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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나무아미타불 원문보기 글쓴이: 慧蓮
염불론 念佛論
담산사(湛山寺)의 담허(倓虛)스님께서 처음 불교를 배우는 자들을 위한 간략한 설명
1. 종파불교의 발생
인도에서부터 발원(發源)한 불법(佛法)은 중국에 전해지며 전 세계로 퍼져 나가게 됩니다. 불법의 목적은 자신의 마음을 깨달아 괴로움을 여의고 즐거움을 얻는데[離苦得樂] 있지요.
'부처'란 용어는 깨달음을 뜻하는데, 자신만 깨닫는 것이 아니라 남도 깨닫게 해주며[自覺覺他]1) , 깨달음에 대한 실천수행이 원만해지신[覺行圓滿] 분을'부처님'이라 말합니다.
또한 부처님은 자비를 근본으로 삼는데, 자(慈)는 중생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고, 비(悲)는 중생들의 고통을 없애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출현하시어 49년 동안 설법하신 내용을 후세의 제자들이 결집하여 3장 12부가 되었는데, 이는 중생들의 근기가 다 똑같지 않았으므로 근기에 따른 가르침 또한 다를 수밖에 없었지요.
불법(佛法)이 중국으로 전해진 후 3장 12부 중에서 대략 선종[宗], 교종[敎], 율종[律], 밀종[密], 정토종[淨] 등 다섯 개의 종파로 나눠지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은 부처님께서 특별히 오대종으로 나눈 것이 아니며, 경전 속에서도 무슨 종 무슨 파를 전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다만 중생의 근기에 맞추기 위해, 뒷사람이 앞사람이 공부한 바를 계승한 결과 자연스럽게 다섯 가지 큰 종파[宗]로 형성된 것뿐입니다.
이 오대 종파 가운데 선종[宗門]은 교외별전(敎外別傳)으로, 오로지 참선을 통하여 곧장 마음을 가리켜 참 성품을 보아 부처님이 되는 것이고[直指人心, 見性成佛], 교종(敎宗)은 먼저 깨달은 다음 수행하고, 수행을 통하여 진리를 증득해 가는 것입니다.
율종(律宗)에서는 오로지 부처님의 청정한 계율을 지키는데, 우선 몸을 단속하고, 그 다음 마음을 거두어들입니다. 계율에는 오계, 십계, 250계, 보살계, 삼취정계(三聚淨戒) 등이 있으며, 청정한 계율을 엄격히 지킴으로써, 계(戒)로 말미암아 선정이 생기고, 선정으로 인해서 지혜가 생기게 됩니다.
밀종(密宗)은 의식(儀式)을 중시하며, 반드시 삼밀(三密: 신·구·의)이 상응해야 하지요. 위의 4가지 종파를 비교해 살펴보면 처음 수행하는데 있어 어려운 점들이 약간씩 있습니다.
오직 정토종(淨土宗)만이 가장 간편하고 직접적인데, 오로지 한마디 나무아미타불만 외워서 일심불난(一心不亂)이 되면 부처님의 영접[接引]을 받아 극락왕생을 할 수 있으며, 근기가 좋던 나쁘던 전부 다 섭수할 수 있습니다.
정토를 닦는데 유일한 수행[行持]은 바로 정성껏 염불하는 것입니다.
각주: 1) 자각(自覺)은 소승이며, 오직 자신만이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이고, 각타(覺他)는 보살인데 자비심이 있어 자발적으로 중생들을 교화하며 청하지 않는 벗[不請之友]이 되어 준다. 그리고 각행원만(覺行圓滿)은 부처님이시다. 원만하다는 것은 제도한 중생들의 수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心性]을 두고 하는 얘기이다.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세 가지 번뇌가 있는데, 첫째는 견사(見思)번뇌이고, 둘째는 진사(塵沙)번뇌이며, 셋째는 무명(無明)번뇌이다. 스스로 깨달은[自覺] 자는 견사번뇌를 끊었으며, 남을 깨닫게 하는[覺他] 자는 아울러 진사번뇌를 제거하였는데, 스스로도 실천하고 중생교화도 할 수 있다. 견사·진사·무명 이 세 가지 번뇌를 완전히 제거하여 공덕이 원만해지면[覺行圓滿] 곧 부처가 된다.
2. 염불의 의의
만약 어떤 사람이 지금,"왜 염불을 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먼저 이 두 글자의 뜻을 갖고 설명을 해드리겠습니다.
염(念)자를 보면 하나의 금(今)자와 하나의 심(心)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구분해서 말하면 지금의 마음, 즉 금심(今心)이고 합쳐서 보면 념(念)자 이지요.
불(佛)자는 인도 말로서 붓다야(佛陀耶)의 준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이란 뜻이며 분명[明白]하게 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염불은 사람마다 본분의 일이며 사람들의 본능의 일이지요. 염불의 의미는 곧 현재 일념의 깨달음과 명백함을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한 생각[一念] 속에는 10가지 법계[十法界]가 전부 갖춰져 있는데, 이른바『십세 고금이 현재 이 한 생각[一念]을 여의지 않았으며, 티끌과 같은 국토[刹土]는 터럭 끝만큼도 떨어져 있지 않다.[十世古今, 不離當念; 微塵刹土, 不隔毫端]』는 것이지요.
만약 발심하여 염불을 한다면,
『일념의 염불[一念念佛]이
일념의 깨달음[一念覺悟]이고,
념념의 염불[念念念佛]은
념념의 깨달음[念念覺悟]이며,
일념염불하면 일념을 분명하게 아는 것[一念分明]이고,
염념염불하면 념념을 분명하게 아는 것[念念分明]이지요.
사람이라면 그 누군들 깨닫길 원하지 않을 것이며, 분명히 알기를 원치 않겠습니까? 하지만 입으로만"깨닫고 싶다, 분명히 알고 싶다."고 하지, 마음속으로는 어리석은 생각만 계속하고 있지요.
마음속에 어리석은 생각으로 가득 차 있으니 몸 또한 어리석은 일을 할 수밖에 없겠지요.
그럼 무엇이 어리석은 생각인가요?
바로 탐·진·치입니다.
또 무엇을 어리석은 일이라 하는 걸까요?
그것은 몸으로 짓는 세 가지 업인 살생[殺], 도둑질[盜], 사음[淫]과, 입으로 짓는 세 가지 업인 양설(兩舌), 악구(惡口), 기어(綺語), 망어(妄語)입니다.
이처럼 몸[身]·입[口]·의식[意]의 3가지 업이 청정하지 못하므로 매일 육근(六根)이 육진(六塵)경계를 대상으로 소리, 빛깔, 재물, 이익,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을 분별하며, 인식하고 느낄 수 있는 바깥경계에다 온갖 살림을 꾸리고 있지요.
그래서 염불은 바로 생소한 것과 익숙한 것을 바꾸는 것인데, (염불은 생소한 것이고; 탐·진·치는 익숙한 것이다.) 염불을 하면서 이렇게 인식되고 깨닫게 되는 대상[所知所覺]들을 내려놓고, 인식하고 깨달을 수 있는 주체[能知能覺] 또한 떠나서, 본래의 인식[本知]과 본래의 깨달음[本覺]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각(本覺)을 회복할 수 있다면 곧 부처님이 되는 것이지요.
성불이란, 다른 그 무엇을 보태는 것이 아니라 염불을 통하여 타성일편(打成一片: 염불이 한 덩어리가 된 상태)이 되면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더러운 것들이 깨끗이 사라지게 되는데, 더러움(번뇌)이 깨끗이 사라지면 불성은 곧 저절로 드러나게 됩니다.
3. 나[我]는 누구인가?
사람의 마음은 본래 깨달아 있고, 밝게 빛나고 있으며 그 본체는 온 법계에 두루 합니다. 다만 시작이 없는 먼 옛적부터 망령되이 움직인 까닭에 그 마음이 육진경계에 가려져 사람들의 지각(知覺)은 한쪽으로만 치우쳐, 오직 이 사대(四大) 육신으로 이루어진 작은 나[小我]만 인식하고 허공법계에 두루한 깨달음[覺性]의 큰 나[大我]를 망각하게 되었지요.
이것은 사람들이「나[我]」라고 여기는 이 몸뚱이가 지(地), 수(水), 화(火), 풍(風), 공(空), 근(根), 식(識) 등 칠대(七大)가 잠시 모여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7가지를 하나하나 해체해 본다면 이 몸뚱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겠지요.
우리들의 피부와 살, 근육과 뼈는 지대(地大)에 속하고,
피·침·오줌·눈물 등은 수대(水大)에 속하며,
따뜻한 기운은 화대(火大)이고,
기력과 움직임은 풍대(風大)이며,
신체 내외의 허공은 공대(空大)에 속하지요.2)
그리고 또 육근(六根) 즉 눈[眼], 귀[耳], 코[鼻], 혀[舌], 몸[身], 의식[意]은 근대(根大)에 속하며, 근(根)마다 하나의 식(識)이 있는데 이 6가지 식은 식대(識大)에 속하지요.
그러니 만약 이것들을 전부 분리를 시킨다면 이 사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니, 어디에 또'나'가 있다 하겠습니까?
각주: 2) 만약 허공이 없다면 사람은 숨이 막혀 죽을 것이다.
4. 가명(假名)과 가상(假相)
비록 현재는 이 7가지의 조건들이 잠시 모여서'나'가 있는 듯싶지만 사실 더러운 껍데기에 불과하며 그 속에는 비린내 나는 더러운 물건들이 잔뜩 담겨져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지금 법문을 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갑자기 똥을 가득 담은 가죽자루를 들고 주둥이를 꽁꽁 묶어서 이 법당에 들여 놓는다면, 우리는 더럽다고 코를 잡고 멀리 피하거나, 혹은 재빨리 그 자루를 법당 밖으로 멀리 내다버리겠지요. 그러면서 신성한 법당에 대한 모독이라고 여길 것입니다. 하지만 실상은 우리들, 사람들은 누구나 다 이 똥자루와 같습니다.
