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1월 26일 덕혜옹주는 서울에 도착합니다.
그때까지 생존해있던 덕혜옹주의 유모 변복동은
덕혜옹주가 탄 비행기를 향해 큰절을 올렸고,
공항에 도착해 비행기에서 내린 덕혜옹주를 본 모든 사람들은 울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풀각시처럼 아름답던 소녀의 모습을 기억하고 계신 상태에서 아래 사진을 보면
왜 그런지 충분히 이해가 가시리라고 믿습니다.
(서울에 도착한 덕혜옹주의 모습)
부축을 받으며 창덕궁 낙선재로 들어가는 덕혜옹주.
이 때 순정효황후에게 문안 인사를 올린 덕혜옹주는
정신병으로 인해 모든 것을 놓아버린 상황에서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궁중 예법대로 절을 올려 주변을 놀라게 했다
마치 정상인이 행동하는 듯이 하였으니깐..
(덕혜옹주 회갑날)
가장 왼쪽은 황태자비 이방자 여사.
그녀 옆에 앉은, 약간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저 할머니가... 바로...
'덕수궁의 꽃'이라고 불리던...
덕혜옹주...
(왼쪽에서 2번째가 덕혜옹주)
귀국 후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입원과 왕진 치료를 번갈아 하며 지내던 덕혜옹주.
그녀는 낙선재에서 여생을 보내며
상궁들의 도움을 받아 나들이를 하거나, 상궁들과 화투를 치기도 했습니다.
노년의 덕혜옹주는 생전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이런 낙서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나는 이구 씨가 보고 싶다" (얼마 전에 훙서한 회은황태손 이구, 이은 황태자의 아들.)
"나는 비전하가 보고 싶어요" (여기서 비전하는 황태자비 이방자 여사를 가리킵니다)
"나는 낙선재 살고 싶어요"
덕혜옹주를 간병했던 이방자 여사는 병상의 그녀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빨리 깨어나세요. 이대로는 너무나도 일생이 슬퍼요..."
1989년 4월 21일, 덕혜옹주가 창덕궁 낙선재에서 77세를 일기로 타계합니다.
덕수궁의 꽃으로 불리던 황녀가 세상을 떠나고...
그녀는 홍유릉 뒷편에 모셔집니다.
그녀를 정말로 사랑하고,
또 그녀 스스로도 정말 사랑했던
아버지 고종황제와 오빠 부부 순종황제와 순정효황후의 곁으로...
"대한 덕혜옹주지묘(大韓 德惠翁主之墓)"
돈같은거 필요없으니까 진심으로 사과해라 제발
일본놈들 감히 우리나라 공주에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일본은 좋아할수없는나라임 진짜 기본개념이라고는 안박혀잇나 어떻게 다른나라 공주를 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