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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은 물질 우주의 시작.....(2)
일러두기;
1. 우리 나라의 역사에서 조선은 3개다.
흔히들 알고 있는 단군조선(고조선), 근세 조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나는 단군조선(고조선)을 그냥 ‘조선(朝鮮)’이라고 칭한다.
2.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CHINA)의 본토를 중원(中原)대륙, 지나(支那)대륙이라
지칭하지 않고 짱깨대륙이라고 하고자 한다.
중원이라는 말이 가진 파워를 힘빼기 위함이기도 하고
우리가 사는 이 곳이 세계의 중심이고
전 우주의 중앙(中央)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제~~~
6의 언저리를 살펴보자.
목차
1. 6효(爻)
1) 효(爻)와 괘(卦)
가. 표현하고 지시한다는 것
나. 효(爻)
다. 소성괘 또는 8괘
라. 대성괘
마. 복희(伏羲) 할배
2) 동아시아에서의 역사 왜곡
가. 조선(朝鮮)
나. 아침 또는 처음 조(朝)
다. 왜곡의 짱깨 트리오(trio)
라. 동중서...관념종교의 시작
마. 사마천...짱깨 민족주의의 완성
바. 다시 유철...권력의 힘!
사. 삼독(三毒)
아. 문사철(文史哲)
본론
1. 6효(爻).
1) 효(爻)와 괘(卦)
가. 표현하고 지시한다는 것
사람의 몸을 가지고 하나의 사실을 나타내고 지시하는 방법은 말, 몸짓(춤 포함), 글, 숫자, 도형(기호, 부호, 문양) 색깔, 소리 등등이 있다.
언어도단의 표현 불가영역-상계(象界)-
을 가리킬 때는
말보다 글이 더 정확하고, 글보다 숫자나 부호(符號)가 더 정확하다.
수(數)와 부호는 간단 명료함의 우월성을 가진다.
부호 중에서 상계(象界)를 드러낸 것이 주역의 주춧돌인 효(爻)와 괘(卦)임을 기억하기로 하자.
나. 효(爻)
효는 두 개다.
양효(陽爻, ―)와 음효(陰爻, )
다. 소성괘 또는 8괘
소성괘는 세 개의 효가 상중하(上中下)로 모여서 이루어지고 각각 천지인(天地人)을 뜻한다.
이미 말한 바 있는 천지인의 음양(陰陽)은 소성괘 삼층 구조 안에서 다 구현되어 표현된다
8괘의 구조는 천지인의 음양 조합이라고 보면 된다.
우리나라 태극기(太極旗)에는 4개의 소성괘(건곤감리 乾坤坎離)가 있다.
대한제국 시기에 처음 태극기를 만들 때 가운데는 삼태극(三太極)이 있었고 주변에는 8괘가 배치되어 있었는데 시절이 바뀌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되었다.
박영효가 일본국에 정부 사절단으로 갈 때 만들어진 깃발이라고 알고 있다.
8괘 중에서 4개만 있는 이유는 국기 그리기가 너무 번거로워서 였을 것이고 삼태극이 가진 뜻을 모르는 사람들에 의해서 음양으로 간소화되었다.
현재의 태극기에서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태극 중 윗부분의 빨강색은 생명(人)을 뜻하고,
파랑색은 하늘(天)을 뜻한다.
따라서 그림이 잘못되었다.
당연히 하늘은 위로 올라가야 하고 생명은 밑으로 내려와야 한다.
전도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땅(地)을 뜻하는 노랑색이 빠짐으로써 얄궂게 되어버렸다.
그리고 현재 태극기의 빨강과 파랑의 전체적인 비율도 잘못되어 있다.
만약 하나의 원(圓)을 그렸을 때 그 안의 이등분(二等分) 곡선의 흐름은 24절기 중의 춘분(春分)과 추분(秋分)을 고려해서 더 휘어져야 한다.
밤낮, 음양이 정확하게 반반(半半)되는 식으로 그려져야 한다.
음양을 색깔로 표현하면 흑백(黑白)이 되어야 한다
이 또한 잘못되어 있다
그리고 현재 대한민국의 대중교통 시스템(지하철, 버스)에서 환승(換乘)의 문양은 삼태극으로 되어 있는데 이 또한 잘못되어 있다.
순서와 방향성 두 개가 잘못그려져 있다.
하늘 땅 사람(생명)의 순으로 그려져야 한다.
방향도 우주의 기(氣) 흐름인 시계반대방향으로 그려져야 한다.
분단 조국이 극복되어 통일 자주국으로 출발할 때는 이러한 오류(誤謬)를 지닌 국기(國旗)의 문양(文樣)을 고쳐서 다시 그려야 할 필요성이 요청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 개의 효가 모인 소성괘로서의 팔괘는 천지 창조 전 단계로서의 상태를 말한다.
라. 대성괘
기운의 세분화를 통해서 물질 우주가 펼쳐지고 생명이 탄생한다.
천지인 음양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세계다
소성괘끼리의 조합은 이것을 말한다.
대성괘의 구조는 상중하 6효로 이루어져 있다.
마. 복희(伏羲) 할배
효와 괘의 창시자는 복희씨라고 알고 있다.
