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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쭉빵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통살통살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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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지?"
"아,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지!"
"한양 가자. 한양에 가서 제일 큰 판을 벌이는거야."
"왕을 가지고 노는거야.
... 개나 소나 다 왕 얘긴데 왕이라고 뭐 별거야?"
"왕이 보고 웃으면 희롱이 아니잖소!
우리가 왕을 웃겨 보이겠소!"
"여봐라. 내 이 광대들을 가까이 두고, 내킬 때마다 불러 즐길 것이니
이놈들의 거처를 궁궐 안에 마련해라."
"받아 주십시오!
... 대령 했나이다. 요-런 것!"
"네 이름이 무어냐?"
"..공길이라 하옵니다."
"놀자."
"계속 놀잔 말이다."
"윤지상이 그 놈때문에 한참 놀다 판이 깨지지 않았더냐?"
"너랑 나랑. 둘이서 계속 놀잔 말이다."
"선왕? 선왕은 하늘같이 떠받들고, 나한테는 이래도 되는게냐?"
"아바마마, 어머니가 그립습니다!"
"네 어미에 대해서는 생각치도 말라고 하지 않았더냐?"
"아바마마! 한 번만이라도 어머니를..!"
"못난 놈! 네가 그러고도 성군이 될 수 있겠느냐!"
"아바마마! 아바마마..!"
"전하! 전하께서 고작 광대들의 놀음에 놀아나신다면은..!"
"놀아나? 이 놈이..! 나를 놀아나게 하는 건 바로 네 놈이야!
지금도 법도와 명분을 내세우며 나를 옭아매려 하지 않느냐!"
"어마마마! 사랑하는 여인에게, 어찌 사약을 내리라 하십니까!"
"요망하고 요망한 년! 여시같은 네 년이, 내 아들을 홀렸구나!"
"..나가겠습니다."
"그래, 네가 나에게 해 준것에 비하면 약소하다. 받아라."
"...본래 기집이 아닐까?
소리면 소리, 몸짓이면 몸짓. 그거 없는 내관들도 이렇지는 않은데..
보고싶지 않아? 한 번 벗겨보자고. 응?"
"전하.. 나가게 해주십시오..
나가게 해주십시오, 전하.."
"너, 처음부터 나갈 생각이 없었던거지?"
"그런거 아냐."
"... 어차피 양반한테 팔아먹던 몸뚱아리, 왕한테 파는게 낫다 이거야?"
"궁 후원에서 광대들을 시켜, 사냥놀이를 하심이 어떠하십니까?"
"안 돼! 안 돼, 안 돼..! 그만해! 그만해..!"
"놔! 이것 놔! 놔!"
"... 아 이 놈이, 기생들 요분질이 시시해지니까
이번에는 사내놈하고 붙어먹는 짓도 서슴치 않는데..!
그 비역질이 보통 비역질과 달라서 밥이 나오고, 비단이 나오고, 벼슬까지 나오는 비역질인디!"
"여봐라. 이 놈의 눈을 불로 지져라."
"그깟 광대들을 불러들이는데, 무슨 뜻이 있었겠습니까?
광대는.. 그저 광대일 뿐이지요.."
"여보슈. 내 재미난 얘기 하나 해드릴까?
내 어려 종살이 할 때 얘긴데, 어느 날 안방마님
금붙이가 하나 없어졌지. 그래 종놈들 죄 모아놓고 주인 양반이 호통을 치는데
아무도 나서는 놈이 없더라고. 엄동설한에 아 그냥 추워 죽겠대.
그래 내가, '거 내가 훔쳤소.' 그랬더니 그 금붙이가 어딨내.
그래 내가 '..그 내가 먹어 치웠소.' 그랬는데
아 갑자기 몽둥이가 날아오는데 그걸 내가 입으로 막아버렸네?
아따 입이 어떻게나 뜨끈뜨끈 거리던지. 지금이 꼭 그런 기분이네.
따땃하니.. 내가 그 몽둥이를 눈으로 막았다면,
지금은, 입을 지졌을라나?
내 평생, 맹인 연기를 하면서 살았는데
막상 진짜 맹인이 돼서는 진짜 맹인 연기 한 번 못해보고 죽네?
아 이제야 제대로 한 번 놀 수 있는데 말이요.."
"미안해.."
"뭐가?"
"주인마님 금붙이.. 내가 훔쳤어.."
"같이 도망가자."
"아래를 보지마."
"무서워.."
"줄 위는 반 허공이야. 하늘도 아니고, 땅도 아닌 반 허공.."
"내 평생 맹인 연기를 하고 살았는데
막상 맹인이 되고 나니 맹인 연기 한 번 못해보고 죽는게 한이네 그려.
내 제대로 한 번 놀 수 있는데 말이오.."
"..왜!!!!
왜!!!!!!!!!!!"
"..미친놈."
"연회를 열자, 처선아.. 처선아!"
