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크리스마스로 유명한 분천산타마을에 들러보기로 했어요.
안타깝게 상점은 모두 문을 닫았어요. 주말에만 문을 여는 듯...
분위기를 보니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을 듯해요. 한 마을 사람들이 합심하여 만들어낸 마을, 그동안 얼마나 고생을 하였을까요?
앞으로도 계속 마음을 낮춰 멋진 마을로 남기를...
다녀간 사람들이 또 가고 싶은 마을이 되기를...
바가지 씌우지 않는 산타마을이 되기를...
아쉬운 마음으로 고택으로 돌아가던 중,
가는 길에 있는 '닭실마을'에 들러보기로.
흙담장이 아름다운 마을.
관리가 잘 된 마을.
금닭이 알을 품는 형국의 닭실마을
닭실(酉谷)마을은 유명한 양반의 성씨인 안동권씨 중에서도 충재(冲齋) 권벌(權橃)을 중심으로 일가를 이룬 동족마을입니다.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 즉 ‘금닭이 알을 품은 모양’의 명당이라는 닭실마을은 동북쪽으로 문수산 자락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고 서남으로는 백운령이 뻗어 내려 암탉이 알을 품은 형상이며, 동남으로는 신선이 옥퉁소를 불었다는 옥적봉이 수탉이 활개 치는 모습으로 자리해 있지요.
조선 중기의 문신인 권벌은 1496년 진사에 합격하고 1507년에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연산군의 폭정하에서 급제가 취소되었다가 3년 뒤인 1507년에 다시 급제하여 관직에 발을 들였습니다. 사간원, 사헌부 등을 거쳐 예조참판에 이르렀는데 1519년 훈구파가 사림파를 몰아낸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파직 당하자 귀향하였습니다.
그는 파직 이후 15년간 고향인 유곡에서 지냈으나, 1533년에 복직되어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기도 하였고 1539년에는 병조참판, 그 해 6월에는 한성부판윤 그리고 1545년에는 의정부 우찬성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해 명종이 즉위하면서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윤임 등을 적극 구명하는 계사를 올렸다가 파직되었고, 이어 1547년 양재역 벽서사건에 연루되어 삭주로 유배되었다가 이듬해에 세상을 떠났지요. 그는 벼슬에 있는 동안 임금에게 경전을 강론하기도 하였고 조광조, 김정국과 함께 개혁정치에 영남 사람파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그 후 1567년에 신원되었고 그 이듬해에는 좌의정에, 선조 24년에는 영의정에 추증되었습니다. 닭실마을에 남아있는 유적들은 기묘사화로 파직되었던 동안 머물면서 일군 자취들이며 현재 사적 및 명승 제3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영남의 4대 길지 중의 한 곳이라는 닭실마을의 청암정은 굳게 닫혀 있고, 권벌의 종택도 굳게 닫혀 들어갈 수가 없네요.ㅠㅠ 뭔지 모르게 씁쓸하고 쓸쓸하고 허무하고...
숙소로 돌아오니
고택 앞에서 처음 보는 냥이가 반겨주네요.
반갑다, 냥이야.
아름다운 봉화에서 잘 살고 있구나.
첫댓글 산타마을이 봉화군요
봉화 가보고 싶네요
예, 잘 꾸며놨어요.
사진 속 마을 깨끗하고 예쁘긴 한데 행인이 하나도 보이지 않네요.
그러니 청암정도 종택도 닫아둘수밖에 없겠죠.
8월 염천 더위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