태호 복희씨라고도 하는데 존칭의 의미는 전혀 없어 나는 복희 할배라고 한다.
복희 할배는 배달나라 5번째 천황이셨던 태우의 천황(天皇)의 막내아들이다.
배달나라는 창건자 한웅 천황(天皇)의 덕화에 힘입어 가장 영성(靈性)이 밝았던 시대이다.
배달(倍達)에서 ‘배’는 밝다는 의미, ‘달’은 응달, 양달, 비탈할 때의 그 달이라 땅이라는 뜻이 되니 ‘배달’은 즉 ‘밝은 누리(땅)’가 된다.
배달나라의 연호(年號)는 개천(開天)이니 현재의 2019년은 개천 5916년이다.
그러니 서기전 3,897년에 비로소 황하문명이 시작된다.
배달나라의 도읍지는 현재 짱개나라 섬서성(陝西省) 관중평원의 서안(西安)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서안에 가면 반파박물관이 있다.
그곳에 가면 지금부터 6,000년 전의 생활상을 볼 수 있다.
서안이 있는 관중평원과 북쪽의 황토고원은 그 지방 토질에 석회질이 많다.
따라서 육천년 전의 사람 뼈도 그대로 보존되어있고 옥수수밭과 밭들의 경계를 직각으로 만들어도 무너지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밭들의 경계 모습을 직접 보았었다
황토 동굴집인 요동(窯洞, 야오둥)이 가능한 이유이다.
이 시대는 로마의 오비디우스가 <변신이야기>에서 이야기한 황금시대라고 볼 수 있다.
이 쯤에서 책 한 문단을 읽어보자
○ 중국 편년사는 땅이 굳고, 사람들이 강 유역에 모여 살 때, 천제(天帝) 푸시(伏羲 기원전 2953-2838)가 그들을 다스렸다고 기록한다.
그는 백성에게 그물로 고기를 잡는 법, 사냥하는 법, 가축을 치는 법을 가르쳤고, 백성을 각 부족별로 나누었으며 결혼 제도를 확립했다. 그는 또 멩이라고 하는 강물에서 나온, 마상(馬像)의 괴물이 준 초자연적인 각판(刻板)에서 팔괘(八卦)를 만들었는데, 이 팔괘는 오늘날에도 전통적인 중국 사상의 근본적인 상징으로 남아 있다. 그는 12년간 복중(腹中)에 있다가 태어났다. 그는 몸은 뱀, 팔은 인간, 머리는 황소의 모습으로 태어났다. ○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조셉 캠벨 저 /이윤기 역/민음사 p397
미국인 조셉 캠벨은 우리의 복희 할배를 완전히 괴물로 묘사하고 있다.
또한 태우의 천황(천제)의 막내 왕자였으므로 복희 할배는 제후국의 왕이었지 천제가 된 적이 없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중국 사상의 근본적인 상징’으로 여전히 남아있는 효와 괘의 창시자인 복희 할배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제 본격적으로 파고 들어가보자~~~^^
2) 동아시아에서의 역사 왜곡
가. 조선(朝鮮)
<주역(周易)>의 기본원리가 <천부경(天符經)>에서 나왔음을 알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와 동아시아의 역사를 알 필요가 있다.
서기(西紀) 전(前) 2333년(무진년) 왕검 천황(天皇)에 의해 건국된 조선(朝鮮)은 만주를 중심으로 서기 전 237년까지 2096년간 존속된다.
문무겸전(文武兼全)의 조선은 47대 단군이었던 고열가 천황(天皇)을 끝으로 멸망할 때까지 천자국(天子國)의 지위를 유지했다.
따라서 짱깨대륙에 명멸했던 하(夏), 은(殷 또는 상商), 주(周)의 왕조들은 조선의 제후국들이었다.
하나라 470년, 은나라 554년, 춘추전국시대가 포함되어있는 주나라 790년을 통털어서 그랬다.
<부도지(符都志)>의 기록에 의하면 요(堯)와 순(舜)도 천부(天符)의 나라인 조선에 반역을 일으킨 인물들로 묘사하고 있다.
분열의 춘추전국시대를 종료시킨 진(秦)나라는 중국 서북의 감숙성에서 출발해 섬서성의 서쪽지방을 토대로 힘을 키워온 나라다.
서기전 325년에 칭왕(稱王)을 하기 전까지 진(秦)의 통치자들 신분은 백작(伯爵)이었고 기록에 남은 공식 호칭은 무슨 공(公) 무슨 공(公)이었다.
공자(孔子)가 태어난 노(魯)나라 전체 역사와 공자가 지었다고 알려진 노나라의 역사서 <춘추(春秋)>에는 왕(王)이 한 명도 없다.
노나라 통치자들의 작위는 후작(侯爵)이었을 뿐이다.
나머지 나라들도 다 똑같다.
도토리 키재기 식의 높고 낮음이 있는 공국(公國)들이었을 뿐이다
서기전 221년에 550년의 춘추전국시대가 끝나고 짱깨대륙이 통일된다.
통일된 다음 해에 나이 마흔살의 영정(嬴政 혹은 조정(趙政), 여정(呂政)은 27년 간의 진왕(秦王) 생활을 끝내고 자신을 황제(皇帝)라 부르라 한다.
