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이는 마음으로 난지도 해수욕장을 향해 차를 타고 15분을 달려서
선착장에 도착했다. 차를 배에 실고 가자는 의견과 힘들지만 짐을
손으로 옮기자는 의견차이가 있었지만 우리 일행은 이내 차를 배에
실고 가자는 의견에 일치를 보고 일부는 유람선을 타기로 하고
운전하는 사람과 같이할 한 사람만 남겨둔채 출발했다.
그런데 유람선이 떠난지 한참이 지난는데도 화물 여객선을 선착장에
들어서지 않아 몹시 짜증이 나기 시작할 무렵 차 30대 정도 실을 수
있는 배가 서서히 들어오기 시작했고, 많이 기다렸던 차라 제빨리 배에
차를 실고 그리 길지 않은 시간(약 15-20분)만에 난지도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선착장에서 해수욕장까지의 거리는 약 3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어 다시 차를 타고 해수욕장을 향해 달렸다.
꼬불꼬불한 길을 달리다 보니 작은 섬안에도 농사도 짓고 바지락도
캐는 모습이 보기좋게 그림처럼 그려져 있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평안함을 주기에 충분했다.
좁은 길을 10분 정도 달려 드디어 난지도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우리는 더 나은 장소를 선택하고 더 싼 가격의 파라솔을
찾으려 이리 저리 눈을 굴렸다. 백사장 길을 가다가 좋은 장소가
눈에 들어와 그리로 차를 돌려 세우려 했더니 미리 와 있던 일행이
주인에게 다가가 가격을 물어보았는지 너무 비싸다며 다른 곳으로
가자며 눈짓을 했다.
주인의 눈치를 살피며 차를 빼 다른 곳을 찾아 나섰다. 그런데
그것이 사단이었다. 차를 후진하는데 그만 모레에 차 앞 바퀴가
빠져 도저히 나올 수 없게되어 버린것이다. 밀고 당기고 애를 써도
차는 점점 모레속으로 들어가 나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 모습을 보며 흥정했던 파라솔 주인은 우리 주변을 오고가며
모레 사장 불같은 더위에 불이라도 지피려는 듯 조롱섞인 말을
내뱉는다. [글쎄 여기서 쉬었다가지 나간다고 하더니 ....차 빼려면
3만원은 주어야 하는데...] 이 말을 듣자니 더 날씨가 덥게 느껴지고
짜증이 났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미 빠져버린 차 그대로 놔둘 수도 없고 해서
우리는 옆에 지나가는 사람들과 우리의 젖먹던 힘까지 동원해서 한 마음로
힘껏 차를 밀어 붙여 깊게 빠진 차를 빼내서 자리를 이동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이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신나게 벌써 바다에
뛰어들어 놀기에 바빴다. 자리를 정리하고 이제 어른들도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지집사님은 바다에 제일먼저 뛰어들어
모처럼의 시간을 즐기고 있고, 아줌마 집사님들은 바다가
무서운지 그늘에서 나오지 않고 연신 뭔가를 먹어대고 있다.
언제나 다정함을 자랑하던 오집사님 부부는 여전히 둘만의
백사장 밀월을 즐기느라 바쁘고 서집사님은 예진이 보느라
정신없고 우리의 기쁨 사모님은 늘 집에서 하지않던 음식을
탐하느라 바쁘고 허집사님은 몸이 허약한지 피곤하게 바다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도 바다에 왔는데, 점심을 먹고 우리는 얼마남지 않은
시간을 즐겁게 보내려고 송집사님 사모님 몇몇은 바다에
몸을 맡기고 모래사장을 뒹구는 모습이 천진하기만 했다.
지집사님은 수련회까지 와서도 축구중독을 끊을 수 없었던지
서집사님과 아이들, 사모님까지 앞세워 난지도 백사장 배
축구경기라도 치르려는 듯 온 힘을 다해 공을 따라 달리며
멀리 나가지도 않는 비치볼을 힘껏 차고 있다.
송집사님은 배가 고프다며 왜 밥을 먹지 않느냐며 도착하자
마자 미리 알아두었는지 칼국수라도 먹자며 빨리 시키자고
보채고 있다. 송집사님의 끈질긴 설득과 엄포에 일행은 항복을
하고 점심을 대 난지도 해물 칼국수를 배달시켜 삼삼오오 짝을
지어 허기진 배를 채워갔다.
청주에서 심심찮게 음식을 잘 한다는 정가네도 가보고 할머니
칼국수집을 가서 먹어보았지만 백사장에서 먹는 칼국수 맛아라
그런지 정말 시원하고 매콤한 맛이 해물과 잘 어우러져 아주
맛있게 먹었다. 물에서 금방 나온 아이들은 물이 뚝뚝 덜어지는
가운데 아무데나 주져앉아 빨리 국수달라고 소리쳤다.
