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특강 (2023.11.5.) 말씀/ 전도서 12: 13
청년들에게 고함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전 12:13 )
전도서는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기록한 책입니다(1:1). 솔로몬이 젊었을 때 아가서를 기록했고, 잠언을 장년기에 기록했다면, 전도서는 왕으로서 화려하게 삶을 산 후 황혼기에 기록한 책입니다. 이 전도서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헛되다'는 말로 40번이나 나옵니다. 전반부를 보면 마치 전도서는 히브리인의 허무사상(Nihilism)을 소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란 단어 역시 40번, '지혜'란 단어가 50번이나 나옵니다. 전도서는 헛되다는 허무주의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 분을 경외하며 살아야 헛되지 않고 의미 있는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서의 주고자 하는 교훈은 마지막 12장에 나옵니다. 일의 결국을 들었으니 이렇게 살라하는 것입니다.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1)." 저자는 특히 청년을 강조하며 청년의 때에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합니다. 전도서 저자가 청년의 때를 이렇게 강조하여 말하는 이유는 인생에 있어서 이 때만큼 중요한 시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사람들을 보면 청년의 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죠지 휫트필드는 21세에 전도를 시작하여 많은 생명의 열매를 맺었고, 찰스 스펄젼은 17세 때에 회심하여 27세 때에 말씀의 종으로 명성을 날렸고, 디엘 무디는 21세 때에 누구보다도 전도를 가장 많이 했고, 리빙스턴은 23세 때에 아프리카를 탐험했으며, 존 칼빈은 27세 때에 기독교강요를 저술하여 출판했고, 마르틴 루터는 27세 때에 종교개혁을 시작했고, 하니발 장군은 26세 때에 군사령관이 되었고, 알렉산더 대왕은 23세에 대왕이 되었고, 콜럼버스는 28세에 신대륙을 발견했고, 광개토대왕은 20세에 만주 벌판을 정복했습니다. 요나단 에드워드는 23세 때에 퓨리탄 제 2세대로 언덕 위의 도시를 세우기 위해 열심히 일했고, 예수님 역시 30대에 그리스도의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청년"은 어떤 존재입니까? 사람들은 청년의 날을 청춘(靑春)으로 비유합니다. 푸른 봄이란 뜻입니다. 푸른 봄 하면, 파릇파릇 돋는 새 싹, 그리고 청순함과 희망이 연상됩니다. 또 씨를 뿌리고 약동하는 새 생명이 생각납니다. 청년의 때는 이처럼 새로운 생명이 약동하는 봄에 비유됩니다. 청년은 꿈과 비전이 넘치는 존재입니다. 청년은 새 생명을 사모하고, 새로운 세계를 추구하고,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하는 사람들입니다. 또 마음밭도 옥토와 같아서 스폰지가 물을 쫙 빨아들이고, 과거의 좋지 못한 습관이나 인습으로 인해 굳어 있지 않습니다. 때가 묻어 있지 않고, 편견이나 아집 그리고 고집이 별로 없습니다. 세상의 탐욕이나 허영에 들떠있지 않습니다. 비교적 양심이 깨끗하고 순결하며 이상이 드높습니다. 불쌍한 사람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감성이 풍부하고 진리를 위해 몸을 던질 수 있는 야성도 있고, 개혁정신 또한 강합니다. 무엇이든지 잘 할 수 있는 때입니다.