실로 요, 순, 하, 은, 주 이래 이천년 여간 짱깨대륙에서 있을 수 없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 땅에서 이천년 만에 처음으로 행한 칭제(稱帝)의 시작이니 시황제(始皇帝)가 된다.
그럼 요, 순, 하, 은, 주 삼왕조 통치자들은 왜 제왕이니 황제니 천자 같은 타이틀을 붙이지 못하고 왕이라 했나?
그 이유는 만주에 조선(朝鮮)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이라는 천자국(天子國)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선이 기원전 237년에 망하고 만다.
천자(天子)가 사라진 것이다.
조선이 망하고 17년 뒤 영정(嬴政)은 중원도 통일했겠다 더 이상 조선의 눈치를 볼 것도 없이 자신을 제왕의 자리에 올려놓는다.
동아시아에서 조선이 차지한 위상을 모르면 요, 순, 하, 은, 주의 통치자는 내내 왕(王)이었고 춘추전국시대의 여타 소국들의 주인들 명칭은 공(公)이었고 왜 영정이 자신을 시황제라고 했는지 그 이유를 모르게 된다.
나. 아침 또는 처음 조(朝)
지금도 한자 자전(字典, 옥편)에 남아있는 문자들은 조선(朝鮮)이 가졌던 위치를 여실히 보여준다.
더없이 지극했던 위상을 일별해보자.
제일 먼저 언급할 단어는 조정(朝廷)이다.
조정은 조선의 천자(단군, 제정일치시대의 최고 어른)가 나라의 정치를 신하들과 의논하거나 집행하는 곳이란 뜻인데 나중에 일반명사화 되어서 정부, 행정부, 정치하는 곳이란 의미로 바뀌었다.
다음은 조공(朝貢)이다.
조공은 제후나 속국 등이 천자가 계신 조선에 내조(來朝)하여 공물을 바치는 일을 말한다.
짱깨대륙의 하, 은, 주는 조선의 제후국으로서 조선에 공물을 바치는 것을 조공으로 표현해온 것이다.
이 말 또한 후대(後代)에 일반명사화 되어 사용되었다.
그리고 아래의 단어들도 조선과 연관된 것들이다.
조복(朝服); 신하가 조정에 나아가 의식을 행할 때 입는 예복
조명(朝命); 조정의 명령
조빙(朝聘); 제후가 내조(來朝)하여 천자(天子)에게 알현(謁見)함.
조야(朝野); 조정과 백성.
조연(朝宴); 조정에서 베푸는 연회.
조하(朝賀); 신하가 입조하여 임금에게 하례함.
조종(朝宗); 제후가 천자에게 배알하던 일.
조궁(朝宮); 천자의 궁전.
조궐(朝闕); 대궐, 궁궐.
조신(朝臣); 조정에서 벼슬하는 사람. 조정에 출사(出仕)하는 문무백관(文武百官).
원일조하(元日朝賀) ; 정월 초하룻날 아침에 의정 대신이 백관(百官)을 거느리고 조정에 들어가 천황에게 새해 인사를 올리던 일.
천조(天朝); 천자의 조정(朝廷)을 제후(諸侯)의 나라에서 일컫는 말.
천조국(天朝國): 천자의 나라.
이상과 같다
최근 시기 인터넷에서 유행한 천조국(千兆國)이라는 단어 미국의 국방비가 천 조(兆)에 이른다는 의미에서 나왔다. 그러나 그 유행은 어떤 암시를 가지고 나온 것이 아닐까?
천조(千兆)와 천조(天朝)는 발음이 같으므로 옛날의 진정한 천조국(天朝國)이 다시 부활한다는 의미로...
나는 그렇게 보고 있다
그 다음에 묘(廟) 자가 있다
집 엄(广) 자는 언덕 위에 집을 가리킨다
언덕 위의 높은 곳 집 안에 조(朝) 자가 들어있어 묘(廟)는 조상의 신주를 모시는 곳이라는 의미이다.
일반 사람들은 사당(祠堂)에 신주를 모시고 국정을 책임진 어른들의 신주를 모신 곳이 묘(廟) 자이며 흔히 종묘(宗廟)라고 한다.
조선의 건국이념은 홍익인간 이화세계였고 조선의 천자(또는 천제, 천황)들은 <천부경>을 바탕으로 한 세계인식의 기초 위에 하늘을 공경하고 만백성을 사랑하는 자세를 가졌으니 패권과는 거리가 멀었다.
다. 왜곡의 짱깨 트리오(trio)
반면 진시황제(秦始皇帝)는 10년간 황제 자리에 있었으나 육신의 장생불사를 추구했으리만치 영성(靈性)과는 무관한 인물이었다.
그의 사후 진승과 오광 두 사람이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나?”하는 물음을 던질 때 강소성 패현의 한량(閑良)끼 많은 파출소장이 말에 올라탄다.
유방(劉邦)이라는 이 남자 나이 39세 때 였다.
3년 뒤 그는 항우(項羽)에 의해 한왕(漢王)이 되었고 항우와의 4년 싸움 끝에 제위(帝位)에 오른다.
