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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필귀정(事必歸正)
일은 반드시 바른 곳으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무슨 일이든 결국 옳은 이치대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事 : 일 사(亅/7)
必 : 반드시 필(心/1)
歸 : 돌아갈 귀(止/14)
正 : 바를 정(止/1)
(유의어)
사불범정(邪不犯正)
인과응보(因果應報)
종두득두(種豆得豆)
처음에는 만사가 올바르지 않은 것처럼 보여도 결국 '모든 일은 반드시 바르게 돌아갈 것'이라는 뜻이다. 나쁜 사람이 잘 살고 착한 사람은 못 사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에는 나쁜 사람은 하늘의 벌을 받고 착한 사람은 하늘의 상을 받는다는 이야기의 경우에 쓰인다. 힘들고 어려운 길이라도 올바른 일을 포기하지 않고 하면, 언젠가 모든 일이 올바르게 돌아올 것이라는 것. 쉽게 말하면, 정의는 결국 승리한다는 의미이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쓰이지 않고, 한국에서만 쓰이는 한자성어이다. 사필(事必)은 ‘일은 반드시 그러하다’ 라는 뜻이고, 귀정(歸正)은 ‘올바른 방향으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즉, 모든 일은 반드시 옳은 방향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라는 뜻이다.
봄에 곡식을 심으면 가을에 익지 않으려 해도 결국 익지 않을 수 없으며, 과일 열매에 열매가 맺으면 떨어지지 않으려 해도 결국 떨어지며, 사람이 술을 마시면 취하지 않으려 해도 취하지 않을 수 없으며, 모든 뿌리를 심으면 싹트지 않으려 해도 결국 싹이 트며, 사람이 독을 먹으면 죽지 않으려 해도 마침내 죽게 되며, 사람이 이별할 근본을 심으면 이별하지 않으려고 해도 이별(離別)하게 되며, 사람이 뒷간에 들어가면 냄새를 맡지 않으려 해도 마침내 맡게 되며, 늙고 병들고 죽을 인연을 심으면 이 환난을 면하고자 하여도 마침내 면하지 못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시비(是非) 곡직(曲直)을 가리지 못하여 그릇되더라도 모든 일은 결국에 가서는 반드시 정리(正理)로 돌아간다. 올바르지 못한 것이 임시로 기승을 부리는 것 같지만 결국 오래가지 못하고, 마침내 올바른 것이 이기게 되어 있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事)’는 ‘이 세상의 모든 일’을 뜻하고, ‘정(正)’은 ‘이 세상의 올바른 법칙’을 뜻한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은 좋은 일을 하면 반드시 복을 받고 나쁜 일을 하면 반드시 벌을 받는 식의 올바른 법칙의 적용을 받게 된다는 말이다. 비슷한 고사성어로 인과응보(因果應報)와 종두득두(種豆得豆) 등이 있다.
성경(聖經)에는,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고후9;6),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 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6;7) 이르고 있으며, 불경(佛經) 보왕삼매론은 ‘열째, 억울함을 당할지라도 굳이 변명하려고 하지 말라. 억울함을 변명하다 보면 원망하는 마음을 돕게 된다.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기를 억울함을 당하는 것으로 수행의 문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하고 가르친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고, 시간이 지나면 검고 흰 것이 저절로 드러나고, 진실은 감추려 해도 감춰지지 않으니, 굳이 변명하려 들지 말라는 것이며, 변명하게 되면 거기서 원망하는 마음, 여러 가지 잡음이 생기기 때문에 굳이 변명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는 생활 주변에서 흑백이 뒤집히는 경우가 빈번하고 특히 법률적 문제에서 피해자와 가해자가 바뀌는 등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법률적 문제에서는 시간이 지나면 진실이 영원히 감추어지게 되므로, 적시에 증거를 입증하여 흑백을 바로 잡고 진실을 찾아, 흑백을 뒤집는 자들에게 단죄를 내리는 등 파사현정(破邪顯正) 정신으로 사필귀정을 보이는 노력을 해야 된다. 사필귀정이라며 시간이 지나기만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파사현정(破邪顯正) 정신으로 사필귀정(事必歸正)을 보여야 되는 것이다.
