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대상 금융 정책의 허실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사례는 지난 2월 하순 등장해 2주 만에 예산 부족으로 판매를 중단한 청년희망적금이다. 정부는 2023년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청년희망적금 신규 가입을 받지 않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앞으로는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청년도약계좌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청년희망적금은 지난해 8월 말 발표된 청년특별대책 중 하나였다. 연급여 3600만원 이하 청년들에게 연 10% 전후의 금리를 보장하는 2년짜리 정기 예금을 공급, 목돈 마련을 돕겠다는 것이었다. 원금의 4%까지 예산으로 저축장려금으로 지급해 수익을 높여주는 방식이었다. 정부는 2013~2015년 판매된 신형 재형저축을 가입자(38만명)를 기준으로 460억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그런데 고수익 재테크 상품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2주만에 예산을 소모하고 가입을 받지 않게 됐다. 세제 혜택만 있던 재형저축(재산형성저축)과 달리 예산으로 이자를 더 지급하는 방식이고, 만기도 2년으로 짧았던 게 인기 비결이다.
통계청의 일자리 행정 통계 등에 따르면 청년희망적금 가입이 가능한 사람은 20대만 해도 257만명에 달했다. 발 빠르게 움직인 일부만 정부 보조금을 받을 수 있었고, 다수의 청년은 혜택을 전혀 보지 못했다.
정부는 이 사업과 대동소이한 청년도약계좌를 2023년부터 시작한다. 만기가 5년으로 길어지고, 가입 요건이 중위소득의 180%로 확대됐다. 2인 가구 기준 월 소득 620만원 이하면 가입이 가능하다. 수혜 대상이 넓어진 만큼 예산도 3000억원으로 대폭 늘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10년 납입하면 1억원을 모을 수 있게 해주겠다’는 것에서는 만기와 최대 적립액이 5년, 5000만원으로 줄었다.
◇ 아파트 가격 오르고 선거 닥치니 ‘퍼주기식 사업’ 남발
청년을 대상으로 한 금융 정책이 등장한 것은 박근혜 정부부터다. 청년 대신 ‘젊은이들의 재산 형성’을 내세웠다. 2013년 재형저축이 17년 만에 부활했고, 이듬해 소득공제 장기펀드가 도입됐다. 2018년 경기도·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가 ‘청년’이란 단어가 들어간 정책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8000명을 선발해 지원자와 경기도가 월 10만원씩 3년간 내 1000만원을 만들어주는 ‘청년통장’이 대표적이다. 중앙정부는 2019년 학생 또는 취업준비생에게 최대 1200만원을 연 3~4% 금리에 빌려주는 ‘햇살론 유스’를 내놓은 데 이어, 2021년 7월에는 청년희망적금 도입 계획을 발표했다.
2018년 이후 정부와 지자체에서 청년 자산 형성을 돕는 정책을 내놓은 데에는 이 시기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기 때문이다. 청년층이 생애 주기를 따라 자산을 형성할 수 없다는 문제가 불거지자, 예산을 투입해 자산형성을 돕겠다는 정책이 반사적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정책은 2020년 총선과 2022년 대선을 의식한 것이기도 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의 청년희망적금은 발표 당시부터 막대한 예산이 소요될 수밖에 없는 방식으로 ‘자산형성’을 돕겠다고 나선 터라 대선용 매표(買票) 정책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정부가 바뀌니 비슷한 사업이 대상과 방식을 약간 바꾸고 새 간판을 내건 것은 필연적인 수순이기도 했다.
◇ 청년 금융 정책, 사회적 합의 구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전문가들은 청년 대상 금융 정책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사회적 이해와 다른 세대들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특정 연령대에 무차별적으로 정부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에 현재 방식에 대한 정당성 확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현수 보건사회연구원 사회보장재정정책연구실장은 “가입할 수 있는 사람들이 대단히 많고, 정부 보조금이 일괄 지급되는 청년 자산형성 지원만 두드러질 경우 다른 세대들의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며 “사회 전체의 이득으로 돌아올 수 있는 보완적인 제도를 도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준경 한양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 6월 금융학회 세미나에서 발표한 <인구구조 변화와 세대 간 금융> 논문에서 인구가 적은 청년 세대가 다른 세대에 비해 훨씬 더 많은 부채를 지고 있는 것을 분석했다.
연령이 자산 및 부채에 미치는 효과 등을 제거할 경우, 인구 비중이 큰 집단이 자산을 더 많이 모았고 거꾸로 인구 비중이 적은 집단은 2014년 이후 부채를 더 많이 지게 됐다는 것이다. 하 교수는 “왜 청년들이 자산이 적고 거꾸로 부채가 많은지는 추가로 분석해야 하겠지만, 한국 사회가 청년들의 자산 형성에 우호적이지 않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부모의 자산이나 본인 소득을 따지지 않는 보편적 자산 형성 관점에서 아동기에서부터 자산을 모을 수 있도록 하는 게 낫다는 의견도 있다. 일괄적인 현금 급여 지급 방식이라면, 어릴 때부터 장기 저축을 유도하고 성인이 되었을 때 일정 규모 이상 자산을 갖게 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영국은 2005~2011년 자녀신탁기금(CTF)을 운영했고, 2018년 저소득층으로 범위를 좁힌 저축보조제도(Help to Save)를 도입했다. 최 실장은 “저축이 장기간 이뤄지기 때문에 그만큼 정부 보조금을 줄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 자산 관리 방법도 교육해 금융 이해력 높이는 게 중요
청년들에게 자산 형성만 도울 것이 아니라, 자산 관리 방법을 교육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일종의 ‘금융 이해력(financial literacy)’을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동준 성균관대학교 사회복지연구소 연구원은 지난해 발표한 ‘청년 주식투자자들의 신용대출 경험에 관한 탐색적 연구’에서 신용대출을 받아 주식투자에 나선 청년 7명을 면접 조사했다. 인터뷰 참가자들은 단기간 고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있었던 반면, 주가 변동성과 손실 위험에 대해서는 거의 인지하지 못했다.
이들 참가자는 원금 손실에 따른 신용 대출 상환 문제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이 연구원은 “과도한 투자에 대한 예방교육이나 금융교육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른바 ‘영끌’에 따른 부작용을 막는 것뿐만 아니라 소득 및 부채 관리 역량을 높이기 위해서도 금융 이해력이 중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김시월 건국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가 2018년 사회 초년생 25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연구에 따르면 대출 경험이 있는 청년이 없는 청년들보다 더 금융 지식이 부족하고, 저축보다 소비를 선호했다. 대출 경험이 있는 청년들은 통신요금 등 각종 대금을 제때 납부하지 않는 성향도 강했다.
김 교수는 “금융 지식은 행동에 영향을 직접 미치지 않지만, 금융을 바라보는 태도에는 유의미한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