 대도를 열지 못하자 신미년에 그 기운을 거두고 스스로 내려 오셨습니다. 태사부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상제님께서는 왜 신미생이시냐? 정미도 있고 을미도 있는데 왜 신미냐? 고 자주 말씀 하십니다. 신辛은 가을에 해당됩니다. 설 입 立자에 열심 十자 10이 선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十자는 동양에서나 서양에서나 하느님을 상징하는 수자 입니다. 가을 열매 신자라고도 하고 매울 신자라고도 합니다. 미未라는 것은 토 자리인데 나머지는 5토인데 미 未만 10토 입니다. 하느님이 오시면 반드시 어린양 10으로 오시게 됩니다. 가을에 오시는 서신 사명의 하느님으로 오시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요. 우주변화 원리 공사에 맞추어서 오시고 가실 시간이 되어서 가시고… 철저하기 시간을 맞추어서 왕래를 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신이 오시게 된 연유를 최수운 대신사를 통해서 말씀해 주시기도 합니다. 대법국 카톨릭 로마 이야기는 나중에 읽어 보십시오. 아까도 말씀 드리다 말았는데 최수운 선생이 등장하던 시대는 민란이 많이 일어나요. 그 민란을 중심으로 농민들이 다 들고 일어 났나 봐요. 곳 곳에서 사람들이 괜히 난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조선 민족은 참 순민 이잖아요. 얼마나 못살게 하고 힘들게 했으면 낫을 들고 죽창을 들고 반란을 일으키겠습니까? 최수운이 돌아가시고 난 뒤 전봉준 장군이 나오지요. 동학을 등에 없고 관군을 습격 하고 역사적으로 보면 너무나 썩어서 도저히 랄 수 없어 정부에 몇 번의 기회를 주었지만 민초들의 한이 불처럼 일어납니다.
이때 보면 동학을 업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미륵 불교의 사상이 굉장히 합세를 했어요. 동학군이 반란 일으키기 전에 어디를 가면 선사 마애불에 갑니다. 이 마애불은 고려 때 지어진 것 이라고 하는데 제가 20대 초반에 가 본 적이 있는데 제가 저 절에 가서 너무 감동을 받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미륵 부처에 관심이 없었지만 그 느낌이 너무 좋았고 뭐라고 표현 할 수 없는 감동을 주어서 5-6년 때 저 혼자 약대 수학 여행을 갔었거든요. 저 불상의 배꼽을 보세요. 하얗게 되어 있지요. 비결서가 있다고 되어 있는 곳이에요. 도끼를 가지고 저기 있는 비결서를 꺼냅니다. 그래서 동학군과 선운사의 스님과 싸우는 사건이 벌어지죠. 미륵 사상을 들에 없고 일으켰다. 그때 당시 동학 교도만 싸운 것이 아니거든요. 농민들 불교계에 혁명적인 생각 가진 스님들이 합세 해서 일어난 것이거든요. 서장옥이라는 승녀 출신 남적의 대표적 강경파 합세를 해서 조직화 하지요. 그래 가지고 굉장히 큰 사건을 일으킵니다. 상제님은 이들을 따라 다니면서 말렸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전봉준 장군을 칭찬하시지요. 그 의로운 마음을 굉장히 칭찬하셨습니다. 과거의 어떤 명장 보다 최고다.
항상 난을 일으킨 사람이 있어야 평정하는 사람이 있지요. 대원사 칠성각에 가셔서 “이 난을 평정 하려면 날아가는 태양도 잡을 수 있는 능력이 되어야 동세 하지 않고 총 칼을 들지 않고 정세로 멈출 수 있다. 최수운은 동세를 맡았고 나는 정세인 참 동학을 맡았다.”고 말씀을 하시고 상제님은 동학 난을 평정 시킵니다. 진표율사부터 1200년 동안 핍닥 받은 민초들이 그렇게 기다렸던 소원을 풀어 주시는 방법으로 하늘과 땅을 뜯어 고치는 천지공사를 보십니다. 그냥 짜 지는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신명 세계에 도수대로 그 시간대에 그 대로 일어나게 질정 하신 것입니다. 한 발자국이 천지 공사이시거든요. 천지 공사는 한번 천지에다가 명령을 내리고 박아 놓으면 상제님도 다시 고칠 수 없을 정도로 봅니다.