우리의 이 몸뚱이 자루는 진짜로 똥을 가득 담은 가죽자루보다 결코 깨끗하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똥자루는 주둥이를 묶어 놓았지만, 사람들의 이 몸뚱이 자루는 아래위로 입을 벌리고 더러운 냄새를 풍기고 있으며, 아홉 구멍에서는 항상 부정한 것들이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항상 이 더러운 가죽자루를 '나'라고 여기면서 아끼고 또 아끼지요. 그래서 이렇게 화장도 해보고 저렇게 보양도 해보는데, 만약 부처님의 안목으로 봤을 땐 정말로 어리석기 짝이 없을 겁니다.
여러분들이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나'라고 생각하는 이 몸뚱이는 '나'가 아니라 내가 사용하고 있는 하나의 물건이며, 나[我] 뒤에 소유격을 붙여 나의 것이라 불러야 옳습니다.
왜냐하면, 이 몸은 나의 것의 일부분에 속하므로 마치 내가 사용하고 있는 하나의 물건과도 같아서 내가 사용하고 싶을 때만 사용하고, 사용하기 싫을 땐 놓아 버릴 수 있어 번거롭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내려놓지 못한다면 이 몸은 도리어 짐만 될 뿐이겠지요.
보통 사람들의 습관은, 이 몸을 '나'라고 여기고 나 밖은 사람[人]이며, 많은 사람이 모여서 중생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모든 중생들이 오래 살고자하는 생각은 계속되어 끊이질 않는데 이것이 곧 수자(壽者)지요. 사실 이런 것들은 모두 가명(假名)과 가상(假相)에 불과합니다.
예를 들면, 사람과 나는[人我] 상대가[相待假]3)이고, 중생은 인성가(因成假)이며4), 수자(壽者)는 상속가(相續假)입니다.5) 그런데 만약 이런 것들이 떠나면 어디에 또「나」가 있겠습니까?
나[我]란 주재(主宰)라는 뜻으로, 결코 사람들의 이 색신(色身)의' 나'는 자신의 뜻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사람이 배가 고플 땐 음식을 먹지 않으면 안 되고, 갈증이 날 땐 물을 마시지 않으면 안 되며, 목숨이 다하면 죽기 싫어도 죽지 않으면 안 됩니다.
또한, 예쁜 걸 보면 몇 번을 더 쳐다보지 않으면 안 되고, 오욕(五慾) 6)의 경계를 만났을 때 누리지[享受] 않으면 안 되지요. 그러나 이것은 벌써 주재의 의미를 잃어버린 것이지요.
이처럼 먹고 마시고 향수(享受)하는 것은 생명에 속하는 일이나 생명에는 생멸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생명 밖에 또 하나의 지혜의 생명[慧命]이 있는데, 이것은 영원히 생멸이 없는 것이지요.
무엇이 생멸이 없는 혜명일까요?
바로 사람마다 본래 갖고 있는 지각성(知覺性)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지각성은 비록 아무런 형상이 없지만 진허공, 변법계(盡虛空, 遍法界)에 없는 곳이 없고, 아닌 곳이 없습니다.
염불을 하는 것은,
곧 자신의 법신혜명을 키우는 것이며,
부처님의 힘과 자신의 힘에 의지하여
서방극락세계 왕생을 구하는 것이며,
부처님의 지견[佛知見]을 열고
자신의 본각(本覺)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각주: 3) 사람이 있으므로 내가 있고, 내가 있으므로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4) 잠시 여러 인연을 빌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5) 아(我) 인(人) 중생(衆生)이 어어져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6)오욕(五慾): 재(財), 색(色), 명(名), 식(食), 수(睡)
5. 염불법문은 가장 쉽고 가장 빠른 지름길
과거의 조사 스님들, 예를 들면 천태지자(智者) 대사, 영명(永明) 선사, 우익(蕅益) 대사, 철오(徹梧) 선사 등과 같은 분들께서도 나중엔 정토로 돌아오셔서 오로지 염불만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종의 수행방법은 때로는 근기가 맞지 않다거나, 혹은 상당한 수행력이 있으신 스승의 가르침을 받지 못했을 때 잘못된 길로 들어서기 쉽고, 그 병폐 또한 크기 때문이었지요.
반면에 염불하는 사람들은,
믿음[信]과 원력[願], 염불수행[行]이 갖춰지고
착실하게 염불만 할 수 있다면,
부처님의 원력에 의지하고 또 자력에 의지하니
절대로 길을 잘못 들어서는 일이 없지요.
그러므로 염불법문이 가장 쉽고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 하는 것입니다.
다른 수행은 오직 자신의 힘7) 에 의지하여 미혹8) 을 모조리 남김없이 끊어야만 진리를 증득[斷惑證眞]할 수 있는데, 말로는 쉬운 것 같지만 실제로는 상당한 공부가 없으면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정토수행에는 한 가지 특별히 좋은 점이 있지요.
바로 업장을 짊어지고 왕생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극락세계에 태어난 후에는 아미타부처님의 원력에 의지해고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그리고 기타 여러 선인(善人)들과 한곳에 모여서 다 함께 수행을 하므로 장차 모든 업장이 깔끔히 소멸될 수 있습니다.
미혹이 다함에 따라 범성동거토(凡聖同居土)에서 방편유여토(方便有餘土)로, 방편유여토에서 실보장엄토(實報莊嚴土)로, 다시 상적광정토(常寂光淨土)에 이르러 부처님의 진신을 친견할 수 있지요.
이것은 근기가 낮은 중생들을 두고 하는 말인데 만약에 상근기인 경우엔 어느 불국토[佛土]에 태어나든지 막론하고 모두 네 가지 불국토[佛土]를 원만하게 수용할 수 있습니다.
염불왕생의 장점은, 극락세계에 태어나기만 하면 다시는 퇴보(退步)을 하지 않고, 다시는 업을 짓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자신이 더 열심히 수행을 하면 언젠가는 부처가 되어 중생을 구제할 것입니다.
물론 다른 종의 수행도 좋습니다. 그 누구도 비방을 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그런 수행들은 만약에 수행이 완전한 경지[究竟處]에 이르지 못하면 여전히 타락을 하게 됩니다.
옛날에 무착(無着), 세친(世親), 사자각(師子覺) 세 보살님이 계셨는데, 처음에 서로 뜻이 맞고 길이 같아 모두 유식관(唯識觀)을 닦아서, 도솔천 내원에 태어나 미륵보살을 친견하기로 발원하셨지요. 그리고 누구든지 미륵보살을 먼저 친견하게 되면 다시 돌아와서 소식을 전하기로 약속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자각(師子覺) 보살님이 먼저 입적을 하셨는데, 몇 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었지요.
그러다가 3년 뒤 세친 보살님이 입적을 하시게 됩니다.
임종 시 무착보살님은 세친보살님께 신신 당부하셨지요.
"천상에 태어나 미륵보살님을 친견한 뒤에는 반드시 내게 소식을 전해주시게."
세친 보살님은 왕생 후 3년 후에야 돌아오셨습니다.
"어찌하여 이제 왔는가?"
"내가 도솔천 내원에 태어나 미륵보살님을 친견하고 잠깐 법문을 듣고 삼배 올리고 바로 내려 왔는데 그 곳의 시간이 길어서 인간세상에서는 벌써 3년이 지난 거라네."
"그럼 사자각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왜 소식이 없는가?"
"사자각은 도솔천 외원으로 태어나 아직 내원으로 가지도 못하고 오욕락에 빠져서 아직 미륵보살님을 친견조차 못 하였다네."
무착 보살님이 듣고 보니 천상에 태어나는 것이 매우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보살님은 다시 새롭게 원을 세우고 천상이 아닌 극락왕생을 발원하게 되었지요.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세요.
사자각(師子覺) 보살님은 대승보살의 지위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천상의 오욕락에 얽히게 되는데 이 얼마나 위험한 일입니까?
기타 선정을 닦는 수행은 만약에 삼계(三界)를 초월하지 못했다면, 어느 하늘나라에 태어나든지 막론하고 천상의 복이 다하면 여전히 타락을 하게 되며, 또 지은 업에 따라 그 과보를 받아야 합니다.
《능엄경》에 나오는 무문(無聞) 비구가 아주 좋은 사례라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염불하는 사람들에게는 이와 같은 위험이 없습니다.
이런 말이 있잖습니까?
"설사 그대가 비상비비상천에 태어나더라도 극락정토로 갔다 오는 것만 못하다[饒你修到非非想, 不如西方歸去來]."
이 말은, 사공천(四空天)인 비비상천에 태어나더라도, 수명이 다 하고 복이 차면 여전히 타락을 하게 되는데,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태어나면 설사 구품연화대에 하품하생으로 태어날지라도 천천히 상품상생을 증득할 수 있으니, 비비상천보다는 월등히 낫다는 뜻입니다.
각주: 7) 자력수행
8) 삼계내의 견혹(見惑)과 사혹(思惑)
6. 자성에는 미타, 유심에는 정토
염불을 하는 동안에는 매일같이 처음에《아미타경》부터 읽어야 하고, 절에서 저녁 공부 시간에도 매일《아미타경》을 독송해야 합니다. 경전을 한번 독송할 때마다 곧 서방극락세계의 의보와 정보의 장엄[依正莊嚴]을 마음속에 한번 훈습시키고 (마음속에) 극락세계에 대한 관념(觀念)을 각인시키는 것이지요.
또한, 마치 한편의 영화필름처럼 한번 독송하면 극락세계의 그림자를 마음의 스크린[心幕]에 한번 방영(放映)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 지속하다 보면 육근(六根)이 접촉하는 것이 전부 극락세계의 최상의 경계이며, 묘상장엄(妙相莊嚴)이지요.