인생을 살다보면 예기치 않은 어려움에 빠질때가 있다. 이럴때 의연하게 문제를 파악하고 대처해 나갈 수 있는 길은, 일은 바른데로 돌아 온다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다. 나의 잘못이 아님에도 모든 시선이 내게로 향하여 견디기 힘든 시간을 맞았을때도 사필귀정(事必歸正)의 사자성어는 큰 힘이 되어준다.
언젠가는 잘잘못이 명백하게 드러나게 되어있다. 내가 잘 못 했을때도 사필귀정의 사자성어를 떠올린다면 변명이나 잘못을 감추기 위해 권모술수를 써서 일을 더 어렵게 만들지는 않게 된다. 오히려 솔직하게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謝過)를 하면 용서와 화해는 쉽게 이루어져 다시 옛 모습을 회복하게 된다. 사필귀정(事必歸正) 우리 인생에서 일은 정직하게 이루어져 간다. 정직한 삶이 최선의 삶이요, 최고의 삶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회자정리(會者定離)와 사필귀정(事必歸正)
우리는 살아가면서 만남과 이별을 수없이 반복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낼 때나, 정들었던 사람들과의 이별을 할 때는 슬픔과 아픔이 따른다. 인생은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返), 생자필멸(生者必滅) 속에서 사필귀정(事必歸正)으로 돌아가는 자연의 섭리 속에 머무는 것이다.
모든 인연은 순간의 틈 속에서 회자정리가 반복되는 것에 익숙한 것 같지만, 내가 속한 인연에는 크게 다른 심상인 것을 부인하지 못한다. 만난 사람은 반드시 헤어지고, 떠난 것은 반드시 돌아오고, 산자는 반드시 죽는다는 사필귀정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만나면 헤어지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참으로 냉정하지만 그러나 현실이며, 자연의 도도함이다. 나와 인연은 필연에서부터 우연까지 귀한 인연인 것은 사실이다.
나와 인연은 필연(혈연, 학연, 지연)에서부터 우연의 인연까지 귀한 인연인 것은 사실이다. 그중에서 혈연(血緣)은 가장 귀한 필연이며 나를 존재하게 하는 무한의 큰 인연이다. 그중에서 혈연(血緣)은 가장 귀한 필연이며 나를 존재하게 하는 무한의 큰 인연이다. 혈연으로 맺은 인연 속에 사랑이 충만하고 세상으로 출발시킨 존귀함이 가득하다. 그 소중한 인연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는 그 소중한 인연의 끈을 언젠가는 놓아야 한다. 누구도 예외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이별 연습을 잘 해야 헤어질 때 덜 아프고 덜 미안하게 이별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 가족(家族)과 언젠가는 헤어져야 할 시기가 반드시 온다. 그 시간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순간에 닥치는 것이 이별인 것이다. 만해 한용운은 ‘님의 침묵'에서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진다”라고 말했다.
회자정리의 유래는 석가모니가 베사리성의 큰 숲에서 열반에 들 때가 왔음을 제자에게 얘기하자 제자인 아란 존자가 슬퍼했다. 그때 석가모니가 “인연으로 이루어지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빠짐없이 귀착되니 은혜와 애정으로 모인 것일지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이별하기 마련이다. 또한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의례 그런 것이거늘, 아난존자는 어찌 근심하고 슬퍼만 하는가?”라는 데서 비롯됐다.
우리는 은퇴라는 또 다른 위치에 서면 누구나 그동안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졌던 추억을 한 번쯤은 떠올려본다. 그 인연 속에는 순연도 악연도 함께 뒤섞여 느낌표로 깊이를 측정해 본다. 그 인연에는 내 인생의 흐름에 박수로 응원한 인연도 그 흐름을 방해한 인연도 함께 흘러왔다. 만날 때마다 헤어지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삶을 지속할 수가 없을 것이다.