유방(劉邦)은 기원전 202년 해하(垓下)에서 항우를 토벌한다.
마상(馬上)에 오른지 7년 만에 제왕(帝王)이 되었지만 그를 둘러싼 환경은 여전히 열악했다.
안으로 내부의 반란을 진압해야했다.
차라리 진시황 여정처럼 군현제로 나아갔다면 반란의 소지는 없었을 터인데 춘추전국 시기의 봉건제와 군현제를 결합한 군국제를 실시함으로써 발생한 통찰력 부족으로 생긴, 자기 자신이 초래한 일이었다.
밖으로는 흉노제국의 강성함을 제어할 수가 없었다.
짱개 대륙의 무한대에 가까운 물자와 병력 그리고 춘추전국 이래의 그 많은 병법서적도 무색하게 유방은 목숨을 구걸해야 했다.
흉노의 묵특 선우(칸, Khan) 왈. “니가 천자라고라?”
유방. “어! ㅎㅎㅎ 한번 붙어 볼까나~~?”
묵특 선우. “얼마든지. ㅋ”
유방이 대풍가(大風歌) 부른지 얼마 지나지 않아 졸개들 32만명을 데리고 산서성 대동으로 올라간다.
진정한 천자가 누군지 가려야 되는 백등산 회전(會戰)에서 유방은 조선의 방계 후예인 흉노제국에게 완패한다.
그 이후 유방과 그의 아들과 손자들은 흉노제국에게 엄청난 공물과 함께 정기적으로 공주 또는 궁녀를 보내야 했다.
이러한 사정은 오초칠국의 난을 거친 뒤 한(漢)의 7대 황제인 무제(武帝) 유철(劉徹)이 등장하기까지 계속 된다.
유철은 유방의 증손자다.
유철이 죽고 난 뒤 훗날 한(漢) 원제 때는 미녀 왕소군을 상납해야 하는 가련한 일들이 이어진다.
그야말로 유철 시기를 제외하고는 전한, 후한은 흉노에게 캐개깽했다
한 무제 유철은 진시황제, 청 강희제와 함께 짱깨대륙의 위대한 황제로 거론되는 인물인데
진시황 영정(嬴政) 이후로 청(淸)나라의 마지막 황제 푸이까지
도합 583명의 제왕 중에서 랭킹 3번째 안에 드니까 여러모로 걸출하긴 했다고 봐야한다.
유철은 17세에 제위에 올라 53년간(재위 서기 전 140년 ~ 서기 전 87년) 자리를 지킨다.
말에 탄 유방(劉邦) 옆에 무(武)로는 한신과 팽월이 있었고, 문(文)으로는 장량과 소하가 있었듯이 유철(劉徹)에게도 무(武)에는 위청과 곽거병이 있어 국토를 넓히고 흉노를 압박했으며 문(文)에는 동중서와 사마천이 있어 한 제국의 이데올로기를 확립하고 짱깨 민족주의를 완성해낸다.
유철(劉徹), 동중서(董仲舒), 사마천(司馬遷).
이 트리오(trio)가 획책하고 실행해낸 결과물이 동아시아 2천년 역사에 미친 영향을 알기 위한 핵심
키워드(keyword)는 대일통(大一通)이라는 말이다.
대일통은 '모든 것을 하나로 통일시킨다'는 뜻인데 <춘추공양전>의 첫머리에 나온다.
간략하게 세 사람이 추진한 대일통의 내용을 보자.
먼저 유철이다.
그는 한 제국의 막대한 부(富)라는 유산을 물려받았다.
특히 할아버지(문제)와 아버지(경제)가 문경지치를 통해 축적해놓은 재정을 통해 대외팽창 정책을 시행하고 제국의 영토를 넓힌다.(공간적 대일통)
동중서.
유철의 황권(皇權)에 정당성(正當性)을 부여하여 황제 일인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전체 사회구조를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시스템으로 조직함으로써 천하 만민 이 황제를 중심으로 한 국가(國家)의 구성원이 되도록 했다.(정치적 대일통)
사마천.
유철에게 정통성(正統性)을 확보해주기 위해 과감한 역사 조작을 감행한다.
존왕양이(尊王攘夷)의 기치 아래 조선과 관계되는 것은 모두 무시하고 대일통의 역사관을 전개한다.
사마천이 자신의 군주를 위해서 정통으로 내세운 줄기는 아래와 같다.
헌원, 전욱, 고신, 요, 순, 우왕(하), 탕왕(은), 무왕(주), 진시황, 한 유방.....그리고 유철.
(역사적 대일통)
결국 유철, 동중서와 사마천이 분투하여 추구한 것은 조선으로부터의 진정한 독립이었다.
이렇게 해서 뒤에 한족(漢族)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지고 세상의 중심에는 중화(中華)가 있고 그 둘레에는 사이(四夷)가 있다는 짱깨식 중화 민족주의의 기초가 놓여지게 된다.
