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원주민 이야기1]
왜 인디언인가?
서정록
수년전 헬레나 노르베르 호지의 (오래된 미래)는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티벳 라다크인들의 소박한 생활이 어느덧 도시생활에 익숙해진 우리들의 잠자는 영혼을 일깨운 것입니다. 이 혼탁한 시대에 라다크인들의 소박한 생활이 과연 우리를 일깨워 새로운 생명세계로 나아가게 해줄 수 있을까? 왜냐하면 그들은 자본주의 문명을 접하기 시작하자, 얼마 안 가 그들의 순수함과 소박함을 잃어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그들이 너무도 착해서, 순진무구해서 자본주의의 교활한 상술에 무너졌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들이 무너진 것은 직접적으로는 자본주의의 침투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히려 그들 내부의 욕망으로부터 무너졌다고 보는 쪽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문화에는 오체투지의 지극한 낮춤이 있는 동시에 기복(祈福)의 문화가 함께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그들의 모습은 수백 년 동안 백인들의 압제와 밀려오는 물질문명의 홍수 속에서도 의연히 자신들의 본래의 모습을 지켜가려는 북미 인디언들의 경우와 대비됩니다. 물론 북미 인디언들의 경우에도 상당수의 사람들이 백인문화에 동화되어 갔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들의 의사에 의한 것보다는 백인들이 인디언 마을을 파괴하고, 그들을 거리나 보호구역으로 내몰았던 데 주로 기인합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백인들의 생활방식을 따라갔던 이들과 잘 살아보기 위해서 그 길을 따라가는 사람들의 경우를 같이 볼 수 없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19세기 중반에 백인들이 중서부의 인디언 마을을 빼앗는 과정에서 생존권을 지키려는 인디언들과의 잦은 마찰이 있었는데, 그 과정에 이런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전투를 하다보면 서로 포로가 있게 마련이지요. 백인 병사들 역시 인디언들에게 포로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전쟁은 자연히 결손가정들이 생깁니다. 전쟁에 나간 남편이 죽거나 자식이 죽는 거지요. 그런 경우 인디언들은 포로들 중에서 자신의 남편으로 삼고 싶거나 자식으로 삼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기꺼이 남편이나 자식으로 받아들입니다. 새로운 가족이 되는 거지요. 인디언 가정에 들어간 백인 병사들은 곧 인디언 사회에 적응해서 살게 됩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인디언 전사대의 일원으로 백인 병사들과의 전투에 참여합니다. 그리고 운이 나쁜 경우 백인들에게 포로가 되지요.
그러면 백인들은 그에게 왜 백인이 인디언 전사대가 됐느냐, 백인 사회로 돌아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인디언 가족이 된 백인 병사들은 하나같이 백인 사회로 복귀하기를 거부했다고 합니다. 이제 자신은 인디언이라고, 더 이상 백인이 아니라고 외치면서 말입니다. 그들은 왜 자신들이 목숨을 걸고 싸웠던 적인 인디언이 되고자 했을까요. 도대체 인디언 사회에 무엇이 있기에 그럴까요?
1832년부터 8년 동안 북아메리카 인디언들과 함께 생활하며 수백 점의 인디언 그림을 남긴 '조지 캐틀린'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그림과 현지의 생활과 풍습을 자세히 적은 그의 편지는 인디언 예술과 문학의 고전이 되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만난 인디언들의 삶과 우호적인 태도에 크게 감동하여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는 지극한 정성으로 늘 나를 환영해주었던 인디언 민족들을 사랑한다.
나는 법이 없어도 정직하며, 감옥도 없고, 가난한 집도 없는 인디언 민족들을 사랑한다.
나는 십계명을 읽은 적도, 목사로부터 그런 말을 들은 적도 없지만, 그것을 잘 지키는 인디언 민족들을 사랑한다.
나는 신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지 않겠다고 맹세한 적이 없는, 그리고 그러한 맹세가 필요 없는 인디언 민족들을 사랑한다.
나는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인디언 민족들을 사랑한다.
나는 성경이 없어도 신을 공경하는 인디언 민족들을 사랑한다. 신 또한 그들을 사랑할 것이기에.
나는 모든 종교들이 같다고 믿으며, 종교적 적대감으로부터 자유로운 인디언 민족들을 사랑한다.
