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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 하시는 일과 영분별
240519낮(성령강림절/웨슬리회심) (고전6:11)
<11)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아멘
이번 주는 성령강림절이요, 다음주일은 요한웨슬리 회심 기념주일입니다. 두 주일 모두 성령역사와 관련이 있기에 오늘 <성령이 하시는 일과 영분별>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행2장에 오순절 날 마가의 다락방에 임하셨던 성령의 역사로 사도들을 통하여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이 전하여지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수많은 박해 속에서도 복음이 전파되었던 것은 성령의 역사 때문입니다.
세계 3대 종교와 교인수를 보니까 흰두교가 10억명, 이슬람교가 18억, 기독교가 20억 이상이라고 합니다. 아직 기독교 인구가 제일 많은 세계 제일 종파인 것은 성령님의 강력한 역사로 말미암았음을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짧은 말씀 속에는 회개와 중생과 성결에 대한 구원론적 진리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죄인이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성장해 가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체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하시는 일에 대하여 살펴보며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또한 요한 웨슬리목사님에게 임하셨던 성령과 나타난 영적 현상들 그가 전한 복음의 핵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거짓 영들이 많이 나타나 성도들을 현혹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영분별에 대하여 말씀을 이어서 드리려고 합니다. 유익한 시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첫째, 성령이 하시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1. 죄인을 회개하게 하십니다.
행11:18절입니다.
<18)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의 가정에 초청을 받아 말씀을 전할 때, 성령이 임했고, 집안 모든 사람들이 세례 받고 구원 받은 역사가 행10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일을 예루살렘교회에 보고 했는데, 사도들과 교회 지도자들이 반응한 내용입니다.
<18)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하나님의 성령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누구에게든지 회개하게 하는 영을 부어 주셔서 회개하고 구원 받게 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어떤 사람도 회개 없이 구원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죄 아래 있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과 원수의 관계이며(엡2:16, 골1:21-23) 진노의 대상(엡2:3)입니다. 이러한 절망적인 상태에서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로 회복되고, 사랑의 관계가 되려면 죄 사함 받는 회개가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즉 회개함으로써 하나님과 관계 회복되는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원수 되었던 관계가 화목한 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회개가 선행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도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를 화목하게 하시려고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기에 성경은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오셨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사59:2절에 <2)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고 말씀했고,
롬3:23절에 <23)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 사함 받는 회개가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회개할 때 죄 사함 받아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관계가 화평의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롬5:1절)
그러면 회개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회개가 이루어지나요?
세 단계로 회개가 이루어지는데 지적인 측면, 정적인 측면, 의지적인 측면입니다.
⓵ 지적으로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죄를 죄 인줄로 자각하는 단계입니다.
죄를 깨달아야 죄책감을 느끼게 되고, 하나님은 죄를 얼마나 싫어하시는 지....죄를 지으면 얼마나 진노하시는지 깨닫는 단계입니다.
⓶ 정적으로는 지적측면을 바탕으로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하나님이 얼마나 싫어하시는지를 깨달았으면 죄에 대하여 슬퍼하고 부끄러워하며 뼈저리게 뉘우치는 감정의 변화를 가리킵니다. 죄에 대하여 통회하고 자복하는 것입니다.
⓷ 의지적 측면이란 죄와 세속적인 것으로부터 돌아서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죄를 싫어하고 무서워함으로써 죄의 길에서 완전히 떠나는 의지적 결단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죄인이 회개하는데 있어서 죄인 스스로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할이 필요한 것입니다. 죄인이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에 그 말씀을 듣는 죄인의 마음을 성령께서 감동시키시므로 회개에 이르도록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죄인을 회개시켜 구원에 이르게 하십니다.
2. 거듭나게(중생) 하는 일을 하십니다.
요3:3, 5절입니다.