지금은 비록 극락세계에 태어나지 못했지만 마음속은 이미 서방극락세계의 장엄한 경계들로 둘러 쌓여있으며, 사람들의 의식은 어느새 극락세계의 미묘한 장엄[妙相莊嚴]의 분위기 속에 잠겨 있게 되는 것이지요.
임종이 되었을 때 훈습된 업[熏業]이 나타나서 평소 부르던 아미타불과 여러 성인(聖人)들이 이때에는 진짜로 모습을 나투시어 여러분을 극락으로 영접[接引]할 것입니다. 평소에 생각하고 그리던 서방정토의 청정하고 미묘한 경계가 그 찰나에 눈앞에 나타나게 됩니다. 중생이 바로 부처이고 부처가 곧 중생이니, 모든 것은 이 성품 속에 원만히 갖춰져 있습니다.
또 마음이 곧 국토요, 국토가 바로 마음[心卽土, 土卽心]인데, 모든 것은 오직 마음으로부터 드러난 바「유심소현(唯心所現)」이니, 다만 염불의 공부가 어느 정도인지 봐야하겠지요.
만약 신(信), 원(願), 행(行)이 견고하여 확고부동하다면 자성과 불성이 한 덩어리가 되어[打成一片] 그 자리가 바로「자성이 곧 불성이요, 불성이 곧 자성」인 것입니다.
부처님은 무량한 수명[無量壽]과 무량한 광명[無量光]을 구족하셨고, 중생 또한 무량한 수명과 무량한 광명을 갖추었습니다. 또 아미타불께는 극락세계의 의·정 이보와 상호의 장엄[依正二報相好莊嚴]이 있듯이, 중생에게도 의·정 이보와 상호장엄[依正二報相好莊嚴]이 있습니다.
《아미타경》에서는『전부가 아미타부처님이 법음을 널리 펴기 위해 변화하여 만들어진 것이다[皆是阿彌陀佛, 欲令法音, 宣流變化所作].』고 하셨는데, 이 경문으로부터 서방극락세계의 온갖 경계는 모두 아미타불의 복덕(福德)과 업상(業相)에 따라 유심소현(唯心所現)임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이렇게 나툴 수 있다면, 중생의 성품과 부처님의 성품 또한 다르지 않는데 중생이라고 어찌 나툴 수 없겠습니까? 그러므로 자성에는 미타요, 유심에는 정토인 것입니다.
성품 속에서는 어디까지가 중생의 경계선이고, 어디까지가 부처님의 경계선 인지 가릴 수가 없으며, 정토에도 무엇이 유심이고 무엇이 비심(非心) 9) 인지 지목할 수 없습니다.
서방미타와 자성미타, 서방정토와 유심정토는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전체이니까요. 하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유심이란 사람들이 말하는 가슴속의 그 육진경계를 반연하는 마음의 그림자[六塵緣影]인 망심(妄心)이 아니라 모든 법이 오직 마음[法法唯心]이라는 것입니다.
또 자성(自性)이란 사대(四大)가 잠시 모여 이루어진 이 몸의 습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중생들이 본래 갖고 있는 자성(自性)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염불하는 사람은 매일《아미타경》을 읽으면서 이 점을 확실히 알아둬야 하며 자신의 믿음을 견고하게 해야 합니다.
각주: 9) 비심(非心): 마음이 아닌 것
7. 한마디 아미타불은 최상승 법, 무량한 법문(法門)을 포괄함
《아미타경》은 석가모니부처님께서 누가 묻지도 않았지만 당신께서 스스로 설하신[無問自說] 경전인데, 서방극락세계의 의·정 이보장엄(依正二報莊嚴)과 염불하여 극락왕생할 것을 설하셨습니다.
《아미타경》의 내용은《법화경》과 같은데,《법화경》도 사리불 존자에게 설하셨으며 무문자설(無問自說)입니다.
부처님께서《무량의경(無量義經)》을 설하신 후, 무량의처삼매(無量義處三昧)에 들어 몸과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미간의 백호상광(白毫相光)을 놓으셔서 동쪽으로 팔천의 삼천대천세계[東方八千土]를 비추시고 갖가지 상서로운 모습을 나투시니, 법문을 듣는 대중들이 여러 가지 의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미륵보살님과 문수보살님이 대중을 위해 의문을 풀어준 후에, 부처님께서는 곧 삼매에서 편안히 나오셔서 청하여 묻는 사람이 없었지만 사리불 존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모든 부처님의 지혜는 매우 깊고 무량하다. 그 지혜의 문은 이해하기 어렵고 들어가기가 어렵다. 일체 성문 벽지불도 알 수 없다. … 일찍이 없었던 매우 깊은 법을 성취 하셨으며 요점을 말하자면, 무량무변한 일찍이 없었던 법을 부처님은 모두 성취하셨느니라."
제가 늘 말하기를,『《법화경》은《아미타경》을 자세히 설한 경전이고,《아미타경》은《법화경》을 간략하게 설한 경전이다.』고 했지요.
이 두 경전은 모두「모든 현상이 곧 이치임[全事卽理]」을 설하셨는데, 다른 여러 경전처럼 많은 법상(法相)과 법수를 설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이치를 깨달아 수행하는 법문과는 다릅니다.
두 경전에서 설하신 내용은 완전히 현량심(現量心)으로 현량경계(現量境界)를 관찰하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법화경》과《아미타경》에 대해 자세하게 연구해 보셨다면 그 속의 내용들을 대조하면 바로 알 수 있을 겁니다. 《법화경》은 총 7권 28품으로 이루어졌는데 앞의 14품은「방편을 열어 진실을 드러내는[開權顯實] 내용」이고, 뒤의 14품은「가까운 형적[跡]을 열어서 먼 과거의 본적[本]을 드러내는[開近顯遠] 내용으로 이 두 경전에서는 모두 최상승의 법을 설하셨습니다.
그 예로《아미타경》에서는,
『만약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아미타부처님의 이름을 듣고 그 이름을 혹 하루나 이틀 사흘, … 이레 동안 한 마음으로 아미타불의 이름을 외우되, 조금도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으면 그 사람이 목숨을 마칠 때에는 아미타부처님과 모든 성인들께서 그 앞에 나타나시므로 이 사람이 목숨을 마칠 찰나에 마음이 뒤바뀌지 아니하고 곧 아미타부처님의 극락세계에 태어나게 되느니라.』고 하셨고,
《법화경》〈제23 약왕본사품(藥王本事品)〉에서는,
『이 경전을 듣고 설한 바대로 수행하여 목숨이 마칠 때에는 곧 안락세계로 왕생하여 아미타불과 대 보살들이 계시는 곳에서, 연화 가운데 보좌(寶座) 위에 태어날 것이다.』고 하셨는데 그 뜻은 완전히 같습니다.
기타《아미타경》에서 설하신 국토의 장엄, 부처님의 수명, 부처님의 광명 또는 육방불(六方佛), 제불호념(諸佛護念) 등이 비록《법화경》의 문장의 조목과 어휘의 배치에 상세하고 간략함의 차이는 있으나, 그 경계와 의의(意義)는 이치적으로 둘이 아닙니다.
따라서 한마디 아미타불은 최상승의 법이며, 무량한 법문(法門)을 포괄하고 있습니다.
8. 아미타불을 염하면 육근이 청정해짐
한마디 아미타불을 불러 상응(相應)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육근청정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금 염불하는 동안에,
눈은 항상 부처님을 바라보니, 안근(眼根)이 청정이요,
귀는 자신과 대중의 염불소리를 들으니, 이근(耳根)이 청정이요,
코는 향로속의 향기를 맡으니, 비근(鼻根)이 청정이요,
혀는 반복하여 염불만 하니, 설근(舌根)이 청정이요,
이 몸은 청정도량에서 매일 부처님께 절을 올리니, 신근(身根)이 청정이요,
염불하고 절하고 마음속으로 부처님을 생각하니, 이것은 곧 의근(意根)이 청정해지는 것입니다.
육근이 청정하면 삼업(三業)도 따라 청정해지는데, 삼업이 청정하니,
몸으로는 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淫),
입으로는 망어(妄語), 기어(綺語), 양설(兩舌), 악구(惡口),
의식[意]으로는 탐욕[貪]과 성냄[瞋], 그리고 어리석은[痴] 생각이 일어나지 않으니, 그 자리가 바로 십선업(十善業)이 되는 것입니다.
수행자가 가장 대치(對治)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인데, 이 한마디의 아미타불로 삼업을 다 거두어들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 지속하다 보면 관념(觀念)이 저절로 성숙(成熟)해지고 정토의 인[淨因]이 증장(增長)하여 임종 시에 반드시 극락왕생을 하게 됩니다.
9. 성불의 원리
보통 사람들은 부처가 되는 것을 아주 어렵게 생각하는데 사실상 어렵지가 않습니다. 부처와 중생은 모두 일종의 관념의 공부로 이루어 졌으니까요.
부처님의 일념에는 십법계(十法界)가 구족하고 중생의 일념에도 십법계(十法界)가 구족합니다. 만약에 한 생각 욕심내는 마음[貪心]이 일어나면 아귀(餓鬼)이고, 한 생각 성내는 마음[瞋心]이 생겨나면 지옥(地獄)이며, 한 생각 어리석은 마음[癡心]이 일어나면 곧 축생(畜生)입니다.
또, 한 생각 의심하고 잘난체하는 마음[疑慢心]이 일어나면 수라(修羅)이며, 한 생각이 오상(五常)10), 오계(五戒)에 떨어지면 사람[人道]이고, 한 생각이 상품십선(上品十善)에 떨어지면 바로 하늘[天道]입니다.
만약에 사성제(四聖諦)를 생각하면 성문(聲聞)이고, 12연기(緣起)를 관찰하면 연각(緣覺)이며, 육바라밀을 생각하면 보살이고, 자리이타(自利利他)와 만행평등(萬行平等)을 관찰하면 곧 부처입니다.
