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묵호노인회관에서 원룸이 있는 발한 삼거리 길을 다르게 걸었다.
묵호역으로 나오면 편하고 빠르게 올 수 있지만, 돌아가기로 했다.
향로봉길로 향하는 것이다.
향로봉길에서 발한 삼거리로 가다보면 ‘해리슈퍼’가 있다.
해리슈퍼는 '라면 (끓여줌)'이라는 글자가 유리창에 붙어있었다.
할머니가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음료수를 마시지 않지만 할머니와 이야기 하고 싶어 캔 하나를 주문했다.
"할머니, 이거 콜라 캔 얼마에요?"
"1200원."
주머니에 200원이 없었다. 해리슈퍼는 동해페이를 사용할리 없었다.
"천원 짜리 음료는 없나요?"
"그거 그냥 천원에 줄께."
"아뇨, 그게 아니라 동전 생기는 거 싫어서 딱 천원 지폐 내는 음료로 마시려구요."
"그거 천원에 가져가."
할머니께서는 내가 돈이 없어서 천원짜리 찾는 줄 아신 것 같았다.
그래서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동전 생기는 거 싫어서 천 원짜리 음료수 찾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할머니께서는 괜찮으니 콜라 캔을 1000원 내고 가져가라고 하셨다.
콜라 캔을 챙기고 할머니께 이천원 드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건방을 떨은 것 같았다.
그러나 이미 버스는 지나간 뒤였다.
"할머니, 여기 길에 사람들 많이 다니나요? 해파랑길이던데요."
"예전에는 많았는데 지금은 자전거길 조성해서 자전거 타는 사람이나 몇몇 지나가."
할머니께서는 예전에는 향로봉길로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녔지만 지금은 거의 안 지나다니는 길이라고 하셨다.
"묵호역이 저기로 이전하면서부터요?"
"아니야. 그건 아주 오래 전이구."
할머니께서는 향로봉길로 사람들이 안 다니기 시작한 건 묵호역이 새로 생긴 후로부터 한참 뒤의 일이라고 하셨다.
"할머니, 예전에 구역사 앞에 역전 매우 번화했나요? 저기 구역사가 원래 묵호역이라고 하던데요."
"옛날에 구역사가 묵호역일 때는 앞에 가게도 여럿 있었구, 그 앞에서 주변에서 농사짓던 사람들이 작물 가져와서 많이 팔았어."
"향로시장은요? 향로시장도 예전에는 컸어요?"
"향로시장도 예전에는 컸지."
"거기는 묵호역 저쪽으로 이전한 거 때문에 저렇게 되었어요?"
"아냐, 향로시장은 마트 생기면서 완전히 망했어."
할머니께서는 묵호역이 생기기 전 묵호항역이 묵호역이었던 시절에 묵호항역 앞은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고 붐볐다고 했다.
그때는 향로봉길과 묵호항역 앞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지나다니지도 못할 정도였다고 하셨다.
묵호항역 앞에는 주변에서 농사짓던 사람들이 작물을 가져와서 판매했다고 하셨다. 그러나 묵호항역 앞에 시장은 없었다고 하셨다. 향로시장은 마트 생기면서 망했다고 하셨다.
"여기 기차역 생긴 순서가 묵호항역, 묵호역, 동해역 순이야."
할머니께서는 묵호역이 생기기 전부터 이곳에서 거주하셨다고 하셨다. 매우 오래 전부터 이곳에서 거주하셨기 때문에 이곳의 변화를 꿰고 계셨다.
할머니께서는 이 동네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원래는 향로봉길 마을이 고립된 곳이 아니었는데 현재 묵호역으로 이어지는 철로가 생기면서 향로봉길 마을이 고립된 곳처럼 되었다고 하셨다.
예전에는 묵호가 동해시 전역에서 최고로 번화한 지역이었다고 하셨다.
천곡동이 그렇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 못했던 일이라고 하셨다.
묵호항에 한창 석탄 들어올 당시에는 향로봉길 일대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은 바람 불 때마다 석탄 가루 날려서 고생 많이 했다고 하셨다.
그리고 매우 중요한 정보를 알려주셨다.
"요즘은 시가 어달을 개발하려고 해."
"어달요? 묵호 너머 저기 망상 가는 그쪽이요?"
"그래!"
"거기 완전 외지 시골 아니에요? 거기 뭐 없지 않나요?"
"그렇다니까! 그런데 거기를 개발하려고 해."
"여기는 왜 놔두고요? 여기가 묵호역 있으니까 개발하면 서울에서 사람들 엄청 놀러올 거 같은데요."
"그러니까 말이야. 우리가 무슨 옛날 석탄 가루 날린 거 보상해달라는 거도 아니고, 저 앞에 보기 싫은 사일로 치우고 여기부터 천곡까지 쭉 연결해서 개발하면 얼마나 좋아!"
할머니께서는 요즘 들어서 동해시가 묵호는 방치하고 어달항 쪽을 개발하려고 하고 있다고 알려주셨다.
묵호를 개발해도 끝도 없을 건데 어달 개발에 힘쓰고 있다니 이해가 안 되었다.
"요즘은 또 부산에서 KTX 연결하면서 묵호역 이전한다 만다 말이 많아. 차고지가 이쪽으로 들어올 수도 있다나."
"묵호역을요? 왜요? 관광객들 묵호역 있어서 여기 더 올 건데요?"
할머니께서 부산에서부터 KTX 연결하면 묵호역을 엉뚱한 곳으로 이전하고 차고지가 이쪽으로 들어올 수도 있다는 말이 있다고 알려주셨다.
할머니께서 알려주신 것은 묵호역 신역사 건설이 아니라 동해선 삼척역~강릉역 구간 직선화 이슈였다.
동해시에서는 동해선 삼척역~강릉역 구간 직선화 이슈로 꽤 시끄러운 모양이었다.
만약 직선화된다면 KTX가 동해시에서 묵호역을 거치지 않고 바로 강릉역으로 연결될 거라고 한다.
이게 과연 잘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영동선 KTX는 현행대로 유지되고 동해선 KTX가 신설되는 거라면 괜찮겠지만 동해선 KTX가 신설되면서 영동선 KTX가 폐션된다면 이건 매우 나쁜 사업이 된다.
영동선 KTX에는 정동진역, 묵호역 등 관광 수요가 엄청나게 많고 관광지 및 상권 발달도 꽤 잘 되어 있다.
더욱이 관광에 의존하고 있는 지역들이다.
기차역을 엉뚱한 곳으로 이전해서 지역 경제도 크게 타격입고 기차 이용 승객이 감소해서 코레일도 손해보고 있는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
수도권 집중 현상이 나날이 심해지며 지역 소멸 위기가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인데다 한국 관광 경쟁력이 형편없는 결정적인 이유가 대중교통 접근성이 형편없다는 점인 점을 고려하면 기차역 이전 문제는 단순히 속도 문제가 아니라 지역 사회 및 지역 경제에 끼칠 영향도 크게 고려해야 한다.
‘해리슈퍼’ 할머니께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할머니께 인사드리고 해리슈퍼에서 나왔다. 콜라를 40년만에 마셨다.
궁금했던 것을 많이 알게 되어서 시원했고, 콜라 자체도 시원했다.
콜라를 먹지 않는데 ‘해리슈퍼’ 콜라는 시원하고 맛이 좋았다.
돈 가져 가라는 할머니를 뒤로 하고 발한삼거리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