"내 실은, 눈 멀기로 말하면 타고난 놈인데
그 얘기 한 번 들어보실라우?
"어릴 적 광대패를 처음 보고는, 그 장단에 눈이 멀고.
광대짓을 할 때는, 어느 광대놈과 짝 맞춰 노는게 어찌나 신이 나던지!
그 신명에 눈이 멀고.
한양 와서는, 저잣거리 구경꾼들이 던져준 옆전에 눈이 멀고!
얼떨결에 궁에 와서는! 와서는..
..그렇게 눈이 멀어서.. 볼 꼴 못 보고..
어느 잡놈이 그놈 마음을 훔쳐가는걸 못 보고.."
"그건 그렇고.. 이렇게 눈이 멀어 아래를 못 보니, 그저 허공이네 그려.
이 맛을 알았으면.. 아, 진작에 맹인이 될 것을..!"
"야 이 잡놈아!!!!"
"맹인이 되니 그리 좋으냐!"
"..그래, 좋다. 좋아 죽겠다 이 년아!"
"눈깔도 없는 놈이.. 게가 어디라고 올라갔느냐..! 냉큼 내려가라 이 놈아!"
"저 년 말버릇 좀 보게! 내가 이 궁에 사는, 왕이다 이 년아!"
"그래. 안 그래도. 내 왕의 상판떼기 한 번 보고 싶었는데,
보고나니 그 이유를 알겠다, 이 놈아.
네 놈이 눈이 멀어..
세상을 이리 하사리판으로 만들어놨구나..!"
"너는 죽어 다시 태어나면, 뭐가 되고프냐?
양반으로 나면 좋으련? .. 그럼, 왕으로 나면 좋으련?"
"그것도 싫다! 나는, 광대로 다시 태어날란다!"
"이 놈아! 광대짓에 목숨을 팔고도.. 또 광대냐!"
"그러는 네 년은! 다시 태어나면 뭐가 되고 싶으냐?"
"나야, 두 말 할것 없이 광대! 광대지!"
"그래.. 징한 놈의 이 세상, 한 판 신명나게 놀다가면 그 뿐!
광대로 한 번 다시 만나, 제대로 한 번 맞춰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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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지?"
"아,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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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의 영화 해석> - 바쁘시면 안 읽으셔도 돼요 ㅠㅠ
일단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왕의 남자는 제가 국내, 해외 통틀어 가장 사랑하는 영화인데요.
이 영화가 나온지 벌써 10년이 됐다니 믿기지가 않네요..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아름다운, 또 아름다운 만큼 애달픈 영화입니다. 영화를 열 번 넘게 돌려본 제가 각종 카페에 올라온 영화 분석글들의
도움을 받아 나름대로 영화를 보고 혼란스러워 하시는 몇몇 분들을 위한 해석을 달아드릴까 해요.
일단 제 생각에 많은 분들이 가장 어려워 하시는 두 포인트는 녹수와 공길 각자를 향한 연산군의 마음과
공길과 장생의 관계인 것 같은데요. 전자를 먼저 설명해보도록 할게요.
일단 연산군은 폭군으로 널리 알려진 왕이죠. 미친 왕, 신하와 혈육을 죽인 잔인한 군주.. 이 정도가
연산군 하면 떠오르는 타이틀인데요. 영화 왕의 남자에서는 그의 외로운 삶과
고통에 몸부림치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줍니다. 영화 전체에 걸쳐서 나오듯이 연산은 신하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왕이었어요. 선왕에 대한 컴플렉스가 굉장히 심했죠. 선왕이었던 성종은 신하들에게는
성군이었을지라도, 연산에게는 무정한 아비였죠. 공길과 연산의 그림자놀이 장면에서 보여지듯이 연산은
아버지로부터 어떠한 정신적인 위안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사약을 받고 죽은 어미를 홀로 그리워하다가
몸만 커버린, 어린아이 같은 왕이 되어버린거죠. 그런 연산은 평생을 모정을 찾아 헤맸습니다.
연산이 녹수의 치마폭으로 기어들어가는 장면에서 나오는 음악의 이름은 <자궁 속으로> 인데요.
여기서 온갖 모욕을 당하고도 그를 결국 받아주는 녹수가 연산의 모성애에 대한 갈망을
그나마 채워주는 존재였다는걸 알 수 있죠.
(영화 좀 더 초반에는 녹수가 우리아기, 젖 줄까? 하며 연산을
달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지만 녹수는 연산에게 정신적 위안을 준다기 보다는 그녀의 여체를 통해 위안을 주는 편이었어요.
연산의 갈증을 다소 달랠 수는 있어도 완전히 해소하기엔 부족했죠.
이런 연산은 공길을 만나게 되는데요. 공길은 연산에게 정신적인 위안을 줍니다.
