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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바타>에 대해서 교황청이 금지령을 내렸다 한다. 중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아바타> 대신 공자를 보라 했다 한다. 교조적인 두 국가가 <아바타>에 대해서 금지령을 내렸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한때 동 서양을 지배하던 두 나라는(바티칸은 한 국가이다) 자신들에 대한 강력한 믿음을 가졌다. 세월이 흐르면서 각자 그 사정은 달랐지만 믿음의 정도가 희석되었고 오늘에 이른 것이다.
기계가 발달할수록 문명이 발달할수록 인간의 의식은 자연을 추구한다. 몸은 온갖 편리가 제공되는 도시에 아파트에 살고 있으면서 의식은 그 옛날 자연과 하나가 되어 있는 세계를 추구하는 것이다. 인간의 역사, 서구 문명의 역사는 기계화 역사라고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과학은 보다 편리해지기 위한 기계 연구에 바쳐졌고 그 결과 탈 것에서부터 수술에 이르기까지 온갖 종류의 기계가 생활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요즘이다. 머잖아 생각하는 데도 기계가 필요하게 될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한데 온갖 노력을 쏟아 부어 모든 것을 직접 해결해야 하는 그 불편함을 편리함으로 바꾸었으면서 인간은 다시 그 불편을 그리워한다. 자연을 그리워하고 자연과 더불어 살고 싶어 하는 것이다. 단 인간은 모든 것을 깡그리 부순 채로 그 옛날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의식만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것이 현대인의 이기심이다.
자원이 고갈된 미래의 지구, 그러나 과학만은 대단히 발달해 대체 행성을 찾을 정도이다. 대체 행성이라기보다는 인류에게 필요한 자원을 다른 행성에서 찾는 것이지만. 말하자면 인류는 식민지를 찾고 있는 것이다. 과학을 발전시킨 인류의 역사는 한편으로는 식민의 역사라고 볼 수 있다. 자원을 찾아 이득을 찾아 탐욕스러운 사람들은 새로운 세계를 탐험했고 그 탐험은 오지 아닌 오지를 찾아가 그곳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을 착취하는 식으로 이어져 온 것이다.
주인공 제이크는 하반신이 마비된 군인이다. 다리는 움직임의 근원, 민첩한 행동을 필요로 하는 군인에게 하반신 마비는 반죽음이나 다름없다. 이쯤 되면 인류를 상징하는 주인공이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인지 나온 셈이다. 즉 그, 인류에게는 생명력이 부족한 것이다.
주인공 제이크가 투입된 판도라, 인류가 대체 자원을 찾는 행성 판도라는 말할 것도 없이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이름이다. 판도라의 상자에 숨겨진 것들. 호기심으로 연 탓에 세상에는 재앙이 들어오지만 희망이 남는다. 그 희망의 행성인 판도라에는 원주민 '나비'족이 살고 있다. 이들은 자연과 일치된 삶, 자연의 한 부분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사진: 나비족들의 본거지인 나무
그들이 숭배하는 대상은 '에이와', 에이와는 패러디한 어떤 신과는 달리 정복하는 신이 아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말한 그 신은 인간을 모든 동물위에 두었으나 판도라 행성의 이 신은 자연의 모든 것, 생명의 균형을 잡는 신이요 자연스러움을 중시하는 신이다. 이 행성에서는 인간이라 해서 가장 우위에 있는 개체가 아니다. 오직 주어진 대로 살아갈 뿐 모든 생명체는 동등한 권리를 갖고 있다. 자연에 개입하는 법이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이 유기체의 일부로 존재하는 곳이라면, 인간마저 그 유기체의 하나로 다루어진다면 이 신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즉시 생각날 법도 하다.
아바타에는 새로운 장면이 없다. 행성 판도라는 미야자와 하야키의 <천공의 섬 라퓨타>에서 빌려 온 장면이지만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를 읽은 사람이라면 하야키보다는 조나단 스위프트가 만들어낸 섬, 자석의 힘으로 떠다니는 공중의 섬, 라퓨타를 떠올릴 것이다. 라퓨타는 자석의 힘으로 떠다니니 자석이 깔린 부유행성 판도라는 미야자와 하야키보다는 훨씬 더 조나단 스위프트에 가깝다.