나에 대해서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거나 나의 물건을 훔친 적이 없는 민족, 그런 것에 대해서 징벌하는 법조차 없는 인디언 민족들을 사랑한다.
나는 땅을 빼앗고자 그들의 영역에 침입한 자들 외에는 백인들과 싸운 적이 없는 인디언 민족들을 사랑한다.
나는 신이 창조한 인류를 사랑하며, 결코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 또한 신의 신성한 아이들이기에.
나는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인디언 민족들을 사랑한다.
그리고 돈을 탐하지 않는 인디언 민족들을 나는 진정으로 사랑한다.
그런가 하면,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의 한 사람인 '벤자민 프랭클린'은 뉴욕 주에 거주하는 이로쿼이 사람들이 서구의 민주주의보다 훨씬 더 수준 높은 민주주의 제도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너무도 놀랐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고귀한 야만인'이라 부르며 어떻게 야만인들이 저렇게 수준 높은 민주주의 정신을 구현했는지 믿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미국연방 헌법의 골격이 이로쿼이 연합의 <위대한 평화의 법>에 기초했다는 것은 사람들은 모두 다 아는 사실입니다.
아마도 서부영화에 나오는 인디언에 익숙해져 있는 분들 가운데는 여전히 인디언들을 야만인으로 인식하는 분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미국에 갔다가 '인디언 투어(Indian Tour)'를 하고 온 분들에게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됩니다. 미국의 인디언 보호구역에 가 보니 빈곤하기 이를 데 없는 데다 술 먹고 마약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던데, 그런 인디언에게서 무엇을 배운다고 그러냐고 말입니다.
미국의 주류문화에 익숙해져 있는 이들일수록 이런 견해를 가진 경우가 많은 것을 봅니다. 사실 인디언 문화야말로 오늘날 미국의 주류문화, 이른바 신자유주의 문화의 가장 대척점에 서 있는 문화이기에 더욱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물질과 자본이 최고이고, 돈만 가지면 못할 게 없는 세상에서 물질보다는 나누는 삶을 실천하고, 나 개인보다는 가족과 이웃과 부족을 먼저 생각하며, 풀 한포기, 돌멩이 하나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는 그들의 삶이야말로 비현실적이고 원시적으로 보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북미 서남부의 산악지역(아리조나 주)에 사는 나바호족은 부자가 되는 것을 무척 경계합니다. 이기심과 욕심 없이는 결코 부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부자가 되었다면, 그는 틀림없이 가족과 이웃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을 것이라고…. 다시 말해 어려운 가족과 이웃을 챙기는 사람이라면 도저히 부자가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인디언 사회에는 독특한 문화가 있습니다. 서구와 구대륙의 문화가 물질과 축적을 숭상하는 문화라면 인디언 사회는 나눔을 숭상하는 문화라고 할 만큼, 그들은 물질을 이웃과 나누는 것을 좋아합니다. 물질에 여유가 있는데도 이웃의 과부나 고아나 어려운 노인들을 돌보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 것이 예사입니다. 뿐만 아니라, 마을에 축제가 있으면 서로 자신이 준비한 것들을 가지고 나와 이웃과 나눕니다. 가난한 사람들조차 조그만 것이라도 들고 나와 자신의 마음을 나눕니다.
그래서 인디언 사회에는 기본적으로 부자와 가난한 자가 없습니다. 물질을 보는 태도가 자본주의 사회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그들은 동식물을 포함한 모든 존재를 자신의 형제요, 친척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대지를 어머니라 부릅니다. 어머니가 우리를 낳아 기르듯, 어머니 대지가 우리를 낳고 기른다는 것이지요. 동학의 2대 교주였던 해월 최시형 선생은 이러한 사상을 '천지부모'라는 말로 풀어낸 적이 있습니다. 사실 대지가 없으면 이 세상에는 나무나 식물도 없고, 동물도 없고, 물도 없습니다. 우리는 전적으로 지구생명에 의존해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아이가 어머니에게 의존하듯 살아갑니다.