또 마치 세상 사람들에게 각각의 관념이 있듯이 선비[士], 농민[農], 장인[工], 상인[商], 군인[軍], 정치인[政], 경찰[警], 학자[學]들도 모두 관념(觀念)으로부터 이루어졌으니 자신이 무엇을 관념하면, 곧 그 무엇이 된다는 것입니다.
염불하는 사람들 또한 매일 눈으로 부처님을 뵙고, 입으로는 부처님 명호를 부르며, 몸으로는 부처님께 예배하고, 마음속으론 부처님을 생각하고, 귀로는 염불소리를 들으며, 시시각각 극락왕생을 관념으로 한다면, 반드시 서방정토에 태어나게 될 것이며 결정코 부처가 될 것입니다.
각주: 10) 오상(五常):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
10. 염불과 계율의 중요성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중국불교는 자연적인 추세(趨勢)에 따라 후세 사람들에 의해 여러 가지 종파로 나눠졌는데 천태종(天台宗), 현수종(賢首宗), 법상종(法相宗), 정토종(淨土宗), 진언종(眞言宗), 선종(禪宗), 율종(律宗) 등이 있습니다.
이런 종파들은 모두 후세 사람들이 법맥의 전승관계와 공부의 전문성에 대한 필요에 의해 세워진 것입니다.
다른 종파들은 모두 단순하지만 이 종파들 가운데 오직 정토종과 율종만이 그 수행방법과 교리[敎義]가 다른 종파 속으로 스며들어 다른 종파들이 모두 공유(共有)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부처님의 칠중(七衆) 제자가 모두 다 같이 배우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천태종(天台宗)과 현수종(賢首宗), 삼론종(三論宗)과 법상종(法相宗) 등은 각 종(宗)의 교판(敎判)이 다르고 각 종파의 관법수행 또한 다르지만 모두 정토수행을 최상의 방편으로 삼으며 모두 염불(念佛)하여 성불(成佛)할 수 있다고 하지요. 비록 선종이라 할지라도 염불하는 자가 누군가를 참구(參究)합니다.
출가자나 재가자를 막론하고 불교를 믿는 동기(動機)가 어떻든 간에, 불법을 배우는 유일한 목표는 염불하여 성불하는 길을 벗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와 동시에 불법을 배워 부처님이 되는 과정 속에서는 공통으로 부처님의 청정한 계율을 지켜야 합니다.
예를 들면, 중국 남북의 각 대총림에서는 무슨 종 무슨 파를 막론하고 아침 저녁으로 법당에서 요불(繞佛)을 할 때 모두 나무아미타불을 부르고 입을 열어 말을 할 때나 대답을 할 때도「나무아미타불」을 부릅니다.
당연히 그 최종의 목적도 서방극락세계로 왕생하여 부처님을 만나 뵙고 불도를 이루는 것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를 보더라도 염불법문(念佛法門)이 얼마나 쉽고 보편적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계율 또한 매우 중요한 일인데, 불교가 흥성하고 안하고는 대체로 사람들이 계율을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계율을 잘 지킨다면 불법은 이 세상에 오랫동안 머물 것이며, 그렇지 못할 경우 세월을 따라 결국 망하여 없어지고 말겠지요.
11. 지계는 부처님의 유훈(遺訓)
부처님 당시에는 어디서나 몸소 본보기가 되어주셨고, 사람들은 그분을 다 스승으로 모셨으며,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에는 모두 계율[戒]를 스승으로 삼았습니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려 할 때에 사중(四衆) 사중(四衆):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 제자들은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더 머무시기를 청하려고 그 주위를 둘러싸고 머리를 잡고 슬피 울고 있었는데, 그때 아나율[無貧] 존자께서는 극도의 슬픔 속에서도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부처님이 계실 때는 대중들이 부처님을 의지하였지만 지금은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려 하시니, 불법이 이 세상에 오래오래 머물게 하려면 몇 가지 일을 부처님이 계실 때 꼭 여쭤봐야 하겠구나."
이때 아난존자께서도 부처님 곁에 서서 얼굴을 가리고 슬피 울고 계셨습니다. 아 존자는 항상 부처님을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셨고, 불법을 전해 받은 분이셨으며, 부처님이 매번 설법하실 때마다 시자가 되어 옆에 계셨던 분이셨습니다.
그런 까닭에 아나율존자께서는 아 존자를 시켜 4가지 일을 부처님께 여쭙도록 하셨습니다.
그중 처음 두 가지 일은
첫째, 부처님께서 살아계실 때는 대중이 부처님께 의지하며 머물렀는데,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후에는 무엇을 의지해 머물러야 하는가?
둘째, 부처님께서 살아계실 때는 대중이 부처님을 스승으로 모셨지만,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후에는 무엇을 스승으로 삼아야 하는가?
아 존자가 부처님께 여쭙자 부처님께서는,
"내가 열반에 든 후에 대중은 마땅히 사념처(四念處)에 의지해 머물러야 하고, 계율을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를 미루어 생각해봐도 우리는 계율이 후세 사람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무릇 부처님의 제자라면 모두 부처님의 계율을 지켜야하며, 설사 전부는 다 지키지 못하더라도 그 중에서 중요한 계율만이라도 골라서 꼭 지켜야 합니다.
몇 가지를 지키더라도 지키지 않는 것보단 훨씬 낫지 않겠습니까?
남북의 각 대총림마다 각자의 규칙이 있고, 각자의 가풍이 있는데 이런 규칙과 가풍이 바로 사람들이 다 함께 지켜야할 계율인 것이지요.
여쭈어 보건대, 어느 절 어느 암자든 규칙이 없습니까?
사람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서로 왕래하거나, 사람을 대하고 물건을 받을 때도 다 일정한 선[界限]과 절제가 있듯이 당연히 지계와 염불 또한 똑같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근대(近代) 율종의 대덕(大德)이신 홍일율사(弘一律師)께서도 비록 계율을 널리 펴시고 가르치셨지만, 개인적으로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염불을 하셨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염불을 권하셨습니다.
그리고 체한(諦閑) 노스님이나 허운(虛雲) 노화상 같은 분들께서도 염불을 아주 중요시 하셨는데, 이른바「교리적으로는 본종의 가르침을 펴시고, 수행은 정토를 닦음[敎演本宗, 行修淨土]」을 하셨지요.
12. 부처님의 칠중(七衆) 제자
부처님께는 칠중(七衆)제자가 있습니다.
첫째는 비구승(比丘僧)인데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은 남자이고,
둘째는 비구니(比丘尼)로서 출가 후 구족계를 받은 여자이며,
셋째는 식차마나로서 번역하면 학법녀(學法女)인데 사미니가 구족계를 받으려 할 때 18세부터 20세 사이 별도로 육법「불음행[不淫行], 불투도[不偸盜], 불살생[不殺生], 불허광어(不虛誑語), 불음제주(不飮諸酒), 불비시식(不非時食)」을 배웁니다. 그리고 이 기간이 지나면 구족계를 받아 비구니가 될 수 있지요.
넷째는 사미인데 출가하여 10계를 받은 남자이고,
다섯째는 사미니로서 출가 후 10계를 받아 지닌 여자입니다.
여섯째는 우바새이며 재가자로서 삼보를 가까이 모시는 남자이고,
일곱째, 우바이인데 재가자로서 삼보를 가까이 모시는 여자를 말합니다. 재가자로서 염불하는 사람은 먼저 삼보에 귀의해야 하며, 마땅히 오계를 받들어 지녀야 합니다.
13. 삼보에 귀의한다는 것은
그러면 무엇이 삼보인가?
바로 불보(佛寶), 법보(法寶), 승보(僧寶)입니다.
불(佛)은 현재 이 사바세계의 교주이신 석가모니부처님, 내지는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부처님이시고,
법(法)은 법칙「궤칙(軌則)」을 뜻하는데 모든 부처님이 말씀하신 언어와 그 가르침이며,
승(僧)은 법을 전해 지닌다는 뜻으로 불법을 이어받고 후세사람들의 모범이 될 수 있는 사람을 말하지요.
삼보 가운데는 자성삼보(自性三寶), 별상삼보(別相三寶), 주지삼보(住持三寶) 등이 있습니다. 자성삼보(自性三寶)는 모든 중생들에게 본래 갖춰있는 것으로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신령스럽게 밝고 깨달아 비추는 것[靈明覺照]이 불보(佛寶)이고,
고요하고[寂], 항상하며[常], 원만하고[圓], 청정한[淨] 것을 법보(法寶)라고 하며,
미묘한 즐거움[妙樂]을 융합[融和]함을 승보(僧寶)라고 합니다.
그럼 무엇을 별상삼보(別相三寶)라고 하는가?
이를테면 이 삼보는 각각 인(人), 법(法), 인(因), 과(果), 성(性), 상(相), 체(體), 용(用)의 분별이 있는데 묘각(妙覺)과 부처님의 삼신(三身 - 法報化)은 불보(佛寶)이고, 진여의 체[眞如理體]와 일체 방편법문을 다 법보(法寶)라고 부르며, 오십위(五十位)의 현성(賢聖)은 다 승보(僧寶)에 속합니다.
또 무엇을 주지삼보(住持三寶)라 하는가?
이 삼보가 세상에 머물면서 불법이 전승되어 사라지지 않고 세간의 모든 중생에게 이익을 주고 의지처가 되어주는데,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불상과 사리가 불보(佛寶)이고, 독송하는 경(經)·율(律)·논(論), 삼장이 곧 법보(法寶)이며, 부처님께서 중생들을 이익케 하는 사업[利生事業]을 이어받은 출가스님들이 바로 승보(僧寶)입니다.
여러분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삼보에 귀의한다는 것은 절대 다른 삼보에 귀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성 속에 본래 갖춰져 있는 삼보에 귀의한다는 사실입니다.
부처님의 불(佛)을 번역하면, 지각(知覺)할 때 각(覺)인데 사람마다 깨달음의 성품[覺性]이 내재되어 있으므로 부처님께 귀의한다는 것은 바로 자신의 각성과 사람마다 자신의 각성(覺性)으로부터 끝없이 흘러나오는 묘한 진리[妙理]에 귀의하는 것이지요.