생자필멸 회자정리라 했다. 산 사람은 반듯이 소멸되고 만나는 사람은 언젠가 떠난다는 순리를 깨달아야 참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까닭에 나와의 인연에게 배려와 나눔 그리고 사랑으로 대한다면 이별 또한 크게 아프지 않을 것이며 따뜻한 세상을 함께하는 이치일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사멸이든, 마멸이든 결국 빈 것이 되고 만다. 부모님은 물론 사랑하는 이들과도 헤어져야 한다. 그렇다고 슬퍼하거나 비관할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간을 비롯한 삼라만상의 모든 것들은 소멸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으로서 결국 사라진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는 까닭이다. 그 헤어짐에 덜 미안하고 덜 속상하고, 덜 아픈 이별은 그 인연에 감사하는 마음일 것이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을 위하여
흔히 하는 말 중에 사필귀정(事必歸正)이란 사자성어가 있다. 모든 일은 반드시 바른 것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인데, 불교 경전에 나오는 말이니 진리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여기서 일(事)이란 세상사를 말하는 것이고, 세상사는 인간이 만드는 것이니, 사필귀정이란 인간에 대한 신뢰에서 나온 말일 터이다. 인간세상을 고해(苦海)로 보는 불가의 다른 시각과는 어떻게 조화가 되는지 모르겠지만.
물리학의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처럼 사필귀정도 만고불변의 진리인지는 확신이 가지 않는다. 인류의 역사를 볼 때 인간사(事)가 반드시(必) 바름(正)으로 돌아간다(歸)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서다. 인류가 오히려 지구 생태계를 파괴하고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사필귀정이란 저절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결국 사람들이 만들어내야 하는 것일 터이다. 유사 이래 수천 년 세월이 지난 오늘에도 온갖 범죄와 전쟁 같은 바르지 못한 일들이 끊이지 않는 걸 보면 불변의 진리라기보다는 희망사항이라는 편이 맞을 것 같다. 아무튼, 인간에 대한 믿음과 희망의 끈조차 놓아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협동하여 선(善)을 이루라’는 기독교 성서의 말씀처럼, 사필귀정은 우리가 목표로 삼고 매진해야 할 지상과제인 것이다.
나라 안이 너무 혼탁해졌다. 좌·우로 갈려서 사활을 건 대결로 치닫다 보니 옳고 바른 것은 뒷전으로 밀려나 버렸다. 특히나 좌파정권 5년 동안 저질러온 비리와 부정과 탈법과 반국가적 행태는 경악을 금할 수 없을 정도다. 그것은 비단 정치권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민심을 황폐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어떤 불법이나 파렴치한 짓을 해도 자기편이 한 것이면 용납이 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결사적으로 옹호한다는 것은, 인간의 존엄은커녕 최소한의 신뢰마저도 무너뜨리는 패역이 아닐 수 없다.
사필귀정이 우리사회를 지탱하는 기반이 되고 공동선의 동력이 될 수 있도록 국민들 각자가 각성하고 힘을 보태야 할 시점이다. 불의한 세력과 싸우더라도 스스로의 정당성을 잃지는 말아야 한다. 목적달성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릴 게 없다는 것이 좌파들의 논리다.
그런 좌파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원칙과 공정과 상식을 확고하게 세워야 한다. 대중을 일시적으로는 속일 수 있어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는 말처럼, 바름(正)을 견지하고 있으면 일시적으로 선전선동과 포퓰리즘에 미혹된 민심도 제자리를 찾기 마련이다. 지금의 싸움은 결국 여론전이다. 민심을 얻는 세력이 승리하는 것이다. 그것이 불의와 정의의 싸움이라면 민심의 각성여부에 승패가 달린 것이다.
사필귀정의 실현은 이 시대의 당위다. 그것이 나라를 바로 세우는 기반이기 때문이다. 나라의 흥망이 내 삶과 직결되는 것일진대, 우리의 삶을 위정자들이나 특정 세력들에게만 맡겨둘 수는 없는 일이다. 나는 물론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국민 된 도리를 다해야 한다. 기울어지고 무너지고 전도된 것들을 바르게 놓을 수 있도록 현정권에 적극 힘을 실어주어야 하는 이유다.