그 중에 엉덩이 얼굴 살 통통한 혜연이는 먹고 또 먹고 먹고 또
먹어대며 우리를 놀라게 해서 이윽고 전체 일행의 반장인 저는
크는 애지만 더 이상은 안 되겠다싶어 거기서 중단시키는 선포까지
내려야 했으니 백사장 칼국수 맛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으리라.
칼국수로 허기진 배를 채우며 [하하 호호, 너무 많이 먹는 것 아니니?
아니예요. 더 먹어야 해요.] 하며 즐거운 점심 한때의 즐거운 시간을
뒤로하고 오후 5시가 좀 넘어 우리 일행은 아쉬운 마무리를 해야 해야 했다.
5시 반 쯤 짐정리를 마치고 아쉽지만 대난지도 해수욕장을 떠나오는
우리의 마음은 모처럼 맛보는 즐거움에 아직도 기분이 들떠 있었다.
그런데 우리의 즐거운 기분은 거기까지였다. 선착장에 도착해 보니
이것은 서산으로 향해 오던 길에 고속도로에 늘어선 차량 행렬처럼
길게 대기차량들이 늘어서있었다.
늦게 오는 차량이 앞으로 가는 것을 막으려는 듯 앞에 와 있던
사람들은 우리 타가 다가서자 길을 막아서며 가장 마지막에
주차하라는 수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래도 내심 지금은 이렇지만
배가 한 번오면 금새 줄어들겠거니 좋게 마음을 먹고 느긋하게
주차를 하고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왠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한 번갔던 배는 아무리
오지않았다. 40분만에 배 한 척이 왔지만 대기차량의 차를 실고
가기에 터무니없이 작았다. 겨우 그 배에 11대의 차외에는 실지
못한채 떠나버렸다.
그래도 우리는 인내의 사람들 아닌가? 마음이 편치 않앗지만
좀 더 기다리면 되겠지 싶어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기다렸다.
그런데 두 배가 왕복해서 실어날라야 하는데 갔던 배가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 더이상 참을 수 없어서 단숨에 쫓아가 배 직원들
에게 왜 이렇게 기다리게 하느냐? 도대체 무슨 문제냐? 했더니
그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우리를 더 낙담하게 만들었다.
큰 배가 지금 고장이 나서 수리 중입니다. 오늘은 작은 배로
차를 실어 나르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미안합니다.
앞이 캄캄했다. 오던 길에서 시간을 지체했던 경험이 있던
터라 앞이 아찔했다.
이미 우리는 2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중이었다. 날은 이미
어두어지고 있었다. 육지에서 기다리던 목사님으로부터
연신 전화 벨은 울리고 우리는 발만 동동 구르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우리 일행은 기다리다 지쳤는지 배가 고픈건지
슈퍼라는 작은 상점을 찾아갔다 기검을 하고 돌아왔다.
새우깡 한 봉지에 4000원이란다. 한 봉지 살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박가지도 너무심하다 싶어 그냥 돌아와 간식으로
준비해 갔다 남은 컵라면을 뜯어 라면을 부숴 먹기까지 했다.
그렇게 먹어치운 컵라면이 10개 가량 되었으니 배고픔으로
기다려야 했던 대난지도 해수욕장 선착장에서 우리가 만난
불편함은 심각했다. 드디어 우리 차를 태우러 마지막 배가
들어오고 우리는 밤 10시가 되어서 숙소인 대산 풍성한 교회로
돌아올 수 있었다.
우리는 수련회 이튼날 단물과 쓴물을 동시에 맛보는 웃지못할
하루를 보냈다. 몸과 마음도 힘들었다. 그러나 감사하다. 왜그런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불편하고 힘든 하루를 보냈지만
누구 한 사람 공동체 안에서 불평하는 이가 없었다. 그저 서로를
바라보며 하루를 잘 보냈다는 싸인이라도 주고 받는지 웃어주고
위로해 주었다.
이렇게 난지도에서 보낸 하루가 기울어가고 우리는 늦은 저녁을
삼겹살 잔치를 벌이며 하루를 씻어내고 있었다. 얼마나 맛있게
삼겹살을 먹었는지 김집사님은 배에 문제까지 생겼지만 우리는
한 상에 둘러 앉아 맛있게 식사를 나누며 오늘 있었던 추억을
한 장의 그림으로 완성해 가며 피곤한 몸을 작은 이불위에 맡긴채
하루를 마감했다.
첫댓글 사랑은 언제나 참아주고 웃어 주고 그리고 이웃과 같은 마음으로 받아 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