청년의 때를 어떻게 보내는가에 따라서 인생의 행과 불행, 성공과 실패가 결정지어질 수 있습니다. 이런 청년의 때를 잘 보내면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길 수도 있고, 아니면 인생을 후회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청년의 때는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분수령입니다. 솔로몬이 훗날에 인생의 허무를 말하는 것은 청년의 때를 바로 보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왕상 11:3절을 보면 그는 젊었을 때 여색에 빠져 후비가 700명, 빈장이 300명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젊었을 때 어떻게 하면 술로 육신을 즐겁게 할까 또 어떻게 하면 천하 인생의 종신토록 쾌락을 누릴까 궁구하였고(전 2:3), 또 무엇이든지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막지 아니하였습니다(전 2:10). 그렇게 인생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헛되이 인생을 살다가 죽음에 임박한 노년기에 이르러서야 자신이 잘못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청년들에게 그렇게 살지 말라고 인생의 교훈을 하고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청년의 때를 즐기며 화려하게 살아도 하나님 없이 살면 나중에 남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청년의 날이 그렇게 긴 것이 아닙니다. 잠시 잠깐뿐 금방입니다. 3-8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 날에는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 것이며 힘 있는 자들이 구부러질 것이다(3): 나이 먹고 늙으면 손과 발이 떨리는 증세와 허리가 구부러지는 것을 말합니다. 맷돌질 하는 자들이 적다(3); 늙으면 치아가 빠져서 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창들로 내어다보는 자가 어두워질 것이다(3); 눈이 잘 보이지 않고 침침하다는 것입니다. 길거리 문들이 닫혀질 것이며(4); 귀도 잘 들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맷돌 소리가 적어질 것이며(4) ; 식욕도 떨어지고 음식 맛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새의 소리를 인하여 일어날 것이며(4); 늙으면 신경이 예민하여 조그마한 소리에도 잠을 못 이루게 된다는 것입니다. 음악하는 여자들이 다 쇠하여진다(4); 목청이 고장나서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또 고공 공포증이 생기고, 두려움이 많아지고 소심해 집니다. 곳곳에 살구나무가 꽃이 핍니다(5) ; 버짐이 피고 머리가 허옇게 백발이 된다는 것입니다. 메뚜기도 짐이 될 것이며(5); 작은 것도 들기에 벅차도록 기력이 쇠해진다는 거입니다. 늙으면 이렇게 식욕, 성욕과 같은 기본적인 원욕이 그치고, 바르게 살고 싶고, 좋은 일을 많이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습니다.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것도 젊을 때, 청춘의 때에 기회입니다. 나이가 들면 숨이 차고 팔다리 쑤시고 일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9:10에서는 일하는 것오 한 때니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하라고 합니다. 저도 대학 청년 시절부터 신앙생활을 시작하여 지금까지 이르렀습니다. 평생을 대학생들과 함께 생할하다보니 언제나 마음은 30대에 청춘입니다. 학교도 안 들어간 아이들 셋을 데리고 청계에 온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60대 후반 70가까이 이르렀습니다. 흰머리가 나고, 장기가 헐고, 이도 새로 해 넣은 것이 18개입니다. 전에 없던 잔잔한 병들도 생깁니다. 아직 책을 읽는데 지장이 없지만 눈도 침침하고 아주 작은 글씨는 잘 안 보입니다. 항아리가 여기저기 금이 가고 깨어지는 소리가 납니다. 사람들은 흔히 10년만 젊었으면 합니다. 여러분, 10년 더 주면 정말 잘 살 수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살지 않고 방심하면 10년 금방입니다.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8)." 또 다시 이렇게 고백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늙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5절을 보면 조문객들이 거리에 왕래한다고 하고, 6절은 ‘은줄이 풀리고 금그릇이 깨어지고 항아리가 샘 곁에서 깨어지고 바퀴가 우물 위에서 깨어진다고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결국 죽는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흙입니다.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런 일들이 곧 우리 앞에 들이닥치게 됩니다. 그러니 어떻게 살아야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전도자는 영혼이 주신 하나님게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고 합니다. 우리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 이십니다. 