라. 동중서...관념종교의 시작
동중서(董仲舒)는 자신의 저작인 <춘추번로>(정말이지 재미없는 책이다~~^^)에서 말하기를 ‘임금 왕(王) 자(字)란 하늘과 땅과 사람을 뜻하는 삼획(三劃)의 가운데를 꿰뚫어서 통하게 하는 것이니 감히 누가 이를 감당하겠는가?’라며 제왕은 하늘의 뜻을 대행하여 백성들을 교화 - 대천선화( 代天宣化)- 시켜야하므로 제왕의 자리는 하늘이 베푼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군주(君主)는 국가의 근본이며 사람으로 비유하면 몸과 사지(四肢)를 관장하는 마음에 해당된다고 했다. 이러하므로 군주는 신하들을 통괄하는 자리-군위신강(君爲臣綱)-이며 군주의 명령은 하늘을 대신해서 내리는 것이니 절대복종해야한다고 했다.
'천인삼책(天人三策)'은 이제 막 대권을 쥔 열 일곱 살의 유철과 마흔 살의 동중서가 세 번에 걸쳐 글로 주고받은 문답이다. 강력한 황권을 원하던 유철의 입맛에 딱 맞는 계책을 내놓은 덕분에 제자백가의 하나일 뿐이었던 유학(儒學)은 공권력을 등에 업고 국교(國敎)의 지위를 획득하여 유교(儒敎)가 된다.
이후부터 입신양명을 원하는 사람들은 유가(儒家)의 책들을 읽어야 되었다.
동중서는 유철에게 절대권력을 준듯하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그랬는지 브레이크를 하나 걸어놓는다.
만약 제왕이 검약하지 못해 백성을 괴롭히고 실정(失政)을 하면 하늘은 괴상한 변고를 주어 경고를 하고 그래도 반복되면 재앙을 내려 나라를 망하게 한다고 했으니...
공자가 <춘추(春秋)>에 숨겨놓은 미언대의(微言大義)를 찾고자 했던 동중서였다.
그래서 <춘추공양전>을 열심히 공부해서 박사(博士)가 되었고 황제에게 자신의 계책이 받아들여지지만 삼강(三綱)과 오행(五行)의 도입 그리고 성삼품설(性三品說)의 주장은 유교(儒敎)의 발전이 아니라 정치와 결탁한 관념종교로서의 출발이라는 오명(汚名)을 남긴 그의 한계였다.
마. 사마천...짱깨 민족주의 완성
사마천은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스무 살 때부터 대략 3년 가량 짱깨 대륙을 답사한 다음 장안으로 돌아와 동중서에게서 <춘추>를 배웠다.
그러니까 사마천은 동중서의 제자다.
두 사람의 나이 차는 34년이다.
사마천의 공식직함은 한(漢) 제국의 태사령 또는 중서령이었고 자칭 태사공이라고 했다.
요새 말로하면 국립천문관장 겸 국가기록원장이다.
그는 서기전 108년, 38세에 태사령이 되었다.
그는 42세에 국립천문관장 자격으로 태초력(太初曆)을 완성하여 역법을 개정하고, 국가기록원장 자격으로 <사기(史記)> 저술에 착수한다.
한(漢) 제국의 모든 사료가 그의 통제 하에 있었다.
49세에 궁형(宮刑) 에피소드를 만들었고
55세 무렵 약 14년에 걸친 <사기> 집필을 완료한다.(서기전 91년)
52만 6,500자로 만들어진 <사기>의 첫 명칭은 <태사공서>였다.
천조국(天朝國) 조선이 망하고 나자 진왕 영정이 시황제라 명명했듯이 한 무제 유철 치세에는 한발 더 나아가 조선의 강역이었던 서부 만주지역을 침공했으니 사마천의 붓끝에 더욱 힘이 실린다.
조선.짱깨 간의 힘의 균형추가 기울어진 시점에서 <태사공서 또는 사기>가 탄생한 것이다.
그는 조선 중심으로 돌아갔던 과거사를 지워버리고 조선과 관계된 모든 것을 털어낸다.
심지어는 ‘있었던 일’을 왜곡(歪曲)시켜 거짓 역사를 만들어 낸다.
바. 다시 유철...권력의 힘!
<한무의 제국(漢武的帝國) 이중톈중국사 8권> 79-124쪽에서
이중톈이 말하는 방식으로 다시 구성해보자
한 무제 유철의 집권 시기에 9개의 제후왕국이 사라졌다
그 중 6명의 왕이 자살을 선택했다
5명의 승상과 4명의 어사대부 그리고 장군, 제후, 대사농, 태자, 황후 등등이 유철로 인해 비정상적으로 죽었다.
