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여기 여자로 왔나? 그냥 가라"
2004년 2월 19일 전남 완도해양서 운동장에 1500명이 모였다.
교통사고로 숨진 고(故) 김형수 완도해경서장과 조경창 경위의 합동영결식을 위해서였다.
그 때 고 김 서장의 딸 유진(23)은 고 3이었다.
6년이 흐른 지금, 딸은 수도방위사령부 '독거미부대'인 35특공대대 여군 특임중대 하사가 돼 있다.
딸이 군문(軍門)에 들어선 것은 생전에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 때문이었다.
"너도 나라를 위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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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일 오후 레펠훈련을 마치고 독거미부대의 가장 후임인 본지 한경진 기자(맨 왼쪽)와 이은혜 하사(맨 오른쪽)가 로프를 짊어지고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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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하사가“우리는 밍크 목도리 대신 로프를 두른다”고 말하자, 중대장과 부대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 이준헌 객원기자 heon@chosun.com
2007년 8월 김유진은 한서대 3학년을 다니다 육군부사관학교에 입대했다.
아버지를 닮아 힘과 지구력이 좋은 그가 임관할 무렵, 수방사(首防司) 35특공대대 주임원사와 행정보급관이 찾아와 '독거미부대' 이야길 했다.
이때 김유진과 함께 뽑힌 동기는 셋이다.
속초 보습학원 강사였던 유경아(27), 태권도 2단·유도와 합기도 초단으로 무술에 능한 강희영(26), 군인 아버지 밑에서 군인들과 함께 자랐다는 이시영(22)이다.
국내 최정예 여군 특수중대는 두 곳이 있다.
수방사 35특공대대 특임중대와 특수전사령부 대(對) 테러부대 여군중대다.
김유진이 속한 수방사 '독거미부대' 특임중대는 육군 전체에서 여군 10여명만 선발해 집중 훈련하는 곳이다.
'독거미부대'는 서울에 테러가 일어나면 즉시 출동한다.
특임중대원 중 일부는 실력이 남자보다 낫다.
분기별 '방패 특급전투요원' 선발대회에서 김유진은 동장을, 유나영(27) 중사는 금장 2번에 은장·동장 하나씩을 획득했다.
'독거미부대' 특임중대는 현재 중대장 1명과 중사·하사 6명이 훈련 중이다.
기자는 이틀간 서울 남태령 수방사에서 함께 훈련했다.
12일 오전 7시 50분, 부대원들이 기초체력단련을 시작했다.
요즘 날씨에 특수부대 특유의 검은 작전복(흑복·黑服)을 입고 6~9㎞씩을 뛰고 나면 온몸이 땀으로 젖는다.
구호에 맞춰 걷다가 언덕길을 '물새가''멋진 사나이''독사가' 같은 군가를 부르며 달렸다.
남태령 수방사 부지에는 35특공대대 말고도 수백명의 군인이 있다.
유일한 '여군 중대'이다 보니 훈련장면을 힐끔거리는 병사들도 많다.
2㎞쯤 뛰자 기자의 옷은 땀에 푹 절었는데 독거미부대원들은 뽀송뽀송하고 멀쩡했다.
'독거미부대' 여군의 평균 신장은 165㎝, 몸무게는 55㎏이다.
차보람(26) 중대장은 "특수요원이라고 하면 덩치 크고 우락부락한 모습을 기대하다가 우리의 평범한 외모를 보고 놀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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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날 따라해봐,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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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거미부대원의 레펠 훈련 장면.
- 훈련 목표는 더 빠르고 매끄럽게 내려가는 것이다. 김유진 하사는“처음 연습할 땐 얼굴을 땅에 들이받진 않을까 두려웠다”고 했다. / 이준헌 객원기자
오전 10시 30분 체력단련장으로 옮겼다.
가장 체력이 좋다는 이시영 하사가 날렵하게 수평봉에 매달려 전진했다.
이 하사의 양손바닥은 뜨겁게 달궈진 수평봉 때문에 화상을 입어 홀랑 벗겨졌다.