또한 굉장히 민주적인 방법으로 천지공사를 보시지요, 신명들에게도 물어보고 종도들에게 물어보고 상제님이 판단 하고 천지에다가 질정을 하시거든요, 신명 공사를 보십니다. 상제님은 내려 오셔서 하신 일은 모사재천을 하세요. 천지에다가 신명 공사를 질정 하시지요. 하지만 이 일을 이루는 것은 사람이 한다. 성사제인. 사림이 반드시 이룬다. 그 때가 되면 사람이 현실 속에서 이룬다. 엄청난 천지 공사를 보게 되죠. 그냥 짜신 게 아니라고 했죠. 천지의 입법을 가지고 신도 세계에 질정 하시고 인간 사회에다가 역사 속에서 인간이 일을 이루도록 대 공사를 짜십니다. 실제적으로 상제님께서 뭐라고 하셨냐면 “진표는 나에게 큰 인연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미륵이 오시게 하고 미륵의 도를 펼치고 진표율사 본인도 일꾼으로 어디엔가 와 계셔서 성사 제인 큰 스승으로 이 분이 대국왕의 몸을 받아서 내려 오신다고 하시지요. 우리는 이 분을 진주라고 했어요 15진주! 시간이 너무 없어서…… 월간 개벽이라는 잡지가 나오는데 진주에 대해서 잘 나와 있습니다. 진리의 진짜 참 주인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이 그렇게 해서 인연이 있다. 또 진표 율사가 금산사 미륵전을 만들 때 굉장히 이상한 일이 생기게 되죠 철 수미자 이게 뭐냐 하면 시루 입니다. 밑빠진 솥이에요. 시루 형상이 되어 있는데 안에 구멍이 이렇게 있는 이런 솥인데… 왜 솥을 놓고 했는지 잘 모르는데 철 수미자 막제부라 합니다.
진표율사께서 처음에 자기가 본 그대로 미륵불을 세우려고 했는데 연못을 메우려고 하는데 흙은 넣으니까 계속 해서 쓸려 나갑니다. 그리고는 계시를 밭습니다. “숯을 넣어라.” 그 뒤로 눈병 전염병이 창궐을 하게 되는데 이때 진표 율사는 “금산사에 있는 연못체 숱을 넣으면 안질이 낳는다.”고 말합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는 엉뚱하게도 문둥병 환자가 먼저 왔습니다. “큰 거 바라지 않고 단지 내새에 다시 태어나게 되면 제발 온전한 몸으로 태어 났으면 좋겠습니다” 하고 숯을 연못에 퐁당 하고 던져 넣었는데 그 순간 문둥병이 씻은듯이 나았습니다. 그 소문이 나자 사람들이 우르르르 몰려 와서 숯을 연못에 집어넣기 시작했고 병이 나으면서 연못도 어느덧 숯으로 다 차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숯을 아무리 집어 넣어도 딱 한군대만큼은 안채워져서 그 부분에 연화대를 놓았는데 그 다음날 아침에 나가 보면 그 무거운 연화대가 연못 밖으로 자꾸만 튕겨져 떨어져 나갑니다. 이 석연대가 매일 같이 미륵전에서 20미터 떨어져진 곳으로 날라 가는 것이었습니다.
-> 바로 이 석련대입니다. 아직까지도 저 자리에 있습니다. ^^;;;;
도저히 안되니까 진표율사가 다시 기도를 합니다. 그러지 미륵불께서 말씀 하시기를 “밑 없는 시루를 걸고 미륵불을 세워라.” 그래서 밑 빠진 솥을 얹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물 정자의 나무 대를 세우고 미륵 부처를 봉안하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금산사 미륵 부처가 완성이 되게 된 것입니다.
왜 그러면 금산사 미륵 부처는 솥을 밟고 있는가?