법에 귀의한다는 것은, 성품 속에 본래 갖춰져 있는 진여의 묘한 이치[眞如妙理]와 사람마다 성품으로부터 지속적으로 발휘(發揮)되는 묘한 이치[妙理]에 귀의하는 것입니다. 승가에 귀의한다는 것은, 곧 자신의 깨달음의 법을 지속시키는 융화묘성(融和妙性)에 귀의하는 것입니다.
절대 다른 종교처럼 오직 신만이 신이 되고, 인간은 절대 신이 될 수 없는 것과는 다릅니다. 사람은 영원히 신의 노예가 된다는데 이건 너무나 불공평하지 않습니까?
불교의 가르침은『모든 법이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다.』고 합니다. 사람마다 불성(佛性)이 있고, 사람마다 염불(念佛)하여 성불(成佛)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일반적으로 귀의(歸依)를 할 때에 비록 현재의 주지삼보(住持三寶)에 귀의를 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람들을 부처님 법으로 인도하기 위한 방편이며, 자성삼보(自性三寶)에 귀의하는데 주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궁극적인 불도(佛道)를 이루었을 때, 절대 그 어느 부처님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꼭 명심해야 합니다.
부처님이 된다는 것은 절대 다른 사람이 대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어느 누군가가 하사해 주는 것은 더더욱 아니며, 오직 스스로 염불하여 자성속의 부처님이 되는 것입니다.
삼귀의 이외에도 최소한 오계(五戒)를 잘 지켜서 염불을 돕는 보조수행[助行]으로 삼아야 합니다.
14. 오계의 생활화
오계(五戒)란 곧 불살생(不殺生), 불투도(不偸盜), 불사음(不邪淫), 불망어(不妄語), 불음주(不飮酒)입니다.
불살생은 바로 인자함[仁]이요,
불투도는 의리[義]이며,
불사음은 예의[禮]요,
불망어란 신용[信]이요,
불음주란 곧 지혜[智]입니다.
이 5가지 계율을 잘 지키면 세간의 오상(五常: 仁·義·禮·智·信)을 갖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자비와 사랑[慈愛]이지 잔인함[殘忍]이 아니요,
도덕과 의리[道義]이지 억세고 포악함[强暴]이 아니며,
예의와 양보[禮讓]이지 삿되고 왜곡됨[邪曲]이 아니요,
믿음과 진실[信實]이지 속임[欺詐]이 아니며,
이성과 지혜[理智]이지 어리석음이 아닙니다.
염불하는 사람들이 오계를 잘 지킨다면, 인애(仁愛), 도의(道義), 예양(禮讓), 신실(信實), 이지(理智)를 기를 수 있어, 사회에서는 정인군자(正人君子)가 될 수 있고, 또한 정토왕생의 자량(資粮)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삼귀의와 오계(五戒) 외에도 37 조도품(助道品) 속의 사념처(四念處)와 팔정도(八正道)에 대해서도 자주 생각해 봐야 합니다.
15. 사념처와 팔정도란
무엇이 사념처인가?
첫째, 몸이 청정하지 않음을 관찰해야 합니다[觀身不淨].
이 몸은 온 곳이 깨끗하지 못하고 12) ,
가는 곳 깨끗하지 못하며 13) ,
그 종자 또한 깨끗하지 못하고 14),
또 안과 밖이 깨끗하지 못하며15) ,
모든 것이 깨끗지 못하니,「구경부정(究竟不淨)」입니다.
둘째, 느낌이 괴로움임을 관찰합니다[觀受是苦].
대강 얘기 하자면, 고통에는 여덟 가지가 있는데,
태어나는 괴로움[生苦],
늙는 괴로움[老苦],
병드는 괴로움[病苦],
죽는 괴로움[死苦],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만 하는 괴로움[愛別離苦],
원수와 만나야만 하는 괴로움[怨憎會苦],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求不得苦],
오음이 치성한 괴로움16) 등이 있습니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한량없는 고통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집에서든, 사회에서든 번뇌가 없을 수 없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십중팔구지요. 이런 뜻대로 되지 않는 일, 내 맘을 따라주지 않는 일들이 곧 괴로움입니다.
셋째, 마음이 무상함을 관찰합니다[觀心無常].
우리의 마음이 찰나 생멸을 거듭해서 항상 머무르지[常住] 않음을 관찰해야 하지요.
넷째는 법에 무아[觀法無我]임을 관찰합니다.
모든 법은 가명(假名)과 가상(假相)이고, 어느 곳에도 참된 나란 없습니다.
간략히 설명하면, 이것이 곧 사념처(四念處)인데, 늘 이렇게 관찰하면 염불에 대한 신심을 확고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럼 무엇이 팔정도(八正道)일까요?
바로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염(正念), 정정(正定)입니다.
바른 견해[正見]란, 삿된 견해를 갖지 않는 것인데 보지 말아야 할 것은 보지 말아야 하며, 자신의 눈이 오염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바른 사유[正思惟]란, 마땅히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생각지 않는 것이며, 자신의 순결한 마음을 오염시키지 않는 것입니다.
바른 말[正語]이란, 하지 말아야 할 말은 하지 않으며, 자신의 입을 더럽히지 않는 것이지요. 바른 직업[正業]은, 정당한 직업을 갖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염불하는 사람과 사회에서 전문적으로 하는 자선사업, 의사가 되어 아픈 사람을 치료하고,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것 등도 일종의 직업이지요.
또 관(棺)을 파는 일, 소를 잡고 돼지를 죽이는 일도 일종의 직업입니다.
이른바「시인(矢人) 17) 은 오직 사람이 다치지 않음을 근심하고, 함인(函人)18) 은 오직 사람이 다칠까 걱정한다.」는 말이 있듯이 직업은 다 직업이지만 후덕(厚德)하고 복을 쌓을 수 있는 바른 직업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른 정진[正精進]은, 정업과 연관이 있는데 위에서 말한 각종 직업을 가진 사람들 모두가 정진(精進)을 하지만, 하나는 해탈하여 부처님의 길로 나아가는 정진이고, 하나는 삼악도로 타락하는 정진입니다. 또 염불하는 사람들이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밤늦게까지 용맹정진 하는데, 이것이 곧 성불의 길을 향한 바른 정진[正精進]입니다.
바른 생각[正念]은, 염(念)자는 곧 사람들의 염두(念頭)로서, 우리의 마음속에서 생각이 막 일어나려 하나 아직 일어나지 않은 그때를 염두라고 합니다. 정념(正念)은 어디서나 착한 마음, 좋은 마음으로 출발하여 조금도 바르지 않은 삿된 생각을 갖지 않는 것이고,
바른 선정[正定]이란, 만약 정당한 일이라고 생각되면 전심(全心)으로 하는 것인데 무엇이 정당한 일일까요?
염불하는 것이 정당하고 좋은 일이므로 전심으로 염불하여 일심불란(一心不亂)에 이르고, 염불삼매에 드는 것이 곧 정정입니다.
바른 생활[正命]이란, 위에서 말씀드린 갖가지 정당한 일로써, 자신의 신·구·의(身口意)를 점검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청정한 삼업(三業)으로 정법(正法)을 좇아 사는 것이며, 절대 다른 삿된 삶을 살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팔정도(八正道)를 해석한 것은 다만 초심자를 위한 방편설이며, 교리적으로 깊이 들어가서 얘기하면 이처럼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12) 사람은 음부로부터 태어났기 때문이다[來處不淨]」
13) 사람이 죽으면 피 고름으로 변하여 나중에 흙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去處不淨]
14) 부모의 정혈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種子不淨]
15) 안으로는 피, 근육, 뼈 등이고 밖으로는 모발, 손발톱, 치아 등이 깨끗하지 못하다[內外不淨]
16)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이 바깥경계에 탐착하여 번뇌의 불길이 치솟아 꺼질 줄 모르는 고통이며, 이는 모든 고통의 근원이다[五陰盛苦].」
17) 시인(矢人): 화살을 만드는 匠人
18) 함인(函人): 갑옷과 투구를 만드는 사람
16. 염불의 방법
염불인은 일심으로 염불하는 것 외에 몸과 마음의 해이해짐을 막고, 믿음[信]과 원력[願] 염불수행[行]을 견고하게 하기 위해 항상 사념처(四念處)와 팔정도(八正道)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점검하고 단속해야 합니다.
염불하는 방법도 마땅히 자신의 근기에 따라 알맞게 선택할 수 있는데, 대체적으로 지명염불(持名念佛), 관상염불(觀想念佛), 관상염불(觀象念佛), 실상염불(實相念佛)이 있습니다.
그 밖에 가장 쉬운 방법이 호흡염불인데, 숨을 들이 쉴 때"나무아미", 내쉴 때"타불"을 하는 것이지요.
한 숨이라도 남아있으면 한번 염불을 하게 되며 오래오래 지속하다 보면 행주좌와(行住坐臥)에 한마디 아미타불이 끊이지 않게 됩니다.
이것이 곧 참다운 정진(精進)입니다.
7. 실천치 않으면 진정한 지혜 아님
사람이 임종 시 마지막 숨이 끊어지려할 때, 그 사람의 일생 동안 지은 업은 최후의 호흡 속에서, 한마디 아미타불을 따라 극락왕생하여 부처님을 친견하게 됩니다.
염불왕생에 관하여 출가와 재가, 남녀노소의 임종 시 갖가지 상서로운 모습은 모두《왕생전(往生傳)》에 수록되어 있어서, 이런 사례는 하도 많아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제가 출가 후 직접 두 눈으로 본 사례만도 스무 몇 분이나 되는데, 기타 전해들은 사례는 너무 많아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의 신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제가 직접 본 사례 가운데 세 분의 사례만 들어 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출가스님이신 수무(修無) 법사 이십니다.
