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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반야바라밀 경- 구마라습 번역
금강반야바라밀 이라 는 제목을 달고 최초로 경전을 만든 분 은, 무착 이라는
보살 과 세친 이라는 보살입니다.
인도 에서 서기 3백년에서 4 백년 사이 인 데, 당시 굽타왕조 시대 이니까
우리나라로 치면 신라 고구려 백제 초기 시대 이고
중국은 당나라 시대로 넘어가기전 5 호 16 국의 춘추전국시대 정도로 추정 되는데
역사적으로 기록 되어 있으니 시대적 배경을 잘 이해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굽타 왕 은 인도 북부 지역 전부를 정복하고, 남방인도 3 분지 1 이상을 정복한
큰 왕조 입니다.
이 굽타 왕조는 인도북부 의 강성세력인 석가족 나라 들을 이때 정복 하였는 바.
힌두교를 최초로 국교로 삼았으며, 여러 종교를 전부 다 포용한 다신교 사상을
제도 화 하여 인도 소국가 들을 통합하고 융합한 현명한 군주 였는 데.
부라만, 비쉬니천, 시바 의 삼신의 종교사상이 흰두 사상입니다.
부라만 신 이라는 것은 불교용어적으로 말 하면 비로자나 불 정도 됩니다.
창조의 신 이고
비쉬니천 이라는 신 은 창조 되었으니 유지가 되어야 겠지요 불교적 용어로 본다면
노사나 불 정도 되며.
시바 라는 것은 창조 되고 유지 된다면 파괴가 필요 하겠지요, 이를 시바 신 이라
합니다. 시바는 불의 신 입니다, 불이 계속 타 올라야 하므로 시바신은 늘 춤을 춥니다. 불 꺼지면 파괴 입니다. 불은 화신 사상이지요.
열이 없으면 생명이 유형체로 서 움직이질 못 합니다.
부처께서 6 도 의 이 지상세계는 불의 지옥이라 한 것이 이것입니다,
불의 세계에 화신 한 것이 부처님이십니다.
아트만으로 자기 자아가 고정 되어있으니 변화는 해야 하니 윤회사상으로만
고정 되고, 시바는 늘 바람을 일으키는 춤을 쳐야 만이 불길이 일어납니다,
부처님은 이 시바 를 대신하여 불길을잡는 화신인 것에 비하여
이를 부정하고
고정된 나는 없다라 는 아트만을 부정하신 세계최초의 고정된 자아를 깨신 분입니다.
창조 유지 파괴 의 반복성을 내세운 철학적 으로 발달한 이 사상은 온통 윤회 하게 되는데, 이때 카스트 제도가 생겨 납니다. 아트만의 고정성의 페단 입니다.
이것이 불교 사상과 극단적으로 다른 것이기도 하지요.
부처님의 평등사상은 여기서 개막합니다.
링컨의 노혜해방이 문제가 아닙니다.
붓다의 위대성은 이것이지요.
불교의 참 진리는 윤회가 없읍니다. 참진리를 못 보면 윤회 하고, 참진리를 보면
윤회는 없고 해탈 한다는 사실과 흰두니즘의 고정성의 아트만 과는 다른 것입니다.
이러한 사물의 이치가 바로서고 한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한 반증을 내세운 분입니다.
이를 볼때 도 를 튀군다.입니다.
이것이 금강경 입니다.
창조론 유지론 파괴론 이 하나를 일괄성있게 하나로 묶어 이를 증 하신 분입니다.
이 정도는 알고 어디에 가더라도 인도 의 힌두니즘을 설명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당시에 불교는 점점 쇄락 해져 약 8 위 정도의 종교 순위가 되는 시대였는 데.
이때 북인도 에서 불교의 증흥이 일어났는 바, 무착과 세진 이라는 형제가 금강경이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활자화 하여 산스크리트 어로 최초로 만든 것이 금강경 입니다.
이때 미륵 과 합께 무착 세친 이 불교의 대표적 사상이 됩니다.
