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오신날 하루 지나서(바쁜 시간 내 참석해 주신 불자님들께 거듭 감사드리며)
연세가 드셔 중한 병환을 앓고 대수술을 거치신 분들도
힘든 법체를 이끌고 오셨다.
사고와 노환으로 가신 분들을 왕생극락의 기도중 혹은
기도가 끝난 후 가슴 져민 마음을 안고 오신 분들도
있다. 갓난 아기였으나 제법 큰 초등학교 학생으로
온 불자도 있다. 공부에 매진하다 구직이 이뤄져 당당히 사회 한 구성원으로 진입한 불자도 있다.
모진 코로나의 잔영들.
대전염병의 근저에는 아프고 힘든 사람들이 꽤나
많다. 생노병사라는 고통의 바다에서 오직 부처님의 뜻을 빌고,부처님의 배에 올라타 행복과 자유의 피안으로
가는 사람들,우리 모두는 불심으로 맺어진 인연이다.
법회가 다가 올 때마다 저으기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다. 한번의 법회는 여러 사람의 울력이 동원된다.
모름지기 바쁜 세상이다.직장이 있든 없든, 젊든이든
노년이든 우리 모두는 바쁜 세상에 살고 있다.
봉사든 대중공사든 내 바쁜 시간을 쪼개 희생하고
헌신하는 보시의 여정이다. '한고비 넘기면 또한 고비'
가 다가서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본 소납 역시 편하고 안락한 노년을 소일하고 싶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자기안일과 은둔에 '고도의 집중된 수행'
'대중을 등진 홀로가는 고행' 또한 그에 상응하는 힘든
시간이 있다,밀도있는 수행의 명분하에 일찍 우리사바를 떠난 행자들도 주변에 많다.고독과 고행,필요조건
이지 필요충분요건은 아니다. 또다른 시련과 맞부닥쳐야 한다.
힘들고 어렵다는 것이 곧 인생사요,그 가운데 해탈이
숨어 있다는 사실이다. 견고한 광맥,깊고 깊은 암반을
거쳐 채취한 돌덩이에서 보석을 정제해 내듯,고뇌의
힘든 일상사를 떠난 성불의 깨달음은 없다는 사실이다
본인은 일찍 불가에 귀의해 그동안 인연이 있던 분들이
대거 다음 세상으로 가셨다.그 바람같이 허망한 세월을
되뇌이는 일은 많은 회상을 수반한다.안타깝고 가슴져린 일들이 어찌 나만 있으랴. 많은 분들이 사고와 병환
으로 거룩한 법체가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모습은
또 다른 내 모습이기 때문이다.30여년의 소임중 매년
헌신과 희생으로 이어온 분들도 이제 노구와 숨찬 울력
의 한 복판에서 땀을 흘리시는 모습은 또 한편 충혈된
고뇌의 내 마음을 짓게 한다.
세월의 폭풍을 거쳐왔듯
세월의 장강 또한 건너야 한다.
불가는 새로 들어오는 행자도 없다.
자녀들이 대폭 줄어든 마당에 사람 자체가 없다.
거친 세상을 거쳐왔듯
다가올 세상 또한 담대하게 맞이해야 한다.
신도님들의 정성과 부처님의 법력으로 반세기를
'잘도 공양하고 잘도 누린' 사바의 행복한 시간이었다
깊은 산속에서 수행하던 동기들,바닷 바람 세찬 무인도
섬에서 고행의 극한에서 수도하던 인연들은 이제 대거
갔다.이승에서 저승으로 갔다.같이 살던 한 납자는 허무
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뒷산 소나무가지에서 정리
를 했다.주변에 더 민폐를 끼치고 싶지도 않고, 더이상
시은을 축내고 싶지도 않다면서.부처님 세상에서 부처님 세상으로 간 것이다.허망과 우울의 경계란 무서운
도적이다.자기 새로움으로 치환해야 할 의무가 있으니자신과 부처님의 하나됨을 위해 오늘도 정진해야 한다. 공수래 공수거,그것은 바람이고 구름이었다.
중등 교과서에 등신불에 관한 글이 있다.
고행의 육신을 거쳐 열반시에 그대로 수행자 불상으로
모셔 후일 불자들의 기도대상으로 삼으니,긴 중국의 역사에는 무수히 많다.다만 우리 나라는 법체는 화장하고
대신 존상과 석상으로 모셔 예배와 정진의 불상으로 삼
으니 게중에는 고뇌와 슬픔을 짊어진 얼굴의 흔적이 고스란이 새겨져 있어 등신불과 같은 의미요 가치다
이 생애에 인간이 범접하기 어러운 수행자 성철,법정
일타,석주,청화,중천,광덕,고산,정영,도천스님등 무수한
노장스님들을 친견한 것은 큰 행운이고 환희였다.
또한 엄중한 자기운명과 슬픈 고뇌를 짊어지고 고통의 한 복판에서 슬픔과 고통을 억눌러 가며 그 가슴과 얼굴에 모로 새긴 채 고행을 이어오다 등신불의 이그러진 모습조차 남기지 않은 많은 인연들에 격한 감동과 회한의 파도를 주체할 수 없다. 부처님오신날 하루 지난 새벽이다.세상의 모든 고뇌를 짊어진 얼굴의 등신불도 나는 존경한다.
새로 찍은 내 주민증 사진은 나인듯, 내가 아닌듯 일그러져 있었다.행자는 다만 자신이 짊어진 업에 수순할 뿐이다.
사실은 어제 저녁 피곤해 밤 8시 넘어 잠에 빠져 깊은
수면을 취한듯 이제 새벽이 됬으려니 일어나야지 하고
기침하니 부처님오신날 밤 11시 40분,아직도 부처님오신날이었다. 에고~ 시간이 잘못됬나 싶어 다른 시계를 보니 마찬가지였다.이제 시간을 헤짚는 능력이 떨어지는 것을 본다. 또 이삼십년 지난 주민증을 갱신하는 사진을 보니 제법 저승꽃이 많이 피었음을 본다. 내 나름 똑바로 선다는 것이 보는 이로 하여금 삐딱하게 휘었다는 지적을 들으니 근년의 2~3년 많이 변한 육신임을 체감한다.이제 어찌 불면과 숙면을 따질 것이며,어찌 시간의 오고감을 분별할 것이며,어찌 이승과 저승을 구분하랴.모두가 부처님 시간이요,부처님 공간이다.행자는 다만뜨거운 감사와 온전한 수용으로 맞을 일이다.코로나와 경제의 어려운 시기를 맞아 지치고 힘든 법체로 부처님오신날을 장엄해 주신 많은 분들께 다시한번 깊은 감사의 마음을 드린다.글을 쓰다보니 이제 부처님오신날 자정이 넘었다.깊은 밤이다.어제 오신 많은 분들의 해탈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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