이 분은 영구(營口) 사람으로 벽돌과 기와를 쌓는 장인(匠人) 출신이었습니다. 생활형편이 좋지 않았고, 일할 때도 고생이 싫었기 때문에,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고통만 있고 즐거움이 없다는 것을 느끼고 항상 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방법을 생각하였지요.
나중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염불이 좋다는 말을 듣고 곧 발심하여 염불을 하였습니다. 출가 후 정식으로 불법을 듣고 난 그는 염불하는 마음이 더욱 더 간절해졌으며, 만나는 사람마다 염불할 것을 권하셨습니다.
민국18년(1929) 제가 동북 하얼빈 극락사에서 체한(諦閑) 노스님을 초청하여 계를 전(傳)할 때였습니다.
어느 날, 한 스님이 저를 찾아와서, "영구에서 수무(修無)라는 스님이 오셨는데 전계(傳戒)하는 동안 발심하여 고행을 하시겠답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수무 스님을 제게 모셔왔는데 제가 물어봤지요.
"뭘 할 수 있습니까?"
"저는 환자를 돌보는 일을 하겠습니다."
극락사 감원(監院)직을 맡고 있던 정서(定西) 스님께서 요사채 방 하나를 내 드렸습니다.
그 뒤로 열 며칠이 지난 뒤, 수무 스님이 저를 다시 찾아와서 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정서 스님이 옆에서 말씀하셨지요.
"스님이 스스로 발심하여 환자를 돌보겠다고 해놓고선 열흘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가겠다고 하십니까? 너무 항심(恒心)이 없는 게 아닙니까?"
"제가 다른 곳으로 가려는 게 아니라 극락왕생을 하려 합니다. 부탁이니, 감원스님께서 자비심을 내시여 장작 몇 백 근만 준비하여 주시고 제가 죽은 뒤 다비를 해 주십시오."
"언제 갈려는가?"
"열흘 내로 갈 겁니다."
이 말을 마친 수무 스님은 자기 방으로 되돌아갔습니다.
다음날 수무 스님은 저와 정서 스님을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스님들께 휴가를 부탁드립니다. 제가 오늘 갈 건데 방 하나를 잡아 주시고, 거사님 몇 분만 부르셔서 염불로 저를 배웅케 해 주십시오."
정서 스님은 빈 방을 한 칸 찾아 널판자 몇 개를 펴서 침대를 만들고, 또 외료(外寮)에서 스님 몇 분을 모셔와 염불을 해 드렸습니다.
수무 스님이 왕생하기 전 염불을 해 드리려고 모인 사람들이,
"수무 스님! 오늘 곧 불국토로 가실 텐데 시를 몇 구절 적어 주시던지, 아니면 게송이라도 지으셔서 기념으로 남겨주십시오."라며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수무 스님은,
"나는 태어날 때부터 머리가 둔해서 시를 지을 줄도 모르고 게송도 지을 줄 모르오. 다만 경험의 말을 여러분께 들려주고 싶은데, 바로 말만하고 실천을 하지 않는다면 그건 진정한 지혜가 아니라오[能說不能行, 不是眞智慧]."라고 말씀하셨지요.
수무 스님의 이 말을 들은 대중은 모두가 마음이 놓이고 편안해짐을 느꼈지요.
이어 대중이 다 같이 소리 내어 염불하니 수무 스님도 서쪽을 향해 앉아 염불을 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렇게 염불을 한지 15분도 채 못 되어 스님은 왕생을 하셨습니다.
상주(常住)에서는 임시로 감실(龕室)을 하나 만들어 밤이 되자 그를 감실로 옮겼습니다. 비록 그때가 더운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얼굴이 맑고 수려함이 평소와 달랐을 뿐만 아니라 몸에서는 조금도 나쁜 냄새가 나지 않았으며, 파리 한 마리도 달려들지 않았습니다.
체한 노스님은 물론 일반 신도들도 서로 다투어 보러 몰려들었으며, 그 희유함을 찬탄하셨지요.
이튿날, 나무에 불을 붙여 다비식을 지내는데 빨간 불과 흰 연기에 조금도 이상한 냄새가 없었습니다.
그 후 반대부(潘對鳧) 노거사님께서 이 일을 들으시고 특별히 수무 스님의 생애와 염불사적에 관하여 한편의 문장을 지어서 여러 사람들에게 나누어 드리면서, 스님들 가운데서도 좋은 모범이라고 칭찬을 하셨습니다.
18. 오고감이 자유자재함
두 번째는 정석빈 거사님인데, 산동성 즉묵(卽墨) 사람으로 장사를 하였습니다. 불경(佛經)을 읽다가 염불이 좋다는 것을 알고는 곧바로 발심하여 염불하셨으며, 평생 장가를 가지 않았습니다.
민국 22(1933)년 청도에서 제가 귀의와 염불에 대한 법문을 해드렸는데, 그 뒤로 그의 염불하는 마음은 더욱 더 간절해졌지요. 그래서 집안일은 모두 동생에게 내맡기고 그는 일심으로 염불만 하였습니다.
그 후 그는 또《아미타경》을 배워 능숙하게 강의를 하실 수 있었는데, 해마다 꼭 즉묵에서 청도로 오셔서 하루 이틀 묵어가곤 하였으며, 평도현(平度縣)의 불자들에게 몇 차례씩 법문을 해주곤 하셨습니다.
민국24년에는 정거사가 저를 초청하여 평도에서 법문을 한 적도 있었지요. 28년 봄, 정거사는 또 청도를 거쳐 평도현에서 경전강의를 하셨는데, 그 뒤로 2주 후 평도현에서 아는 사람이 와서 저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스님, 들으셨습니까? 정석빈 거사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이 말을 듣고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열흘 전 정거사가 여길 떠날 때만해도 괜찮았는데 이렇게 빨리 갈 줄이야! 그래 무슨 병으로 어떻게 돌아가셨는가?"
그가 제게 들려준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정석빈 거사님이《아미타경》강의를 마친 후, 법문을 듣던 사람들은 다 흩어지고 일을 보던 사람만 몇 분 남게 되었습니다. 서로가 오랜 친구사이였기에 저녁식사를 같이 하게 되었지요.
식사를 마친 후 정거사는 친구들에게 가겠다며 방 한 칸 빌려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의아하게 여긴 한 친구가 물었지요.
"간다면서 방은 왜 빌리는가?"
"내가 오늘 극락왕생을 하려는데 다른 사람 집에서 죽으면 혹여 금기를 범할까 그러네."
그러자 친구들이 말했습니다.
"자네와 우린 오랜 친구 사이가 아닌가. 극락왕생이 아니라 중병이 들어 우리 집에서 죽어간다 해도 마땅할진대 무엇 하러 따로 방을 찾는단 말인가. 지금 여기에는 불법을 믿고 염불하는 불자들이 많이 있으니, 자네가 정말로 왕생할 수 있다면 이 지방에서 염불하는 사람들에게 한번 보여주시고 본보기가 되어 주시게나."
이렇게 해서 그의 친구는 자신의 집에서 방 두 칸을 정리해서 내어주고 침대를 하나 만들어 주었습니다.
정거사는 친구들과 간단한 작별인사를 하고는 옷을 몇 번 툭툭 털고는 침대위에서 서쪽을 향해 가부좌를 틀고 단정히 앉았습니다.
"여러분께 휴가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지금 가려 합니다. 우리가 지중한 불법의 인연으로 만났으니, 마지막 가는 길에 염불로 저를 배웅해 주십시오.”
이때 옆에 있던 친구가 말했습니다.
"임종이 다 됐는데 아직도 게송을 짓지 않았는가? 우리에게 기념으로 남겨주시게!"
"무슨 게송이 더 필요하단 말인가? 지금 나의 이 모습을 보고 있지 않는가. 오고감이 자유자재하다네. 자네들도 나처럼만 될 수 있다면 이 얼마나 좋은 기념이란 말인가?"
이 말을 마친 정거사는 대중의 장엄한 염불소리 속에서 15분도 채 안되어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극락왕생을 하셨습니다.
그 후 평도현 일대 사람들은 모두 염불이 좋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불교를 믿게 되었습니다.
정거사의 동생은 처음엔 형님이 가정과 사업을 다 버리고 염불만 하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는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지요.
나중엔 형님의 여러 차례 권유로 마지못해 염불을 하였지만 간절하지는 않았습니다.형님이 왕생할 때와 갈 시간을 미리 알고, 오고감이 자재(自在)한 것을 직접 본 동생은 염불이 절대로 사람을 속이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일심으로 염불하다가, 3년 후 본인도 미리 갈 시간을 알고 극락왕생하였지요.
다만 임종 시 약간의 병이 있어 형님처럼 시원스레 가지는 못했습니다.
19. 여거사 장씨 이야기
세 번째는 女거사 張씨인데 청도사람이며, 슬하에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두었지요. 집안형편이 어려워서 남편은 항구부두에서 인력거(人力車)를 끌어 생계를 유지하였습니다.
장씨는 청도 시내에 위치한 담산정사(湛山精舍) 근처에 살고 있었는데, 정사(精舍) 내에 염불회(念佛會)가 있어서 일요일이면 제가 담산사(湛山寺)로부터 그곳에 가서 법문을 하였습니다.
거사님들은 경을 듣고 난 후엔 한 시간씩 염불을 하셨는데, 장씨는 이런 인연으로 삼보에 귀의하고 불법을 만나게 되었으며 그 믿음이 아주 독실했습니다.
평소엔 집에서 염불하고 일요일만 되면 두 아이를 데리고 염불회(念佛會)에 와서 강의를 듣고 강의가 끝나면 대중과 함께 염불을 하셨지요.
민국26년 겨울 어느 날, 아침 일찍 일어난 장씨는 문득 남편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당신이 아이들을 데리고 잘 지내세요. 저는 오늘 불국토로 왕생할 거예요."
