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비꽃’ 시&갤리
석야 신웅순
요새 ‘시&갤리그라피’ 소품 작업을 하고 있다. 내 시 한 구절을 뽑아 캘리그라피화하고 있다. 시 창작, 한글 캘리 하나도 만만한 게 없다. 시 창작은 세상에서 그 어디에도 단 하나 밖에 없는 은유를 찾는 길이요, 한글 캘리는 세상에서 그 어디에도 단 하나 밖에 없는 상징을 찾는 길이다. 수행길은 참으로 멀고도 멀다. 풍경 소리, 목어 소리 그 소멸점을 찾아가는 길을 내 어찌 알 것인가. 모르는 길이요, 처음 가는 길이요, 두려운 길이다.
작품을 하고 마지막에 낙관을 한다. 며칠을 두고 다시 본다. 그 때는 괜찮아 보였는데 며칠 지니고 보면, “아, 이게 아닌데.”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또 욕심이 들어갔구나.”
다시 작업을 한다. 이상한 일이다. 처음 작업할 때보다 못할 때가 더 많다. 전부가 욕심이 만들어낸, 갈수록 파지만 늘어가는 내 못된 찌꺼기들이다.
처음엔 연습 삼아 해보자는 생각으로 그냥 글씨를 쓰는데 그것이 제일 나은 작품이 되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욕심이 없는, 그냥 써보는 것 이것이 예술의 길일지 모르겠다.
늘상 내가 나 한테 속고 있다. 탁 놓아야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붓도 욕심 따라 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붓이 묵언수행하라 채찍하건만 내 따라갈 수 없으니 붓에게도 많이도 미안하다.
너무나 예뻐서 그만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먼 훗날 그대를 찾아가면 나는 시가 될 겁니다.
- 신웅순의 「양귀비꽃」
2012년 여수 세계박람회를 구경했다. 메마른 정원 한 구석, 박토 위에 홑양귀비꽃을 발견했다. 바람에 날리는 붉은 홑치마의 모습에 눈이 아팠다. 그 홑치마에 봄 하늘 한 쪽이 환히 비치고 있었다. 그 때 썼던 시이다.
- 신웅순의『절제와 인연의 미학』시서첩
얼마나 아름다우면 세인들은 중국 최고의 미인 양귀비를 꽃이름으로 붙였을까. 나는 이 같은 글씨를 두 번씩이나 전시했다. 글씨를 잘 써서라기보다 꽃이 너무 예뻐서 그랬다.
마음이 차지 않아 십년이 지나 다시 글씨를 썼다. 양귀비에 대한 애정이 깊었는지, 모처럼 득의작 같은데 쓰고 보니 또한 내 마음 밖이다.
또 십년 후 다시 써볼 생각이다. 글씨가 어떻게 변해있을까. 내 모르는 길처가 궁금하다.
추사가 서거 3일 전에 쓴 ‘판전’ 은 아무 사심, 욕심 없이 쓴 글씨이다. 어린 아이가 쓴 천진난만한 동자체이다. 지금도 그 끝이 보이지 않으니 20대 초 유명한 서예가가 되고자 했던 당찬 마음은 다 어디로 갔을까.
글씨도 청정한 저 가을 하늘 같았으면 좋겠다. 최선을 다할 뿐 그 끝은 내 아닌 하늘 소관이다. 진인사대천명이 우리들의 인생살이가 아닌가.
-2023. 8.26, 석야 신웅순의 서재, 여여재
첫댓글 잘 보고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점심시간 틈새에~~~
읽어주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