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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인근 문화 유적 답사 후기 현풍곽씨 12정려각ㆍ도동서원ㆍ김굉필 생가ㆍ도동서원 세종대왕자태실ㆍ선석사ㆍ성주한개마을을 중심으로 09. 9. 26 역사문화유적투어가 지난 5월29일 영양번개모임을 시작으로, 이번에 두 번째로 이루어지게되었다. 즉 현풍곽씨 12정려각, 도동서원, 김굉필생가, 세종대왕자태실, 선석사, 성주한개마을 답사하였다. 날씨는 온 종일 엷은 구름으로 덮여주어 우리의 탐사에 일조를 해 주었다. 이번 투어링에는 비록 서울 친구 안용진, 김정태, 김영길 회원은 사정상 참여하지 못했지만, 안동에서 천세창, 류길하, 이진구회원이, 대구에서는 김교현, 류진상, 권오규, 권오정, 권준현, 박길정, 오상인, 안기산, 김기현회원 도합 12명이 참가하여 탐방코스를 따라 서로간의 좋은 정보 교환과 토론을 하며 조상들의 정신과 향토사에 얽힌 사연에 대해서 깊은 이해를 가지게 되었다. 먼저 답사에 참여하기 위해 먼길 마다하지않고 안동회원들을 모시고 초행길의 대구투어링 코스에 운전대를 잡은 이진구관장에게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대구근교의 문화유적답사를 위해 정보자료 제작을 해준 권오정회원, 오늘 투어링을 원만하게 이루어지도록 사전답사를 한 권오정, 김교현, 류진상, 권오규회원의 정성에게도 감사드린다. 성주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원식 사장이 우리들의 답사투어링을 알고 얼굴이나 하번 보자며 찾아와서 융숭한 점심식사 대접을, 김교현회원의 안동인의 트래드 마크인 정성어린 “접빈객”의 솜씨를 발휘하여 맛깔난 간식제공을 받았고, 권오규 회원의 대구의 명소인 <감태근한방요리>식당에서 저녁대접을 받았다. 앞에서 수고한 권오정,김교현, 류진상회원, 그리고 이원식 사장, 권오규회원에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로 인사를 대신한다. 현풍곽씨 12정려각(玄風郭氏 十二旌閭閣) 대구문화재자료 제29호 소재지 대구시 달성군 현풍면 지리 1348-2 일행은 10시에 두류테니스장 만나서, 구마고속도로를 타고 현풍 IC를 빠져나와 구지에 위치한 현풍곽씨 12정려각에 도착했다. 말로만 들어본 적이 있는 12 정려각을 보니 정려각의 규모가 보통이 아니라는 감이 들었다. 먼저 정려각이 무엇인가 알아보니 “정려각(旌閭閣)은 국가에서 미풍양속을 장려하기 위하여 충신·열녀·효자 등 모범이 되는 사람을 표창하고 그 사람이 사는 마을 입구에 세운집이다”.라고 적혀있다. 이 정려각을 눈으로 계산해보니 12칸의 다포식 팔작집이었다. 내부를 들여다보니 내부에는 2기의 비석과 12개의 현판이 있다. 이 건물의 연원을 알아보니 본 건물은 1598년(선조 31)부터 영조 때까지 솔례촌(率禮村)의 곽씨 일문(一門)에 포상된 12정려를 한곳에 모신 정려각으로서 조선 영조 때 한곳에 모아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6.25전란으로 건물의 일부가 파괴되고 비석 1구가 완파되었으나 1963년에 모두 중수하였다고 한다. 한 마을에서 12정려가 나왔다는 것은 자랑할 만한 일이라고 하겠다. 곽준의 일문 삼강 2효자인 효자 곽이상(郭履賞), 곽이후(郭履厚), 열부(烈婦) 거창 신씨(居昌愼氏), 곽씨(郭氏) 등은 1598년(선조 31)에 정려를 받았고, 4효자인 곽 결(郭潔), 곽 청(郭淸), 곽 동(郭洞), 곽호(郭浩)와 열부 광주이씨(廣州李氏)는 선조때, 열부 밀양 박씨(密陽朴氏)는 중종때에, 열부 안동권씨는 인조때에, 열부 전의이씨(全義李氏)는 영조때 정려를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12정려각을 보면서 조선시대의 효의 생활화가 가문의 생활철학으로 자리매김하였음을 짐작이 된다. 정려각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니 조선시대에 임금과 신하, 아버지와 자식, 남편과 아내 사이에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잘 지키면, 이를 나라에서 포상하며 정려하는 차원에서 각(閣)을 세워 주었다고 한다. 충신, 효자, 열부와 같은 말은 조선시대의 유교적 도덕적인 삶의 일상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어휘를 되새겨 보면서 마음을 다스리는 좌우명으로 남게해야 한다. 이 12정려각은 한 가문의 도덕적인 삶을 표현한 것이며, 국가적으로는 윤리도덕 생활을 정책적으로 권장하는 바로메터 역할을 한것이다. 건물과 현판은 최근의 것이나 12정려각은 전국에서도 그 유례가 흔치않은 것 중의 하나로서 그 역사성과 정신적인 의의를 고려한다면 중요한 민족사적 유산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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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윤중, 잠시보고서도 어찌 그리 자세한 답사 기행문을 썼는가! 직접 답사하는것 보다 이 글을 읽은것이 더 자세한 정보를 얻는것 같네.
사진촬영 자료가 답사기를 쓰느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여 준다네. 나야 야천의 해박한 지식으로 유적에 대한 역사적인 관점과 인물사적인 관점에서 하는 해설을 잊을 수가 없지!!.
윤중선생! 모든 장면을 사진기에 담고 또 글써서 올리고...너무 수고가 많았네. 덕택에 우리는 앉아서 답사 한번 더 하는기분일세...고맙고...
안동에서 천세창, 류길하, 이진구회원이, 대구에서는 김교현, 류진상, 권오규, 권오정, 권준현, 박길정, 오상인, 안기산, 김기현회원 도합 12명이나 참가한 문화답사 팀 여러분께 저절로 존경하는 마음이 듭니다. 그 나이에 어찌 아직도 학구열이 식지도 않았습니까? 또 당일 행사인데도 그 많은 곳을 다 소화한 노익장에 부러움까지 드는군요. 답사기도 잘 읽었고 영상자료도 잘 보고 많은 걸 배웠습니다. 주관한 야천선생과 답사기를 올린 윤중선생의 열정에 뜨거운 박수 보냅니다.
아무렴 윤중 김기현의 수고, 해박한 설명과 야천 권오정과 소범 김교현의 주선과 이원식과 권오규의 점심,저녁식사제공과 그리고 안동에서 멀리오신 이진구,천세창,류길하의 넉넉한 마음씨와 그리고 권준현,오상인,안기산,박길정이 모두 어찌 그 진지한 성찰에 힘입어 매우 유익한 하루가 되고 두고두고 공부할 꺼리를 제공해준 친구들이 그래서 늙어서 너무너무 좋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