미륵사상은 메시아 라는 의미이며 실존 인물은 아니지만
무착 과 세진은 실존 인물 입니다.
유명한 이야기는 무착이 길을 가는데 개가 한마리 상처가 나서 다 죽게 되었는데
상처부위에서 아주 작은 벌레들이 모여 막 뜯어먹고 있었는 데, 이를 구하려 고
벌레를 쫓으려 하다가 가만히 생각하니까 벌레 역시 귀중한 생명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던 중, 이때 지나가던 사람에게 자기 옷을 주고 칼 한 자루와 바꾸어
자기 허벅지 살을 베어 벌레를 유인하여 자기 살을 먹게 유인 한 다음 개를 구합니다.
이와 동시에 그토록 친견을 원했던 미륵보살이 나타나서 친견 하게 되는 데.
바로 문수보살의 환생이라 하고
무착보살이 관세음보살님의 명호를 회복 시켜준 최최의 인물입니다.
자장율사 께서 웬 거지가 죽은개를 가지고 찾아온 것이 이를 말 합니다.
미륵보살의 안내로 금강삼매지경에 들어 석존 부처님이 계신 도리천으로 가서
부처님과 삼매지경에서 대화를 한 분 인데.
이에 금강경을 지은 것이고, 당시 세친은 소승불교에 집착하여 이를 적극 만류한
무착 형의 진언을 받들어 대승 사상으로 돌아선 후 유식학 법화경 등을 저술 합니다.
당 시대 에는 굽타왕조의 학술과 철학의 개진으로 인하여 세계최초로 0 을 발명 하였고 나중에 아라비아에 전파 한 것이나, 원주율 3,1416 파이를 발견 하고
지구의 지동설 등의 쾌거를 이룬 것이 동 시대 입니다.
그러므로 석존은 싯달타 태자 때 이미 천문학 비의학, 수리학 역학 ,섭사 등의 경지를 이미 달통한 분 입니다.
해당 시대 의 인도승 인 구찬 의 아들 구마라습이 중국 의 돈황 근처에 머물렀는 데
5 호 16 국의 전쟁통에 이리 끌려다니고 저리 끌려 다니다가 당 나라 가 건국 된
다음 장안에 당나라 왕이 모셔서 각종 불경 번역을 한 것이 지금 한자로 기록된 금강경 입니다.
그러므로 금강경은 무착이 금강삼매 인 중에 도리천에 가서 부처님을 만나 대화 하면서 편찬 한 것이고 이러한 산스크리트어 를 한자로 번역한 것이 당시 구찬 의 아들
구마라슴이 번역 한 것입니다.
그럼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왜 중요 하냐 하며는,
금강경에는 무 로 번역 하지만 마하반야바라밀경은 공 으로 번역 한 것입니다.
구마라습은 무 나 공 이나 같은 것으로 본 것이고 굽타 왕조의 0 이라는 수를 밟명한 것을 최초로 중국에 전한 자 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특허는 구마라습입니다.
결국 금강경은 무 와 공 을 다루는 최초의 소소영영한 참진리를 말씀 하시는 것인데
우리나라의 원효 스님이 금강삼매에 들어 금강삼매를 저술 했읍니다.
기가 맥힌 일입니다.
우리나라는 민속사상은 어떠 합니까? 이미 고조선 시대 이전 부터 삼신시대를 열었지요.
삼신할머니 사상 아시지요? 그리고 무당시대를 이미 열어 無 를 적용한
소소영영한 민족이여서 이러한 체계를 여과없이 수용이 가능 했 던 것입니다.
원효대사는 십지보살품에서 8 지 경지에 든 분 입니다. 멸진정이지요.
동남아시아에서는 없읍니다.
무착 이래 원효가 우뚝 선 것이고 해동불교의 창시자 이지요.
그러면 금강이 무엇인가를 해의 할때 바로 공 이고 무 다 해야 하는 것이지요.
우주라는 포대기는 전부 둥급니다. 0 입니다, 공이라는 말이지요.
