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최만린
1935년생. 전 서울대학교 미대 학장,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역임, 한국 추상 조각의 거목으로 불리는 근대 조각의 1세대. 헤이리의 마당발 모티프#1 이안수 선생의 소개를 받고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이런 굉장한 프로필이 나왔다. 소개를 받을 때만 해도 섭외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터라 적당한 인물을 찾았다는 사실에 그저 좋기만 했는데, 프로필을 보고는 걱정이 앞섰다. 워낙 연배가 높으신 어르신이기도 하고, 예술 전문지도 아닌 대중잡지에서 작품이 아닌 집을 주제로 인터뷰를 요청하기가 민망스러웠던 것이다. 한데 걱정했던 것과 달리 “제목이 뭐냐?”, “무얼 찍을 거냐?” 같은 까탈스러운 질문 없이 흔쾌히 OK를 하셨다. 네이비 니트에 그레이 카디건을 단정하게 입은 모습을 보고 멋쟁이시구나 싶다가도 너무 단정한 모습과 연륜에서 느껴지는 카리스마에 눌려 혹시 말이나 행동에서 실수하지는 않을까, 조심스럽기만 했다. 게다가 선생에게 여기 서시라, 저기 앉아보시라 어떻게 요구를 해야 하나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감동스럽게도 오히려 선생이, 오늘은 자신이 소품이니 마음대로 놓고 찍으라시는 게 아닌가. 귀찮아하는 기색 하나 없이 멋진 포즈를 취해주셨다. 누군가가 선생과의 만남 이후 작품보다도 더 멋진 대가의 모습을 봤다 하더니 기자 역시 같은 생각이다.
경사진 구릉지 한켠에 지어진 집
선생은 정릉 토박이다. 결혼해서 지금까지 40여 년간 정릉에서만 살았다. 헤이리 스튜디오를 만든 것은 헤이리의 위치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헤이리는 여자의 몸으로 보면 자궁이 있는 부위, 즉 생명을 잉태하고 생명이 자라는 공간이라는 것. 그동안의 작품 세계에서 보여준 것처럼 인간의 본성과 탄생 등에 관심이 있는 선생으로서는 이보다 좋은 위치가 없었다. 그래서 여기에 내 작업실을 만들어서 일하다가 죽자, 라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주거를 계획하지는 않았으나 워낙에 조각 작업이라는 것이 중노동인지라 작업 후에는 쉴 공간이 있어야 해서 작업실에 주거 공간도 더했다. 작업실도 있고 헤이리에서 할 일도 많으니 아예 들어와 살면 편하련만, 헤이리는 근처에 병원이 없어 나이 든 이가 살기에는 힘들어 본의 아니게 세컨드 하우스처럼 되어버렸다 한다.
한데 참으로 건물이 애매하게 자리하고 있다. 지하 1층, 지상 2층짜리 가로로 긴 건물은 내리막 경사지에 그것도 언덕진 구릉지 일부에 지어졌다. 그뿐인가. 방향 또한 북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공동묘지도 한눈에 보인다. 하지만 선생은 북쪽 해는 빛의 색이 시시각각 달라지지 않으니 예술가의 작업실 창 방향으로는 좋은 방향이고, 묘지라는 것이 얼마나 평온한 모습을 지닌 곳인데 사람들이 터부시한다며 이 땅을 칭찬하셨다. 사람은 마음먹기에 따라 나쁜 것도 좋게 보이고 좋은 것도 나쁘게 보이는 것이리라.
1 거실과 격자무늬 미닫이 방문을 사이에 두고 놓인 좌식 사랑방. 문을 열면 거실과 공간이 연결되어 많은 이들이 모일 수 있다. 선생은 쉴 때는 소파에 앉지만 얘기를 나눌 때는 여전히 방석에 앉는 것을 좋아한다.