▶️ 事(일 사)는 ❶상형문자로 亊(사), 叓(사)는 고자(古字)이다. 事(사)는 깃발을 단 깃대를 손으로 세우고 있는 모양을 본뜬 글자로 역사의 기록을 일삼아 간다는 데서 일을 뜻한다. ❷상형문자로 事자는 ‘일’이나 ‘직업’, ‘사업’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갑골문이 등장했던 시기 使(부릴 사)자와 史(역사 사)자, 事(일 사)자, 吏(관리 리)자는 모두 같은 글자였다. 事자는 그중에서도 정부 관료인 ‘사관’을 뜻했다. 사관은 신에게 지내는 제사를 주관했기 때문에 事자는 제를 지내고 점을 치는 주술 도구를 손에 쥔 모습으로 그려졌다. 후에 글자가 분화되면서 事자는 ‘일’이나 ‘직업’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허신(許愼)의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정의하기로는 史자는 ‘일을 기록하는 사람’으로, 吏자는 ‘사람을 다스리는 자’로, 事자는 ‘직책’으로 분화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事(사)는 일이나 볼일 따위를 이르는 말(~를, ~을 다음에 쓰이어)이나 또는 일의 뜻을 나타냄의 뜻으로 ①일 ②직업(職業) ③재능(才能) ④공업(工業), 사업(事業) ⑤관직(官職), 벼슬 ⑥국가(國家) 대사(大事) ⑦경치(景致), 흥치(興致) ⑧변고(變故), 사고(事故) ⑨벌(옷을 세는 단위) ⑩섬기다 ⑪부리다, 일을 시키다 ⑫일삼다, 종사하다 ⑬글을 배우다 ⑭힘쓰다, 노력하다 ⑮다스리다 ⑯시집가다, 출가하다 ⑰꽂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실제로 있었던 일을 사실(事實), 뜻밖에 일어난 사고를 사건(事件), 일이 되어 가는 형편을 사태(事態)평시에 있지 아니하는 뜻밖의 사건을 사고(事故), 일의 형편이나 까닭을 사정(事情), 모든 일과 물건의 총칭을 사물(事物), 일의 전례나 일의 실례를 사례(事例), 일정한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운영되는 지속적인 활동이나 일을 사업(事業), 일의 항목 또는 사물을 나눈 조항을 사항(事項), 법률적으로 문제가 되어 있는 일의 안건을 사안(事案), 처음에는 시비 곡직을 가리지 못하여 그릇 되더라도 모든 일은 결국에 가서는 반드시 정리로 돌아간다는 사필귀정(事必歸正), 모든 일 또는 온갖 사건을 사사건건(事事件件), 사실에 근거가 없다는 사실무근(事實無根), 사태가 급하면 좋은 계책이 생김을 사급계생(事急計生), 일정한 주견이 없이 세력이 강한 나라 사람을 붙좇아 섬기면서 의지하려는 사상을 사대사상(事大思想), 자주성이 없어 세력이 강대한 자에게 붙어서 자기의 존립을 유지하는 경향을 사대주의(事大主義) 등에 쓰인다.
▶️ 必(반드시 필)은 ❶회의문자이나 형성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八(팔; 나눔, 필)과 주살익(弋; 줄 달린 화살)部의 합자(合字)이다. 땅을 나눌 때 말뚝을 세워 경계를 분명히 하여 나눈다는 데서 반드시의 뜻으로 쓰인다. ❷상형문자로 必자는 ‘반드시’나 ‘틀림없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必자는 心(마음 심)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심장’이나 ‘마음’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왜냐하면, 必자는 물을 퍼 담는 바가지를 그린 것이기 때문이다. 갑골문에 나온 必자를 보면 바가지 주위로 물이 튄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必자는 바가지나 두레박을 뜻했었다. 