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漢詩 한 수] 바둑 이야기
對面不相見(대면불상견),
마주하되 서로 얼굴은 보지 않고,
用心同用兵(용심동용병).
고심하는 품새가 병사를 지휘하는 듯.
算人常欲殺(산인상욕살),
상대를 헤아리며 한결같이 죽이려 하고,
顧己自貪生(고기자빈생).
자신은 챙겨 한사코 살려고 한다.
得勢侵呑遠(득세침탄원),
형세가 유리하면 먼 곳까지 침투하고,
乘危打劫嬴(승위타겁영).
위기를 틈타 공격하여 승기를 잡는다.
有時逢敵手(유시봉적수),
제대로 된 적수라도 만날라치면,
當局到深更(당국도심경).
바둑판 앞에 두고 야밤중까지 간다.
―‘바둑 관전(관기·觀棋)’ 두순학(杜筍鶴·약 846∼904)
바둑은 상대와 생사를 겨루는 제로섬 게임, 종횡으로 뻗은 열아홉 가닥의 길은 반듯한 듯 구불구불하고 평탄한 듯 험난하다. 상대의 수를 예측하며 적시적기에 공수를 반복한다. 시인이 형세와 위기 판단을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순전히 훈수꾼의 관전 소회이지만 그 속성이 경쟁이자 싸움인지라 표현이 살벌하다. ‘병사를 지휘하듯’, ‘죽이고 또 살려고 하고’, ‘침투하고 공격하는’ 따위가 시적 언어로는 생경하다.
바둑은 요순(堯舜)이 자식의 두뇌 교육용으로 시작했다는 설이 있지만 전설의 인물이라 믿기 어렵고, 춘추전국 시대의 군사 책략가들 사이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외려 설득력이 있다. 제후국 간에 빈번했던 영토 쟁탈전과 영락없이 닮아서다. 후일 바둑은 문인들의 유희이자 소일거리였고 거문고·서예·그림과 잘 어우러지는 고상한 취미였다. ‘싸움 뒤 두 상자에 흑백 돌을 담으면, 바둑판 그 어디에 승패가 남는가’(왕안석·‘바둑’)라는 시구를 보라. 이 얼마나 담담하고 여유로운가.
莫將戱事擾眞情(막장희사요진정)
노는 일로 속마음을 끓이지 말고
且可隨緣道我贏(차가수연도아영)
잘하면 이길 뻔했다고 말하지도 말아라
戰罷兩奩分白黑(전파양렴분백흑)
끝나고 흑백돌을 딴 통에 나누어 담을 때
一枰何處有虧成(일평하처유휴성)
바둑 한 판 어디에 잘잘못이 있겠는가
―棋(기: 바둑) 王安石(왕안석, 1021-1086)/북송
*且可(차가) : 그리고. 可는 두 글자 단어를 만들기 위한 助詞.
*隨緣(수연) : 드러난 현상에 순응하면. 또는 반면으로 덤에 걸려 아쉽게 진 것을 표현.
*虧成(휴성) : 실패와 성공.
✵杜荀鶴(두순학. 846~904)은 만당(晩唐) 시인. 두목의 막내아들로 15번째로 태어나서 두십오(杜十五)라고도 한다. 자 彦之(언지). 호 九華山人(구화산인). 池州(지주: 지금의 안휘 석대)사람이다. 몇 번 과거를 치렀으나 합격하지 못하고 산중에 은거했다. 大順(대순) 2년(891) 46세에 진사가 되어 주객원외랑, 충한림학사를 지냈다. 胡震亨(호진형)은 그의 시를 “쇠잔한 곡조로 쇠한 시대를 썼으나, 事情(시정)은 역시 진실 되고 절박하다"라고 형용했다<唐音癸签(당음계첨)>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 〈이준식의 漢詩 한 首(이준식,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동아일보 2024년 09월 27일(금)〉, Daum∙Naver 지식백과/ 이영일 ∙ 고앵자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