평생을 위태로운 왕좌에 홀로 앉아 외롭게 살아온 연산은 그런 공길을 놓치고 싶지 않았죠.
흥미에서 시작된 그의 감정은 집착을 낳게 됩니다. 저는 연산군이 공길을 사랑했다고 보지는 않아요.
물론 그런 감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닐수도 있지만, 주된 감정은 사랑보다는 방향 잃은 소유욕인 것 같습니다.
(어린아이가 친구처럼 여기는, 끔찍이 여기는 인형이랑 비슷했다고 할까요?
그런 어린아이에게 인형은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죠)
공길도 연산을 사랑한 것은 아니고, 연민을 느꼈던 것 같아요. 감성이 여린 공길은 자기 앞에서
모든 위엄을 내려놓고 약점마저 드러내는 연산군이 안타까웠던 거죠.
마지막으로 공길과 장생의 관계는 영화 내내 은근히 보여주다가 영화 후반에 직접적으로 드러납니다.
눈 먼 장생이 "볼 꼴 못 보고.. 어느 잡놈이 그 놈 마음을 훔쳐가는 것을 못 보고..!" 하는 장면에서
잡놈은 연산군이고 그 놈은 공길을 뜻하죠. 그 말을 듣고있던 공길은 장생에게
"야 이 잡놈아!" 하고 소리칩니다. 즉, 공길의 마음을 훔쳐간 잡놈은 연산이 아닌 장생이었다는 거죠.
이 말을 들은 장생은 놀란 듯한 표정을 짓다가 웃습니다. 공길의 말뜻을 이해한 거겠죠.
그리고 이 둘을 보고있던 연산군은 아주 얌전합니다.
평소의 연산같았으면 질투에 눈이 멀어 무슨 짓을 했을지 모르는데요.
심지어 연산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웃기까지 하는데요. 이 장면이 저는 연산군의 몰락을 보여준다고 봐요.
반란군이 궁에 쳐들어오는 중인데도 연산은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생명의 위협은 연산에게 큰 위기가 아니었어요.
연산군의 진정한 몰락은 그가 어떻게 해도 가질 수 없었던 공길과
공길의 진정한 사람이었던 장생을 보며 도저히 끊어낼 수 없는 그 둘의 인연 아래 체념하는 것입니다.
또 다시 혼자가 되었음을 스스로 깨닫는 것이 폭군 연산에게는 가장 잔인한 형벌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영화 끝에서 장생은 부채를 집어던지는데요, 이 장면은 눈치채셨겠지만 두 사람의 자살을 뜻합니다.
부채는 줄 타는 광대에게는 반 허공 위 균형을 잡게 도와주는 목숨과도 같은 도구니까요.
부채를 버린다는 것은 목숨을 버린다는 것과 동일시 할 수 있겠죠.
맨 마지막에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서는 장생과 공길, 육갑 칠득 팔복이가 신나게 장구를 치고 노래를 부르며
길을 걸어가는 장면인데요. 이 때 이들이 걷는 길은 저승으로 가는 길입니다. 비극적인 죽음과는 다르게
신명나게 춤추며 저승으로 가는 그들의 모습에서 나오는 모순이 더욱 가슴 아프죠..
아, 마지막으로 영화 제목인 왕의 남자의 왕은 겉으로 봐서는 연산군을 뜻하는 것 같은데요.
영화 후반에 장생이 "내가 이 궁에 사는 왕이다. 이 년아!" 라고 말하자 공길이 그의 말에 맞장구를 쳐 주는 장면이 있죠.
즉, 공길에게 왕은 연산군이 아니라 장생이었던 거죠.
이렇게 <왕의 남자>라는 제목이 완성됩니다.
왕이었으나 왕이 아니었던 연산과 단 한사람의 왕이었던 장생,
그리고 그 왕의 남자였던 공길.
어느 하나 제가 아끼지 않는 인물이 없어요.. 모든 인물과 공감할 수 있어 더 슬펐습니다.
제가 워낙 좋아하는 영화다보니 글이 아주 길어졌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을 읽으신 김에 다시 한번 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ㅎㅎ
그럼 더 큰 감동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문제 시 말씀해주세요!
첫댓글 난 이영화를 13번봄
캡쳐된 장면들 하나하나 기억난다..ㅜㅜ 진짜 좋았던영화.. 마지막장면이 평화롭고도 너무슬퍼서 인상적이었음..
아대박 서치하다 읽었는데 ㅠㅠㅠㅠ 여운쩐다ㅠㅠ 역시 내 인생영화💕🙏🏻🌈
아 영화보고 와서 읽는데..진짜 너무 좋다 이 영화
너무좋아ㅠㅠㅠㅠ
이제 완전 이해된다 흑 ㅠㅜㅠㅜ 아 ㅠㅜㅠㅜ 기억삭제하고 다시보고싶어 흐엉 ㅠㅜㅠㅜㅠ 여운쩔어 ㅠㅜ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