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을 깎으며 복효근
톱을 활처럼 휘어 놓고
바이올린을 켜듯이 톱을 연주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나는 그가 톱에 새겨진 나무의 울음을 불러내는 것이라 생각했다
톱질을 하다보면 듣는다
나무가 운다
나무를 베어내고 나면
제 가던 길을 마저 가려고
잘리우고도 봄이면 다시 안간힘으로 밀어올리는 여린 싹
그 푸른 울음을 기억한다
톱인들 그 울음 기억하지 않겠는가
나무를 자르다가 문득
놓치듯 톱을 놓고보니
손톱
발톱
애초부터 내 사지가 톱이었음을
내 온몸이 톱이었음을 깨닫는다
얼마나 많은 것들의 길을 나는 잘라왔을까
할퀴고 베어버렸을까
며칠 새 길어난 손톱을 깎는다
날 선 톱날들을 깎아내며
내가 할퀸, 자른, 걷어차버린 인연의
길 잃은 푸른 울음들을 듣는다
복효근, <손톱을 깎으며>
톱질이라는 것은 나무에 새겨진 푸른 울음을 불러내는 것이고, 시인은 푸른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한 톱에서 자신이 가진 톱을 떠올린다. 나무를 자르는 톱과 내 몸에 있는 손톱, 발톱...어찌보면 언어유희같은 이 한편의 시에서 시인의 아름다운 상상의 세계를 만난다. 나무의 울음은 곧, 자신이 깍아내고 잘라버린 지고지순했던, 착했던 인연들의 푸른 울음이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