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타현 가쿠노다테1 - 모리오카에서 다자와 호수를 지나 가쿠노다테에 가다.

여행 12일째인 7월 10일 새벽에 일본 동북 지방 이와테현 현청 소재지인
모리오카 시의 호텔에서 일어나 일기 예보를 보려고 텔레비전을 틉니다.


그런데 오늘 새벽 4시경에 여기서 멀지 않은 아오모리현 동남부 하치노헤 八戶 에서
진도 5.7 의 "지진" 이 발생했다는데..... 저긴 "어제 우리가 여행한 도시" 라?


우린 불과 반나절 차이로 지진 을 피해 온 셈인데? 부상자 들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는
뉴스 뒤에 바로 남쪽 오키나와에서는 태풍 9호 가 올라오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그새 지진이 가라앉은 탓인지 모리오카역 에 기차가 정상 으로 운행된다는 소식에 안도를
하고는 6시 30분에 호텔에서 주는 간단한 아침을 들고는 7시 20분에 호텔을 나옵니다.


오늘은 무사 마을 가쿠노다테 를 다녀와 다시 신간선을 타고 미야기현의 센다이 로....
가서는 마쓰시마(송도) 까지 관광을 마쳐야 하는지라 아침 일찍 서두르는 것입니다.


모리오카 역 코인로카 에 배낭을 넣고는 플랫폼에서 신간선 코마치 기차를 타는데...
우리가 서있는 앞에 멈춘 열차는 하야부사 라서 놀라서 황급히 앞쪽으로 달려갑니다.


그러니까 도쿄에서 두 기차가 붙어서 오다가 여기 모리오카 에서 아키타 로 가는
코마치 와 신아오모리 로 가는 하야부사 가 서로 갈라지는 것이네요?


자리를 찾아 앉으니 분리된 기차 코마치 는 7시 58분에 출발해 모리오카 시가지를
빠져나가서는 북쪽으로 달리는데 나무가 울울창한한 깊은 숲 을 달립니다.


숲속 원시의 비경을 간직한 한적한 강을 지나고 아키타현 으로 들어서서
다자와코 에키 田沢湖駅(전택호역) 에 서는데 잠시 갈등을 느낍니다.


다자와 호수 田沢湖 たざわこ 의 최대 수심은 423 미터로 일본에서 가장 깊은 호수 이며
세계적으로는 17위 (1위는 러시아 바이칼 호수) 라는데.... 현재 자연공원 입니다.

일찍이 화산성 무기물 이 다량 함유된 수질로 31m 에 이르는 투명도 를 자랑했는데
1940년 오보나이 수력 발전소 건설과 다마가와 강을 끌어 들여 산성화 되었다나요?


산성화로 고유 어종인 구니마스를 비롯해 어류가 폐사 하자 추모하기 위하여 다자와호 에
히메 관음상 이 세워졌는데... 우리나라 "영화 아이리스" 가 촬영된 장소이기도 합니다.

옛날 다자와 호수의 물을 마시면 미인 이 된다는 속설에 다츠코 라는 처녀가
너무 많이 마시는 바람에 용 이 되어버리자 "비관해 호수에 몸을" 던졌답니다.


사람들은 호숫가 니시키무라 마을 에 금빛 다츠코상 을 세우고 지나친 욕심을 경계했는데...
히치로가타 호수의 용 히치로타로와 사랑에 빠지는 바람에 겨울에도 호수가 얼지 않는다나요?


해서 겨울이면 호수 주위에 등불 을 밝힌다는데..... 하지만 아무래도 시간이
부족하기로 여행계획서를 작성할 때 열두번 더 생각하다가 뺀 곳이니 어쩌랴?


기차는 모리오카를 출발한지 46분인 8시 44분에 소박한 가쿠노다테 角館(각관)역에 도착해
유인물을 챙기는데 시내지도 가 없어 의아했더니 관광안내소 는 바깥 별도 건물에 있네요?

그리고 철로변 플랫폼과 주변에 많은 사진 들이 붙어있는데 고풍스러운
무사 마을 가쿠노다테의 4계절 을 찍은 것이라 흥미롭게 구경합니다.

가쿠노다테 角館(각관) 는 1,620년 아시나 蘆名 가문이 세운 매력적인 성곽으로 도호쿠의
작은 교토 로 불리는데 다마치 부케야시키도리 와 우치마치 부케야시키도리 로 나뉩니다.


350미터 무사 저택의 큰 문 에서 과거의 위세를 짐작할수 있으며 길가에는 300년 전에
교토에서 옮긴 400그루 벚나무 로 4월 하순에 보름간 벚꽃 축제 가 열린다고 합니다.

아시나 蘆名 가문의 16대 당주 아시나 모리우지 는 1541년에 가독을 상속한후 야마노우치
가문을 쳐서 아이즈(会津) 로 세력을 확대하고는 나카 도오리 로 진출하였습니다.