2 남쪽 거실창 바로 앞이 구릉으로 가로막혀 있다. 담을 두르는 대신 흙이 쓸려 내려오지 않도록 돌을 쌓아, 베란다로 나서면 바로 산과 연결되는 구조다. 집이 산의 일부가 되니 다람쥐 등 온갖 것들이 지나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3 거실 옆 사랑방 내부. CD는 음악을 듣는 맛이 안 난다며 지금도 LP판으로 음악을 듣는다.
아들이 지은 집
선생은 이 집의 건축가로 계원조형예술대학 건축디자인과 교수인 큰아들[최아사+건축연구소(A.rum)]을 선택했다. 집은 그 사람의 성향과 라이프스타일을 알고 거기에 맞춰서 지어야 하는 것인데, 자신의 분위기 속에서 자랐으니 본인의 취향과 행동반경, 작업에 관해 아들만큼 잘 아는 이도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특히 조각가의 작업실은 화가의 그것과는 달라서 조각 작업에 관한 일련의 과정이 어떻게 되는지 알지 못하면 거기에 적당한 작업실을 지을 수 없다. 조각 작업이 워낙에 덩치가 크고 여기저기로 옮겨 다니면서 해야 하는 일이라 그에 맞게 꽤나 까다로운 설계가 요구되는 것이었다. 아무튼 집을 짓기로 한 아들에게 그가 요구한 것은 단 하나. “나는 돈이 없다. 그러니 가장 싼 집을 짓도록 노력하자.” 때려 부수는 일이 대다수인 조각가의 작업실이 훌륭할 필요도 없거니와, 집은 살기 적당하면 되지 으리으리할 필요는 없다는게 평소 그의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얼마 후 아들은 설계도를 내놓으며 도저히 그 돈으로는 지을 수 없다 하였지만 이때도 선생이 한 말은 한마디. “안 되는 건 없다, 재료를 바꿔라.” 이렇게 해서 원래는 노출 콘크리트로 지어질 건물이 블록 쌓기로 마무리되었고, 사람들은 그 속도 모르고 일부러 이렇게 지은 양 멋있다며 칭찬한다.
아버지를 너무나 잘 아는 아들은 기자가 이 건물을 과학이다 느낄 만큼 지하 1층, 지상 2층의 모든 공간의 동선이 매끄럽게 이어지도록 설계했으며, 건물 여기저기에 나이 든 부모님을 위한 세심한 배려들을 넣었다. 바닥은 미끄러지지 않도록 입체감이 있는 데코타일을 깔았으며 침실에는 드레스 룸과 욕실, 파우더 룸을 드나들기 쉽도록 한 동선으로 이어지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공간 하나에도 입구를 여러 개 두었는데, 처음엔 미로처럼 헷갈리더니 몇 번 다니다 보니 빙 둘러가지 않아도 되어 동선이 훨씬 절약되었다. 집은 어디서나 안과 밖이 소통하고, 각 공간들도 공유된다. 또한 지하층부터 2층까지 연결되는 계단도 일부러 7~8개마다 꺾었다. 노인네들은 계단이 길면 힘들고 숨차다는 것이 그 이유다. 밥을 먹거나 사람들과 얘기를 나눌 때는 바닥에 앉기를 좋아하는 아버지를 위해 거실 옆에 미닫이문이 달린 좌식 사랑방을 만들었다. 주방 타일 색상도 마음을 가라앉히는 쑥색을 선택했다. 이런 배려가 담기다보니 겉보기엔 웅장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따스한 기운이 느껴지는 그런 공간이 된 듯 싶다.
1 노출 콘크리트 대신 벽돌을 쌓고 벽지 대신 페인트칠로 마무리한 벽면 앞에는 결혼 후 받은 첫 월급으로 한국가구에서 구입했다는 문갑이 놓여져 있다. 삶을 함께하고 손때가 묻은 가구라 아끼면서 가지고 있으려고 한다.