금강의 순수성 불변성 효용성 을 전장에서 말 했읍니다.
이 空 을 우리가 공간이라 합시다.
모든 생명은 전부 이 0 의 모습을 가진 공간으로 소통합니다.
입구멍 항문, 긴구멍의 터널같은 내장 등, 땅구멍, 귓구멍 코구멍
전부 구멍에 의한 사연으로 살아 움직이며 유지 하려고 하지요.
이 공간을 드나드는모든 것들은 그냥 통과 하지 않읍니다
바람을 내장하고 벨벨 틀면서 소화 해 냅니다.
뱅글 뱅글 돈다, 꼬이면 힘이 붙고 압력이 붙읍니다.
압박과 분축역이 솟읍니다. 이것이 의지가 되는 현상.
이를 상기 하시고 본연의 자리를 궁구 하시면 좋읍니다.
이러한 압력의 부담을 가장 많이 느끼는 것이 귓구멍입니다.
소리로 전달하는 어떤 무언의 압력 정서 등이 반응하게 하는 요인으로서
제일 갑니다.
그러므로 마하반야 바라밀은 관자재 보살 즉 관세음 보살님께서 소리를 보는 분인데
이근으로 들어서 도 를 깨쳐 관세음보살이라, 마하반야바라밀에 등장 하시는 것이지요.
좋은말 좋은생각을 내는 글, 이러한 것은 자꾸보고 들어야 성문 이 됩니다.
들어서 깨친다,
그러므로 금강경은 뜻이고 뭐고간에 자꾸 소리내어 암송 해야 하고
선지식 들의 법문을 자꾸 들어야 합니다.
이근이 열려야 세상소식을 단박에 볼 수 있다라고 정의 할 수 있읍니다.
멀쩡한 사람을 이름지을때 개똥이로 지어 놓으면
벨 사람이 다 개똥이라고 불러서 귀에 개똥이만 쌓이니
도 를 튀구지 못합니다.
이름이 그렇게 중요 한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은 이미 개똥이는 아닌 것입니다.
이러한 공간의 모든 형태는 주어져 있지만
공간은 물이 젖지 않읍니다,
먹은 것을 배설 하는 대장 자체는 절대로 배설물질이 묻지 않읍니다.
묻으면 병이 나지요. 이와 같읍니다.
소리를 듣는 귀 구멍은 소리가 묻지 않음과 같읍니다.
그렇지요 이처럼 아무리 비가 많이 와도 공간을 적실 수가 없고,
바람이 공간을 절대로 못 흔듭니다. 바람 아무리 불어도 공간은 그냥 그대로 변하지 않고 있읍니다.
땅 이 절대로 공간을 덮지 못 합니다.
그리고 불 은 다른 것은 다 태웁니다. 핵폭탄이 터져 보세요 온 누리를 다 바람을 몰고 다 잿더미로 태워버리지 않읍니까?
하지만 공간은 태 울 수가 없읍니다.
이를 텅 비어있다라고 합니다.
지 수 화 풍 4 가지의 세계 와 우주를 창조시키는 네가지 요소도 공간은 절대
어떻게 할 수 가 없읍니다.
하지만 지 수 화 풍 은 공간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합니다.
이를 공 이라 하고 무라고 하며 금강이라 이름하는 것입니다. 이를 소소영영 하다고
한다, 성령이라고도 하고. 무진한 우주의 모든 요소를 다 수용하고 포용하는 물 자체는 실로 공 인 것입니다.
굽타 왕조시대때 0 의 발명으로 수학이나 천문학 비의학 철학, 물리가 가능 해 진 것입니다. 요즈음 수학도 어떠한 균형점인 0 의 기준 없이는 수학이 있을 수 없읍니다.
오로지 0 입니다.
1,2,3,4,5,6,7,8...... 수많은 숫자는 오로지 배설물입니다.
