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들의 가정교육] “연애를 해도 최선을 다하라 말하죠”김강자 과장
() ()
(--.)
김강자 총경(58·서울경찰청 여성청소년 과장)은
서울 종암경찰서 서장 시절 속칭 ‘미아리 텍사스’의 미성년자 매매춘 단속으로
유명해진 ‘스타 경찰’이다.
그가 그동안 아무도 해내지 못했던 미성년자 매매춘과의 전쟁을 맨 처음
결심했던 것은 지난 94년의 일. 경찰청 민원봉사실장으로 일하고 있던 그에게
가출한 딸을 찾아달라며 한 어머니가 찾아왔다.
한참만에 미아리 사창가에서 찾아낸 아이는 성병에 감염돼 얼굴이
누렇게 뜨고 눈동자도 초점을 잃은 상태였다. 그 아이는 그때 14세로,김총경의
큰딸과 같은 나이였다.
“미성년자 매매춘을 뿌리뽑을 수 있었던 데는 제가 여성이며,
두딸의 어머니라는 이유도 작용을 했죠. 가부장적인 남성들은 매춘여성의
인권유린은 당연하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모성애 때문일까요..?
저는 매춘여성을 보면 분노와 슬픔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김총경은 광주경찰서장의 소개로 만난 공무원 김환국씨(60)와의
사이에 딸만 둘을 두고 있다. 학원 영어강사로 일하는 큰딸 보경씨(24)는 알뜰한 살림꾼이다.
김총경이 충북 옥천경찰서장을 지낼 때는 주말마다 내려와 엄마를 위해
따뜻한 도시락을 싸서 보내고,서울에서는 엄마를 대신해 아침밥을 지어
아빠의 출근을 도왔다. 그래도 불평은 커녕 어머니를 자랑스러워 하고 어머니를
도울 수 있다는 생각에 뿌듯해 하는 든든한 후원자다.
둘째딸 정애씨(22)는 문예창작과에 다니는 대학생. 어머니의 성품을
쏙 빼닮아 졸업 후 경찰을 지망하고 있다.
“제가 미성년자를 많이 대하다 보니 저에게 교육문제를 상담해 오는 분들도 많아요.
그럴 때 저는 늘 아이들을 믿고,공부하라고 다그치지 말라고 하지요.
아이가 탈선을 하면 분명 부모에게 잘못이 있습니다.
사창가에서 구출해 와도 아이를 인계할 수 없는 지경의 부모들도 있어요.
이성적인 판단이 미숙한 아이들을 비난하거나 불량 청소년으로 몰아 붙여서는 안되지요.
저만 해도 문제아 취급을 당한 적이 있는 걸요.”
김총경은 고등학교 시절 남학생들과 어울려 등산을 다니고,눈오는 밤이면
유리로 된 학교 온실에 남아 풍경을 바라보곤 했다.
그에게는 모든 게 호기심의 대상이고 모험이었는데 학교에서는 문제아로 몰았다.
그래서인지 그는 지금도 청소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모양이다.
“이성교제만 해도 그래요. 남학생은 여학생에게 매력이 넘치는 존재인데
어른들은 무조건 남자는 늑대고 도둑이라고 가르치죠.
당연히 아이들은 어른들을 불신하게 되요. 차라리 이성교제 때 무엇을 조심하라고 가르쳐야죠.”
딸 가진 엄마치고는 상당히 대담한 얘기처럼 들리지만 그는 정말 딸들에게 그렇게 가르친다.
딸들에게 가장 자주 해주는 ‘오늘에 최선을 다하라’는 말은 연애할 때도 적용이 된다.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라면 최선을 다해 사랑하되 제대로 남성을 보는 시각을 갖출 수 있도록
폭넓게 두루 사귀어 보라고 권한다.
“저는 아이들을 공부 시키려고 안달한 적이 없어요.
나이에 걸맞는 행복을 찾아 주려고 자유분방하게 키운 편이에요.
바로 우리 어머니가 저를 그렇게 키우셨거든요.”
김총경은 자신의 어머니를 “가장 이상적인 엄마이자 정신적인 지주”라고 표현한다.
그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위암으로 세상을 뜬 후 홀몸으로 6남매를 키운
그의 어머니는 여든이 넘은 지금도 그를 위해 매일 새벽기도를 다니고,
딸에 대한 기사나 뉴스가 나올 때마다 꼬박꼬박 전화를 걸어 기쁨을 표시한다고 한다.
**활짝 피어난 매화* *따스한 햇볕을 받아 곱고 화사하게 피어난 매화가 동심을 사로잡고 있다**
“교육을 많이 받으신 분도 아닌데 어머니는 우리가 원하고,
우리의 적성에 맞는 삶을 살도록 유도해 주셨어요. 저는 중간에 은행원이 될 기회가 있었답니다.
그 때만 해도 은행원은 최고의 신부감이었고 여경은 맞선도 안 들어오던 시절이었어요.
그래도 어머니는 경찰을 하겠다는 저에게 쾌히 좋을 대로 하라고 하셨지요.”
김총경의 어머니는 6남매를 똑같이 먹이고 입히고,집안일을 시키며 키웠다.
당시만 해도 가세가 기울면 딸의 학업을 중단시키는 일이 흔했지만
전혀 딸에게 차별을 두지 않았다. 딸이라고 무조건 감싸거나 곱게 키우지 않아
김총경은 선머슴 같다는 말을 들으며 컸다.
“내가 밖에서 사고(?)를 치고 들어와도 어머니는 ‘얘야,힘들지?
네가 오늘 한 일은 위험하니까 좋지 않다’고 하는 말이 전부였어요.
한번도 큰소리로 야단을 치신 적이 없었죠.”
김총경 역시 두 딸이 설사 실수를 저지를 것 같아도 미리 하지 말라고 말리지 않았다.
세상에 대해 한창 호기심을 품은 아이에게 미리부터 경계하고 겁을 집어먹게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는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하고 직접 부딪히며 자라야만 어려움을 참고 견디는 힘과 인내를
배우게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따뜻한 엄마가 되려고 노력했지만
일 때문에 집에 일찍 들어가 아이들을 다독거리지 못한 점은 내내 아쉬워요.
아이들이 어릴 때 출근하지 말라고 투정을 하면 한없이 괴롭고 미안했죠.
퇴직을 하면 딸들의 아이들을 키워줄 생각이에요.
딸들에게 못한 것 모두 손자손녀에게 해줄 거예요. 자장가를 불러주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문을 열고 마중 나가서 안아주고요.”
우리님들 남의 자식도 우리의 자녀처럼 사랑하고 살아요
한참 자라나는 우리의 희망이잖아요.(^^.))...//
★☆★ 아래꽃은 우리네 밭둘레에 피는 피마자(아주까리.(^^.))..)꽃입니다 ★☆★
*우리 너에게 편지를 님들은 공감하시는지요
그럼 좋은하루 보내세요
,
,
,
.....총총.....
우리님들을 사랑하는
우리의 이웃 수혜네"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