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최고 권력자는 헌법이 보장하는 ‘대통령’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대통령보다 훨씬 쏠쏠한 자리가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제가 예전에 여기에 조선시대 후기의 ‘양반’의 횡포에 대해 글을 올린 적이 있지만 요즘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은 조선시대 후기 양반을 훨씬 능가하는 ‘사회악’으로 비춰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신의 직장’이라는 말이 있지만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은 ‘신이 부러워하는 자리’라는 얘기가 떠돌 만큼 그 혜택이 어마어마하다고 합니다. 그러니 지역에 똬리를 틀고 앉아서 몇 선이고 해먹고 나이가 들면 그 자손에게 물려주려는 자리가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입니다.
지금 말이 많은 더민당 대표가 온갖 비난을 다 감수하고 자기 지역도 아닌 엉뚱한 곳에 보궐선거에 출마해 의원이 된 것도 비난보다 엄청 크 혜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한국 국회의원만큼 노블레스 오블리주(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의 실천과 거리가 먼 지도층 인사도 없다.
법률 입법권과 국가예산 심의권, 국정운영 감시권 등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고 막대한 세비를 받으면서도 특권 지키기에 필사적이다. 헌법 제46조에 청렴의무와 국익우선의무, 지위남용금지의무가 명시돼 있지만 엄수하는 국회의원을 찾기 힘들다.
오죽하면 ‘제왕적 국회의원’, ‘국해의원(國害議員)’이란 표현까지 등장했을까.
이런 국회의원들이 누리는 특권의 정곡을 찌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유머가 무릎을 치게 한다.
잘 먹고 잘 살던 국회의원이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해 저승으로 갔단다. 염라대왕은 한국 국회의원의 특혜를 낱낱이 아뢰라고 호통을 쳤다. 그가 “특권이 200가지가 넘어 다 아뢸 수가 없습니다”라고 하자 염라대왕은 “그럼 생각나는 대로만 말해 보라”고 했다.
그는 대충 이렇게 읊었다. “기본급이 월 600여만 원, 입법활동비가 월 300여만 원입니다. 연봉은 1억5000여만 원입니다. 차량 유류비 월 110만원, 전화우편요금 월 95만원은 별도입니다. 국고 지원으로 해외 시찰이 보장됩니다. 보좌진 9명, 45평 사무실 운영비가 지원됩니다. 보험 가입 시 A등급으로 보험료가 가장 쌉니다, 의원회관에서 헬스는 물론 병원까지 공짜입니다. 죄 짓고도 안 잡혀가는 그런 특권도 있습니다.”
염라대왕이 가만히 듣다가 얼굴을 붉히며 “이제 그만해라. 내가 화가 나서 더 이상은 못 들어 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렇게 해도 망하지 않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특이하구나. 내가 내려가서 한국의 국회의원을 한번 꼭 해보고 싶구나”라고 했다. 국회의원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6000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 체포동의안이 부결돼 공분을 자아낸다. 169석의 민주당이 대거 반대표를 던진 결과다. 21대 국회 들어 정정순·이상직·정찬민 의원의 체포동의안이 가결되며 회기 중 불체포특권을 내세워 법망을 피해온 관행이 깨지는가 싶었는데 원점으로 돌아갔으니 개탄을 금할 수 없다.
민주당이 성남FC 후원금 의혹으로 오늘 검찰 소환조사를 받는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이 상정될 경우 부결시킬 명분을 만들기 위해 무리수를 둔 것은 몰염치한 행태다.
더욱이 이 대표는 20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불체포특권 폐지와 무노동 무임금법 도입을 공약하지 않았나. 약속을 지키기는커녕 자신을 위해 불체포특권 개선의 흐름을 후퇴시킨 것은 정치 지도자의 도리가 아니다. 이 대표에 대한 불신이 깊어졌을 것이다.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대해 국회 밖에서 책임을 지지 않는 면책 특권도 시급히 손봐야 할 적폐다. 이것이 없었다면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의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제기한 민주당 김의겸 의원이 가짜 뉴스로 판명난 뒤 사과를 안 하고 버틸 수 있었을까.
국회의원은 회기 중 회의에 참석하지 않아도 통장에 월급이 꽂힌다. 무노동 무임금이 적용되지 않는 특권층인 것이다. 2020년 기준 연봉이 1억5426만원으로 직종별 순위 1위다. 정치개혁이 노동·연금·교육 3대 개혁보다 시급하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스웨덴 국회의원은 업무용 차는 물론 보좌관과 비서관이 없다. 연봉은 한국의 3분의 2에 불과하고 특전은 꿈도 꿀 수 없다. 그런데도 1인당 평균 법안 발의 건수가 4년 임기 동안 100개가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우리 국회의원과 너무 대비된다.
여야는 선거가 있을 때마다 국회의원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 폐지, 무노동 무임금법을 공약한다. 관련 법안을 발의해 기대감을 가지기도 했지만 거기까지였다.
노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로 의원들의 ‘셀프 정치개혁’ 공약은 사기극임이 분명해졌다. 다른 분야는 선진화의 길을 가는데 정치만 제자리걸음인 나라가 또 있을까 싶다. 이런 비정상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 깨어 있는 국민이 결집해서라도 특권 내려놓기를 강제해야 할 때다.
국회의원 특권을 폐지하는 헌법 개정안을 내는 정당에 표를 몰아주는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국회를 갖는다.>세계일보. 김환기 논설실장, . [김환기칼럼] ‘셀프 정치개혁’의 허망함
법을 만드는 곳이 국회이다 보니 자신들의 이익이나 혜택을 위한 것이라면 여고 야고 없이 짝짜꿍이가 되어 유리하게 법을 개정한 것은 어제 오늘이 아닙니다. 수십 년간 계속 그렇게 하다 보니 지금 대한민국에서 국회의원을 하는 것보다 더 나은 자리는 없다는 얘기가 계속 나오는 것일 겁니다.
국회법은 국회가 만들게 하지 말고 국민의 동의를 얻어서 만들게 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 같습니다. 자기들이 궁지에 몰리면 국회도 3선으로 제한하겠다는 얘기를 꺼냈지만 그게 한 번도 공론에 오른 적은 없었습니다.
대한민국의 공직은 어느 자리든 3선으로 제한하는 것이 토호의 발흥을 막는 장치가 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다른 어느 개혁보다 국회 개혁이 더 먼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