이렇게 저렇게 연상 적산 무리수 소수점 아무리 해 보아도 다 변화하고 작난 하는 놀이 일뿐 0 을 갖다대면 0 이 될 뿐인 이 절대치.
이 절대치가 우리몸에 다 포함되어 있으므로 죽으면 0 이 되는 것인데
이 0 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늘 0 이여야 만 하는 필요충분의 명제를 인정 할 수 밖에없는 것이 산수 공식입니다.
그러므로 이 0 의 본질을 알려며는 무엇을 추구하고 이루고자 하는 지수화풍으로 형성된 어떠한 터럭이나 생명, 유형질 등은 절대 0 의 자리를 영향을 줄 수 가 없는 것입니다. 0 에다 1을 가만히 갖다 대어도 오로지 1 일 뿐으로 착각 합니다.
그러므로 숫자의 형성은 01 이지 1 이라 해서는 아니됩니다. 단지 0 은 보이지가
않을 뿐이지만 1 에 늘 붙어 다닙니다.
도 를 이루고자 금강경을 대하면 절대 도 를 이루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추구하고자 얻고자 하는 의지를 내거나 생각을 내어서는 영향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도 를 깨치면 나중에 금강경도 놓아야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생각이나 사상이나 일련의 모든 삶의 형태는 무엇인가 구해야 하고 취해야 하며 항시 서로 의존관계 연대관계를 구성 하여 외부를 경계하고 받아들이면서 추구하는 희망감을 가지고 살 수 밖에는 없읍니다.
1,2,3,4,5.... 의 숫자로서만 인식하고 0 을 잃어버리고 무시 하게 되는 현상
이를 중생이라 합니다.
이 대자연수 1,2,3,4,5,6,7,8,9 종류가 생명이 되어 돌아다닙니다.
이를 9 류중생이라.
태로 나고 알로 나오고 습으로나오고 형상이있꼬 형상이 없고 화 해서 나오고
생각이 있고 생각이 없고 , 이런 종ㄹ 9 개가 태어난다 라고 합니다.
금강경의 골수 입니다.
이러한 생명은 촉감으로 움직이고 광합성으로 성장하고 신경으로 전도 되어 교류하고
부딪히고 서로 간섭을 주고 받는 통칭의 삶의 행위를 중생계다 합니다.
중생계 이지만 오로지 각기 미미한입자 하나도 다 0 이 포함한다.
이 0 은 상존하고 항상하며 늘 유지 하므로 불변 합니다.
이것을 말할때 방편으로 금강 이라 합니다. 이 금강을 볼때 반야 가 생기고 이 자리를 볼때 금강반야바라밀이 됩니다.
이러한 0 의 부재 인식으로는 금강경을 볼 수 없다라고 하는 것과 같읍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금강삼매에 들어서 본 이 무 의 자리를 어떻게 하면
중생들이 잘 이해를 할 것인가를 많이 고민 하셨읍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대웅전에 가 보아도 부처님은 늘 꼴밤 때리려는 모습으로
동그란 모습을 손으로 그리며 앉아 계십니다.
空 입니다. 앞으로 시대가 수천억겁년을 가도 공간은 변 하지 않읍니다.
시간의 장애를 받지 않읍니다. 우리는 이 공간을 들이마시고 내 쉬고 삽니다.
이것이 생명의 기본 이지요.
그러므로 항상 0 을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살고 있는 데 생명 마다 0 을 가지지
못하면 살지를 못 합니다.
석존의 호흡법은 여기에서 수행의 첫 페이지를 열어 세상을 관조 한 것입니다.
그런데 원래 본체의 0 은 공기가 없어도 삽니다.
그러므로 호흡을 못함을 죽음이라고 하는 데 0 의 입장으로서는
말이 안되는 경지 이지요. 죽음이라는 것은 1,2,3,4,5 등의 숫자가 변한것 뿐이지
없어질 수 없읍니다.
이에 석존 께서는 이 금강경을 설 하실때 세가지 목적이 있었읍니다.