몸은 죽어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죽은 후 하나님께 돌아가 결산을 하게 됩니다. 그 때 후회하기 전에 다시 한번 하나님 앞에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청년의 날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가치 있고 보람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께 영광된 삶을 살 수 있는지?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그냥 흘려들을 말씀이 아닙니다. 9절부터 보면 전도자가 묵상하고 궁구하여 잠언을 지었다고 합니다. 또 힘써 아름다운 말을 구하였고 기록한 것은 정직하여 진리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찌르는 채찍 같고, 잘 박힌 못과 같은 스승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단지 솔로몬 노년이 되어 청년들에게 주는 피상적인 충고가 아니라 온갖 부귀영화를 다 누려보고 깨달은 바를 전하는 것이며, 무엇보다도 한 목자 되신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으로 쓴 말씀이기 때문입니다(9-11). 따라서 이 책의 내용들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서도 안되는, 명령이라기보다는 너무나 간절한 호소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기억하며 구체적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할까요? 대한민국에서 최고 갑부로 살다 죽은 고 삼성 이건희 회장이 젊은이들에게 남긴 편지글이 있습니다. 이 분도 아직 건강한 젊은이들에게 잠언같은 글을 남겼습니다. 한번 들어보세요. 나의 편지를 읽는 아직은 건강한 그대들에게!) 아프지 않아도 해마다 건강 검진을 받아보고, 목마르지 않아도 물을 많이 마시며, 괴로운 일 있어도 훌훌 털어버리는 법을 배우며, 양보하고 베푸는 삶도 나쁘지 않으니 그리한번 살아보세요! 돈과 권력이 있다 해도 교만하지 말고, 부유하진 못해도 사소한 것에 만족을 알며, 피로하지 않아도 휴식 할 줄 알며 아무리 바빠도 움직이고 또 운동하세요. 3천원 짜리 옷 가치는 영수증이 증명해주고, 3천만원 짜리 자가용은 수표가 증명해주고, 5억 짜리 집은 집문서가 증명해주는데, 사람의 가치는 무엇이 증명해주는지 알고 계시는지요 ? 바로, 건강한 몸이요! 건강에 들인 돈은 계산기로 두드리지 말고요. 건강할 때 있는 돈을 자산이라고 부르지만 아픈 뒤 그대가 쥐고 있는 돈은 그저 유산일 뿐입니다... 세상에서 당신을 위해 차를 몰아줄 기사는 얼마든지 있고, 세상에서 당신을 위해 돈을 벌어줄 사람도 역시 있을 것이요! 하지만 당신의 몸을 대신해 아파줄 사람은 결코 없을 테니, 물건을 잃어버리면 다시 찾거나 사면 되지만 영원히 되찾을 수 없는 것은 하나 뿐인 생명 이라오 ! 내가 여기까지 와보니 돈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요? 무한한 재물의 추구는 나를 그저 탐욕스런 늙은이로 만들어 버렸어요. 내가 죽으면 나의 호화로운 별장은 내가 아닌 누군가가 살게 되겠지. 내가 죽으면 나의 고급 차 열쇠는 누군가의 손에 넘어가게 되겠지요. 내가 한 때 당연한 것으로 알고 누렸던 많은 것들... 돈, 권력 , 직위 이제는 그저 쓰레기에 불과할 뿐... 그러니... 전반전을 살아가는 사람들 이여! 너무 촉망히 살지 들 말고. 후반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여!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으니 행복한 만년을 위해 지금부터라도 자신을 사랑해보세요. 전반전에서 빛나는 승리를 거두었던 나는 후반전은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패배로 마무리 짓지만 그래도 이 편지를 그대들에게 전 할 수 있음에 따뜻한 기쁨을 느낍니다. 바쁘게 세상을 살아가는 분들... 자신을 사랑하고 돌보며 살아가기를..힘없는 나는 이젠 마음으로 그대들의 행운을 빌어줄 뿐이요 ! 이 분도 인생을 살다 병들어 죽어가면서 깊은 깨달음 건강의 중요성 교훈을 남겼습니다. 건강 잃으면 아무것도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자신을 위한 삶을 살라. 그리고 죽고 나서 남이 가져가지 전에 베풀고 나누며 살아보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삶을 위한 교훈이지만 나름대로 유익한 교훈들입니다. 그렇다면 전도자가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주는 결론적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12, 13절에서 결론을 이렇게 말합니다. “내 아들아 또 경계를 받으라. 여러 책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케 하느니라.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결론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이땅의 삶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은 후에는 하나님께 나가서 그 분 앞에 결산을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분 앞에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경외한다는 것은 사랑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고 산다느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의 본분이라는 것입니다. 