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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문을 나서니 어쩐지 아침공기가 선선하다.
긴팔 티셔츠를 입고 나올걸
그런데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니 모두들 나처럼 반팔에
여자들은 미니펜츠를 입고 걸어가고 있다. 아마 서양사람들은
피부속에 우리들보다 지방질이 더많이 끼어있어서 추위를 안타는것
같으며 겨울에도 반팔 티셔츠를 즐겨입는다. 오래전 집사람과 연애시절
그추운 겨울에도 우리들이 만날때는 그녀는 항상 스타킹하나에 스커트를 입고
나왔었든게 생각난다. 그때는 사랑에 빠져 용광로처럼 활활 타고
있는데 추울리가 없지.
이럴때는 열심히 걷고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먹으면서 지내는수 밖에 없다.
그런데 계절이 바뀔때면 항상 주위에서 한두사람식 하느님의 부르심을받고
떠나가기 때문에 우리를 더욱더 쓸쓸하고 우울하게 만든다.
오늘아침 나는 아주 슬픈소식을 접했다.
죽마고우 이재철군이 오늘새벽 하늘나라로 떠났다고한다.
나는 고향을 떠나 이곳에온 이후 매주 교회에 갈때마다 재철군과 대구에서
약국하는 또한친구, 이두사람에 대한 기도는 한번도 빠진적이 없었다. 이두친구야말로
내마음속의 친구이자 떠나올때 병상에 있는걸 보고왔기 때문에 항상 내마음에 걸렸다.
특히 오늘떠난 친구는 내가 떠나온지 10 여년이 다 되었는데도 한밤중이나
새벽이나 생각나면 사정없이 국제전화를걸어 내이름을 부르며 "보고싶다"
"우리 언제 볼꼬" "건강해라 끊는다" 별말도 없다.
얼마전에는 "미군부대 식당에 스테이크 먹고싶다"
"나이제 이식수술 하게됬다" "났거든 미국한번 갈께"
하든것이 귀에 쟁쟁한데
눈물이 앞을가려 글을 못 쓰겠네.
요즘은 저승사자가 미스테이크를 많이낸다고들한다.
한국같은 나라에서 성형수술을 많이하기때문에 얼굴을 못 알아봐서
잘못 잡아갈때도 있다고 하든데 이친구도 성형수술이나 했드라면.
눈물을 닦으며 걷다가 돌아오는길에는 우리들의 아지트인 델리에 들렸다.
여기도 한자리가 빈다. 우리멤버들중에 제일 나이가 젊은 아주머니 한사람이
있었는데 작은아들이 있는 이곳 뉴져지에 남편과 큰아들내외와 같이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좀더 잘살기 위하여 이주를 해왔다. 이곳에 와서는 전직 수사관이였었든
그녀의 남편을 누구도 알아주지 않으며 환갑이넘어 영주권도 없는 늙은이가 아무것도
하는일없이 수년동안 놀면서 한국에서 가져온돈 다 날리고 집에서 술만 마시다가 2년전
타계하고 영주권자인 둘째아들이 시민권을 받아야 부모들 영주권을 신청해줄수가 있는데
유일한 희망인 그아들마저 반년전에 암으로 사망해버렸다고한다. 그래서 큰아들집에서
손자들을 봐주면서 지내왔었는데 그래도 매일아침 화장을 곱게하고 빨간 츄리닝을
입고 아침운동을 마치고는 항상 밝은표정으로 우리들의 아지트인 델리에 들리곤
했었다. 어느날 갑자기 나오질 않아 수소문을 해보니 간암 말기로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우리모두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다.
몇몇이 병문안을 갔다왔으며 본인은 아직도 자기의병을
심한 몸살로 알고 퇴원하는데로 곧 다시 델리에
나가겠다고 하드란다.
Holy name Hospital (뉴져지에 유일하게 한국 Part 가 있는 종합병원)
어느날 병문안온 친지가 병실을 나오면서 큰아들을 보고 어떻게 저지경이
되도록 그렇게 몰랐느냐고 나무라는말을 환자가 몰래 옅듣고는 그순간 충격으로
심장마비가와서 다시는 눈을뜨지 않았다고 한다. 그소식을 전해들은 우리 멤버들은
너무나 침통했으며 슬픔에 잠겨 지금도 델리에가면 할머니라고 하기엔 아직도
고운 아주머니가 예쁘게 화장을 하고 생글생글 웃으면서 들어오는것 같다.