장씨의 남편은 먹고 사는데 바빠서 불법에 대한 훈습이 적었으므로 화난 얼굴로 꾸짖었습니다.
"그만해! 우리 집이 가난한 것도 모자라서 당신까지 왜 이러는가."
남편은 아내의 말에 아랑곳 하지 않고 인력거를 끌고 부두로 일하러 나갔습니다.
장씨는 또 두 아이에게 당부했지요.
"난 오늘 극락세계로 갈 것인데 너희들은 앞으로 아빠 말씀 잘 듣고 말썽 피우지 말거라."
이때 두 아이들은 큰 애가 열 살이고 작은 아이가 다섯 여섯 살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엄마의 말은 들었지만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여전히 문 앞에서 뛰어 놀았지요.
장씨는 집안일을 대충 정리하고 나서 세수를 하고 머리도 빗었습니다. 워낙 어려운 살림이었기에 갈아입을 새 옷이 없어 빨아놓은 헌 옷을 입고 침대 위에서 서쪽을 향해 앉아 염불하면서 왕생하였습니다.
장씨의 두 아이는 밖에서 놀다가 배가 고파서 집에 들어 왔는데도 엄마는 침대위에 가만히 앉아만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이 평상시처럼 밥을 하지 않은 것을 보고 가까이 가서 불러 봐도 대답이 없고, 손으로 밀어 봐도 움직이지 않았지요. 그제야 엄마가 돌아가신 것을 알고 울면서 옆집으로 달려가 소식을 전했습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이웃사람들은 비록 장씨가 죽은 지 한참이나 지났지만, 얼굴은 살아생전과 같은 것을 보고 염불공부(念佛功夫)가 깊었음을 찬탄하였답니다.
나중에 남편이 돌아와서 한바탕 슬피 울었지요. 집안사정이 어려워 염(殮)할 돈이 없어서 불학회(佛學會)의 여러 거사님들이 돈을 모아 장례를 치러 주었습니다.
여러분!
인생에서 가장 요긴한 일은 생사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어찌 되었든 간에 우리는 자신의 생활환경에 맞추어 바쁜 시간 속에서도 짬을 내어 조용히 앉아서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염불을 하여야 하고 일을 할 때도 마음속으로 염불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매일 살생, 투도, 사음, 망어를 일삼으며 온갖 업을 짓게 된다면 삼악도에 떨어짐을 면치 못할 것이며, 육도를 윤회하면서 끝없는 고통을 받게 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능엄경》에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나에게 목숨을 빚졌고, 나는 너에게 빚을 갚아야 하니 이러한 인연으로 백 천겁이 지나도록 늘 생사에 있다. 너는 나의 마음을 사랑하고 나는 너의 빛깔[色]을 가엾이 여기니, 이러한 인연으로 백 천겁이 지나도록 항상 얽혀있다.
오직, 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淫) 이 세 가지가 근본이며 이러한 인연으로 업의 결과가 이어져 끊이질 않는다.』고 하셨지요.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살생[殺], 투도[盜], 사음[淫]의 업을 지으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받들어 권하건대, 여러분은 하루 빨리 염불하시고 또 염불을 많이 하십시오.
"염불 한마디에 무량한 복이 늘고,
부처님께 한번 예배하면 항하의 모래와 같은 죄업이 소멸된다"고 하셨습니다.
이상 염불의 좋은 점에 대해 매우 산만(散慢)하게나마 대강 설명을 드렸습니다. 좀 더 상세하고 완전하게 알려거든《정토오경(淨土五經)》과《정토십요(淨土十要)》등을 참고로 하시면 됩니다.
지금은 제가 여러분들의 신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간략하게 설명을 드렸을 뿐입니다.
바라건대, 여러분들이 염불의 이익을 안 이상 반드시 참된 신심을 갖추어서, 육근(六根)을 거두어들이고 정념(淨念)이 이어져서 착실하게 지극정성으로 염불하여 장차 다 함께 서방극락세계에서 만납시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1950년(庚寅) 1월1일 홍콩의 화남학불원에서(香港華南學佛院)
대광(大光 敬記) 삼가 기록함
담허대사의 <염불론>은 1950년 담허대사께서 홍콩의 화남학불원(華南學佛院)에서 강의하신 것을
제자인 대광(大光)이란 분이 기록한 것입니다.
<염불론>의 번역문은 몇 해 전에 건봉사에 계신 서현스님께서 틈틈히 번역하신 것을
염불만일회 도량인 경주 미타사의 백련스님에게 보낸 것인데, 그후 인터넷 상에 공개된 것입니다.
번역을 해 주신 서현스님과 정토법문을 널리 펴시는 백련스님께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아래는 서현스님께서 번역해 주신 담허대사에 대한 소개입니다.
보정, 정권대사와 함께 체한대사의 수제자이신 담허대사 진영(眞影)
불교 중흥에 몸 바친 담허대사
스님의 휘(諱)는 융함(隆銜)이고 자는 담허이며 하북성 영하 왕씨 아들로서 속가 이름은 복정(福庭)이다. 부친의 휘는 덕청(德淸)이고 모친은 장씨이다.
모친의 꿈에 범승(梵僧)이 나타나 하룻밤 묵고 가게 해달라는 청을 받고 다음날 스님을 낳았다.
스님은 光緖 元年 6월 초하루 (1874년)에 태어났는데 3살이 되도록 부모를 부를 줄 모르고 오직 채식(喫齋)두 글자만 말할 줄 알았으며 5, 6세가 되었을 때 어머님은 꿈에서 스님이 되 있는 것을 보았다.
11살에 鄕塾(서당)에 들어가 사서를 읽었다. 12살 때 우연히 외갓집에 가게 되었는데 외할머니가 보니 엄연한 스님의 모습이었다.
14살에 서당을 그만두고 장사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출세의 뜻을 품었다.
17살에 결혼을 하였고 저승을 다녀오는 꿈을 꾸고는 출세의 뜻이 더욱더 견고해 졌다.
26세에 연합군이 북경을 점령하자 전쟁을 피해 영구(營口)에 이르러 친구와 함께 제생당(濟生堂)약국을 운영하고 선강당에서 인과를 강술하며 시간이 나면 능엄경을 연독하였으며 깊이 깨달은 바 가 있었다.
민국 6 년(1917년) 43세에 또 다시 출가를 결심하고 몰래 집을 나와 천진으로 가서 청수원의 청지(淸池)화상의 소개로 내수현 고명사의 인괴(印魁)화상을 은사로 득도 하였고 절강성의 관종사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때마침 제한스님이 관종사에 계셨으므로 제한스님으로 부터 천태교법을 전수 받았다. 스님은 마음을 기울여 가르침을 청하였고 남달리 진전이 빨랐다.
제한스님께서는 스님이 북방불교를 부흥하게 하기위해 각별히 정성을 다해 가르쳐 주셨다.
민국 9년에 도반인 관종사 주지스님 선정스님과 함께 대장경을 모시기 위해 북방으로 탁발을 나섰다. 영구에 도착하니 스님이 운영하던 약국이 아직 남아있었고 부인 모씨는 스님의 법문을 듣고 선정스님께 귀의를 하여 채식을 하며 염불을 하였다.
아들 4명중에 두 분이 출가를 하였다. (부인과 아들이 미리 갈 시간을 알고 전부 극락왕생을 하였음)
스님은 중년에 출가를 하여 천태종의 법맥을 이어 받았으며 평생 강경과 설법, 사찰건립과 도제 양성에 혼신의 힘을 쏟아 부었다. 스님은 체구가 크고 위엄이 있었으며 목소리가 우렁찼다. 매번 법상에 오를 때 마다 사부대중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는데 틈새를 파헤치고 막힌 구멍을 인도하여 원하는 가르침을 얻지 못한 이가 없었다.
스님은 수많은 곳에서 사찰을 중건, 중수 하였으며 그중에서 심량 반야사 천진 대비원이 제일 저명했다. 가능한 각 사찰에 불학원을 설치하여 후기인재 양성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그 중에서 청도의 담산사가 성황을 이루었다.
스님은 평생 교(敎)로는 천태학을 가르치고 수행(行)은 정토를 근본으로 삼았다. 평소 후학들에게 지관(止觀)과 염불을 닦을 것을 가르쳐 주었으며 만나는 사람마다 염불할 것을 간곡히 권하였다. 문하에 염불공부가 깊어 미리 갈 시간을 알고 해탈을 얻은 자가 셀 수 없이 많았다.
스님은 30여 년간 반야심경 강의를 64번, 금강경 42번, 아미타경24번, 능엄경13번을 설하였고 시방총림을 9곳, 불학원(佛學院)13곳, 굉법지원(宏法支院) 17곳을 건립 하였고 해문(解門)은 천태, 행문(行門)은 정토로 대중들을 이끌었으며 각 사찰마다 오후 불식과 하안거에 계율을 엄격히 지키셨는데 북방불교에서 보기 드물었다.
항일전쟁 승리 후 장춘 반야사에서 전계(傳戒)를 마치고 청도의 담산사(湛山寺)로 돌아오신 스님은 상좌들의 요청으로 평생의 사적을 구술(口述)하고 제자 대광(大光)이 영진회억록(影塵回憶錄) 편성했다.
38년 홍콩신도들의 요청으로, 홍콩에서 법을 펴게 되었는데 석전완의 홍법정사에 주석하시면서 연이어 화남 불학원, 불교인경처, 도서관, 천태정사, 홍법불당, 제공(諦公)기념당, 청산극락사, 청수만 담산사 등을 창건 하였다.
스님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매일 대중들을 맞이하여 강의를 하셨으며 하루 종일 쉴 틈이 없었다. 항상 대중들에게 이르기를 불법의 요지(要旨)는 간파(看破), 방하(放下), 자재(自在)에 있다고 하셨다. 스님의 설법은 구름과 같고 비와 같아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아 불문에 귀의 한 자가 수백만에 이르렀다.
