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少年時節과 소 김 환태 (1909-1944 무주 문학평론가)
내 마음의 이니스프리에는 소가 산다. 이리하여 네거리 아스팔트 위에서나 철근 빌딩 밑에서 바위 그림자와 같은 이니스프리의 향수에 엄습 될 때면 나는 내마음의 심지에 못 가장자리를 핥는 잔물결 소리외에, 또 골짝을 울리는 해설픈 소울음을 듣는다.
소가 사는 내 이니스프리의 경개는 이렇다.
사방이 산으로 빽 둘러쌌다. 시내가 아침에 해도 겨우 기어오르는 병풍같은 덕유산 준령에서 흘러나와 동리앞 남산 기슭을 씻고, 새벽달이 쉬어 넘는 강선대 밑에 휘돌아 나간다. 봄에는 남산에 진달래가 곱고, 여름에는 시냇가 버드나무 숲이 깊고, 가을이면 멀리 적상산에 새빨간 불꽃이 일고, 겨울이면 먼 산새가 동리로 눈보라를 피해 찾아온다.
나는 그 속에 한 소년이었다. 사발중우를 입고, 사철 맨발을 벗고 달음질로만 다녔기 때문에 발가락에 피가 마르는 때가 없었으나 아픈 줄을 몰랐다. 여울에서 징게미 뜨기와 덤불에서 멧새 잡기를 좋아하여 낮에는 늘 산과 내에서만 살았고, 밤에는 씨름판에 가 날을 새웠다.
어떤 날 나는 처음으로 풀을 뜯기러 소를 몰고 들로 나갔다. 이랴,어저저저 하며 고삐만 채면 그 큰 몸뚱이를 한 짐승이 내 마음대로 억어 (抑御)되는 것이 나의 자만심을 간지럽혀 주었다. 소가 풀을 으득으득 뜯을 때 그 풀 향기가 몹시 좋았다. 산 그림자 속에 풍경소리가 맑았다. 나는 해가 지는 줄을 몰랐다. 이웃집 영감님이 재촉하지 않았더라면 밤이 깊은 줄도 몰랐을 것이다. 집에 돌아왔을 때는 아주 날이 깜깜했다.
모두들 마루에 불을 달아놓고 저녁도 먹지 못하고 걱정 속에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왜 이렇게 늦게 오느냐?' 고 어머님이 꾸중을 하셨다. 그러나 나는 입술을 무신 어머님의 이빨새로 웃음이 터져나오는 것을 보았다. 어머님은 얼굴에 더 노여움을 가장하려고 하시나 밑에서 피어오르는 기쁨을 억제할 길이 없으신 모양이었다. 끝내 웃으시고야 말았다. 그리고 이렇게 칭찬까지 하셨다. '우리 환태가 인젠 다 컸구나.' 머슴은 소고삐를 받아 말뚝에 매어놓고는 일어서서 소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철석 때리며,네기랄 것, '이놈의소, 오늘 포식 했구나. 어떻게 처먹었던지 배지가 장구통 같다.' 이렇게 함부로 욕설을 했다.
그러나 소는 머슴의 이 욕이 만족의 표시인 것을 아는지, 목을 말뚝에 부빌 뿐이었다. 머슴은 다시 기쁨과 부끄럼에 얼굴을 붉히고 섰는 나를 돌아보며 농으로 칭찬을 해주었다. ‘우리 작은 머슴 오늘부터 밥을 두 그릇씩 주시갸’ 이튿날 나는 학교에서 하학을 나오자마자 할머님이, ‘어린 것이 어느새 어떻게 소를 뜯기러 다니느냐.’ 고 말리시는 것도, 동무들이 산으로 새알을 내리러 가자는 것도, 봇뜰로 고기를 훑으러 가자는 것도 다 물리치고 또 풀을 뜯기러 나갔다.
강변에서 혼자 우두커니 먼 산만 바라보고 서서 염불만(소가 반추하는 것을 보고 어머님에게 소는 왜 늘 입을 저렇게 놀리고 있느냐고 내가 물을 때, 그것은 소가 죽어서 극락으로 가려고 염불을 하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었다)하고 있던 소는 제 이 작은 주인을 보자 뒷발을 두어 번 하늘로 쳐들고 뛰었다. 이래서 나는 소와 아주 친한 동무가 되었다. 가을이 되자 나는 머슴을 따라다니며 겨울 먹일 소 풀을 뜯어 말렸다. 겨울에는 여물을 썰고 소죽을 쑤었다.
그랬더니 이듬해 첫봄에 소가 새끼를 낳았다. 나는 동생을 보던 날처럼 기뻐 밤새도록 자지 못했다. 이 시절이 나의 가장 행복하던 시절, 내 마음의 고향이다. 돌아가신 어머님 생각이 날 때면 그 시절을 생각한다. 그리고 소를 생각한다. 고향이 그리울 때면 그 시절이 그립다. 그리고 소가 그립다. (1937.1.1 조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