상제님께서 밝혀 주십니다. 상제님의 호가 뭐입니까? 시루 증자 솥 증자 증산입니다. 2) 증산 상제님과 금산사 미륵불 제가 이 상제님과 금산사 미륵불에 대해서 정리를 해 드리겠습니다. 솥을 두고 하시는 말씀이 있지요. 김형렬이라는 분이 처음부터 끝까지 모셔서 쌀이 떨어져서 모실 수가 없어서 솥을 팔아서 때 내는 것을 보시고 솥이 들썩이는 것을 보니까 미륵불이 출세 함이로다. 그런 말씀 하신 것은 금산사 미륵 부처로 오셨다는 것을 암시해주셨습니다. 또 하루는 모악산에 금산사에 오금해라는 16세 중이 있었어요. 그 중에게 “물 좀 떠 오너라~” 물 뜨러 가다가 문득 뒤를 돌아 보니까 상제님께서 온 몸이 불덩이처럼 보이고 순간 법신불 의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상제님께서 곳곳에다가 본인이 미륵 전의 주인이고 미륵 부처인 것을 알려 주십니다. 이 내용은 1946년 오금해께서 직접 체험을 전하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금산사 돌 무지개 문에 앉으셔서, 당시 김형렬 성도 집이 재 너머에 제비 창골이라는 곳에 있었는데, 형렬아~ 형렬아~ 하고 상제님께서 앉아서 부르신 거에요.
왜 거기서 부르셨을까. 금산사 미륵이 불가에서 속가에 첫 발자국을 띄는 내용이거든요. 미륵 부처님을 모신 김형렬 성도님은 훗날 미륵 불교 파를 만들게 됩니다. 상제님께서는 금산사를 자기집 드나 들듯이 왕래 하셨어요,. 중들이 상제님의 법력 때문에 꼼짝 못한 것도 있지만 상제님께서는 그 미륵전의 주인이라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 지장각에 가서 성도들에게 절 하지 말라고 합니다. 지장보살은 미륵 보살이 오기 전에 제도 중생하는 것이니까 미륵 불이 출세 하니까 더 이상 지장보살에게 절 안해도 된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안내성 성도는 미륵불 찾아서 남경까지 갔다가 다시 북경으로 갔다가 다시 조선에 와서 전국 헤매다가 상제님 만나고는 상제님이 바로 미륵불이신 것을 그냥 알아 채 버립니다.
아까 말씀 드렸듯이 상제님께서는 미륵 전에 4월 초파일 날 오는 사람에게 죄 지은 사람 오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남의 실구리로 옷 해 입을 여인이 사천왕 문을 지나려고 할 대 구령이한테 그 여자를 칭칭 감게 합니다. 구렁이에게 옷이 벗겨집니다. 미륵전에 들어오려면 일단을 참회를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도장에서도 저 자신부터 참희를 해야 겠다는 생각을 새삼 해 봅니다.
상제님이 어천을 하시고 나서 재자들이 옥황상제지위라고 써가지고 금산사의 미륵전에 미륵불에 붙이고 제사를 지냅니다. 상제님이 살아 계셨을 때 옥황상제라고 직접 쓰셨어요. 옥황상제는 선도에서 쓰는 명칭이지 않습니까. 이 사실로 보아서 옥황상제가 미륵불이고 천주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미륵 신앙에 대해서 알아 보았는데요. 그 폐해도 많아서 민간 신앙은 민간 신앙이어야 하는데 실제로 사이비 종교들이 미륵을 업고서 폐해가 많이 있는데 진실된 진짜 진리의 주인이 있고 진실된 도는 있기 마련입니다. 미륵경에도 그렇고 상제님께서도 나머지를 가짜라고 했습니다. 오로지 진짜 하나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진리를 만나기도 힘들다고 하셨습니다. 3생의 인연이 있어야 하고 조상의 음덕이 있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100년전에 이 땅에에 인간으로 오셔서 100년 후의 일을 짜 놓고 가신 것이지요,.