금강경의 목적은
0 에 근접하는 불변성, 순수성, 효용성, 등을 일으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는
착한 생각을 내게 하는 선남자 선여인이 되게 제도해야 힌다고 생각 하셨읍니다.
공간의 0 은 모두 같은 모습입니다.
공간이 어디 구별이 됩니까, 그러므로 0 을 지난 중생은 전부 다 같다.
다 같으므로 모두가 다 같은 영심인 양심을 가지게 하는 착함을 우선 가지게
해야 하는 심상을 모우게 하는 것이 첮째요
그다음에 0 에 더우기 더 접근 할 수 있는 수행자 인 비구 비구니가 되게끔
제도 하고 이를 인도할 수 있는 매개체를 빨리 구성 해야 겠다고 하신 다음
착한자로 구성시킬 수 있는 전생이 좀 착한 인연성을 가진 자 들을 규합하여
동사섭 구성체를 양성하게 됩니다. 요즈음 말하면 스님이 됩니다.
기독교는 목자인 착한이를 규합하는 목사이고 신부를 의미합니다.
그 다음 0 을 보는 견성으로 보살로 숙달된 조교를 훈련시켜 세상의 뭇 생명들을
제도 하는 이들을 만들어 제도 해야겠다는 세가지 목적을 가진 것이
금강경입니다, 착하려면 우선 행위가 착하여야 합니다.
이로서 계율부 가 됩니다. 착하고 도 를 깨친다음에는 이 계율도 마땅하게
놓아야 합니다.
금강경을 진심으로 읽고 쓰고 외우기만 하여도 , 0 을 금방 보지 못하여도
언젠가는 0 을 보게 하는 원력을 심어주어야 겠다라고 하신 것이 금강경입니다.
원래 금은 전도성이 좋읍니다, 전파력이 상당 하지요. 그리고 공간은 투명 하지요.
약사여래불은 유리세계에 살지 않읍니까? 0 은 투명성입니다, 보이지 않읍니다.
이를 유리새계라 합니다. 보다 청정하고 마음에 색이 깃들지 않으면 병이 날래야
날 리가 없다는 방편의 약사여래불의 명호가 됩니다.
부처님 시대 이래로 이 금강경을 읽고 게송케 하여 무지 무지한 견성 인 들을
배출하기 시작 합니다.귀로 듣는 이근이 열리고 눈으로 보는 안견이 열리는 순간이지요.
존자 ,조사, 대사, 선사, 선지식, 독수성 등 전부 족보계열이 이 금강경 출신 입니다.
또한 착한 선남자 선여인이 0 을 보지 못하더라도 아주 윤택한 윤회를 거듭 거듭
만나 복락을 누리는 것도 이 금강경에서 출발 하는 것입니다.
0 비숫한 순도를 지니기 때문에 좀더 낳은 생활의 방편을 유지케 하는 것입니다.
이 점을 잘 알아야 합니다.
부자 들과 친하면 부자 되기 싶읍니다, 안 그래요?
없는 자 들끼리 아무리 뭉처 보았자 없을 뿐이지요.
권력 이 강한 자 밑에만 있어도 먹는게 생기고 소권력이라도 생기는 것입니다.
부처님 생전에는 옆에 옷깃 한번만 스쳐도 도에 젖읍니다.
한번 처다보기만 해도 벌써 견성 하는 것입니다.
큰 스님 옆에 있기만 해도 공덕이나 원력이 새롬 새롬 피어 나고
그 분위기에 감응 하게 되어 있읍니다.
마치 전기에 감전 되듯이 말입니다.
이러한 자연의 초 현상을 믿으셔야 합니다. 0 의 전파력은 이처럼 대단 합니다.
무엇을 목적 하는 바른 윤리의 정신으로 계속 기도 하게 되면
자력이 생깁니다, 당기는 인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외부를 당기는 힘이 강해지지요.
그러므로 기도라는것 발원이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꼭 이루겠다는 일념의 도를 말 합니다. 중생의 생활도 이렇게 하는 바가 이루어지는
원력이 일념인데
진리의 일념의 힘이란 막강 한 것입니다.