5명의 승상 중 4명은 하옥되어 자살했고 1명은 요참을 당해 죽었다
잠재적 반란의 소지자인 제후왕들과 제후들을 손본 뒤 유철은 더더욱 강력한 황제권력을 원했다
창칼과 총자루를 장악한 것만으로도 양이 차지 않았다
그는 돈주머니를 원했다
돈이 많으면 귀신도 부린다
돈주머니 장악을 위해 조치는 ‘경제 전선에서의 투쟁’이다
금융을 독점하고 화폐주조와 제철업을 국영화했다
제염업은 생산은 민간이 하고 판매는 중앙 정부가 담당하는 식으로 절반만 국영화했다
재산세와 소득세를 더 많이 거두기 위해 여러 조치를 시행했는데 그로인해 사회의 부가 강제 리셋되었고 중산층이 단체로 파산했다
균수법과 평준법을 시행함으로써 정부는 상업망을 독점 운영하였다
또한 소봉(素封, 천자로부터 받은 봉토는 없으나 재산이 많아 제후와 비할 만한 큰 부자)이라 불리는 돈 많은 이들을 견제하는 조치도 단행했다
황권에 위협이 되는 민간 자본이 규모를 갖추지 못하도록 전국적으로 잘 살고 돈 많은 사람들 300만명을 자신의 사후 무덤인 무릉(茂陵) 공사 현장 옆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인민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랬으니 사상 측면에서 강제된 투사력은 즉시 만방으로 퍼져 나갔다 역사적 정통성 확보를 위한 거짓말에 하나라도 거부를 하면 목이 백 개, 천 개라도 달아날 상황이 펼쳐졌으니 권력의 무서움에 대해 공자님도 사랑이 없는 권력은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거라고 갈파했듯이 꼭 그와 같은 것이었다
‘하늘을 대신하여 널리 밝게 교화한다’는 대천선화(代天宣化)의 정신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권력의 집중을 통한 제국의 안정과 팽창이 유철의 목표였다
이러했으니 황제가 힘을 부여한 동중서와 사마천의 말빨에 그 누가 반기를 들텐가?
바. 삼독(三毒)
반 만년이 아닌 아홉 개의 밀레니엄(millennium, 千年)에 달하는 우리 민족의 역사 전모를 알려면 삼독(三毒)을 제거하지 못하고선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 삼독은 중화독(中華毒), 왜독(倭毒), 서양독(西洋毒)이다.
중화독의 정체는 무언가?
사마천이 <사기>를 통해 한웅 천황께서 개천(開天)한 배달나라의 1,564년 역사를 간단히 지워버린 것을 말한다.
왜독은 무엇인가?
일본제국에 의해 왕검 천황이 개국한 조선의 역사 2,098년을 깡그리 지워버린 것을 말한다.
그럼 서양독은?
실증주의 사관이다.
실증주의 사관(empirical history)에 의해 사료(史料)와 유물(遺物)을 근거로 과거를 재구성하는 연구 방법론이다.
이에 따라 역사와 철학의 분리가 일어난다.
역사는 역사, 철학은 철학이 되었다.
이 둘을 각기 다른 것으로 취급함으로써 역사학은 ‘언제 어떤 일이 있었고 어디에서 무엇이 출토되었다’는 단순 나열식의 무미건조한 암기 과목이 되어버렸다.
반면 철학은 역사를 통해 온고이지신할 수 있었지만
더 이상 역사로부터 정신, 얼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드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들만 남발하게 된다.
사. 문사철(文史哲)
조상(祖上)님이 있기에 ‘나’가 있고 ‘나’를 통해 ‘후손’이 이어진다.
다른 말로 하면 과거를 통해 현재가 있으며 미래는 현재의 연장선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時間)이라는 개념은 인간의 창작품일 뿐이다.
<‘한 때’의 연속>, 즉 <시(時)의 흐름>은 영원성을 가져 아무런 속도도 없이 무한히 흘러갈 뿐이다.
영원한 세월의 흐름을 인간이 일정기준으로 쪼개놓은 것이 시간(時間)이다.
시간을 아는 것은 인간의 현재 의식이다.
현재 의식의 차원을 벗어나면 마찬가지로 시간(時間)은 사라지고 ‘한 때’라고 하는 영원성에 들어간다.
인간의 속성 또한 자기 안에 신성(神性) 또는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어 영원함에로의 통로가 언제나 열려있다.
다 자기 하기 나름이고 자기의 선택 문제다. 시간의 테두리 안에 갇혀 있을 것이냐? 아님 편안하고 고요한 마음으로 흐르는 세월에 몸을 맡길 것이냐?
자신의 선택 여하에 따라 조상은 조상 그대로 다른 분이 아니라 나였으며 후손도 나와 관련없는 미지의 인물이 아니라 나 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결국 하나가 된다.
이러하기에 문사철(文史哲), 즉 문학과 역사와 철학은 결코 떼어놓을 수 가 없다.
역사의식이 없이 철학을 못하며 철학이 말하는 바의 자기 줏대와 얼이 없이 세상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문학이 가능할 수 없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생산되는 문학작품들이 가진 정신과 역사관을 들여다보면 문사철 일체의 싱싱함은 없다고 봐야 한다.
아니면 가뭄에 콩나듯 한다고 봐야.....
나는 장편 소설인
태백산맥(조정래), 혼불(최명희), 임꺽정(홍명희), 토지(박경리)를 읽어 보질 못했다.
반면에 장길산(황석영), 객주(김주영), 지리산(이병주)은 읽어 보았다.
고은의 화엄경은 읽다가 때려 치웠다
현재 남한의 슬픔은 문사철이 하나로 힘을 발휘해 찬란한 문화를 피우지 못하고 있다
또 하나의 남한의 슬픔은
문사철 분리의 실증주의 사관이 맹위를 떨치는 이유가 있어서이다.
