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yotr Ilyich Tchaikovsky(1840-1893)
Andante cantabile op.posth.
for Cello and String Orchestra
Berliner Philharmoniker
Mstislav Rostropovich
(Recording : 6/1978)
Andante cantabile (6'40)
「안단테 칸타빌레」는 차이코프스키의 현악 4중주곡 제1번 D장조 제2악장을 말하며 선율이 너무 아름다워 오늘날에는 이 부분만 따로 떼 내어 연주하기도 하는 곡이다.
1871년(31세)에 차이코프스키는 연주회를 가질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관현악곡으로는 악단원을 고용할 만한 비용이 없어 친구의 권유에 따라 현닥 4중주곡을 작곡하기로 마음 억었다. 2월에 완성하고 3월 16일 황실 러시아 음악협회의 실내악 연주회에서 발표했다. 발표 장소는 모스크바의 귀족 회관이었다. 지금까지의 다른 작품 발표회 때와는 달리 반응이 아주 좋았다. 라론이라는 평론가는 "신선한 매력으로 넘치는 선율에, 독특한 개성을 갖춘 화성법으로 수준 높은 음악을 창출했다"고 찬사를 보냈다.
현악 4중주곡 제1번은 곧 외국으로 널리 퍼져 나갔다. 1873년에 모스크바의 유르겐슨 출판사가 악보를 출판했지만 2년 후 신판을 낼 때 초판 판매 실적을 살펴보니 러시아 국내는 겨우 11부일 뿐 모두 국외에서 팔렸음을 알았다. 무엇보다도 제2악장 안단테 칸타빌레가 압도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다. 「안단테 칸타빌레」의 주선율은 차이코프스키가 조카 다비도브의 집이 있는 우크라이나의 카메니카 마을에 머물 때 우연히 얻었다.
1876년의 무더운 어느 여름날이었다. 집안의 난로를 고치는 일꾼들이 콧노래로 흥얼거리는 민요를 듣고 그 달콤하며 애달픈 선율를 고 속에 넣기로 마음 억었던 것이다.
1876년 12월,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를 위해 차이코프스키는 실내악과 가곡 연주회를 개최했다. 톨스토이는 현악 4중주곡 제1번의 '안단테 칸타빌레'가 연주되자 감동한 나머지 눈물을 가득 머금은 채 듣고 있었다고 한다. 며칠 후, 톨스토이는 차이코프스키에게 "내가 모스크바에 머문 동안의 길이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재능에 깊이 고개 숙입니다"라고 전제하고 나서 '안단테 칸타빌레'를 극찬하는 편지를 썼다. 차이코프스키도 "제 음악이 선생님 같은 위대한 분의 기쁨이 되었음은 평생의 자랑으로 남을 것입니다"라고 곧 답장을 썼다. 이렇듯 「안단테 칸타빌레」는 19세기 러시아의 문학과 음악의 두 거장을 굳게 맺어 주는 우의(友誼)의 끈이 되기도 했다.
(본인소장음반, 이 한장의 명반해설/안동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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