금강심륜을 발표한 금타화상은
금강좌에 딱 오르기만 해도 사방팔방 200 메타 원주율의 영역의 모든
사물을 당기는 공덕의 원력이 생겨 당기는 힘이 있다라고 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부처님의 십대제자 중 마하가섭 이 계셨는데 단 한번 보고 견성 하셨지요.
부처님의 이끄는 원력의 힘으로 단 한번 보고 깨친 것이지요.
서울대학교에 겨우 턱걸이 하고 입학만 하더라도
전부 동급 아닙니까?
그러니까 죽어도 서울대 가려고 하지 않읍니까?
같은 멤버가 되어 서로 사귀고 하면 이미 신분 상승이 되는 것과 같읍니다.
하물며 부처님이겠읍니까?
그러므로 괜히 쪼잔 하에 자꾸 미꾸라지나 잡으려고 하거나 천렵같은거.
카드놀이나 그런것 하지 마시고, 절이나 사찰, 아니면 예배당이라도 자주
가셔야 합니다. 감 과 응 이 무조건 옵니다.
아주 애매하고 묘하게 옵니다. 이를 묘유 현상이라 합니다.
근대사의 복락혜택을 받은 사람들, 유명해진 사람들 대부분 예배당 가서
목사 잘 만나 외국 유햑도 가고 먹물을 많이 집어놓고 민주주의 열사도 되고
돈도 벌고 공부도 공짜로 하고 그러지 않읍니까?
전부 인연을 잘 만나서 그런 것이지, 개인적으로 그리 잘난 거 하나도 없읍니다.
그러므로 금강경을 무조건 만나야 합니다.
자고 나면 떡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부처님께서 생각 하시기를 , 단 계율을 정해야 겠다.
쉽게 말해서 금강경을 보려며는 지켜야 하는 습관을 가져야만 가능 한 것이니
이것 저것을 다 차치 하더라도 오계는 지켜게 해야 겠다 한 것입니다.
어디가서 거짓말 하고 악담하고 욕심이 많아 탐욕 스럽고 한 사람이 부처님
이 지나가서 뭔가를 물어보려고 해도 부처님은 대꾸도 안합니다.
왜냐하면 할말이 없고 해도 알아듣지도 못하고, 말씀해주는 부처님도 또라이가
되고 듣는 자 도 도대체 알길이 없으니 그냥 스칠 뿐입니다.
무착보살 처럼 자기 넙적다리 를 베어 벌레를 유인 할 정도로 활인 정신이 없다
하더라도 노숙자가 있으면 단 얼매라도 , 돈이없으면 아이고 안됐다 할 정도로
심정을 가진 사람만 이 금강경을 읽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도 를 튀구는 자세를 엄연하게 보여주신 것이 금강경의 첮째 일구
법회 인유분 입니다.
법회인유분 제일(第 一)
1)여시아문 하사오니 : (如是我聞)
"내가 이와 같이 들었읍니다"
아난 존자 가 하시는 말씀 입니다.
아난 존자는 부처님 석가모니(모니란 성자 를 뜻함) 를 곁에서 수바리한
분 인데 부처님 사촌 동생입니다.
부처님 일거수 일투족 을 다 보신 분으로서 부처님 십대제자 중 기억이 제일
좋은 분입니다.
그런데 워낙에 얼굴이 잘 생겨 가지고 주변 에 사람도 잘 따르고
특히 여성들이 보면 아주 줄줄줄 따라 다니고 여성에 인기가 많아
부처님 살아게실때도 견성을 몬 했읍니다.
마등가 여자가 당시 있었는데 아난을 보고 상사병이 날 정도 였읍니다.
여자가 남자를 강간 하려고 할 정도 였지요.
부처님은 이것이 안심이 되지 않아 항상 곁에 두고 따라다니게 한 것이지요.