그는 금세 치료를 받고 돌아왔다.
부대원들은 7m 정도 되는 외줄도 가뿐하게 올랐다.
기자는 시계추처럼 매달려 용을 쓰다 내려왔다.
오후 훈련은 레펠 훈련을 시행했다.
이들은 일주일 단위로 레펠·사격·위장술·미행감시·중요지역연구 등의 과목을 훈련한다.
여군 특수요원들은 비상시 민간인으로 위장해 첩보를 입수하기 때문에 '암호'나 '대화·협상술'도 배운다.
어떤 모습의 용의자가 무슨 무기를 가졌는지 일상 대화 속 암호로 녹여내는 것이다.
이은혜(23) 하사가 말했다.
"간호사·배달원·30대 여성 등으로 위장하기 때문에 화장품에도 관심이 많다. 그런데 치마를 입어도 어딘가 모르게 티가 난다.
'아미라인(army line)' 때문인 것 같다."
'아미라인'은 군복 때문에 목과 얼굴, 팔꿈치에 생긴 선을 말한다.
게다가 훈련으로 다져진 근육도 숨기기 힘들다.
기자가 11m 구조물에서 뛰어내리지 못해 부들부들 떨자 유나영 중사가 "지시에만 따르면 안전하다"고 거듭 말했다.
하지만 한동안 거미줄에 걸린 풍뎅이 같은 신세로 거꾸로 매달려 있어야 했다. 김유진 하사가 말했다.
"처음엔 나도 무서워 선임이 뛰라고 할 때 '지금 말입니까?' '저 말씀이십니까'하며 망설였다.
그 때 선임이 '여기 여자로 왔냐? 그냥 나가라'고 했다.
그 소리에 오기가 생겨 다음 차례가 왔을 때 바로 뛰었다."
이시영 하사는 "우린 남자보다 다리도, 몸집도 작아 장애물을 극복할 때에도 배 이상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각자 임무가 따로 있어 남녀의 전투력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지만 훈련할 땐 같은 조건을 이겨내려 한다."
이렇다 보니 극심한 체력 소모로 생리주기가 길어지거나 한 달에 여러 번 찾아오는 일도 있다.
차 중대장은 "7~8년 정도 독거미부대 생활을 하면 무릎이나 허리가 안 좋아져 한계가 찾아온다"고 했다.
독거미부대원들은 30세를 전후로 보직을 옮기거나 일부는 전역한다.
여군 특수요원은 가장 아름다울 20대 때에만 할 수 있는 일인 셈이다.
1991년 중대가 생긴 이후 지금까지 총 73명의 대원이 거쳐 갔다.
이들은 '국가에서 선택받은 사람'이란 자부심으로 가득하다.
유경아 하사가 말했다.
"시내 근처를 완전 군장하고 걷는데 멋지게 차려입은 또래 남녀가 지나갔다.
'내가 지켜주고 있어 저들이 즐겁게 보내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이튿날 오전 부대원들은 '전투준비태세' 상황 훈련을 치른 뒤 오후에 군장을 메고 영내를 두 시간 동안 행군했다.
산기슭을 기어가듯 쫓아 올라가다 뒤를 돌자 서울 도심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부대원들은 "경치 좋다. 그 넓은 서울 땅 중에 왜 우리는 지금 이 계단을 오르고 있을까?"라며 웃었다.
오후 5시쯤 산에서 내려온 부대원들은 땀 맺힌 얼굴로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쥐어짜며 노래했다.
"멋있게 살다가 깡다구로 죽으리라~ 으아아아~!" 아마 부근에 독거미가 있었다면 놀라 달아났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권혁순(55) 수방사령관은 "독거미부대가 서울
G20 정상회의에서도 큰 활약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첫댓글 보람을 가지고 열심히 훈련하시는 모습들이 눈에 선합니다.. 감사합니다. _()()_
묵묵히 어딘가에서 땀흘리는 진정한 보현행읋 하시는 분들께 감사합니다. 나무 마하반야바라밀...()()()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
나무마하반야바라밀.....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