아시나 모리우지는 히타치의 사타케 가문의 방해를 받자 사타케씨의 적인 호조 우지야스
및 다케다 신겐 과 동맹을 맺고 사타케 가문 에 대항하는데.... 가독을 아들
모리오키에게 물려준후 삭발하여 불문 에 들고도 조선의 태종 처럼 가문을 통제 합니다.

1563년에는 니카이도씨 의 스카가와 성(須賀川城) 을 공격하여 이와세군 으로 진격하나
원군인 다테군 과 접전을 벌이다가 "결혼정책을 통해 세 가문이 화의" 를 합니다.
아들 아시나 모리오키와 다테 하루무네의 4녀 히코히메와 결혼 을 하는데 그 전에
니카이도 모리요시는 다테 하루무네의 장녀와 결혼했던 것이니 결혼동맹을 맺은 것이지요?

이와 유사한 사례로 일본 최고의 기마군단을 거느린 가이국(야마나시현) 다케다 신겐 은
호조씨의 오다와라성을 포위 하는데 서남쪽 스루가국(시즈오카)과도 분쟁이 일자
"세 가문이 혼인을 통해 동맹" 을 맺고 후방이 안정 되자 호조는 무사시국(도쿄)으로
신겐은 시나노국으로 스루가의 이마가와씨는 미카와와 오하리국으로 공세 를 취했습니다.

1574년에는 다테 사네모토(伊達実元) 와 함께 다무라 가문 을 공격하여 종속시키나 아들이
급사하자... 인질 니카이도 모리타카를 며느리와 결혼 시켜 아시나 가문 을 잇습니다!
인질인 적군의 자식에게 며느리를 주어 제 자식으로 삼다니? 가문의 종속 이 으뜸 가치라?


아시나 모리우지 는 1578년에는 니가타의 우에스기 겐신 사후 일어난 우에스기 가게카쓰와
우에스기 가케토라 간의 후계자 분쟁에 개입하여 에치고로 출병 하는 등 공세를 계속합니다.

그러나 원래 적으로 인질이었던 니카이도 가문 출신으로 며느리와 결혼한 새로운
당주 모리타카에게 반발하는 중신들과의 불화 와 긴 기간에 걸친 전쟁으로
전비를 감당하기 힘들어지니 모리우지 만년에 아시나 가문은 세력은 기울게 됩니다!

아시나 가문 이 후계자인 아들이 죽자 적에게서 잡아두었던 인질을 며느리 와 결혼시켜
후사 를 잇는 것은 아들로만 가문이 승계되는 우리 한국인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듭니다.
인질 니카이도 모리티카는 전쟁하던 적군 이며 며느리 다테 히코히메도 적의 원군 인데도?

한국은 같은 성씨 에서 양자를 들이지만 일본은 다른게 이토 히로부미 를 보자면 아버지는
하야시 주조 인데 조슈번의 주도 하기 마을로 이사를 가서는 히로부미는
이토 나오에몬의 양자로 들어가니 하야시 히로부미가 이토 히로부미로 성씨가 바뀐 것이라?

또 아시나 가문 이 싸운 저 니가타의 우에스기 가문 도 원래는 에치고국 나가오 가게도라
(長尾景虎) 인데... 고즈케(上野) 국 히라이 성(平井城) 의 간토간레이
우에스기 노리마사 (上杉憲政) 의 양자가 되어 성을 나가오에서 우에스기로 바꾼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양자 가 흔했지만 같은 성씨, 예를 들면 안동 김씨여야 하고 그것도
친족 이어야 했는데... 일본에서는 생판 남에게 양자 로 가서 성까지 바뀝니다?
또 우린 여자가 결혼해도 성씨는 그대로지만 서양과 일본은 "남편 성씨" 로 바뀌지요?

유럽과 일본의 공통점은 봉건제와 혈통지배 및 기사(무사) 를 들수 있는데 일본은 400년간
300개 나라로 갈라져 자치 를 했으니 영주(번주) 지위는 아들로 세습 되며 대대로
충성을 바치는 중신과 무사 들에게 영지 내에서 세금을 거두어 연봉 을 지급하고
백성들을 재판 하며 외교 및 군대를 육성해 이웃 나라들을 침략해 영토를 넓혀 왔습니다.

기쿠노다테 마을의 축제 로는 2월 13일에 히부리 가마쿠라, 8월13일 부터 일주일간
사사라마이 여름 축제와 초가을 9월 7일 부터 3일간 오야마 마쓰리 가 있습니다.

“ 꽃은 사쿠라, 사람은 사무라이”..... 이 도시 기쿠노다테마치는 기후현의
다카야마 처럼 리틀 교토 라고 불리는데...이 마을에 만개한
수양벚꽃 은 교토에서 시집온 부인의 향수병 을 달래기 위해 심었다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