부처님이 열반하시고 마하가섭이 그 법을 이어 받은 다음
금강삼매지경에 들어선 500 비구를 집결하여 부처님의 살아계실때
설 하시 법을 총 정리 하는 마당에서 아난이 필요 했읍니다.
그런데 기억은 잘 하고 있으나 도대체 견성을 몬 했으니 써 먹을 데가
없어서 500 비구 중에 속 하는 것을 거절 하였읍니다.
부처님 백 만 믿고 너무 안이 했던 것입니다.
원래 아버지가 위대하고 좀 강하시고 하면 자식은 힘을 몬 쓰지요.
이와 같읍니다, 가만히 있어도 떡이 생기고 아버지가 번 돈 조금씩
써가며 살아도 바쁜데 도 를 튀구거나 각박한 세상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좀처럼 있겠읍니까?
이와 같은 것이지요
그래서 마하가섭은 아난을 내쫏읍니다. 임마! 견성 하고 오던지 해
너는 안돼! 한 것입니다.
이에 아난은 분심을 냅니다. 사람은 무시를 당해봐야 무참해지고
분 하게 되어있고 오기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도 를 딲을 때는 분심이 일어나야 가능합니다.
절벽 밑에 줄 하나 잡고 이 줄을 놓으면 죽는다는 절박감이 있어야
하는 것과 매 한가지 입니다.
아난 존자는 그래도 워낙에 익어가지고 100 일 치성에 견성 하고서야
마하가섭의 시험에 들어 금강경 의 말씀을 정리하는 소속단체에
분심을 가지고 재수 하여 입학하게 된 것이지요.
인생살이도 사전 오기 를 해야 합니다.
삼전사기 가지고는 아니됩니다, 그래서 오기빨이 먹힌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데가서 사정을 해도 한번 만 해서 아니되면
다섯번을 시도 하고 가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공부 못하고 머리가 공부쪽으로 안 들어가도
금강경을 다섯번만 써도 머리가 시원 해 집니다.
한번 해보세요, 거짓말인가!
그러면 됩니다. 이것이 일리가 있읍니다.
운 도 5 운입니다.
한번간 운 도 다섯번째 다시 돌아오는 것이 대 자연의 이치요 섭리이기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금강경의 첮째 일구를 대 할 때
까짓거 나도 해 낼수 있어하는 분심과 함께 금강경을 이차에 한 번 녹이자 하고
발원을 진심으로 하고 대 들어야 만 합니다.
2) 일시 에 :( 一時)에
'한 때에"
금강삼매에 들어가면 오로지 0 입니다.
시간의 장애를 받지 않으므로 그냥 한 때 입니다.
공간이 시간을 절대로 창조 하지 않았읍니다.
1 억년 전에도 그 공간이 지금 이 공간과 하나도 변한게 없읍니다.
그냥 한 때 입니다. 이게 되어야 2,500 면 지난 지금 우리가 그때 시절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경이나 성경은 시간의 장애를 받지 않고 지금도 애송 되는 것입니다.
무착보살이 도리천 도솔천에 가서 삼매지경에 시간을 벗어나서 부처님과 대화 하는
경지 인데 시간은 장애가 안됩니다 ,우주의 시간은 인간이 설정한 그런 시간 개념으로는 풀어내지도 못하는 본위의 당체를 만나는 자리 인 것입니다.
꿈 꿀때 시간 잰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노벨과학상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시간이란 전도몽상이고 여몽 환 포영 입니다. 벼락치는 그 순간입니다.
변화하는 사물을 좇아가면 시간이 생기고
0 을 보면 모든것이 항상 그자리 가 됩니다.
0 을 마시고 사는 생명은 늘 0 입니다, 불변성 순수성 효용성 이지요.
그냥 한때! 입니다.
우리들은 한때 일 순간 만난 인연일 뿐 입니다.
우리가 생각으로 이끌고 온 집착력이 있어 본드처럼 딱 붙어
식구를 만들고 주변인으로 환생하여 지금 어쩌고 저쩌고 합니다.