사진: 떠다니는 섬 라퓨타의 모습이 반영된 판도라 행성
어디 그뿐이랴. 인간이 의식을 전이한다는 이야기는 공상과학영화에서 익숙한 소재가 되었다. 육체를 발전시키는 것만으로는 모자라 정신마저 전이시키는 시대가 오는 것이다. 가상의 세계에서의 활동을 다룬 저 <매트릭스>에서부터 어느 세계가 진짜인지 모르는 <13층>등이 있었다. 물론 이들 영화에서는 가상 세계라는 공간적 배경을 내세웠으나 정신이 다른 세계에 가서 활동하는 동안 원래의 몸은 꼼짝하지 못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진: 실험실에서 키워낸 인공육체
실험실에서 키워낸 인공 육체와 의식과의 싱크로를 꾀한다는 점에서, 소위 인조 몸과 신경과의 일치를 꾀한다는 점에서 <아바타>는 <에반게리온>을 닮았고 기계 몸의 등장은 <디스트릭트 나인>에서 보던 것이다. 제이크가 사랑하게 된 나비족의 여인 네이티리, 인디언 여인 포카혼타스를 닮지 않았는가. 이야기의 익숙함은 그렇다치고 네이티리와 제이크가 식물 위를 뛰어다니는 장면은 <라이언 킹>을 닮았고 새를 길들여 타고 다니는 장면 역시 야생마를 길들이는 장면과 너무도 흡사하며, 괴조를 길들이는 장면 또한 인디언 혹은 아프리카 부족의 습속, 성인 의식과 흡사하다.
아바타는 근대와 현대의 것만을 모방하지 않는다. 원래 아바타는 산스크리트어에서 나온 것으로 신의 화신을 뜻한다. 다시 에이와를 들먹이면 동서양 할 것없이 어우러진 영화임을 알 수 있다. 즉 아바타는 동 서양을 막론하고 고대, 근대, 현대가 어우러진 영화인 것이다.
모든 장면이 어딘가 익숙한 아바타라고 해서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고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 모든 것을 어우러지게 만든 감독의 의식은 새롭다. 종합해서 만들어냈다는 것이 새롭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단지 장면들이 익숙하다는 것으로 끝날 일인가. 또 다른 익숙함이 영화의 이면에서 흘러나온다. 자연과의 합치, 우주와의 조화는 일찍이 인디언들이 추구하던 일이다. 미국이 아직 초창기일 무렵, 미국을 차지하고 살던 인디언들의 생각이 바로 저랬다. 그들은 자신들 역시 자연의 일부로 생각했던 것이고 자연속 모든 생명체들을 존중했던 것이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나비족은 너무도 익숙한 존재들이다. 그들의 얼굴 장식만 보아도 인디언과 아프리카의 부족들을 닮았다는 사실이 이내 떠오를 것이다. 비록 백인 인류학자들이 인디언들에게 그들 인종이 자연과 합치해 살아간다는 의미를 부여했다 할지라도 그들이 우주의 정기를 받아들여 살아간다는 것은 사실, 그들의 문화와 전통이 그렇다는 것은 사실, 그들은 여전히 조화를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존재로 여겨진다.
문명은 정신보다는 물질로 대변된다. 기계의 발달이 곧 문명의 발달인양 여겨지고 지구, 천상에서 온 사람들은 기계 문명을 대표하게 되며 그중에서도 특히 기계의 힘을 신봉하는 대령이 과학의 힘만으로 밀어붙이다가 자연의 힘에 진다. 기계는 노한 동물들 앞에서 맥을 못 추고 부서지는 것이다.
기계화는 마초적 성격을 갖는다. 기계는 힘에 의해 움직이기 마련이다. 그 힘을 쥔 자는 권력자이다. 권력에 의해 움직이는 기계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파괴하려 든다. 기계가 발달하면 할수록 힘에 매료되는 인간은 늘어나기 마련, 소수의 권력자가 기계를 제어한다. 그 세상에서 인간은 생명력을 잃어가고 결국은 생명력의 근원을 찾게된다. 자연과의 조화처럼 생명력을 되살려 내는 것은 없다. 인간 역시 자연의 하나이므로라고 하는 것이 감독의 관점.(일수도 있고 단지 차용한 것일수도 있다)
사진: 대표적인 마초인 대령은 식민주의자의 선두에 서있다고 볼만하다.
그런 면에서 아바타는 탈 식민영화라고 보아도 좋다. 한 행성을 송두리째 삼키려고 그 행성위에 사는 부족들을 멸망시키거나 이주시키려고 하는 강력한 기계집단에 자연이 반발, 승리하는 것이다. 이른바 서양의 발전된 문명이 강력한 무기로 무장하고 자연에 순응하면서 살아가던 신세계, 아프리카 오지, 아시아 등을 침략하던 일에 대한 역설이라고 보아도 좋다. 역사적 사실, 식민지의 확산은 여기서는 반대로 나타난다.