2 침대 헤드 뒤쪽에는 욕실과 드레스 룸, 파우더 룸 등 3개의 공간이 동선을 따라 배치되어 있다. 재미있는 것은 양쪽으로 드나들 수 있도록 가벽 양쪽을 뚫어놓았다는 것. 욕실은 밝아야 한다는 지론에 따라 유리 블록으로 만들어 환하다.
3 이 집에 있는 모든 물건들은 모두 이전부터 사용하던 오래된 것들인데, 유일하게 주방만 새 물건들로 채워졌다. 손님 초대를 할 일이 많다 보니 수납장에도 그릇이 꽉꽉 들어차 있다.
45년 전의 추억을 모아둔 겸손한 집
“사람들은 여기가 박물관인 줄 알아.” 사실이다. 집의 크기와 생김새는 박물관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안의 모습은 겉과는 너무 다르다. 내부는 느긋하고 검소한 인상을 풍긴다. 이곳에는 25년이나 된 가죽 소파가 놓여져 있는가 하면 침실에는 결혼 후 첫 월급으로 구입했다는 문갑과 그 이후 돈을 모아 구입했다는 보루네오 서랍장이 놓여 있다. 벽에는 결혼 선물로 친구가 그려준 국화 그림 액자가 걸려 있고, 침실에 놓인 14인치짜리 TV와 턴테이블 오디오 등 이곳에 있는 가전제품은 모두 골드 스타(Gold Star)다. 선생은 너무 오래된 것이라 젊은 사람들 눈에는 좋아 보이지 않을 거라며 그냥 기념이 될 성싶어서 가지고 있는 것들이라 하셨지만 기자는 이야기를 품은 가구들이 있어서 이 곳이 더 멋져보인다고 생각했다.
정릉에서 헤이리까지는 50km. 시속 90km로 밟고 달리면 딱 45분이 걸린다고 한다. 45분은 교향곡 4악장이 끝나면 도착하는 시간이라며 선생은 늘 정릉 집에서 헤이리 오는 시간 동안 음악을 듣는다고 했다. 아무도 방해하는 사람 없이 오로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곳. 이렇게 바쁜 세상에 이런 시간이 아니면 어떻게 느긋하게 앉아서 45분이나 되는 긴 음악을 들을 수 있겠냐며 그 시간이 참 좋다 하신다.
지금의 느긋해 보이는 모습과 달리 젊었을 때는 스스로의 성격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신경질적이기도 했고, 머리를 10개로 쪼개 살 정도로 바쁘게 살았다 하셨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인가 ‘노예스러운 마음(노예스러운 마음이란 힘들지만 제 할 일을 열심히 하면 굶지는 않는다는 것, 그리고 남들에게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아도 되는 것이란다)’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로 생활이 조금씩 바뀌었다 하신다. 어려운 자리이긴 해도 인생을 오래 사신 참 어른을 만나면 역시 느끼고 배우는 게 많다.
지하 1층에 위치한 작가의 작업실. 워낙 유명한 작품들이 많다 보니 언뜻 보아도 눈에 익은 작품들이 꽤 있다. 경사진 대지에 놓여진 탓에 지하층도 1층처럼 출입할 수 있는 문이 있다.
첫댓글 무지무지있어보인다눈 ㅎㅎㅎㅎㅎ 아주화려한집은아니지만 ㅎ 멋지다눈 ㅋㅋ
무지무지 잇어보이지용 ^^언니
와우..진짜 넓다~~ㅎㅎㅎㅎ
조각가 ...답지용
주방이 넘 멋지네요
아주 감각있어보이기두 하고 참좋네요
멋스럽네요 ^^
네 ^^ 넓고
넓고 ......^^ 멋스러워요
네 ^^ 멋진분 같아용
멋지네요..^^
독특한 구조가 맘에 드네요.. 깔끔하고 넓고,, 멋져요^^
멋지네요
정말 감각적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