하지만 후에 ‘반드시’나 ‘틀림없이’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면서 지금은 여기에 木(나무 목)자를 더한 柲(자루 비)자가 뜻을 대신하고 있다. 참고로 必자는 心자에서 유래한 글자가 아니므로 글자를 쓰는 획의 순서도 다르다. 그래서 必(필)은 ①반드시, 틀림없이, 꼭 ②오로지 ③가벼이, 소홀히 ④기필하다, 이루어 내다 ⑤오로지, 전일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없어서는 아니 됨을 필요(必要), 그리 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음을 필연(必然), 반드시 없으면 안 됨을 필수(必需), 꼭 이김이나 반드시 이김을 필승(必勝), 필연이나 반드시를 필시(必是), 반드시 패함을 필패(必敗), 반드시 읽어야 함을 필독(必讀), 장차 반드시 이름이나 필연적으로 그렇게 됨을 필지(必至), 반드시 죽임 또는 그런 마음가짐을 필살(必殺), 꼭 얻음 또는 꼭 자기의 물건이 됨을 필득(必得), 필요하게 씀을 필용(必用), 반드시나 틀림없이 꼭을 필위(必爲), 꼭 그리 됨을 필정(必定), 반드시 명중함을 필중(必中), 반드시 앎을 필지(必知), 우편물 따위가 정해진 기일까지 틀림없이 도착함을 필착(必着), 꼭 이루기를 기약함을 기필(期必), 다른 방도를 취하지 아니하고 어찌 꼭 또는 어찌하여 반드시를 하필(何必), 필요가 없음을 불필(不必), 생각하건대 반드시를 상필(想必), 다른 방도를 취하지 아니하고 어찌 꼭을 해필(奚必), 틀림 없이 꼭 망하고야 맒을 필망내이(必亡乃已), 반드시 무슨 까닭이 있음을 필유곡절(必有曲折), 품은 원망을 반드시 풀어 없애고자 애씀을 필욕감심(必欲甘心), 죽기를 각오하면 살 것이다는 필사즉생(必死則生), 결코 이러할 이치가 없음을 필무시리(必無是理), 삼십 년 뒤에는 반드시 인仁이 된다는 필세이후인(必世而後仁) 등에 쓰인다.
▶️ 歸(돌아갈 귀)는 ❶형성문자로 帰(귀)의 본자(本字), 归(귀)는 통자(通字), 归(귀)는 간자(簡字)이다. 追(추; 따라가다)의 변형과 婦(부)의 생략형인 帚(추)로 이루어졌다. 고대(古代)에는 처가(妻家)에서 일정 기간의 노동을 한 후 새색시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돌아온 데서, '돌아오다'의 뜻이 되고, 전(轉)하여 '시집가다'의 뜻으로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歸자는 '돌아가다'나 '돌아오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歸자는 阜(언덕 부)자와 止(발 지)자, 帚(비 추)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런데 갑골문에서는 단순히 阜자와 帚자만이 그려져 있었다. 여기서 阜자는 '쌓이다'라는 뜻의 堆(언덕 퇴)자가 생략된 것이다. 이렇게 '쌓이다'라는 뜻을 가진 堆자에 帚자가 더해진 것은 집안에 쌓인 먼지를 쓸어내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사실 歸자의 본래 의미는 '시집을 가다'였다. 아마도 시집간 여자가 집안일을 한다는 뜻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금문에서는 여기에 止자가 더해지면서 '돌아가다'나 '돌아오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歸(귀)는 ①돌아가다, 돌아오다 ②돌려 보내다 ③따르다, 붙좇다(존경하거나 섬겨 따르다) ④몸을 의탁하다 ⑤맡기다, 위임하다 ⑥마치다, 끝내다 ⑦시집가다 ⑧편들다 ⑨맞다, 적합하다 ⑩모이다, 합치다 ⑪선물하다, 음식을 보내다 ⑫자수하다 ⑬죽다 ⑭부끄러워하다 ⑮몸을 의탁할 곳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돌아올 회(回)이다. 