본분이란 히브리어로 ‘칼 하아담’(מראה־לכ)은 사람의 근본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의 모든 것’(the whole of man, M.A.Eaton) 즉 사람의 행할 의무 전체라는 뜻입니다. 단지 육신의 청년뿐 아니라 ‘모든 사람’(every man, W.J.Deane)에게 적용 되어져야하는 모든 사람의 의무라(the duty of all man. RSV)는 뜻입니다. 이는 인생의 모든 축복과 부요함 가운데서만 아니라 모든 어려움과 불균형 속에서도 우선적이고 불변할 의무가 있다면 그것은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말씀을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 분 영광을 위한 목적을 잃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로마서를 보면 모든 인간이 삶의 삐뚫어지고 죄악에 빠지는 것은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고 영광 돌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롬1:21).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값싼 은혜에만 치우쳐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하고 절름발이 삶을 살아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여전히 세상적이고 정욕적이고 탐심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바울도 디모데 후서에서 말세에 현상으로 사람들이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고,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조급하며 자고 하고,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고,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능력을 부인한다고 하였습니다(딤후 3:3).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눈치는 보면서도 하나님의 눈치는 보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면 그것 때문에 밤잠을 설치면서도 하나님의 주시는 말씀을 인해 밤 잠을 설치지 않습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립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경외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쉽게 말하면 내 살의 맨 앞자리에 하나님을 모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사랑해야 생각과 삶의 맨 앞 자리에 옵니다. 삶이란 어찌보면 사랑의 순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 하나님을 사랑합니까? 하나님을 맨 앞자리에 모시고, 가장 소중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그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매사에 하나님이 살아계셔 나를 지켜보신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하나님을 의식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모든 행동의 기준으로 삼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지 않고 계속 하나님을 뒤로 미루고 경외하지 않으면 청년의 날이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이 후딱 지나가버립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야할 또 한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4절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14). 우리는 어떻게 살든 그것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마침내는 그 자유는 그 행한 대로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 사실을 안다면 우리는 짧은 인생 함부로 살 수 없습니다(롬2:6,7). 이렇게 하나님이 행한 대로 보응하신다면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겠습니까? 아! 나는 벌써 50이 넘고 60이 넘었으니 어쩌면 좋은가? 염려하지 마십시오. 육신의 청년만이 청년의 때가 아닙니다. 아직 주께 돌아가기 전에 이 땅의 모든 삶이 청년의 때입니다. 백년을 살아보니 저자 기형석 교수는 인생의 가장 전성기를 60대로 보았습니다. 자신은 65-75세가 제일 좋았다고 하였습니다. 백년을 기준으로 보면 지금 50이 넘고 60이 한창 청년입니다. 아직 기회라는 것입니다. 오늘의 이 메시지를 들을 수 있다는 것도 기회요 은혜입니다. 지금부터 다시 시작입니다. 하나님을 첫 자리에 모시고 그 분을 사랑하고 경외하며 그 분 앞에 사는 것, 이것이 내가 사는 길이요, 내 가정이 사는 길이요 나라가 사는 길 임을 믿습니다. < 결 론 > 이제 우리는 인생의 모든 일의 결국을 알았습니다. 남은 것은 우리 자신의 결심입니다. 오늘 전도자의 메시지가 다시 한번 찌르는 채찌처럼, 잘 박힌 못과 같이 들려지기를 기도합니다. 마지막 남은 청년의 시간들을 열심히 살고 아브라함처럼 사도 바울처럼 후회 없는 인생을 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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