<3)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5)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인간에게서 태어난 모든 자연인은 누구나 다 죄인입니다. 이 죄인을 성경은 불순종의 자녀(엡2:2), 멸망의 자식(요17:12), 마귀의 자녀(요3:10)라고 부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자들을 가리켜 “육으로 난 자들”(요3:6)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들의 결국은 멸망입니다. 왜냐하면 육으로 난 자들은 모두 죄 아래 있고(롬3:9, 7:14), 죄 값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롬6:23)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멸망으로부터 구원받기 위해서는 거듭나지(중생) 않으면 안 됩니다.(요3:3,5) 죄인은 거듭나야만 영원한 생명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듭남(중생)은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고 죄 사함 받아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인데(고후5:17)...이는 원죄로 죽었던 영혼이 성령 받음으로써 살아나는 것을 뜻하며 영적인 부활을 의미합니다.(엡2:1-9)
거듭나게(중생) 되면 하나님의 성품(벧후1:4), 즉 의로운 성품과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성품을 갖게 됩니다. 거듭남(중생)은 순식간에 이루어지지만, 성도는 계속 성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겉 사람 즉, 육신은 날로 후폐하지만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져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거듭나게 하십니까?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십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아니 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1:23)고 말씀했고,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요3:6-7)고 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어 영의 사람, 영적 존재가 되게 하십니다.
3. 성결하게 하는 일을 하십니다.
살후2:13절입니다.
<13)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성령으로 거룩하게 하신다>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거듭난 성도가 성결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11:45)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마5:48절에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가 거룩하게 산다는 것은 말씀으로 죄에서 구별되는 삶과 성령 충만한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천국은 의인인체 하는 사람들이 가는 곳이 아니라 죄를 지었을지라도 상한 심령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회개하고 하나님께 의롭다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가는 곳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성령의 사역 없이는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살후2:13절 <13)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구원 받는 길은 다른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복음의 진리를 믿게 하심으로 값없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항상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시와 찬미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요한 웨슬리에게 임한 성령과 그의 집회에 나타났던 영적 현상과 그가 전한 복음의 핵심
요한웨슬리 목사님은 1738년 5월24일 올더스게잇 집회에서 성령으로 거듭나는 체험을 하고, 1739년 1월 1일 페터레인 집회에서는 성령의 능력에 사로잡히는 체험을 했습니다. 이후로 요한 웨슬리의 집회에서는 많은 영적 현상들이 일어나기 시작 했습니다. 바닥에 쓰러지는 현상, 영적 고통에서의 치유, 정신이상증상에서의 치유, 육체적 질병에서의 치유, 복음을 반대하던 사람들의 변화, 육체적인 질병가운데서도 하나님만 의지하게 되고, 불신자들이 구원 받음, 절망으로 가슴을 치며, 눈물을 흘리며, 마음에 찔림을 받고, 회개하고 구원에 이르는 역사, 죄수들이 구원 받고, 술주정뱅이와 폭도들이 구원 받고, 귀신에게 사로잡혀 괴롭힘 당하던 사람이 구원 받고, 교만과 위선의 영에 사로잡힌 사람이 구원 받고, 악령에 사로잡혀 웃는 사람이 구원 받는 등...수많은 이해 못 할 영적 현상들이 일어났습니다.
요한웨슬리의 집회에서 나타나는 이런 영적 현상들로 인해 인간의 철학과 지식을 중시하던 영국국교회나 카톨릭교회, 예정설에 집착해 있던 장로교회도 웨슬리의 집회에서 일어나는 영적 현상들이나 그가 전하는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웨슬리는 영국 국교회인 루터교에서 설교할 수 없게 되어 그는 거리에서, 탄광에서, 창녀촌에서 교도소에서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영국 사회에 엄청난 부흥운동이 일어나고, 회심운동이 일어나 프랑스는 피의혁명이 일어난 반면 영국은 복음주의 혁명이 일어나 영국사회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웨슬리는 교리나 철학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믿는 “마음의 종교”를 강조했습니다. “신앙은 교리에 대한 이성적인 동의나 승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영접하고 믿는 것이다”며 이것이 ‘살아있는 신앙’(living faith)이라고 강조 했습니다.
웨슬리가 말하는 살아 있는 신앙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그리스도”를 믿을 뿐 아니라 “내 안에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살아 있는 신앙이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믿어 의롭다하심을 얻고(칭의), 내 안에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믿어 성화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웨슬리는 바로 이것이 복음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웨슬리에게 복음이란 의롭다하심(칭의)을 거쳐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성화의 전 과정을 말합니다.
또한 웨슬리는 이런 복음의 전 과정이 인간의 능력이나 지혜로 될 수 없고,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한 일임을 강조했습니다. 철저히 성령께 의존하고, 성령께 순종할 때만, 복음의 삶을 살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웨슬리는 성령의 이끌림을 받는 것, 성령의 능력에 사로잡히는 것을 신앙의 본질로 이해했습니다. 웨슬리가 성령께서 일으키시는 다양한 현상을 중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웨슬리의 이런 <성령론적 복음주의 운동>이 조지 휫필드 목사님에게 전이되었고, 휫필드가 미국으로 건너가 조나단 에드워드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에드워드 목사님에 의해 미국에 대각성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웨슬리는 감리교회를 창시했을 뿐 아니라 구세군, 성결교회, 오순절, 순복음 그리고 현대의 수많은 카리스마 운동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세째, 영분별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령의 역사와 악령의 역사를 어떻게 분별해야 합니까?
