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들장미꽃이 피었어요!
요즘 언덕배기나 길가에 새하얀 들장미 꽃들을 자주 본다.
들장미꽃의 다른 이름은 <찔레꽃>이다.
어릴 때에 친구들과 산야에서 ‘삘기’와 ‘싱아’를 따먹고
찔레나무의 어린 줄기를 따먹은 추억이 있다.
오래 전에 소설가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소설에 나오는 그 ‘싱아’의 계절이다.
“찔레꽃”을 보면 아련한 아픔으로 밀려오는
복효근 시인의 <상처에 대하여>라는 시를 떠올리게 된다.
“오래 전 입은 누이의 화상은 아무래도/ 꽃을 닮아간다.//
날 내내 속썩어쌓더니/ 누이의 눈매에선/ 꽃향기가 난다.//
보니/ 모든 상처는 꽃을/ 꽃의 빛깔을 닮았다/
상처라면/ 아이들의 여드름마저도/ 초여름 고마리꽃을 닮았다.//
피가 멎지 않던 상처일수록/ 꽃향기가 괸다/
된 누이의 화상을 보니 알겠다/
향기가 배어나는 사람의 가슴속엔/ 커다란 상처 하나 있다는 것.//
익은 상처에선/ 꽃향기가 난다.”
나처럼 몸의 상처와 마음의 상처를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미국의 와싱턴 사귐의교회의 김영봉 목사는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아프다>에서
“산다는 것은 곧 상처를 주고받는 일입니다. 상처는 아픕니다.
치유되지 않은 상처는 우리의 성품과 기질에 영향을 미칩니다.
때로는 상처는 자기 자신의 인생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인생까지 파괴시킵니다.
치유된 상처는 아름다우며, 깊은 상처로부터 나은 사람은 향기로운 사람이 됩니다.
상처 입은 이여, 당신의 모든 상처가 하나하나 향기로운 꽃으로 변모되기를 기원합니다.
이 소망을 마음에 품고,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받아 이웃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에 더욱 힘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과 행실이 이 세상에 상처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치유를 더하는 일에 사용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상처 입은 나>는 “남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으로 사는가?
아니면 “남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사람”으로 사는가?
이 질문 앞에 당신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성찰해야만 합니다.
*묵상: “찌르는 가시와 아프게 하는 가시가 다시는 없으리니
내가 주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에스겔.28:24).
*적용: 내가 받은 상처에는 예민하면서 정작 타인에게 준 상처는
그냥 잊고 살지는 않는지요?
상처를 주는 사람에서 상처를 치유해주는
<상처 입은 치유자>로 전향하길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