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달마실님
주 안에서
문안을 전합니다.
님은
이번에 예수께 향유를 부은 여인에 대해 질문을 해주셨습니다.
님이 질문한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안녕하세요 목사님 다름이 아니라 요한복음 11장에 마리아와 향유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마가복음14장에도 같은 얘기가 나오고요. 그런데 누가복음7장36절이하에 보면 죄인인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사건이 나옵니다. 누구는 세복음서에 나오는 마리아가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의 동생이라고 하고 어떤이는 한가지 동일한 사건이 아닌 두가지 다른 마리아의 향유라고 하던데 어떤게 맞는건지요? 저는 한명의 동일한 마리아같아 보이는데 만약 한사건에 한명의 인물이라면 찬송가에 나오는 가사는 오역된것으로 봐도 무방한지요?” 라고 하였습니다.
님은 예수께 향유를 부은 여인으로서 그 여인의 이름을 ‘마리아’라고 하였으며, 향유를 부은 사건의 기록을 세 곳인 요한복음 11장과 마가복음 14장과 누가복음 7장 36절 이하(7:36-50)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님이 질문을 하게 된 것은,
첫째, 예수께 향유를 부은 이 기록들에서 보는 사건들에 대한 이해가 다르기 때문이었습니다. (1) 누구는 이 세 곳의 사건에서의 여인이 마리아인데, 이 마리아는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의 동생으로서 동일한 한 가지 사건이라고 보고 있고, (2) 어떤 이는 동일한 한 가지 사건이 아니라 각각 다른 마리아가 예수께 향유를 부은 서로 다른 두 가지 사건이라고 보고 있는데, (3) 님의 경우는 한 명의 동일한 마리아가 예수께 향유를 부은 한 가지 사건으로 보면서, 이에 대해 정확히 제대로 알고자 하여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둘째, 그러면서 님은 “저는 한명의 동일한 마리아 같아 보이는데 만약 한 사건에 한명의 인물이라면 찬송가에 나오는 가사는 오역된 것으로 봐도 무방한지요?” 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다음과 같이 답변을 드립니다.
먼저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님은 여인이 예수께 향유를 부은 사건이 기록된 곳을 요한복음 11장(님이 요한복음 11장이라고 쓴 것은 요한복음 12장의 오기(誤記)인듯 합니다.), 마가복음 14장, 누가복음 7장 36-50절 세 곳으로 보았습니다만, 사실은 네 곳입니다. 여인이 예수께 향유를 붓는 사건은 사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26장 6-13절, 마가복음 14장 3-9절, 누가복음 7장 36-50절, 요한복음 12장 1-8절입니다.
한편, 이 (세 곳이 아닌)네 곳에서의 예수께 향유를 부은 여인을 님은 한 사건의 동일한 여자라고 보고 있으며, 어떤 이도 이 네 곳의 사건에서의 여인이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의 누이 동생인 마리아로서 동일한 한 가지 사건의 여인인 마리아라고 보고 있고, 어떤 이는 동일한 한 가지 사건이 아니라 각각 다른 마리아가 예수께 향유를 부은 서로 다른 두 가지 사건이라고 보고 있습니다만, 이 모두가 아닙니다. 즉,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요. 마태복음 26장 6-13절, 마가복음 14장 3-9절, 누가복음 7장 36-50절, 요한복음 12장 1-8절, 이 네 곳의 각각의 기록은 같은 동일한 사건이 아니라 각각의 서로 다른 상황에서 있게 된 별도의 사건들이기 때문입니다.
시기적으로, 가장 먼저 있었던 것은 누가복음 7장 36-50절입니다. 여기서의 예수께 기름 부은 사건은 예수께서 갈릴리 지역에서 사역하실 때 있었던 갈릴리 지역에 있는 한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서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 시몬의 초대를 받고 그의 집에 가 식사를 하고 있는데 한 여인이 예수께 나아와 옥합에 든 향유를 붓는 일이 있었습니다. 여기서의 특징은 한 여인의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채 다만 ‘죄인인 한 여자’(개역한글), ‘죄를 지은 한 여자’ 라고만 밝히고 있는 것이며, 이 죄인인 한 여인이 예수께 나아와 예수님의 발 뒤쪽에 무릎을 끓고 앉아 울면서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닦으며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그 발에 부은 것이었으며, 예수님은 그 여인의 죄를 사하시는 것을 통해서 예수께서 오신 목적을 드러내주시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다음 두 번째는 요한복음 12장 1-8절입니다. 여기서는 나사로의 누이인 마리아가 매우 값진 순전한 나드 향유 한 근을 가지고 나아와서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닦아 드리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사건은 유월절 절기가 시작되기 엿새 전으로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 전에 있었습니다. 이때 예수께서는 자신이 살리신 나사로가 사는 베다니로 가셨는데 그곳에서는 예수님을 대접하기 위해 잔치가 벌여졌습니다. 잔치에 참여한 예수님은 자신을 영접한 나사로와 함께 식탁에 앉아 있었는데 마르다가 예수님을 시중들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리아가 예수께 나아와 향유를 붓는 일이 있었습니다. 여기서도 마리아의 향유 부음은 예수님의 발에 붓는 것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마리아의 향유 부음이 자신의 장례를 미리 준비하는 것으로 있는 일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가 마태복음 26장 6-13절, 마가복음 14장 3-9절의 한 여인의 향유 부음입니다. 이 두 복음서에서의 한 여인이 옥합에 든 값비싼 순전한 나드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음은 같은 동일한 사건입니다. 여기에서 있은 한 여인의 향유 부음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에 있었던 것으로 유월절 절기의 이틀 전에 있었으며, 문둥이 시몬의 집에 가 계셨으며 식사하실 때 있었습니다. 앞서의 향유 부음이 예수님의 발에 붓는 것에 있었다면, 이번에는 예수님의 머리에 붓는 것으로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여기에서의 여인의 향유 부음의 성격과 그 의미를 예수님의 장례를 위하여 미리 예수님의 몸에 향유를 부어 준 것으로 예수님의 장례를 위하여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힘써 다한 것으로, 온 세상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인이 한 일도 전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상에서 보시는 대로 마태복음 26장 6-13절과 마가복음 14장 3-9절, 그리고 누가복음 7장 36-50절, 그리고 요한복음 12장 1-8절은 한 여인이 예수께 향유를 부은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만, 그것이 행해진 시기와 예수께 향유를 부은 자인 여인은 각각 별개의 다른 사건이며, 이것을 통해서 예수께서 알게 하며 전해주려는 의미 또한 각각 다릅니다.