우리 민족의 고대사 강역과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국토(남한)와 일치하지 않다는 것이다.
들판을 흘러가는 시냇물을 보자.
산 높은 곳에서 흘러내려 바다로 흘러간다.
산골짜기의 계곡에서 아이가 발을 담그고 있다.
발 담근 물은 아래로 흘러 들판 가운데의 다리 밑에서 다른 아이가 멱을 감고 있다.
다리 아래에서 아이가 멱감은 물은 다시 흘러 넓은 강과 하나가 된다.
시냇물과 강이 합류하는 곳에서 또 다른 아이가 고기를 잡고 있다.
시냇물에도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있는 것같이 보이지만 전지적 참관시점에서 보자면 시냇물은 그냥 흐르고 세 아이도 동시성을 가진다.
이렇듯 과거와 현재와 미래도 하나인데 문학과 철학과 역사가 어찌 다르겠는가?
그러면 이렇게 쌓이고 쌓인 삼독이라는 적폐(積弊)를 걷어차버리고 어떻게 해야만 이 나라 이 민족의 길을 활짝 열어 제낄 수 있을까?
권력이 필요하다.
권력을 잡은 뒤 공교육의 역사 교과서를 바꾸면 된다.
아주 간단하다.^^ ㅎㅎㅎ
2017년 초부터 갑자기
적폐라는 단어와 혁명이라는 말이 신문과 TV에 등장한다.
삼독의 적폐를 놔두고 무슨 일을 하겠다는 건지~~~
한편으론 웃기고도 대성통곡할 일이다
4차 산업 혁명의 도래를 알리는 혁명이라는 단어는 적폐를 척살시켜야 함을 알리는
진격의 나팔소리가 아닌가 한다.
.....
말이 길어졌다
다음 번에는 한무제국의 동중서와 제 3제국의 히틀러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살펴보자.
그리고 동아시아에서 동중서가 최초로 관념 종교를 탄생시킨 그 배경과 함께 진리의 왜곡이라는 측면에서 동서양이 비슷하게 흘러왔다는 점을 알아보기로 하자.
다음 6의 언저리 순서는 이렇다
2. 6각형(헥사곤, hexagon)
3. 6근(根)
배우 김혜수의 편지 대독
카톡이 왔다
"인간에게 집착,불안,두려움은 어디에서 기인할까...?"
내가 아는만치 말할 수 밖에...
답장을 했다
갓난 아기들은 두려움이나 집착이 없지
대개 아기를 사랑하는 엄마 또는 어른들이 제일 먼저 두려움을 심어주지
아기가 뭘 하려면 에비야~~하면서 못하게 하지
순사온다 하기도 하고...
전기콘센트에 젖가락을 꼽으면 감전이 돼서 사랑하는 아기가 다칠 수 있으니 보호하려는 측면이 강하지
두려움을 심어주는 건.
그 다음에 부끄러움을 심어주지
발가벗고 고추를 달랑거리며 돌아다니는 건 부끄러운 짓이라 가르치지
그래서 부끄러움도 일종의 두려움의 형태인데
두려움을 가르쳐 개체의 소멸에 대한 방어를 할 수 있도록 하고 부끄러움이라는 것을 가르쳐 사회적 관계맺음을 배우게 하지
그 시대 시대마다의 상황에 따른 사회화의 출발이지
두려움을 통해 개체를 보존하고
부끄러움을 통해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한다
그 뒤에는 두려움과 부끄러움을 알아가며 몸에 체득체화된 앎이 '나'라는 것이다
아상이라고도 한다
몸을 가진 내가 '나'라는 생각으로 귀결된다
몸과 자기와의 동일시.
여기서 집착이 생긴다
내 장난감, 내 공책, 내 집, 내 마누라
내 아이, 내 자식...
다시 정리하면
엄마의 사랑은 아이의 보호다
보호받으며 거친 이 세상에 스스로 생존하기 위해 수많은 위험을 알아차려야 한다
그 속에서 두려움을 알게되고
조금 더 자라면 부끄러움을 알게되어 사회속으로 편입되어 간다
사회화의 과정 속에서 자기 또 나라는 것을 몸과의 동일시로 보게되고 그 생각이 굳어진다
생각이 굳어지면 관념, 통념이 된다
발가벗고 큰 거울 앞에 서보자
내 몸이 보인다
내 몸과 내 이름과 나의 생각.
이것들은 무한정한 시간의 흐름에서 보자면 잠시 나타나 보이는 현상이다
언젠가 내 몸은 한 줌의 재가 된다
내 몸이 없으면
내 이름도 사라질거고
지금 현재 일어나는 내 생각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귀신이 공부를 할 수 있나?
없다
그냥 맴돌뿐이다
집착보다 더한 애착으로 인해...
그 뒤에는 어떻게 될까?
