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배역 7 - 김미희
엄마를 죽여야 합니다 죽을 수 없다고 소리칠 리 없는 엄마를 태곳적부터 엄마여서 지금도 엄마여서 나로 살지 못해 아직껏 엄마인 그 엄마를 마지막 대사도 뱉지 못하고 우물거리다 암전 속에 갇혀 스스로 감옥이 되어있는 엄마를 죽여야 합니다
잘 지내고 있다고 그러는데 그 말이 찌릅니다 보이지 않아서 더 욱신거리는 그 아픈 속내가 보일까 봐 덤덤히 밥공기를 비우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울렁울렁 입을 헹구는 엄마는 죽어야 합니다
1막이 내린 암전 속 무대에서 아직 더듬거리는 소리로 괜찮다고 괜찮다고만 우물거리는 엄마 받아 쥔 종이 카네이션 꽃잎 하나도 어찌 그리 소중한 엄마야 왜 나마저 그래야 해 그 엄마를 맡아내는 기억 때문에 그 냄새 지울 수 없어 목숨 건 세월이 한꺼번에 시드는 게 싫습니다
살아도 죽어도 엄마는 엄마인 것이라고 잘 못 해도 잘해도 엄마는 엄마라는 내 안의 엄마를 반드시 죽여야 합니다 그리움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처럼 잔인한 일 없다고 발설하지 못하는 엄마는 정말 죽어지내는 엄마처럼 죽어야 합니다
몸과 마음 사이의 무수한 창문들이 열린 채 낯익은 감정들이 모눈종이의 빈칸을 채워 내 낡아빠진 기왓장이 금방 쏟아지며 무너질 집을 지켜야 한다는 엄마를 2막이 오르기 전에 어찌 무대에서 들어내야 할지 죽어도 죽지 않는다는 엄마의 손사래를 더는 볼 수 없어 죽어야 합니다 죽여야 합니다
ㅡ계간웹진 《시산맥》(2024, 봄호) ***************************************************************************************************** 세월호 참사 10주년을 맞아 전국적인 추모가 이어지는 가운데 총선 후 첫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의 모두 발언이 여론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국정 심판에 대한 솔직한 반성과 쇄신에 대한 각오 대신 국정의 방향은 옳았으나 민심의 지지를 받지 못했으니 앞으로 국회와 소통하면서 민생을 최우선으로 챙기겠답니다 심판의 회초리를 들었던 이들의 마음은 만족할 수 없는 내용이라고 또 달리 해석합니다 어떤 연극에서 주인공인 엄마가 죽어야 한다고, 엄마를 죽여야 한다고 배역을 받은 배우7은 1막이 끝나고 2막이 오르기 전에 이미 불쌍한 마음으로 안타깝습니다 레임덕을 넘어 데드덕을 외치는 저 국회의원들은 대체 어떤 배역을 맡았을까요?^*^ |
첫댓글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가까운 친척을 만나면 친척을 죽여라.
그래야 비로소 해탈을 얻어 사물에 구속되지 않고 깨달아 스스로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임제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