마무리 뒤에 설총결을 드렸는데 원효의 아들이지 않습니까? 오늘날 일꾼들의 이야기가 다 나오는데. 근어여성성어녀 하니 여자 성씨로 근원하여 여자로써 이루어지니 여女자 성씨 딱 두가지 있습니다. 강姜씨하고 안安씨. 두 성입니다. 이것은 상제님께서 천지에 강姜씨 성이 일류의 건원성 이라고 하시거든요. 최초로 생긴 성입니다. 그것을 마무리 짓는 것은 안安씨다. 안씨를 진표 율사가 태어난 부안 잡을 부자. 지명 뜻 그대로 안씨를 잡아라! 성사제인 하는 상제님의 대행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법理法으로써 행하시지요. 이 이법은 역易을 가지고 많이 이야기 하는데 역은 변한다는 뜻인데 변역이라 하는데 불역이라는 것도 있어요 절대 변하지 않는 이치! 인사를 말씀 드리는 것인데… 스승이 있어야 합니다. 혼자서는 구덩이 파 놓고 못 올라 갑니다. 누군가가 이끌어 주는 스승이 있어야 합니다 상제님이 무극 상제 절대 중자리 변하지 않는 자리 무극제. 태극이 있고 황극이 있습니다. 삼극의 천지는 삼극의 이치가 있지 않습니까? 변화하고 통일하는 이치가 있는 데 무극이라는 것은 절대 자리 조화의 근원자리 태극은 창조하는 유형화 하는 창조의 본체 황극은 태극과 무극을 분열과 통일을 반복 시켜는 자리입니다. 이것이 인사화 되는 것이 무극제 태극제 황극제. 성사 제인 하는 사명을 띄고 오시는 분을 열심 히 공부 해서 밝혀 보심이 좋을 것 같습니다. 무식한 것도 죄가 된다고 상제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부단히 불을 밝혀 놓고 연구를 하면 누가 진짜 참인지 거짓인지 알 수 있게 되죠. 천지의 이법을 알게 되면 자연히 심계를 통하게 되고 인간의 역사를 저절로 알게 되겠지요. 성사 재인 하는 주인을 찾는 방법으로 “수원 나그네다” 낯이 있고 아는 사람이다. 수원이 뭡니까? 술戌생을 상징하고 지칭을 합니다. 술해자 戌亥子. 이 분은 혹독한 운명의 길을 택하게 됩니다. 독조사의 길. 그래서 자신이 엄청난 고난의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상제님께서는 손병희가 사망 후 1922년 5월 후에 3초 뒤에 대인이 나온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 말도 도수 귀양 도수가 있습니다. 20년 동안 꼼짝 못하는 일이 생깁니다. 술자리가 정배, 유배 간다는 뜻이 있거든요. 술의 본성입니다. 말점도의 도수. 상제님 손 바닥에 별무戊 북방임壬 자가 새겨져 있다고 하셨습니다. 미未에서 통일을 시작해서 술戌에서 통일이 완성되는 이치가 있거든요.
상제님의 손발이 되는 분은 임술생으로 온다는 공사를 보십니다. 임술생으로 태어나서 그런 고난의 길을 걸어 가시는 분이 누구이신지 알아보면 되겠지요. 칼 노래 때문에 동학이 망합니다. 칼 노래 해석을 잘못 해서 동학 혁명이 있어나지요. 사람을 죽이는 칼이 아니고 활인검이에요. 진리의 칼이라는 것이거든요. 미륵의 도인 상제님의 도는 진리의 검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지, 정세로 이루어 지는 것이지, 무력 투쟁인 동세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선천 5만년 처음 드는 칼! 진리의 용천검인대 언제 빼 들어야 하느냐? 바로 지금입니다. 의통성업이고 사람 살리는 검입니다. 상제님 일은 지금 참 촌각을 다투고 날을 다투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부시가 재선이 되고 난 뒤에 격변의 난리 소용돌이 속으로 돌아갈 것 같습니다. 때를 아는 자는 실수가 없다고 표현하십니다. 매번 뉴스 세상 돌아가는 것을 열심히 보시고 38선대가 넘어가는 것을 말씀하시지요.
