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주작가님께서 주신글]
여수 밤바다의 애절한 사연
항구에서 배를 타고 여수 밤바다를 들으며 1시간쯤 가면 돌산도가 나온다. 이어 금오산이다.
금오산에는 집체만한 흔들바위가 있다. 이 바위 밑이 까치집처럼 앙증맞은 향일암이다. 온통 하늘을 가리는 동백 터널을 지나 아슬아슬한 절벽에 지은 암자다.
솔바람 소리에 울창한 낙락장송은 까딱하지 않는데. 남해 파도 소리에 기기묘묘한 바위가 흔들거린다.
지현스님
훤칠한 스님 한분이 순천 송광사에서 여수 향일암으로 승적을 옮겼다.
당시 27세, 법명은 지현(知玄), 속세의 호는 호월(湖月). 경남 남해가 고향이다.
스님은 남해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세에 출가하여 10년을 목표로 전국 사찰을 돌아다니며 수도하다가 마지막 3년을 채우기 위해 금오산으로 온 것이다.
스님은 그동안 폐사지로 방치된 향일암에 자리를 잡았다.
스님은 백팔염주에 사바세계의 번뇌를 실어, 깊은 사염 경지를 거닐며 수도에 정진을 하고 있는데
기도를 하러 온 여신도들은 미남 스님을 가만 놔두지 않았다. 독경 보다는 스님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낭랑한 목소리에 인물도 좋고. 거기다가 암자마저 절경이니 여신도들이 줄을 섰다.
처자의 등장
59년 봄, 향일암에서 1km 떨어진 해변 율촌마을에 당시에 드물게 양산을 쓰고 하이힐을 신은 신여성이 양장차림으로 나타났으니 마을은 온통 난리가 났다.
광주에 산다는 아가씨(박애희)는 폐결핵으로 학업을 중지하고 요양 차 이모네 집에 온 것이다. 한 눈에 보아도 멋쟁이 절세미인이었다.
울창한 숲에는 동백, 산죽, 춘란이 지천이었다. 바위틈에 도사린 석란의 향기가 십리 안팎을 뒤덮었으니.
이런 아름다운 경치에 6순 환갑이라도 마음이 설레일 판이다. 아름다운 풍광 탓인지, 아가씨의 병은 눈에 띠게 회복되어, 전과 같이 활기를 찾았다.
하루는 아가씨가 인근에 있는 암자로 산책을 나왔다가 젊은 스님을 보았다. 바로 지현스님이다.
부처님 앞에 정좌하고 청아한 목소리로 염불하는 스님을 중이 아닌 남성으로 본 것이다.
짝사랑
사랑을 해 본 적이 없는 숫처녀의 설레이는 마음은 오직 한 곳에 꽂혔다. 스님의 풍란 같은 향기에 취해버린 것이다.
그래서 아가씨는 2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암자를 찾았다. 그래도 스님을 보지 않으면 잠을 청할 수 없었다.
아가씨의 시선은 날이 갈수록 뜨거워지는데, 스님은 매정하게도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이글거리는 가을볕에 가중나무는 단풍이 드는데, 아가씨는 혼자만의 짝사랑에 가슴 아파했다.
이번에는 신병이 아닌 상사병으로 밤을 하얗게 지새웠다. 그러기를 석 달,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끝내 농약을 마셨다.
녹두 국물
이모는 조카의 애절한 소원을 풀어주기 위해 단 거름으로 지현스님을 찾아갔다.
스님은 이모의 요청을 들은 둥 만 둥. 해독이 급하니 당장 녹두 국물을 먹이시오!
이모는 매정한 스님을 원망하며. 집에 돌아와 녹두를 갈아 먹였다.
무의촌 갯마을에서 꼼짝없이 죽을 목숨인 조카가, 신통하게도 녹두 국물 한 대접으로 살아났다.
흔들바위
60년 새해 음력1월14일 새벽4시, 지현스님은 화엄경을 음송하며 암자 경내를 회람하고 있었다.
이때 뒷산에서 비통한 여인의 통곡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스님은 소리 나는 곳으로 달려가 보니. 그 아가씨였다. 흔들바위에서 바다로 투신하려는 찰나였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했다. 하물며 자기로 인해 한을 품고 죽는다고 생각하니 난감했다.
여기서 물러나면 살생을 금하는 불자의 바른 자세가 아니렸다.
무엇이 아가씨를 막다른 곳으로 내몰았습니까? 아가씨의 소원이 무엇이요? 다 들어 주리다.
소원이란 불을 보듯 뻔한 것. 스님과 함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리라.
제발 바위에서 뛰어 내리지만 마시오. 도리어 스님이 애원하는 입장이었다.
상황은 위급해서 망설일 새도 없이, 알겠소! 제발 그 행동을 멈추시오.
지현스님의 말을 듣자마자 아가씨는 혼절하고 말았다.
스님은 아가씨를 안고 내려와 암자에 누이자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꿈에 그리던 스님의 품에 안겼다.
파계(破戒)를 하다.
스님은 젊은 여인의 싱싱한 체취에 얼이 빠졌다. 그리고 29년 동안 막혀있던 정열이 용솟음치고, 뜨거운 불구덩 속으로 빠져들었다. 10년 기약을 마치지 못한 것이다.
다음 날 부터 지현스님의 맑고 낭랑한 독경소리는 온대 간대 없고 마당엔 낙엽만 가득했다.
환속(還俗)하다.
어언 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65년 여름에 한 여인이 대구 팔공산 동화사에서 수도에 정진하던 지현스님을 찾아왔다.
이 아이가 스님의 딸입니다.
스님은 노을 진 하늘을 한참동안 바라보더니 마침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내 아이입니다. 모두가 운명입니다.
스님은 가사(袈裟)를 벗어 던지고 딸을 안았다. 그리고 환속하여 딸 하나에 아들 하나를 더 낳았다.
지난 71년 5월 향일암 중창공사 때, 인연의 끈을 연결해준 암자에게 보답하고자 흔들바위를 바라보는 방향에 기와불사를 자청했다.
그들은 현재 부산 영도구 봉래동에서 미곡상을 운영하며 단란하게 산다고 한다.
한 여인의 지극한 사랑이 10년 수도를 멈추고, 마음을 움직여 가정으로 돌아오게 한 사연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흔들바위는 바람 없이도 잘만 흔들거린다.
사랑하는 마음
숨김마저 죄가 되어
드러날까 조바심에
고백의 상상
꿈길처럼
아득한데
이미 움튼 사랑
어이해야 합니까?
당신의 손길 아니고는
열리지 않은
마음 한 가운데
곱게 피어나는
그대 향한 순정
당신은 어이 하여
그냥 두려 하온지요.
까꿍 아침산책 20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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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밤바다 버스커 버스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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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포토] 명불허전 ‘향일암’ 품은 여수 금오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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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보람과 용기가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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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랑하는 마음
숨김마저 죄가 되어
드러날까 조바심에
고백의 상상
꿈길처럼
아득한데
이미 움튼 사랑
어이해야 합니까?
당신의 손길 아니고는
열리지 않은
마음 한 가운데
곱게 피어나는
그대 향한 순정
당신은 어이 하여
그냥 두려 하온지요.
까꿍 아침산책 20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