성도들은 자기 나름대로 신령한 영적인 체험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신령한 영적체험이라고 해서 모두 성령의 역사만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에게는 내주하는 성령의 역사나 구원 얻을 후사들을 섬기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천사들의 역사가 있는 반면, 마귀들도 끊임없이 악령의 역사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인지 악령의 역사인지 분별해야만 하는데,,, 가장 확실한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영분별의 은사를 받는 것이지만, 모두가 이 은사를 받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성도들은 성경말씀에 근거하여 분별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1. 그들의 열매로 분별할 수 있습니다.
마7:15-20절입니다.
<15)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16)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20)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이 말씀에 보면, 아무리 놀라운 영적체험을 하였다 해도 그 열매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열매에 어긋난다면 그 체험은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성령의 역사가 아닌 것입니다.
예를 들면...
성령의 역사를 빙자하여 사소한 일을 간섭하는 경우가 있는데...“집을 팔지 말라, 이 버스를 타라, 저 차는 타지 말라, 오늘 상점 매상은 얼마가 될 것이다.. 등등” 이러한 경우는 거의 틀림없는 악령의 역사입니다. 사소한 것 하나도 스스로 할 수 없는 존재로 만들고, 기도 받고 하라는 대로 해야 불안하지 않는 존재로 만듭니다. 영적 그루밍입니다.
성경은 이런 것들을 지절거림과 속살거리는 신접한자의 소행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사8:19절을 볼까요
<19)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주절거리며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 물으라 하거든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 하라>
성도들이나 목회자들 가운데... 성령 받았다고 성령의 사역을 가장하여 다른 사람의 숨겨진 비밀을 들춰내거나 교회나 성도에게 유익을 주지 못하는 사소한 일을 예언하고 다니는 사람은 성령이 아니라 거의 신접한 자로 보아도 틀림없습니다.
영적체험을 했어도 마음에 평안이 없고, 불안과 고통의 중압감으로 고통스럽다면 이는 악령에 억압되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우리에게 의와 평강과 희락을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체험을 한 후 더러운 죄악이나 교만이 마음을 사로잡는 경우도 있습니다. 참으로 성령 받은 사람에게도 때로는 유혹이 엄습 할 때도 있으나, 악령에 사로잡힌 자는 자신의 의지로도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더럽고 추한 생각과 참소나 교만이 심령을 사로잡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악령은 더러운 영이기 때문입니다.(마10:1, 막1:28) 그러므로 이런 현상들이 일어난다면 성령이 아니라 악령이 역사하고 있음을 알고 물리쳐야합니다.
2. 그 사람의 언어생활을 통하여 분별할 수 있습니다.
성령 받은 사람의 말은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하나님에 관한 것을 알려 주는데 사용합니다.(행10:45-46)
그런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기를 높이며 성도들을 향하여 협박과 공갈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리고 스스로 자신에게 안수를 받으라고 강권하며 직간접적으로 금품을 강요하거나 말이나 행동이 방자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통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다 해도 그것은 악령의 역사라고 보면 됩니다.
3. 그 사람의 기독관(基督觀)을 통해 분별할 수 있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령 받은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에 대하여 잘못된 주장을 하거나 자칭 예수나 감람나무라 하며 하나님을 높이지 않는 자가 있다면 이 또한 성령 받은 것이 아니라 악령의 역사인 것입니다.(요일4:3)
그러므로 성도는 영적체험도 중요하지만, 영분별을 잘하는 일이 더욱 중요한 일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피조물들은 창조주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고전10:31절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한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자칭 하나님 혹은 예수라 하며 섬김 받기를 원하는 사역자는 적그리스도임이 분명합니다.
사역자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종인 그 자체가 주인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신령한 은사를 받았을지라도 남의 허물이나 들추고 교회를 비판하는 자는 악령에 사로잡혀 있는 자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평안을 주십니다. 성령의 역사는 교회에 덕이 되게 하고, 상대방을 평안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도록 역사 하십니다. 간절히 부르짖어 성령 충만함을 받아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