하나 더 말하자면 미국은 인디언에게 원죄의식을 갖고 있다. 그들은 미국을 세우기 위해 인디언들을 학살했고 그로 인해 오늘날 인디언은 극히 소수만 살아남게 되었다. 이미 행해진 일, 돌이킬 수 없는 일이므로 그 죄의식에서 미국인은 자유로울 수 없다. .구대륙, 유럽에서 박해를 피해 바다를 건너온 청교도들, 폭력을 피해 도망온 그들이 폭력을 휘둘러 다른 종족을 말살했던 것이다.(인디언은 폭력이 아니라 전염병으로 죽었다고 말한다. 그 역시 폭력이다. 지식 또한 폭력의 도구가 아닌가)
영화속 나비족이 인디언에게서 그 모티브를 빌어왔다면 판도라를 침략하는 '천상의 사람'인(천상의 사람만 해도 할 말이 많다. 인간은 지상의 사람이다. 여기서 지구인은 천상의 사람으로 표현되고 있다. 아즈텍 제국을 멸망시킨 코르테스를 처음 보았을 때 그가 말을 타고 있었으므로 아즈텍 사람들은 그를 천상의 인간, 천상에서 내려온 신의 사자라고 생각했고 그 생각이 그들로 하여금 꼼짝못하도록 했다. 아즈텍인의 전설이 그들을 멸망하는데 도움을 주었던 것이다) 지구인은 미국인이 되는 것이다(물론 필자의 생각이다). 인디언을 몰살시켰던 미국인이 압도적인 기계의 힘에도 불구하고 밀려나는 것은 과거 역사에 대한 회한어린 반성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고 오늘날 새삼 인디언 사고의 중요성을 깨달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원래 식민사상, 제국주의 사상을 가졌던 나라는 근본적으로 우월주의에 몰두해 있다. 중세시대에 십자군 운동(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도 끔찍한 식민전쟁이다)을 일으켰던 곳이 어디인지를 생각한다면(물론 교황청이 주장하는 내용은 다르다), 중화사상의 근본이 무엇인지를 상기한다면 교조적이라고 말하는 이유를 금세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두나라가 쌍수를 들고 이 영화를 반대하는 이유야 뻔하지 않은가.
하긴 아바타는 다각도로 해석이 가능한 영화이기는 하다. 장자의 호접몽을 갖다 붙인다면 누가 누구 꿈을 꾸었다는 것인지 구별해낼 수 있겠는가. 제이크가 꿈을 꾸는지, 관객이 꿈을 꾸는지, 현재 인간들이 꿈을 꾸는지 헷갈리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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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희야님은 참 신기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어렵게 공부를 하면서도 시간 투자가 가장 많아야 하는 영화광에다 이런 영화평까지 쓰고... 게다가 가정 살림도 빡시게 해야 하는 철인입니다. 영화를 정말 많이 보셨네요. 저는 아직 아바타 구경하지 못했습니다. 자연을 가장하지만 그 속에 들어있는 기본 생각은 어디까지나 정복이겠지요. 이 영화만 해도 엄청난 투자 비용이 들어간 영화잖아요. 더구나 거기에 국가가 개입하면 말할 것도 없겠지요. 인디언이 전염병으로 모두 죽었다는 그런 폭력 앞에 다른 말은 필요 없겠지요.
음. 자연을 가장하지 않아요. 여기서 나오는 나비족은 인디언의 생각과 아주 근사합니다. 자연과의 조화지요. 제가 너무 겅중겅중 뛰어서 썼나봐요. 여러가지가 한꺼번에 몰아치다보니. 실제 역사를 감독이 비틀어서(고의던지 무의식이던지) 영화로 나타냈지요. 제가 공부하는 것들은 사회, 영화, 문학, 역사, 심리, 신학에 모두 투영된답니다. 놀랍지요? 요번에 배운 들뢰즈는 지금껏 해석하지 못했던 아니 이해하지 못했던 영화들을 이해하게 해주었어요. 사회현상 또한 마찬가지구요. 너무 어려운 이론을, 정말정말 어렵게 배웠는데 그러고 나니까 머리속이 조금은 밝아진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흠. 여기에 대해서 또 하나 써야겠네요
그렇군요. 내 선입견이었던가 봐요. 다시 천천히 한번 더 읽어 볼게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글도 전문성이 막 느껴지고 저걸 해석을 다 하시려면 영화도 많이 보셔야 할텐데.. 정말 놀랍습니다..
윽! 저만큼 안 본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요. 지금껏 본 것들을 종류별로 한줄로 세웟! 하는 거 뿐이랍니다.
관객 1000만 돌파를 했는데도 저는 아직 볼까말까 망설이고 있는 중입니다. 나이들수록 조용한 영화만 좋아하게 되네요
조용한 영화는 나름대로 매력이 있지요. ^^ 섬세한 만큼 깊고 잔잔한 울림을 주니까요.
교황청에서 금지한 것은 영화 상영이나 뭐 이런 걸 금지한 것이 아니라, 가톨릭 신자들이 [범신론적 내용]에 물들지 말라는 그런 내용입니다.
ㅎㅎ 인공 생명 창조라는 것도 있겠죠? (식민주의 사고라는 것은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하고 자신을 퍼뜨리는 것입니다. 공간의 침범, 탈취뿐 아니라 사고의 침범, 탈취내지는 포섭, 세뇌도 포함되어 있지요.)
희야님. 사진을 간단편집으로 올려 주시면 크기가 자동으로 맞아들어가니 스크롤하지 않아도 읽어갈 수 있겠습니다.
네. 다시 써보려고 해요. 너무 겅중겅중 건너 뛰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조금 기다려주시압.
어제밤 영화를 보았습니다...전 원래 나비족의 생각과 일치하는 사람이므로....아주 감동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