1963년 음력 6월 22일에 열반 하셨는데 세수89세, 승랍, 계랍은 46년, 법랍38년이었다.
8월 12일에 다비식을 거행하는데 출가, 제가제자들이 전단과 침향 천여 근으로 다비식을 올렸다. 몇 리 밖에서도 향기를 맡을 수가 있었으며, 다비 후에 4천여 과의 사리가 나왔다. 구룡의 청수완, 담산(湛山) 산기슭에 사리탑을 세워 봉안 하였다.
스님의 저술과 제자의 기록으로는 금강경 강의, 금강경 친문기, 심경의소, 심경강의, 심경친문기, 심경강록, 능엄경묘현요지, 보현행원품수문기, 보문품강록, 대승기신론강의, 천태전불심인기주석요, 시종심요의기, 신심명약해, 증도가약해, 염불론, 담산문초, 강연록 등과 제자 대광이 기록한 영진회억록 등이 있으며, 담산대사법휘(法彙)로 편집되어 중화속장경(中華續藏經) 속에 편입 되었다.
아래는 <불광대사전>(대만 불광사)과 <중국불교인명대사전>(상해사서출판사)에 기재된
담허대사에 대한 간략한 소개입니다. 서툰 솜씨로 번역해 보았습니다.
담허대사(1875-1963)
하북 영하(河北 寧河. 현 天津) 출신. 속성은 왕(王)이고 이름은 복정(福庭), 법호(法號. 法名)는 융함(隆銜), 자(字)는 담허이다. 17세에 아버지의 명에 따라 혼인을 하여 다섯 명의 자식을 낳았다. 주로 농사일을 하였으며, 아울러 작은 장사도 하면서 생활하였는데, 후에는 다시 의술을 익혔다. 경자사변(庚子事變)을 당하여 영구(營口. 용령성 남부, 요하 어귀에 가까운 항만 도시)로 피신하여 한의원을 열었다. 40세에 <법화경>을 듣고 즉시 속진을 떠나고자 하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 민국6년(1917) 43세 되던 때, 천진에 있는 청수원(淸修院)의 청지법사(淸池法師)의 인도로 내수 고명사(高明寺)의 인괴법사(印魁法師)를 의지하여 출가하였다.
이듬해 남쪽으로 내려와 영파(寧波) 관종사(觀宗寺)의 제한대사(諦閑大師)를 의지하여 구족계를 받았다. 아울러 제한대사 슬하에서 천태교관(天台敎觀)을 익혔다. 민국10년(1911) 심양(瀋陽) 만수사(萬壽寺) 불학원에서 강석을 열어 법문을 하였다. 1915년에는 제한법사(천태종 43世)의 부촉(咐囑)에 의해 보정(寶靜. 1899-1940), 정권(靜權, 1881-1960) 법사와 더불어 천태종 44세가 되었는데, 이때 금함(金銜)이란 이름을 받았다.
이후 동북지방 각지에서 경전을 강설하며 불법을 널리 폈으며 아울러 많은 도량을 창건했다. 그 중에서 하얼빈(哈爾濱)의 극락사(極樂寺), 장춘(長春)의 반야사(般若寺), 영구(營口)의 능엄사(楞嚴寺)가 가장 규모가 크다. 그 후로 청도(靑島) 담산사(湛山寺)의 주지가 되어 스스로 담산노인(湛山老人)이라 불렀다.
만년에는 홍콩에서 홍법하면서 화남불학원(華南佛學院)을 설립하여 원장을 맡았으며, 또한 중화불교도서관(中華佛敎圖書館)과 불교인경처(佛敎印經處), 천태정사(天台精舍), 홍법강당(弘法講堂), 청산(靑山) 극락사(極樂寺) 등을 설립하였다. 1963년 봄에 (중화불교)도서관에서 <능엄경>과 <금강경>을 강의하였는데, 오래지 않아 대중들의 염불소리를 들으며 가부좌하고 시적(示寂)했다. 세수 89세였다.
대사가 일찍이 평생의 사적을 구술한 것을 제자인 대광(大光)이 기록하여 <영진회억록(影塵回憶錄)>이란 이름으로 출판하였다. 주요저작으로는 <금강경강의>, <심경의소(心經義疏)>, <심경강의(心經講義)>, <기신론강의(起信論講義)>, <보현행원품수문기(普賢行願品隨聞記)>, <능엄경강의> 등이 있다. 나중에 제자들이 스승의 법문과 저작을 모은 <담산대사법회(湛山大師法匯)>가 세상에 전해지고 있다.
*경자사변(庚子事變) : 1900년 10여개 국가에서 차출한 2만명의 부대가 천진으로부터 베이징까지 행진, 약탈을 일삼은 사건.
* 제한대사(諦閑大師) : 청말민국초(淸末民國初) 천태종의 유명하신 스님. 절강성 황현(浙江省黃巖-현 台州市 소재) 출신. 속성은 주씨(朱氏) , 이름은 고허(古虛), 호는 탁삼(卓三). 아주 어렸을 때 사문(沙門)을 보면 곧 기뻐하였으며, 소년시절에는 할아버지에게서 의학(醫學)을 익혔고, 20세에는 현호읍(懸壺邑)의 가난한 자에게 여러 번 약을 베풀어 주었다. 오래지 않아 (결혼해서 낳은 高虛의) 자식이 죽자 부인은 도망가고 자모(慈母)도 죽고 말았다[以妻亡子死․慈母見背]. 마침내 백운산(白雲山)으로 은둔하여 성조법사(成道法師)에 의지하여 출가하였다. 24세에 천태산(天台山) 국청사(國淸寺)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일찍이 민희(敏曦), 효유(曉柔), 대해(大海) 등의 여러 스승들을 가까이 청하여 법화경(法華經), 능엄경(楞嚴經) 등의 경전을 연구하고 익혔다. 민희 법사에게서 법화경을 청해 들을 때는 경의 마지막 권을 마치기 전에 이미 일심삼관(一心三觀)의 종지를 깨달았다고 한다. 광서(光緖) 12년(1886) 적단정융(迹端定融) 祖師의 법을 받아 천태교관(天台敎觀) 제43세 조사가 되었다. 일찍이 세 차례 폐관[엄관(掩關)]하여 오로지 선관(禪觀)을 닦았다. 폐관에서 나와서는 각 총림의 간절한 청에 의해 법화경, 능엄경 혹은 아미타경을 강의하였다. 영가 두타사(永嘉 頭陀寺), 소흥 계주사(紹興 戒珠寺), 상해 용화사(上海 龍華寺), 영파(寧波[浙江省 은현鄞縣]) 관정사(觀宗寺) 등의 주지를 역임했다. 그간 각지 승속의 청에 의해 강경하기를 어언 40여년이었다. 선통(宣統)2년(1910)에는 남경(南京)에 불교사범학교(佛敎師範學校)를 설립하고 아울러 교장을 역임하였다. 民國 8년(1919)에는 영파의 관종사에 관종학사(觀宗學舍)를 개창하고 아울러 강경(講經)하고 홍법(弘法)하였다. 그리고 홍법월간(弘法月刊)도 발행하였다. 제자 십여 만 명이 있었는데, 유명한 승속제자로는 담허법사(倓虛, 1875-1963), 보정법사(寶靜, 1899-1940), 상성법사(常惺, 1896-1939), 지송(持松), 묘진(妙眞), 양인산(楊仁山, 1837-1911)거사, 장유교(蔣維喬, 1873-1958)거사 등이 있다. 제한법사는 비록 천태종을 이어받았으나 敎와 禪과 淨土의 三者를 융회관통(融會貫通)하였고 따로이 문호(門戶)를 세우지 않았다. 법사는 일찍이 스스로 戒律이 지극히 엄하였으며[至嚴], 매일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 금강경(金剛經),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을 일과로 독송하고 念佛을 만 번 염송하였다. 또 매번 삭망(朔望, 음력 초하루와 보름)이 되면 범망경(梵網經)을 더하여 독송하였으되 종신토록 줄이거나 그만두지 않았다. 民國21년(1932) 8월 3일, 법사는 때가 이른 줄 알고는 西方을 향하여 합장하고 부처님께서 오시어 이끌어주신다고 말하였다. 시자를 불러 목욕하고 의복을 갖춘 후에 종이[楮]를 찾아[索] 붓[筆]을 들어 게송을 지으며[寫] 말하길, “내가 염불을 하니 정토가 앞에 나타난다. 진실로 왕생할 수 있으니 원컨대 각자 힘쓸지어다[我經念佛 淨土現前 眞實受用 願各勉旃].” 그리고 붓을 놓고는 결가부좌하고 서거(逝去)했다. 세수 57세였다. 저서에 능엄경서지미소(楞嚴經序指味疏)1권, 원각경강의(圓覺經講義)1권, 화엄경보현행원품집요소(華嚴經普賢行願品輯要疏)1권, 금강경신소(金剛經新疏)1권, 시종심요해(始終心要解)1권, 염불삼매보왕론의소(念佛三昧寶王論義疏)1권, 관경소초연의(觀經疏鈔演義)1권 등이 있다. 이 저작들을 후인들이 제한대사유집(諦閑大師遺集)으로 편집했다.
보정(寶靜. 1899-1940) 법사 : 절강성 상우 출신. 속성은 왕(王)씨. 어렸을 때 고승전을 읽은 인연으로 속세를 떠날 뜻을 품게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난 뒤에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았다. 그후 제한대사를 가까이 모시면서 천태교관을 배웠다. 민국 29년(1940)에 상해 옥불사에서 원적하셨다. 제한대사에 이어 영봉우익대사의 천태법맥(영봉파)을 이은 천태교관 44세로 추증되었다. 대표저서에는 우익대사의 <아미타경요해>에 대한 보정법사의 법문을 제자인 일산, 성명이 기록한 <아미타경요해친문기>가 있다.
* 정권대사에 대해서는 <염불원통>에 자세한 전기가 나와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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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지심귀명 아미타불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