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수 ag타이포그라피연구소장은 오늘(8일) 동국대불교학술원(원장 현각스님) 인문한국연구단(HK)이 ‘불교와 한글’이란 주제로 주관한 전국학술대회에서 ‘불경 언해본과 한글디자인’이란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주최는 조계종 총무원, 후원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연구재단.
안상수 소장은 “한글 창제후 언해 사업이 처음부터 순탄하지만은 않았다”며 “(유신들의) 관심이 적은 불경을 먼저 언해하면서 한글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자 했다”고 강조했다. 세종의 명을 받은 수양대군이 석가모니 일대기를 모은 글을 한글로 번역하고, ‘석보상절 전용 놋쇠활자체(석보체)’를 주조해 <석보상절>을 간행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안상수 소장은 학술대회에서 조선시대 불경 언해본 41본 가운데 한글꼴이 두드러지는 불경 언해본 32종을 △시작기(1449~) △부흥기(1461~) △확산기(1517~) 나눠 조명했다. 시작기는 석보상절 간행이후를 부흥기는, 간경도감 설치이후를, 불경언해본의 지방사찰 확산을 확산기로 구분했다.
안상수 소장은 각각의 시기에 만들어진 한글꼴의 특징을 살펴 불교문화가 한글꼴 디자인에 미친 영향을 조명했다. 안 소장은 “석보체는 훈민정음 목판글자체(정음체)와 뿌리를 같이하지만 정음체에 비해 조금 더 읽기 편한 모습을 보인다”면서 “정음체는 홀자의 곁줄기를 둥근 점으로 표현한 반면 석보체는 선으로 표현했고 전체적인 구조도 조금 더 단정한 모습”이라고 밝혔다.
국어학적으로 매우 귀중한 문헌으로 평가받는 <월인석보>의 글자체에 대해선 “이전 석보체와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인다”면서 “기하학적인 줄기의 성격과 정네모틀의 구조는 비슷하지만 붓으로 쓴 질감이 보다 짜임새 있게 느껴진다”고 분석했다. 이어 “월인석보체는 한글 창제 초기의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붓글씨 필획의 특징을 담아 새로운 부리 글자꼴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면서 “이러한 필기구의 영향은 이전의 ‘훈민정음’이나 ‘석보상절’과 달리 한자와 함께 썼을 때에도 잘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개회식에서 인사말을 하는 동국대불교학술원장 현각스님. |
불경을 간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한글꼴로 가장 많은 불경언해본을 간행한 ‘간경도감체’에 대해 안상수 소장은 “이전의 ‘강희안체’와는 달리 기하학적인 형태로 창제 초기의 한글꼴과 닮아 있다”면서 “한자와 함께 쓰였을 때에도 이질감 없이 조화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이박에도 안상수 소장은 △정난종 놋쇠활자체 △인경 나무활자체 △경서 목판글자체 계열 △염불보권문 목판글자체 △고서판 목판글자체 계열 △중간진언집 목판글자체 △부모은중경 목판글자체 등 불경언해에 사용된 글자체에 대한 연구결과를 설명했다.
학술대회에서 안상수 소장은 “조선의 불경 언해본 간행은 한글을 통한 불교문화의 대중화를 위한 사업으로 조선 시대 말기까지 꾸준히 진행되어 왔다”면서 “한글 창제 이후 약 400년 동안 불교는 사실상 한글꼴 문화를 이끄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안상수 소장은 “우리 전통 한글꼴을 현대화하는 것은 우리 유산을 다시금 불러 일으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내는 일로써 의미가 깊다”면서 “과거를 디딤돌 삼아 다양한 한글꼴이 쓰임에 맞게 다시 깨어난다면 불교문화뿐 아니라 한글꼴 역사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학술대회에서는 △정음 창제와 세종조 유교와 불교의 구도(임홍빈 서울대 명예교수) △훈민정음과 불교경전의 관계(정우영 동국대 교수) △목간을 통해서 본 신라 사경소의 풍경(권인한 성균관대 교수) △필사본 <금강경언해>와 <월인석보>의 관계(김기종 동국대 인문한국연구단 교수) △근대불교와 한글 - 불교계 잡지의 한글문화운동(김종진 동국대 불교학술원 조교수)에 대한 논문도 발표된다.
개회식에서 총무원 문화부장 진명스님은 인사말을 통해 “한글 창제는 기본적으로 불교가 우리 한민족의 종교로 승화하는 데 중요한 디딤돌을 놓은 의의를 지니고 있다”면서 “(조선시대) 다수의 불경을 우리말로 언해하여 대중화하고 있는 등 한국불교의 발전에 한글이 끼친 영향이 크며, 한글의 발전에 불교가 견인한 성과가 작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동국대 불교학술원장 현각스님은 “불교와 한글이 상호간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조화를 이뤘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발전적으로 어우러져 가야 하는지 모색하는 한글대회”라면서 “불교와 한글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불교와 한글의 미래지향적인 발전 방안에 대해서도 시사점을 제시해줄 것”이라고 학술대회 의미를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