그래서 그들은 대지를 어머니라고 부릅니다. 어머니라는 것은 얼마나 숭고한 것입니까? 우리는 다 커서도 어머니를 생각하면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매일같이 딛고 서 있는 이 땅이 바로 어머니의 살갗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들은 걸어 다닐 때도 조심해서 걸어 다닙니다. 결코 뒤꿈치를 쿵쿵거리며 걷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면서 인디언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행동을 돌아봅니다. 혹시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다른 존재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지는 않나 하고 말입니다. 그들은 특별히 아이들을 몹시 위합니다. 그들은 아이들에게 큰소리를 치는 법이 결코 없습니다. 또 이래라, 저래라 명령하는 일도 없습니다. 필요할 때는 부드럽게 알아듣도록 설명합니다. 그들의 영혼이 다치지 않도록 말이지요.
또한 그들은 여성을 매우 존중합니다. 여성을 구타하는 남자는 사회적으로 질타를 받습니다. 그리고 심한 경우에는 그 사회의 각종 모임으로부터 쫓겨납니다. 왜냐하면 여성은 생명을 낳고 기르는 '신성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들의 일상적인 삶과 영적인 생활은 언제나 하나입니다. 분리되어 있지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일상생활 따로, 종교생활 따로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완전하지요. 인디언들의 경우에는 양자가 언제나 일치해 있습니다. 그들의 일상적 삶이 곧 종교요, 기도인 것입니다.
철들고부터 머리속에 사회에 대한 여러 가지 고민을 갖고 살던 저는 이런 인디언들의 삶과 그들의 정신세계를 깊이 이해하면서, 그 동안의 쓸 데 없는 고민과 번민들을 모두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고(故) 무위당 선생님을 모시고 있을 때도 풀리지 않던 의문들이 인디언을 알게 되면서 눈 녹듯 녹는 것이었습니다. 제 내면의 허구의식도 바로 보게 되었고요. 물론 오랫동안 도시생활을 하며 몸에 쌓인 습이야 하루아침에 털어지지 않겠지만, 이젠 더 이상 비틀거리지 않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보면 인류의 황금시대가 있었고, 그 뒤에 은의 시대가 있었고, 청동시대가 있었고, 철의 시대가 있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가 아니더라도 과거에 황금시대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많은 민족 신화에 등장합니다. 저는 북미 인디언들이야말로 인류의 황금시대를 산 사람들이라고 주저 없이 말합니다.
인류학자들에 의하면, 중동지방에 1만여 년 전 실제로 황금시대가 있었다고 합니다. 수렵채집시대에서 농경으로 넘어가는 과도기가 바로 그러한 시기였다고 합니다. 유골들의 건강상태를 보더라도 그 뒤의 농경시대보다 더 건강했고요. 하지만 그 시기는 불과 500여 년으로 끝나고 맙니다. 인류가 노력해서 만들어진 황금시대가 아니라 자연적으로 주어진 선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북미 인디언들의 경우는 사정이 다릅니다. 광활한 숲과 풍부한 물, 그리고 다양한 수렵 동물들과 채집식물들이 많았던 점도 영향을 미치긴 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수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동안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이룩한 문화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인류 역사상 인간이 가장 사람답게 산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 위해주고, 어려움과 기쁨을 함께 나누며, 천지만물을 모시고 언제나 진실 되게 살고자 했습니다.
요즈음 생태공동체 비슷한 것들이 이곳저곳에 만들어지고 있는 것을 봅니다. 현재의 자본주의의 주류문화에서 벗어나 대안을 찾는 것은 매우 중요한 시도라 생각됩니다. 그렇지만 뚜렷한 방향과 지표와 목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방황하거나 실패할 위험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와 함께 구성원들의 의견을 모으는 과정에도 남다른 지혜가 필요하겠지요. 저는 이런 문제들에 대한 답을 북미 인디언 속에서 어느 정도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완전한 답은 아니더라도 그 정신과 방향만은 말입니다.
앞으로 대안을 찾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글을 조금씩 써보려고 합니다. 같이 생각하고 나누는 그런 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서정록: 서울대학교 철학과와 동 대학원을 나왔으며 한살림운동의 초창기 멤버로 활동했습니다. 고대 동북아와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문화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글쓴이는 인디언의 삶과 정신세계에 크게 감명받아 지인들과 조그만 인디언 모임을 가지며 있습니다.
저서로는 『백제금동대향로-고대 동북아의 정신세계를 찾아서』(학고재)가 있고, 역서로는 『지혜는 어떻게 오는가』(나무심는사람)가 있습니다.
생태공동체를 일구는 「이장」, 2003년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