소가 나오면 장차 판을 걷으리라 라는 공사가 있는데 정주영씨가 소를 1501 마리 대리고 북으로 넘어간지 벌써 오래 되었습니다. 증신도가 불안을 조장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천지 공사로 못 박아 놓으신 것입니다.
그런다고 수도 이전이 안 되는 것이 아니지요. 언젠가는 수도 이전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천지 공사에 의해서 질정해 놓으신 것입니다. 서울은 서운 해진다고 합니다. 대전 땅을 후천의 수도라고 하시지요. 정감록에도 보면 이제 전전 이란 말이 나오거든요. 주역에 봐도 현룡은 재전하니 이견 대인이라. 용이 밭에 있으니 그 용을 알아볼 줄 아는 사람이 대인이다 라는 뜻이지요. 아까 제게 보여 드린 설총결에도 “간지태전용화원”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간방에 한반도에 태전에 용화원이 만들어진다는 내용입니다. 비결서에 일관된 것의 내용이 나옵니다. 공통적인 내용이 있습니다. 진짜 진리의 주인이 되십시오. 진리의 스승님을 찾으셔서 주인이 되십시오. 시간이 꾀 되었는데 양은 많고 말을 너무 빨리 해서 두서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장시간 동안 잘 들어 주셔서 감사하고 돌아 가시면 정말 상제님의 일꾼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이만 줄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회자 네 멀리 진주에서 대전에 오라 오셔서 들어주는 사람 많지 않았지만 그 속에 들어있는 내용은 참 값진 것 같았습니다. 오늘 강의를 해 주신 강사님은 미술 전공 하신 분입니다. 불상이나 부조나 시각이 남 다르시고 내면의 역사 흐름을 잘 잡으신 것 같습니다. 놓치기 힘들고 책을 봐서도 알기 힘든 부분을 잘 이야기 해 주셨습니다. 진표 율사의 삶과 구도를 통해서 미륵 신앙을 알게 되었고,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내면의 정신 역사, 책에서 알지 못하던 역사의 흐름을 알려 주셨고 그 흐름 속에서 열매 완성으로 증산도가 존재하나다는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초등학교 때 봄에 소풍 가며는 숨은 보물 찾기를 합니다. 그런데 보물을 찾게 하기 위해서 반드시 힌트를 줍니다 실제로 인류 역사상에 큰 힌트가 동양과 서양에 있습니다. 동양에는 진표율사 서양은 이마두 신부 입니다. 그 힌트를 들어내 주고 있는 곳이 진리를 이끌어 줄 수 있는 곳 입니다. 그 힌트를 알려 주신 분이 증산 상제님이십니다. 오늘 강의를 해 주실 때 금산사 미륵불을 보면 진리가 어떻게 표출 되어 있는지 알려 주셨습니다.
1) 겉에서 3층이지만 속에서는 통체. 일신이 삼신이다. 2) 금불 목불 토불로 3번 변해야 만이 큰 완성을 이룬다. 3) 미륵불은 여의주를 들고 있다. 4) 미륵의 도는 모든 것을 새롭게 하는 도가 있다. 5) 미륵의 도를 역사 속에 생생하게 민중의 삶으로 표현 해 주신 분이 진표율사이며 공부 방법으로 어떻게 미륵의 도를 만나야 하는 가를 알려 주셨습니다. 부사의 방이 아니 불不자 생각 사思자. 내가 명예 얻고 자 함이 아니고 오로지 중생을 위해서 하는 마음. 내 몸이 귀하지만 나의 온 몸을 태울 때 내 마음속의 사욕을 버렸을 때 거대한 도가 들어 오지 않을까 행각합니다. 연못의 의미는 물을 뜻하는 것이잖아요. 생명의 근본 여과 시켜 주어 께끝하게 하는 것이 숱입니다. 나의 몸 속의 피를, 지구 생명의 물을 깨끝이 해줄 때 도가 완성되지 않는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귀중한 시간 가져주신 강사님께 감사 말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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