하여튼 자기 몸과 자기를 동일시하며 사는 것은 대개의 사람들이 생을 꾸려가는 방식이다
이런 생각을 벗어나기가 어렵다
하지만
안 벗어나도 괜찮다
아무 문제없다
하지만 물질과 자신과의 동일시라고 본다면 아무래도
생각이 한 쪽으로 치우쳐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생각의 측면에서 본다면 좀 더 풍요롭게 사는데는 방해가 된다
편향된 생각은 편향되게 세상을 보게 한다
그러니 좀 탄력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내 몸과 나는 하나이긴 한데
내가 내 몸을 사용한다는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철따라
옷을 갈아입듯이
이번 생에는 내 학습에 꼭 필요한 몸이란 옷을 입은거고 잘 사용하다가
대자연에 반납하면 된다
내가 사용하는 몸도 지수화풍으로 이루어진 자연의 일부다
결국에는 각종 원자, 분자, 에너지 등등으로 분해된다
이 점을 용납하면 간단하다
몸은 두 가지 측면이 있다
몸이 없으면 공부를 못한다
그래서 몸 관리를 잘 해야된다
하지만 몸과 자기와의 동일시는 편협한 생각이다
소중한 내 몸도 입었다 벗었다하는 옷과 같은 것이다
소중함과 무상함이 한 몸에서 만난다
내 몸이 누리는 모든 것은 조상님의 은혜로 인한 것이고
자기 몸에 걸친 옷의 좋고 나쁨은 자신의 노력을 통한 나의 사회적 지위를 말해준다
이건 인간 사회에서의 일이다
시각을 확대하면
모든 사람의 몸과 얼굴은 단 한 번 사용된다
똑같은 몸과 똑같은 얼굴이 하나도 없다
지구 역사를 통털어서 그렇다
모든 나무,
모든 풀도 똑같은게 하나도 없듯이
사람 얼굴과 몸도 그렇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관통하면서 그렇다
똑같은게 하나도 없다는
이 유일무이함은 변하지 않지만
유일무이한 이 모든 존재들은 변화한다
어제의 내 몸과 오늘의 내 몸은 다르다
그러다보니 생기는게
만남의 일회성이다
단 한 번의 만남이다
모든 만남은 다른 조건과 상황에서
단 한 번의 일회성으로 생겼다가 종결된다
둘이 한자리에 앉아 술마시며 이야기나누고 있어도 순간순간 우리 몸의 세포는 생멸을 거듭하고 있으니
술자리를 시작할 때와 끝날 때는
이미 나와 상대는 전혀 다른 상태로 변화되어 있다
일회성은 계속 계속 벌어진다
모든 순간이 일기일회(一期一會)이다
모든 만남이
평생(平生)에 단 한 번 이다
살아있는 이 순간은 찰나 찰나 생겨났다가 찰나 간에 사라진다
이러한
즉생즉멸(卽生卽滅)을 생각하면 아득한 심경이 된다
우리네 삶의 신비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몸의 소중함을 알아 관리를 잘 해야한다
내 몸의 건강을 잃으면 주위에 민폐다
몸의 무상함을 알아 느긋하게 세상과 인생을 관조할 수 있고 몸을 가지고 즐기는 즐거움을 제대로 누릴 수 있다
몸의 유일무이함과 일회성을 통해 일상의 삶이 신비로 가득한 축복이고 내 발디딘 이 순간 이 자리가 천국임을 느낄 수 있다
몸 가지고 산다는 것의 아름다움이다
삶이 이렇게 신비로운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까?
아래의 동영상을 보면 각자의 인생살이가 그야말로 천양지차임을 확인할 수 있다
배우 김혜수의 편지 낭독 동영상
단 한 번의 만남
그리고 단 한 사람
구순의 할머니는 자식도 없이 남편을 기다리며 69년을 살았다
남편은 학도병으로 나라위해 몸바쳤고...
그거야 남자로서 당연한 노릇이긴 한데 할머니의 세월은 정말 아득해보인다
사족)
내년이면 오십?이 되는 배우,
아직 시집 안 간 김혜수는 변함없이 아름답다
저 모습도 참 대단해 보인다
몸 관리를 정말 잘 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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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예쁘시다
흔히 태호복희씨의 태호복희를 이름으로 알고 있는데
태호복희의 성은 풍씨고 이름은 방아인데
풍방아 이름이 참 특이하조
태호복희는 인류최초로 수상의 법칙을 깨우처
수를 시간과 공간에 배정한 인물이고
인류최초로 수력으로 곡식을 찢는 수력방아간은 만든 인물인데
이 수력방아간은 태호복희씨의 이름을 붙혀 물래방아라고 오늘날 까지
그 이름이 전해저 오고있고
태호복희란 말은 오늘날 말로 풀이하면 크게 밝은이 즉 도를 깨달은 인물이란 뜻임
그리고 태극의 분파운동은 즉 일양의 시생은 子時방향에서 시작되고
무극의 내변작용은 午時방향서 시작되니 현제 태극기의 태극은 분명잘못 그려진 것이고
천지일월을 상징하는4괘또한
그 위치가 맞지않음
알타이님
정말 많은것을 알려주는글 읽고 내 자식 손자들에게
얘기해 주고 싶습니다.
좋은글 감사 합니다. 귀한글 종종 올려 주십시오.
대단한 깨우침의글 소중히 읽고갑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고
종종 글 올려주시길 소원합니다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깨우침을 얻는데 도움을 얻고자 님의 글 찾아서 틈틈이 정독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