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명(明興錫) 서방 귀천歸天에
영원한 명복冥福을 빕니다.
◦ 生 : 1962. 08. 01 陰
◦ 卒 : 2024. 09. 22 陽
우리들에 아름답고 정겨웠던
소풍이야기를 남겨 주고 가셔서
고맙고 사랑합니다.
부디 편안함으로 영면永眠 하시길
사랑하는 마누라와 승호, 건호
항상 잘 보살펴 주시게나
삼우제(三虞祭) 2024 09 26
-0-
삼가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1-
9월 22일 추분秋分
태양길과 적도赤道가 교차하며,
낮과 밤이 같아지는 날.
고인故人이 되신 저희 부친 故 명흥석明興錫 님의
장례식에 보내주신 위로와 격려 덕분에
무사히 의례를 마치게 되었읍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하늘은 예쁜 별이 부족해지면
새로운예쁜 별을 모셔간다고 합니다.
미인박명美人薄命, 천재단명天才短命이라.
다만,
이제는 편히 쉬엄쉬엄 가시고
하시고 싶은 대로 나아가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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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아버지께서는
평생 동안
스스로를 아버지로서 부족하다 여기시며,
가족에게 미안해 하셨습니다.
이제라도 사업들을 정리하시고,
가족과 느긋이 지내고자 결의하시고,
암을 극복해 내고자
긴 기간 투병생활을 해오셨습니다.
최후의 마지막 소원으로
어머님과 공원 산책 가시는 것을 그리시며
끝까지 가족곁에 있으시기를 소원하셨습니다.
저희 아버님은
한때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아이로 태어나,
이영희 여사의 남편이 되기를 선택하셨고,
아들 승호와 건호의 자랑스럽고 자상한 아버지로,
처음부터 아버지로 태어나신 것이 아니셨기에.
하지만,
저희 두 아들이
직장인이 되어 자립을 준비할 때도,
학생이였고, 군생활을 할 때도,
걷고, 말하고, 모르는게 많은 아기였을 때도,
처음 태어났을 때부터
우리들의 아버지로
가족을 돌보며 살아온
아버지의 반평생 어떤 한 순간조차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아들이
아니었던 때가 없었습니다.
-3-
그렇게 반평생을 가정을 돌봐 오셨던
가장에서,
당신이 돌봐왔던 가족의 품속에서
돌봄을 받게 된 아버님의 어깨.
친족 그리고, 양가 가족들의 품속에서
마무리 지으신 아버님의 마지막 길에
서로의 감사를 나누며
행복한 끝맺음으로 가셨습니다.
-4-
아버님 무릎 위에 앉아,
핸들을 돌리며 신나하는 어린 아이에서
어머님을 모시고
아버님을 뵈러갈 수 있는 성인이 되었습니다.
일단, 현재는 남은 가족끼리
어떻게든 될 거라며
어깨동무하며 감싸 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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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를 마치고 돌아온 날 밤.
거실에서 빨래를 개시며
“이제 아프지 마세요.”
중얼 거리시는 어머님.
소파에서 쓰러져 주무시던 어머님께서
“아빠 아파?”라며 꿈결에 하시는 말씀에
“아빠 이제 안 아파”라고 하니
다시 눈감고 쓰러지셨습니다.
육신이 아프신 내내도
어머님 힘드실까봐
강인한 의지와 정신력으로
섬망譫妄도, 기억 이상도 없이
육체적 고통을 감내하셨던
아버님이시기에
정신·영원·사후세계에서
어머님과 아들들의 얼굴 잊지 않고
꼭 품고 나아가실 거라 생각됩니다.
-6-
그저 살아가다,
언제인가
이 이별의 아픔이 사라질 때까지.
힘들어서 의지하고 싶고,
그리워서 추억하고 싶을 때마다
우리들은 양가 가족님들께 기대겠습니다.
-7-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삼우제三虞祭를 끝으로 장례를 마치며,
상주喪主 명승호 · 건호 두 아들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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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수원 이서방 집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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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제[2024년 11월 9일]
첫댓글 삼우제 제문
외로운 자식 승호는 아버님전에 삼가 고합니다
시간이 멈추지않아 벌써 삼우에 이르렀습니다
밤낮으로 슬퍼하고 사모하여 마음 편할 수가 없어
맑은술과 여러 음식을 정성을 다하여 마련하였으니 드시옵소서
승호가 보내온 글입니다.
신세대 문장력은 우리랑 다르네요.
공감이 100% 가는 대견한 표현입니다. ㅠㅠ
차분하고 친근하고 여유롭던 우리 명서방! 아직도 우리 곁에 항상 잔잔한 미소띠고 함께 있습니다. 많은 추억을 더불어 함께 하면서요.
그리움이 밀려 옵니다/박남규
검정 이불 껍데기는 광목이었다.
무명 솜이 따뜻하게 속을 채우고 있었지.
온 식구가 그 이불 하나로 덮었으니
방바닥만큼 넓었다.
차가워지는 겨울이면
이불은 방바닥 온기를 지키느라
낮에도 바닥을 품고 있었다.
아랫목은 뚜껑 덮인 밥그릇이
온기를 안고 숨어있었다.
오포 소리가 날즈음,
밥알 거죽에 거뭇한 줄이 있는 보리밥,
그 뚜껑을 열면 반갑다는 듯
주루르 눈물을 흘렸다.
호호 불며 일하던 손이
방바닥을 쓰다듬으며 들어왔고
저녁이면 시린 일곱 식구의 발이 모여
사랑을 키웠다.
부지런히 모아 키운 사랑이
지금도 가끔씩 이슬로 맺힌다.
차가웁던 날에도 시냇물 소리를 내며
콩나물은 자랐고,
검은 보자기 밑에서 고개 숙인
콩나물의 겸손과 배려를 배웠다.
벌겋게 익은 자리는 아버지의 자리였다.
구들목 중심에는 책임이 있었고
때론 배려가 따뜻하게 데워졌고
사랑으로 익었다.
동짓달 긴 밤,
고구마 삶아 쭉쭉 찢은 김치로
둘둘 말아먹으며 정을 배웠다.
하얀 눈 내리는 겨울을 맞고 싶다.
검은 광목이불 밑에
부챗살처럼 다리 펴고
방문 창호지에 난 유리 구멍에
얼핏 얼핏 날리는 눈을 보며
소복이 사랑을 쌓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