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불라의 황금사원+거대한 석굴사원 탐방 (세계 문화유산)
스리랑카 아잔타 불교미술의 보고
담불라(Dambulla)라는 작은 마을이 나타나는데
이곳이 유명한 시기리야(Sigiriya) 요새와 폴론나루와(Polonaruwa) 고대도시의 관광거점이다.
담불라(마르지 않는 샘이라는 뜻)가 가까워지면 평원(밀림)가운데 꼭 바가지를 엎어 놓은 것 같은
커다란 바위산이 우뚝 솟아있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그 바위산 아래에는 황금사원(Golden Temple)이 있고
바위산 정상 조금 아래에는 석굴사원(Rock Temple)이 있다
스님들의 수행장소
현존하는 규모가 가장 크고 보존이 잘된 장소
동굴에서 캐낸 자연석으로 석불을 만들었다고 한다
석굴사원이 생기게 된 건
BC 103년에 타밀족에게 나라를 빼앗길 절제절명의 순간에
왕에 대한 불만으로 신하들이 적장에게 투항하려던 것을 스님의 설득으로 화합하여
이 석굴을 요새삼아 게릴라전으로 승리했다고 한다.
이 후 14년만에 타밀족을 물리쳐 수도 아누라다푸라를 탈환하고 왕좌에 복귀한 왕은
그 고마움의 표시로 석굴에 2개의 사원을 지었으며
이 후로도 국난이 있을때마다 이를 극복하고자 사원을 만들었다
담불라석굴사원이 크게 조성돼 국가적 불교성지가 되었지만,
이 석굴사원 주변에 있는 작은 석굴에는 여전히 수행하는 승려들이 많이 머물렀다.
이런 이유로 현지에서는 담불라석굴사원을 수도원이란 뜻의
‘비하라’가 들어간 ‘랑기리 담불라 라자마하 비하라(Rangiri Dambulla Rajamaha Vihára)’로 부르고 있다.
이는 ‘담불라 황금바위의 대왕 사원’이란 뜻이다.
바라감 바후 1세가 석굴사원을 처음 조성한 이후
비자야 바후(Vijaya Bahu, 재위 1055~1110), 파라쿠라마 바후(Parakrama Bahu, 재위 1153~1186),
니상카 말라(Nissanka Malla, 재위 1187~1196), 키르티 스리 라자싱하왕(Kirti Sri Rajasinha, 재위 1747~1782) 등에 의해
석굴사원은 확장되었다.
특히 니상카 말라 대왕은 불상에 금을 입히고 벽화를 황금으로 채색하는 보시를 했는데,
이후 사원의 이름이 지금의 ‘담불라황금사원’으로 불리게 되었다.
‘담불라황금사원’은 370m의 검은 바위산 중턱 180m지점에 5개의 석굴로 조성됐다.
석굴사원이라고는 하지만 인도나 중국에서 보이는 절벽을 수평으로 파고 들어가서 조성하는 방식이 아니라
커다란 바위의 밑부분을 조금 더 긁어내 실내공간을 조성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공간 확장이 용이한데, 이곳 역시 좁은 공간의 개인 수행처로 존재하던 것을
사원으로 조성하면서 더 깊고 넓게 팠을 것으로 추정한다/펌
BC 1세기, 싱할라 왕조 때 건축되었다는 이 석굴사원은
암벽 밑의 흰색 벽으로 이루어진 회랑 안쪽에 자연 상태의 바위산을 파낸 5개의 석굴이 연이어져 있는데
제일 큰 제2 석굴은 가로세로 52m×23m, 천정 높이 7m의 어마어마한 규모로
황금색 불상과 여러 가지 신상(神像)들이 안치되어 있는데 다섯 굴을 합하면 모셔진 불상이 총 157좌나 된다고 하니 놀랍다.
그뿐만 아니라 천정과 벽에는 화려하기 그지없는 현란한 색채의 프레스코화가 빽빽이 들어차 있어 경탄을 금할 수 없다.
제2 석굴 외에도 제1 석굴의 거대한 부처님 열반상, 제3 석굴의 수많은 좌불상과 입상들이 인상적이었고,
화려한 색깔로 그려져 빽빽하게 채워진 천정화 등은 2.000년 전에 조성된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소중한 불교의 보물이자 인류의 유산으로 생각되었으며 가슴가득 밀려오는 감동을 주체할 수 없다.
제3 석굴 가운데에는 철망으로 둘러쳐진 작은 공간이 있는데 그 가운데에 항아리가 하나 놓여있고 사람들이 들여다본다.
석굴 천정에서 작은 물줄기가 쉴 사이 없이 떨어져 항아리에 넘치는데
아무리 가뭄이 들어 평지의 다른 샘들은 말라도 바위산 꼭대기의 이 물은 절대로 마르지 않는다고 하며,
이곳 지명이 담불라라고 부르게 된 연유로 ‘마르지 않는 샘’이라는 의미라고 한다/펌
첫댓글 이곳은 오래전에 갔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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