용례로는 외국에서 본국으로 돌아감 또는 돌아옴을 귀국(歸國), 본디의 처소로 돌아옴을 귀환(歸還), 집으로 돌아감 또는 돌아옴을 귀가(歸家), 사람의 마음이나 사물의 돌아가는 형편을 귀추(歸趨),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돌아옴을 귀향(歸鄕), 끝을 맺음을 귀결(歸結), 재산이나 권리 따위가 특정한 사람이나 단체에 속하게 됨을 귀속(歸屬), 돌아가 몸을 기댐을 귀의(歸依), 적이 굴복하고 순종함을 귀순(歸順), 돌아와 닿음을 귀착(歸着), 돌아오거나 돌아가는 길을 귀로(歸路), 객지에서 부모를 뵈러 고향에 돌아감을 귀성(歸省), 한 군데로 돌아감을 귀일(歸一), 집으로 돌아가 쉼을 귀휴(歸休), 서울로 돌아오거나 돌아감을 귀경(歸京), 집으로 돌아가 부모를 봉양함을 귀양(歸養), 원래 있던 곳으로 다시 옴을 귀래(歸來),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귀사(歸思), 숙박 집으로 돌아가거나 돌아옴을 귀숙(歸宿), 황천으로 돌아감이란 뜻으로 죽음을 일컫는 말로 귀천(歸泉), 흙으로 돌아감이라는 뜻으로 사람의 죽음을 일컫는 말로 귀토(歸土), 여자가 이혼을 하고 친정으로 돌아옴을 대귀(大歸), 마음을 결정하고 돌아감을 결귀(決歸), 향하여 감이나 따라감을 적귀(適歸), 함께 돌아감을 동귀(同歸), 작별하고 돌아감을 고귀(告歸), 신부가 처음으로 시집에 들어감을 우귀(于歸), 본디 상태나 자리로 다시 돌아감을 복귀(復歸), 도로 돌아오거나 돌아감을 회귀(回歸), 벼슬을 내어 놓고 돌아옴을 체귀(遞歸),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를 정벌한 뒤 전쟁에 쓴 마소를 놓아주었다는 옛일에서 온 말로 다시는 전쟁을 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귀마방우(歸馬放牛), 헛되이 돌아감을 일컫는 말을 귀어허지(歸於虛地), 처음에는 시비 곡직을 가리지 못하여 그릇되더라도 모든 일은 결국에 가서는 반드시 정리로 돌아감을 일컫는 말을 사필귀정(事必歸正), 죽는 것을 고향에 돌아가는 것과 같이 여긴다는 뜻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시사여귀(視死如歸), 구슬을 온전히 조나라로 돌려 보낸다는 뜻으로 흠이 없는 구슬이나 결점이 없이 완전함 또는 빌렸던 물건을 온전히 반환함을 일컫는 말을 완벽귀조(完璧歸趙), 옳지 않은 일에 부화뇌동 함을 이르는 말을 난만동귀(爛漫同歸), 잎이 떨어져 뿌리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모든 일은 처음으로 돌아감을 이르는 말을 낙엽귀근(落葉歸根), 넷이 결과적으로 하나를 이룸을 일컫는 말을 사귀일성(四歸一成), 삶은 잠깐 머무르는 것이고 죽음은 돌아간다는 뜻으로 사람이 이 세상에 사는 것은 잠깐 동안 머물러 있음에 지나지 않는 것이고 죽는 것은 본래의 곳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라는 말을 생기사귀(生寄死歸), 나이를 먹어서 머리털이 희어져도 학문이 성취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백수공귀(白首空歸), 합심하여 같은 목적으로 향함을 일컫는 말을 일심동귀(一心同歸), 아침에 갔다가 저녁에 돌아옴을 일컫는 말을 조왕모귀(朝往暮歸), 가는 길은 각각 다르나 닿는 곳은 같다는 뜻으로 방법은 다르지만 귀착하는 결과는 같음을 일컫는 말을 이로동귀(異路同歸) 등에 쓰인다.