돌아갈 때 에는 다 자기팔 가지가 흔들고 혼자 가야 할 것입니다.
생각이라는 용어는 자기력이 있읍니다.
사람은 죽은 자리에서 또 그 주변에 태어나게 되어있읍니다.
그리하여 목건련 제자는 죽을 때 공중에 떠서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지요
죽은 바 없이 공중에 태어난다? 뭐 이렇게 상상을 해보세요
죽은이후의 이치를 잘 알게 되는것입니다.
우리가 다시 태어난다고 가정 합시다.
특히 고향에서 태어난 사람들, 자기 집안 족보도 다 아는
이들과 인연짖고 같은 토양에서 장소에서 자기 생각을 잡은
기억 인 8 아뢰야식으로 끌어댕겨 놔주지 않고 잡았던 전생의
집착된 생각이 끌어와서 고향에 인연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타향에서 다시 만나 다시 모임을 만들고 이렇게 구성되는 인연은
극히 자연스럽게 그렇게 쌩각의 모틀에서 함께 내장하고 비롯된
인연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대단히 엄중하고 장엄정토의 모습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주 장엄하고 엄격하게 바르고 바른 땅위의 소식을 전해 주는 것을
장엄정토라 합니다.
나의 조상들께서 나를 창조 하였읍니다.
단지 인연에 의하여 한 집안의 내력은 불가분의 인과 관계이지
저 화성이서 떨어진 결과물은 아닌 것입니다.
이 결과는 윤회를 게속 하는 한 은 게속이어져야 합니다.
계속 이어지며 또 소속되어지는 생명의 모틀을 좀 더 윤택하게 하려면
지금을 충실하자 라는 것이 세존의 교칙입니다.
3) 불 이 (佛 이)
한 때 사람형상을 하고 , 사람아닌 총체적인 구류의 소집인자로 구성된
생명 한 분을 인연되어 나투신, 이미 지수화풍, 우주의 0 을 섭사 하여 섭리를 세우신
미리 깨치신 부처님이 ... 라는 의미입니다.
싯달타를 버리지 않았읍니까?
그러므로 우리도 이름을 믿어서는 아니됩니다.
고유한 이름을 지닌 우리들 생명에서 이름 외에 온통 우주공간의 구류 중생의
생명성이 개입되고 개연되어 하나로 웅측된 현상의 지금이 이름을 달고 행세하는 나인데 단지 이러한 현상을 보지 못했으므로 중생이지만, 이미 세존은 이러한 사실을 보고 계신 자 로서 佛 이라 합니다.
4) 재 사위국기수급고독원 하사...
한때 사위국이라는 나라 안에 기스급고독원이라는 장소에 머무르고
계셨는 데 ,,,
5) 여대비구중천이백오십인으로 구 러시니...
부처님의 위신력과 성불하신 모습에 감화되고 이끌린 천미백오십인의
큰 스님들을 거느리고 계셧는 바.... 입니다.
이 당시 큰 비구들은 이미 전생에 천인 으로서 선업을 많이 지었는데
마음이라는 본질을 어느정도 맞본 사람들의 형상을 가진 자 들인데
불법의 지엄한 진리를 이미 믿고 중생을 제도 할 준비가 되어있는 자 들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다리는 선지식인 들 입니다.
그러므로 도인들만 우굴 우굴 한 것입니다.
이미 준비된 법의 진리에 숙달된 조교로서 중생을 제도해야 하는 사명이
투철한 정신으로 무장된 자 들입니다.
그냥 일반인들은 저렇게 모여서 무엇을 하려 하는 지 도통 모를
수준에 올라간 이 들이라고 여기면 됩니다.
그러나 아직은 조금 더 수행해야 하고 바른 정견을 가다듬어
보살 지위는 오르지 못한 자 들도 있고,
이미 보살도를 이룬 자 들도 있는 그런 단체라고 이해 하면 됩니다.
중생을 제도할 최초의 유격 대원 들 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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