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고개를 아십니까?
글-德田 이응철(수필가)
1935년 조광지 12월호에 발표한 농촌소설 봄. 봄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올 정도로 농촌 서민들의 모습을 풍부한 토속어와 해학적 수법으로 그려낸 한국 단편의 거장 김유정 작가. 마름의 횡포인가 착취인가! 노동력의 착취요. 소작인의 비극이다. 비인간적으로 마구 사람을 부려먹는다. 참고 참다가 오죽 화가 났으면 고양이한테 쥐가 덤비는 격으로 되알지게 쏘아붙인다.
-난 갈테야유, 그동안 사경 쳐내슈
-너 사위로 왔지, 어디 머슴 살러 왔냐?
-밤낮 부려만 먹고 성례는 왜 안시켜주지유/
-인석아! 안하는 거냐 그년이 안 크니까
-그럼 빙모님은 참새만한 것이 어떻게 앨 낳지유?
껄껄 웃는 장인에게 이번엔 한패지만 구장한테 가서 물어보자고 옷깃을 잡아끈다.
-어쭈! 이자식이 왜 이래 어른을 땅땅 치고 난리야!
그러나 내 사실 참 장인님이 미워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 전 날, 왜 내가 새고개 맞은 봉우리 화전 밭을 혼자 갈고 있지 않았느냐, 밭 가생이로 돌 적마다 야릇한 꽃내가 물컥물컥 코를 찌르고 머리 위에서 벌들이 가끔 붕, 붕, 소리를 친다(이하 생략).
김유정의 봄.봄을 읽노라면 새고개라는 지명이 등장한다.
주인공 나는 26세 데릴사위, 아내를 약조한 점순이는 16세, 무려 10살 차이-. 김유정 문학촌에 가보면 장독 가에 나, 점순이, 장인의 모습이 눈부시게 황금빛으로 조각되어 반긴다.
봉필인가 욕을 워낙 잘해 욕필이라던 장인은 실제 유정 개울 건너편에 살던 김종필이다. 딸을 이용해 실컷 데릴사위로 부려먹고 성례는 시켜 주지 않아 갈도 꺾고 모내기할 무렵 냅다 덤벼든다. 싸우지만 번번이 참새만한 것을 어떻게 성례시키냐고 생떼를 쓰는 장인의 고약한 핑계가 마냥 해학적이다.
등장하는 새고개는 어디인가?
김유정마을에서 남쪽으로 뒤척이면 한들(大平)마을이 나온다. 그 곁에 사금이 출토되어 들병이들이가 우글대며 농촌총각들을 설레게 하던 동네 여울은 신연강으로 흐른다. 이 지방에서는 한두루라 한다.
여울을 따라 오르면 물골, 삼포가 나온다. 삼폿말에서 화전하다가 주재소로 끌려 징역 갔다고 하는 김유정 소설 지명이다. 삼폿말에서 2킬로 못 미쳐 홍천 새슬막으로 이어지기 전 새고개란 마을이 수줍다. 이곳에 2011년 함께 근무하던 지인 한분이 퇴직하고 마침 십여 채가 살고 있는 그 마을로 닁큼 이소하셨다.
자주 문자도 주고 받으며 친히 지나던 어느 날, 새고개 농장이란 간판을 큼직하게 세워 문학마을과 연계하라고 누누이 일렀다. 이곳이 김유정 봄.봄에 나오는 마을이란 것도 알리기 위해 새고개를 강하게 부각시켰더니 쾌히 수긍하신다. 그 후, 찾아갔더니 간판을 크게 올려 달았는데 질문이 쏟아진다. 왜 이곳이 새고개라고 했는가?
맛있는 질문이 아닐 수 없다. 고향 정족 2리는 실레마을 못 미쳐 이웃이다. 어미닭이 병아리 품듯 실레나 솥발이 모두 진병산 정기를 받은 난형난제(難兄難弟)가 아닌가! 유년기 때 새고개에 대해 익히 들었지만, 아는 것이라곤 고야가 많이 달린다는 것 뿐 아무것도 모른다. 마침 고향에 팔순이 넘으신 아형(阿兄)이 계셔 여쭤보았으나 들이 넓어 시루버덩이고, 한들 건너가 거문관이, 깨낄 동네는 말골, 삼포 옆이 덕만이 고개만 늘어놓으실 뿐, 갸웃하시더니 급기야 오늘서야 소식이 답지했다.
고향 경로당에 구순이 넘으신 이옹(翁)어르신께 물어보니 아뿔싸! 날아다니는 새(鳥)가 아니란다. 그 동네에서 실레 역까지 가려면 삼포 -한들을 돌아 걸으면 한 시간이 족히 넘는단다. 때문에 동네 뒷산을 넘으면 바로 수와리 골, 연못이 나온다고 전해 주셨다.
일종의 지름길, 샛길이 있다. 사잇길, 샛길이 새(間)고개가 되었다고 증언을 하셨다고 전한다. 지금도 그 고개가 허리를 낮게 내리고 있지만 생경스러워 넘기 어렵단다. 해토가 되고 춘풍에 꽃향이 날리면 한번 찾아나서 실레마을까지 답사해 봐야겠다.
정유년에 바람이 있다면 언젠가 언론에 투고한 금병의숙의 신축이다. 그 터에 당시의 작가가 일으킨 농촌계몽운동을 실제 체험관으로 건립하는 것과 김유정 이야기 길에 또 하나의 길 새고개가 이어져 관광객들의 올레길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답을 물어온 새고개 주민 김 선생께 동천(冬天)이 푸를 때, 함께 점순이를 찾아 박주산채라도 들며 문학에 홍건히 취해보리라.(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