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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렵과 채집으로 생활하였던 옛 사람들은 신석기시대에 접어들면서 원시적인 농경을 시작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서울 암사동, 평남 궁산리, 황해도 지탑리 등지에서 탄화된 곡식류와 돌칼, 돌낫, 보습 따위가 함께 발견되어 원시농경이 시작되었음을 알게 해준다. 이 때 사람들은 해안가나 강 주변에 살면서 주로 수렵과 채집에 의존하였다. 한쪽으로는 조, 피 등의 잡곡을 야생에서 채집하거나 재배하였을 것으로 본다. 이들은 토기나 생활도구를 제작하였으며 불을 피워 음식물을 조리하거나 곡식을 저장하였을 것으로 짐작한다. |
우리나라 농경의 정착은 대체로 청동기시대에 접어들면서 이루어졌다고 보고 있다. 부여 송국리 유적에서 탄화된 볍씨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이미 벼농사가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영산강유역에서는 나주시 다시면 가흥리에서 3,000여년 전의 벼 꽃가루가 검출된 바 있고, 무안군 양장리 유적(기원전 4-5세기경)과 광주 신창동 저습지유적(기원전 4세기경)에서는 볍씨를 비롯한 여러 식용작물의 씨앗과 다양한 농경 도구들이 출토된 바 있다.왼쪽 사진은 토기 밑부분의 볍씨자국으로 목포대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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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을 갈고 있는 모습이 새겨진 서기전 3세기경의 농경문(農耕文) 청동기는 1970년 대전의 한 상인이 고철 수집가에게 구입한 것이 서울의 골동상인을 거쳐 국립중앙박물관에 수장되었다. 정확한 출토상황이나 출토지가 알려지지 않고, 대전에서 출토되었다고만 전해지고 있다. 농업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이 농경문 청동기는 복제품이다.현재의 상태는 상변에 6개의 구멍이 뚫어져 있고, 양끝으로 갈수록 둥글게 닳아 있어 매달아 사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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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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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들은 누렇게 익은 곡식을 베어 말리고, 지게·거지게·우차 등으로 벼를 운반하여 들마당·집마당에 볏가리를 쌓아놓고 벼훑이·개상 등으로 타작을 한다. 또 밭곡식인 조·콩·팥 등도 수확하여 쌓아두고 벼타작이 끝난 후에 도리깨 등으로 두드린다. 이 때는 한 마을이 이웃하여 수고도 나눠하고 없는 것도 서로 도와 즐기기도 같이 한다. 밭에서는 면화가 트기 시작하여 밤으로는 씨아소리와 베 짜는 소리가 들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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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에 보리를 심을 경우에는 논흙에 포함된 습기 때문에 씨앗이 얼 염려가 있어 밭보리보다 파종시기를 일찍 잡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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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는 몸을 굵게 꼬고 머리와 꼬리는 가늘고 부드럽게 꼰다. 지역에 따라 '뙈기', '파대', '딸기', '태기' 등으로 불리며, 한 손으로 머리를 잡고 꼬리를 휘두르다가 거꾸로 잡아채면 '딱'하는 소리가 크게 나는데, 닳기 쉬우므로 꼬리는 흔히 삼으로 엮으며, 긴 장대에 매달아 쓰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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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산제조 도구는 농산물에 다소 가공을 하여 제품으로 만드는데 쓰이는 여러 가지 도구 이다. 전통 농경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가마니틀, 자리틀, 섬틀, 새끼틀, 신틀, 비틀, 기름틀, 누룩틀, 국수틀 등이 이러한 도구들이다. 가마니틀은 가마니를 짜는 틀로 굵고 두툼한 나무로 직사각형의 틀을 짜고 좌우 양끝에서 비스듬히 두 개의 기둥을 세웠으며 이 기둥머리에 도리를 끼워 고정시킨 틀로서, 도리와 바탕받침을 의지하여 38개의 날을 둘러 감고, 기둥 중간에 조임대 또는 주릿대를 걸어서 날이 팽팽하도록 한다. 처음에는 한 사람이 바디질을 하고 다른 한 사람은 짚을 먹여주는 수동식이 쓰였으나 한 사람이 발로 밟아 틀을 돌리면서 짚을 넣어가며 짜는 족답식이 나왔다. 자리틀은 왕골·부들·짚 따위로 자리를 짜는 틀이다. 섬틀, 발틀, 울타리틀 등을 틀 자체의 모양으로 볼때 똑같으나, 섬이나 자리를 짜는 틀은 울타리 틀에 비하여 작다. 국수틀은 가루를 반죽하여 통에 넣고 공이로 눌러서 국수를 뽑아내는 틀이다. 국수집에서는 큰 솥 위에 국수틀을 걸고 반죽을 구멍 안에 넣은 다음 공이로 눌러 솥 안으로 국수가 흘러 들어가 삶아지게 설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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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물의 씨앗을 담아 뿌리는데 쓰이는 도구로는 '종다래기'와 '소쿠리'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종다래기는 짚이나 싸리 등으로 엮은 주둥이가 좁고 밑이 넓은 바구니를 가르킨다. 