이제 두 번째 질문에 대하여 답변을 드립니다. 통일 찬송가 346장인 ‘값비싼 향유를 주께 드린’에서의 가사인 “값비싼 향유를 주께 드린 막달라 마리아 본 받아서…”는 누가복음 7장 36-50절에 나오는 한 죄인인 한 여자가 예수께 나아와 예수님의 뒤편에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은 것을 찬송의 가사로 하는 근거 구절로 삼으면서 그 여자의 이름을 ‘막달라 마리아’(영어 찬송가에는 ‘Magdalene')라고 하였습니다. 통일 찬송가 346장에서의 가사에서 ’값비싼 향유를 예수께 부은 마리아‘를 ’막달라 마리아‘라고 보고 있는 것은 명백한 오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요. 막달라 마리아는 누가복음 7장 36-50절에서의 죄인인 한 여자가 예수께 향유를 부은 사건 이후에 나오는 여인인데, 누가복음 8장 2절에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 라고 소개시켜 주고 있어서, 앞서인 누가복음 7장 37절에서 ’죄인인 한 여자‘라고 밝혀주시고 있는 여인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두 여자 모두 다 예수께로부터 크나큰 은혜를 입은 여자입니다만, 그 은혜를 입음에 있은 여자에 대한 이야기는 다릅니다. 따라서 누가복음 8장 2절에서의 막달라 마리아를 누가복음 7장 36-50절에서의 향유를 예수께 부은 ’죄인인 한 여자‘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통일 찬송가 336장에서의 가사인 ’값비싼 향유를 예수께 부은 마리아‘를 예수께 향유를 부은 사건을 기록해 주시고 있는 다른 곳에서의 여인과 동일시 할 수가 결코 없습니다.
또한 이 막달라 마리아는 복음서에서 향유를 부은 여자로 등장하는 것에서 이름이 밝혀지고 있는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의 누이 동생인 마리아와도 다른 마리아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막달라 출신의 마리아이며, 나사로의 누이 동생인 마리아는 베다니라고 하는 동네에 사는 마리아입니다.
님이여.
이상으로 답글을 마칩니다.
님께서 질문을 올리신 날자를 보니 벌써 여러 날 전인데, 오늘에서야, 그리고 이제서야 답글을 써서 올리게 되었습니다. 질문을 올리신 후 이제나 저제나 하며 지금은 볼 수 있을까 하고 많이 기다리셨을 님을 생각하면 빨리 답글을 드리지 못하였음에 미안한 마음입니다. 그래도 지금에서라도 답글을 올려드릴 수 있게 됨에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이 답글이 님이 궁금해 하는 것을 해소시켜 드리며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어느 덧
토요일 밤도 깊어 갑니다.
오늘
주일을 준비함으로 계시면서
내일
주 안에서 복음의 진리와 함께 사시는 날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 안에서
평안을 빕니다.
첫댓글 답변 감사합니다. 목사님 말씀대로 이제나 저제나 답변을 기다렸네요...ㅎㅎ 제가 요한복음 11장이라고 쓴것은 11장1절~2절에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씻기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비러라'는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목사님은 동일한 한명의 인물이라고 하시던데 헷갈리는군요...뭐 그게 중요한것은 아니겠지요. 본질이 중요한 것이니까. 오늘도 비가 많이 내리네요. 건강 조심하시고 일주일간도 평안하시길 소원합니다.
안녕하세요 달마실님. 네, 요한복음 11장 1절에서의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씻기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비러라"는 요한복음 12장에서 있게 되는 예수께 향유를 부은 여인인 마리아에 대한 소개 입니다. 바로 그 마리아가 그의 언니 마르다와 함께 베다니에 살고 있었으며, 나사로는 그들의 오라비인데 그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것을 말해 주시고 있는 것이죠. 주 안에서 평안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