이곳에서는 병원에서 사망진단이나면 일단 장의사로 옮겨지게되며
우리동네에는 유일하게 한국사람이 주인인 중앙장의사라는 큰 장의사가 있어서
그아주머니도 그곳으로 옮겨졌다. 그리고는 미국식으로 시신을 깨끗이 씻은뒤 방부제를
사용하여 부페하지 않도록 하고 평소처럼 예쁜옷을 입히고 얼굴에는 생존시와 똑같이
예쁘게 화장을 해서 꼭 평화롭게 자는듯이 화려한 관속에 눕혀놓고 뷰잉이라고
떠나기전에 가족친지들이 모여 마지막으로 자는얼굴을 보며 꽃한송이를
놓고 나온다. 상주나 가족들도 한국처럼 24시간 시신과 같이 있을
필요도 없고 다만 사망한 첫날만 같이 밤을세우며 친지 친구들은
꼭 검은양복을 안입어도 되고 어두운색갈의 양복에 검은
넥타이만 메고 장의사에서 정해준날 정해진 시간에만
뷰잉을 할수가 있다.
한국 중앙 장의사
장례식은 고급 리무진에 생화로 장식을하고 장지로 떠나는데
그날 장지까지 같이가는 차량들은 모두다 같이 전조등을 켜고 일렬로
출발하게 되는데 대부분 경찰차가 에스코트를 해주며 이행렬은 신호등도 무시
해도 되고 다른 모든 차량은 비켜주게 되어있다. 장지는 한국처럼 먼 산에 있는게
아니고 어디를가나 동네 한가운데에 있으며 묘지 옆에는 주택들이 다 있는데 그렇다고
주택값이 떨어지는것도 아니다. 이넓은 미국땅에 묘지만큼은 인색하여 부부합장을 하
드라도 한국처럼 좌우로 하는것이 아니고 같은 묘지에 상하로 관을 넣게 되며 한묘지에
상하로 4개의 관을 넣을수 있다. 이곳은 결혼예식장보다 장례예식장이 더 크고
화려하다. 그동안 잘살아볼려고 부푼꿈을안고 미국까지와서 남편과 아들을
잃은 슬픔을 혼자 가슴에 묻고 얼마나 울었으며 또한 스트레스를 얼마나
받았길래 갑자기 그런 몹쓸병마가 찾아왔을까. 그래도 우리들과
델리에서 만났을때는 항상 밝은 모습으로 대하든 아주머니였다.
이렇게 4주전에 떠나간 그아주머니는 지금쯤 먼저간 남편과 둘째아들을 만나
고통과 슬픔이 없는 천상에서 편안하게 잘 지내리라.
이런사람처럼 의료보험도 없는 불체자로 있다가 갑자기 큰병이나서
병원 응급실로 실려가도 한국과달리 우선 환자부터 살려놓고 보는게 미국이며
병원비 지급할 능력이 없는사람이라고 판단되면 병원 소셜워커가 그런사람들만
위하여 정부에서 만들어놓은 프로그램에 의뢰하여 해결해주게 되어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반드시 알아야할것은 911에 신고하여 엠블란스를 타고가야만 그런 혜택을
받기가 쉬우며 자기차나 택시를 타고 가서는 시간도 많이 걸릴뿐더러 그런 혜택을
받기가 힘든다. 한국에서는 119 이지만 여기서는 911 이며 전화만 걸면 경찰차와
소방차, 엠블란스 가 1조가되어 즉각 출동하며 불체자나 합법체류자나 신분을 따지지
않고 가까운 종합병원 응급실로 데리고 간다.
실제로 있었든일인데 동네 골목에서 초등학생이 자전거를 타다가 주차해있는
차를 들이받아 넘어져 피를흘리며 울고있었다. 호들갑스런 이웃 주민이 바로 911에
신고를 했으며 즉각 소방차 경찰차 구급차 3대가 요란스럽게 달려와서는 아이를
싣고 가버렸다. 갑자기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들이 경찰서에 신고하러 갈려는데
구급차가 아이다리에 붕대를 잔뜩 감고 데리고 왔다. 반갑고 고마워서 Thank
you, Thank You 를 연발하면서 아이를 데리고 들어와서 보니 그렇게 크게
다치지는 않은것 같았다. 그리고 약 일주일쯤 지나니까 청구서가 날라
왔는데 구급차 출동비에 응급치료비등 명목으로 $2500
(한국돈으로 이백오십만원 정도) 을 언제까지
내라고한다.
이럴경우에 부모가 직장이 있고 집이있고 하면 반드시 지불해야하며
만약 내지않으면 콜랙션이라는 청부회사로 넘어가 재산 차압을 당하게 된다.
그렇지만 집도없고 수입도 시원찮은 저소득층일경우 소셜워커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면 심사를거쳐 몇년동안 할부로 내든지 아주 안내도록 도와준다. 그러므로
미국에서 살려면 기본적인 영어는 필수이며 요즘에는 소셜워커들이 한국사람도
간혹 있기때문에 영어를 못해도 도움을 받을수가 있다. 하여튼 미국에서는 중류
이상 상류층에 들어갈만큼 부자이든지 아주 저소득층이든지 이런 사람들은 살기가
아주 좋으며, 소위 중류라고하는 부류들은 세금은 세금대로내고 혜택은 제일
적으며 중국사람들과 달리 우리한국사람들은 체면과 과시욕이 많아서
소득은 적으면서 중류처럼 흉내내며 부자동네에 가서 살면서
고급차타고 다니다가 결국은 낭패보는일이 허다하다.