지역에 따라 '다락지', '화종종두래미', '종다래미', '씨끌메꾸리', '종다리', '종댕이'라고도 한다. 이것은 짚이나 싸리 또는 댕댕이덩굴로 만드는데, 짚으로 엮은 것은 주둥이가 좁고 밑이 넓으며 바닥은 네모꼴이다. 주둥이 양쪽에 달린 끈을 허리에 둘러 감아서 배에 찬다. 콩이나 팥 또는 감자 따위를 심을 때 씨를 여기에 담아 뿌리며, 또 들이나 산에서 캔 나물이나 고추를 따서 담기도 하고 농가의 어린이들은 이것으로 고기를 잡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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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루막은 사람이 등에 질 수 있게 만든 운반도구의 하나이며, 망태와 비슷하나 두루주머니 처럼 주둥이를 조일 수 있어 감자, 고구마 따위를 담아 나르기에 알맞다. 산에 약초를 캐러 가거나 사냥을 나갈때에도 필요한 것을 여기에 넣어 짊어지고 간다. 가늘게 꼰 새끼로 날을 삼고, 삼줄로 씨를 삼아 자리틀에서 촘촘히 엮어 낸다. 주둥이에는 죌 수 있도록 고리를 만들고 죄는 끈은 밑부분 두 끝에 연결시켜 멜빵 구실을 겸한다. 멜빵을 메면 주둥이도 죄어지게 되며, 마찰이 심한 고리에는 칡넝쿨, 왕골, 가래나무껍질을 감아놓기도 한다. |
길마는 소나 말을 부려 짐을 실어 나르는 옹구, 발채, 거지게 따위의 받침대 구실을 한다. 길마 위에 옹구 등을 놓고 짐을 싣기 때문에 소의 등이나 옆구리에 닿지 않으며, 길마만으로는 짐을 운반할 수 없다. 지역에 따라 '지르마', '질매', '질마', '지르매'라고도 부른다. 옛말은 '기르매', '기르마'등이다. 생김새는 두꺼운 널빤지를 말굽쇠 꼴로 두 개의 틀을 짜고 두자쯤 사이를 두어 나란히 놓은 다음 양쪽에서 막대를 질러 붙박았다. 틀 안쪽에는 두툼하게 짠 언치를 대어 짐을 실었을 때 배기지 않게 했다. 물건을 옮기는 옹구는 논밭에 두엄을 낼 때나 무, 호박, 배추, 감자 따위를 담아 나르고, 발채는 벼나 보릿단을 옮기는데 쓴다. 지게와 비슷한 거지게로는 나무나 나락가마를 나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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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농사의 마무리는 곡식을 털고 고르는 일로써 음력 9월 무렵이 된다. 터는 연장으로는 벼훑이·개상·도리깨·그네·탈곡기 등이 있다. 최근에는 경운기에 연결한 탈곡기, 수확기와 탈곡기를 겸한 콤바인까지 등장하였다. 개상은『해동농서』에 '가상',「농가월령가」에는 '들마당', '집마당'에 '개샹'에 '태돌'이라 …(생략), 젊은이는 태질이요 계집사람 낫질이라고 적혀 있다. |
제 3 전시실
여기에는 상습적으로 한해와 수해를 입었던 개발전 영산강유역의 옛 모습을 비롯하여 영산강 5단계 개발사업, 완성된 영산강 개발 모형도, 개발후의 영산강유역 모습, 영산강 하구언공사 모형도, 담양·장성·광주·나주호 댐 공사, 물대기 및 수문의 발전 모형도 등이 전시돼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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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지류들이 부채꼴을 이룬 우리나라 4대 강의 하나인 영산강 유역은 풍부한 수자원과 쳔혜의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음에도 치수시설의 미비와 연중 7∼8월에 편중되어 내리는 강우량으로 거의 해마다 한해, 수해로 인하여 막대한 피해를 입어왔다. 이같은 조건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하여 영산강 유역 농업종합개발계획을 세워 영산강유역 전역을 전천후 농토로 바꾸기 위한 대 역사를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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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 | 사업내용 |
1963 ~ 1964 | 영산강하구언 및 마산 금호지구에 대한 예비 타당성 조사 |
1965∼1968 |
보완조사 시행 |
1969∼1971 |
영산강유역 종합개발 계획수립 및 1단계 사업 타당성 조사 |
1972∼1974 |
1단계 차관협정에 이어 공사착공 2단계 타당성 조사 |
1975. 8 |
타당성 조사 완료 |
1975. 11 |
IBRD 사업 평가 |
1976. 3 |
기본계획 고시(전남도 32호) |
1976. 10 |
하구언 진입도로 착공 |
1977. 2 |
2단계 차관협정 체결 |
1977. 12 |
사업 시행계획 고시(전남도 246호) |
1978. 1 |
하구언 착공 |
1978. 11. 30 |
단계 공사 완공 |
1979. 11. 13 |
대불방조제 최종 체절 |
1980. 11. 24 |
하구둑 배수갑문 공사완료 |
1980. 12. 6 |
평야부 착공 |
1981. 2. 28 |
하구둑 최종 체절 |
1981. 5. 1 |
하구둑 배수갑문 조작 개시 |
1981. 12. 8 |
하구둑 준공 |
1981∼1984 |
3단계 기본조사 |
1982. 9. 10 |
공유수면 매립(농수산부 고시 제82-54호) |
1982. 12 |
간척지 공사 착공 |
1985. 8. 12 |
3단계 진입도로 착공 |
1985. 11. 15 |
3단계 사업시행 고시 |
1987. 6. 19 |
3단계 사업시행 인가 승인 |
1987. 8. 4 |
3단계 진입도로 준공 |
1988. 6. 30 |
3단계 방조제 공사 착공 |
1991. 4. 8 |
3단계 방조제 최종 체절 |
1991. 11 |
2단계 평야부 완공 |
1991. 12 |
나주 동강, 영암 시종 공구 준공. 무안 일로 삼향, 영암 삼호 공구 착공 |
1992. 12 |
몽탄 일로 공구 준공 |
1993. 5 |
영암 도포 공구 착공 |
1993. 11 |
삼향 공구 착공 |
1993. 12 |
영암방조제 준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