▶️ 正(바를 정/정월 정)은 ❶회의문자로 하나(一)밖에 없는 길에서 잠시 멈추어서(止) 살핀다는 뜻을 합(合)하여 바르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正자는 ‘바르다’나 ‘정당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正자에서 말하는 ‘바르다’라는 것은 ‘옳을 일’이라는 뜻이다. 正자는 止(발 지)자에 一(한 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갑골문에 나온 正자를 보면 止자 앞에 네모난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성(城)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니 正자는 성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실 正자는 성을 정복하러 가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전쟁을 일으키는 데는 정당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正자는 자신들이 적을 정벌하러 가는 것은 정당하다는 의미에서 ‘바르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正(정)은 (1)옳은 길 올바른 일 (2)부(副)에 대하여 그 주됨을 보이는 말 (3)종(從)에 대하여 한 자리 높은 품계를 나타내는 말 품수(品數) 위에 붙어 종과 구별됨. 정1품(正一品)으로 부터 정9품(正九品)까지 있었음 (4)조선시대 때 상서원(尙瑞院), 사역원(司譯阮), 봉상시(奉常寺), 내의원(內醫院), 내자시(內資寺) 등의 으뜸 벼슬 품계는 정3품(正三品) 당하(堂下) (5)조선시대 때 세자의 중증손(衆曾孫), 대군의 중손(衆孫), 왕자군(王子君)의 중자(衆子) 등에게 주던 작호(爵號) 품계(品階)는 정3품(正三品) 당하(堂下)임 (6)고려 때 전농시(典農寺), 서운관(書雲觀), 사의서(司醫署), 내알사(內謁司), 사복시(司僕寺)의 으뜸 벼슬 품계(品階)는 정3품(正三品)에서 정4품(正四品)까지 (7)신라 때 상사서(賞賜署), 대도서(大道署)의 으뜸 벼슬 35대 경덕왕(景德王) 때 대정(大正)을 고친 이름으로 뒤에 다시 대정으로 고침 (8)정립(定立) (9)정수(正數) 플러스(Plus) 등의 뜻으로 ①바르다 ②정당하다, 바람직하다 ③올바르다, 정직하다 ④바로잡다 ⑤서로 같다 ⑥다스리다 ⑦결정하다 ⑧순일하다, 순수하다 ⑨자리에 오르다 ⑩말리다, 제지하다 ⑪정벌하다 ⑫관장(官長: 시골 백성이 고을 원을 높여 이르던 말) ⑬정실(正室), 본처(本妻) ⑭맏아들, 적장자(嫡長子) ⑮본(本), 정(正), 주(主)가 되는 것 ⑯정사(政事), 정치(政治) ⑰증거(證據), 증빙(證憑) ⑱상례(常例), 준칙(準則), 표준(標準) ⑲처음 ⑳정월(正月) ㉑과녁, 정곡(正鵠: 과녁의 한가운데가 되는 점) ㉒세금(稅金) ㉓노역(勞役), 부역(負役) ㉔네모 ㉕군대 편제(編制) 단위 ㉖바로, 막, 때마침 ㉗가운데 ㉘가령, 설혹, ~하더라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바를 광(匡), 바로잡을 독(董), 곧을 직(直), 바탕 질(質),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거짓 위(僞), 버금 부(副), 돌이킬 반(反), 간사할 간(奸), 간사할 사(邪), 그르칠 오(誤)이다. 용례로는 어떤 기준이나 사실에 잘못됨이나 어긋남이 없이 바르게 맞는 상태에 있는 것을 정확(正確), 거짓이나 꾸밈이 없이 성품이 바르고 곧음을 정직(正直), 바르고 옳음을 정당(正當),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를 정의(正義), 특별한 변동이 없이 제대로인 상태를 정상(正常), 올바른 길을 정도(正道), 꼭 마주 보이는 편을 정면(正面), 옳은 답이나 바른 답을 정답(正答), 일정한 격식이나 의식을 정식(正式), 본래의 형체를 정체(正體), 진짜이거나 온전한 물품을 정품(正品), 엄하고 바름을 엄정(嚴正), 옳지 않음이나 바르지 않음을 부정(不正), 공평하고 올바름을 공정(公正), 그릇된 것을 바로잡음을 시정(是正), 잘못된 점을 바로 잡아서 고침을 수정(修正), 알맞고 바름을 적정(適正), 거짓이 없이 참을 진정(眞正), 잘못을 고쳐서 바로 잡음을 정정(訂正), 잘못된 것을 바르게 고침을 개정(改正), 태도나 처지가 바르고 떳떳함을 정정당당(正正堂堂), 소나무는 정월에 대나무는 오월에 옮겨 심어야 잘 산다는 말을 정송오죽(正松五竹), 옷매무시를 바로 하고 단정하게 앉음을 정금단좌(正襟端坐), 마음을 가다듬어 배워 익히는 데 힘씀을 정심공부(正心工夫), 마음을 바르게 하고 뜻을 정성스레 함을 정심성의(正心誠意)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