현제이곳 미국 동부지역에 한국인이 몇명살고 있는지는
나역시 정확한 숫자는 모르지만 약 100만은 훨신 넘을것 같다.
그중에서 유학생, 상사 주제원, 영주권자를 빼면 거의 무작정 관광비자를
받아 미국에 입국했다가그대로 눌러앉은 불법체류자도 이곳 동부에만 수십만명이
된다고한다. 물론 시민권자는 미국시민이니까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불체자 중
에도 정식비자를 받아 여행으로왔다가 눌러앉은 불체자들은 그래도 양반이고 구제
받을길도 있지만 브로커를통해 카나다나 멕시코로 가서 죽음을 무릅쓰고 국경넘어온
사람들은 이곳에서 영원히 구제받을길이 없다. 한국에서 사기치거나 한탕한사람들
또한 이곳 한국술집에 종사하는 술집아가씨들이 합법비자를 못 받으니까 대부분
국경 넘어온다. 이들은 적발되면 수용소에서 오륙개월 살다가 한국으로
곧바로 추방되며 평생 미국에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합법적으로는
다시 입국할수가 없다.
파랗든 나뭇잎들이 이젠 가을색갈로 변해가는것 같다
이렇게 걸으면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타향살이 십여년에 잃은것도 많지만 배운것도 많고
나자신도 변해가고 있는것을 스스로 느껴진다.
지난번에 아칸소주에 아내 구타법이 있다고 했는데
확인해보니 사실이며 옛날부터 주(State) 법에 명시되어 내려오고
있으며 남편들이 한달에 한번이상 아내를 구타하면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잡아가서 감옥살이 시키고나서도 얼마동안 접근금지 명령을 내린다고한다.
그리고 아이오와 주에서는 5분이상 키스를하면 위법이며 혹시 그동네로
신혼여행 같은거 갈려면 절대로 남들이 보는앞에서 5분이상
뽀뽀하지말것. 우리 뉴져지는 경찰관에게 얼굴만
찌프려도 위법으로 잡혀갈수가 있다고 한다.
(예정에 없이 친구가 떠나는바람에 슬픈예기만 늘어놓았었는데 다음에는
이민 관계 이야기, 학교 교육 이야기 또는 노인문제로 이어보겠습니다)
첫댓글 가을---, 조락의 계절 초입에서 타이밍이 맞다고 예찬할 수만도 없으나 인형의 절절한 서술이 심금을 울립니다---.
아니 벌써 보셨구려. Ridgefield Morning Coffee Member 들이 가끔식 김교수님 잘계시냐고...... 그리고 김원장님은 70이 넘은 나이에 얼굴에 검버섯 지운다고 레이져로 온 얼굴을 지져서 한동안 못나오시다가 요즘 열심히 나오신다오.
사진만 구경하였는데 오늘 아주 재미있게 완독 했습니다 많은 공부 미국갈때 도움 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건필 하세요..
모시바지님 반갑습니다. 항상 좋은글 열심히 보고 있으며 또 아침마다 모이는 우리 영감들 모임에 가끔 프린트해가지고 가서 보여주곤 한답니다. 모두들 아주 관심있어 하드군요.
교포사회의 사는 얘기가 생생하게 생각나게 하네. 건강하기를 바라네.
나는 아직까지는 신기한게 많은데 쟌쟌님은 이곳에서 너무 오래살아버려서 이글이 흥미가 없을텐데 읽어줘서 고맙고, Advice 해준데로 그냥 열심히 써보는중이라네.
어느때인지? ㅡㅡㅡ미국에서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送金을 하는데 ㅡ제법 많은 금액이었다 ㅡㅡ그런데 이 送金이 한번으로 끝나지 않고 수시로 이루어 지고 있었다 ㅡㅡㅡ이러니 한국 외환 당국에서 주목하게 되고 ㅡ어느 기관에 까지 보고되게 되었는데ㅡㅡㅡ 당연히 그 기관의 미국Agency에서 탐사와 내사를 했겠지 ㅡㅡㅡㅡㅡ그런데 결과는 송금자의 직업은 장의사 ㅡㅡㅡ청천 탁원 학우님! 미국에서 장의사는 고소득 직종입니까? -Licence는 필수이고-------
맞습니다. 아주 고소득직이며 전문대학인 Community College 같은데 들어가면 장의사과가 있다고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