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 제28호이며 보물 제213호인 삼척 죽서루의 화려한 봄을 찾아본다.
죽서루는 오십천이 휘감아 돌아가는 절벽 벼랑 위에 날아갈 듯 아름답게 서 있다.
1875년(고종 12) 삼척부사로 부임했던 심영경(沈英慶)이 죽서루의 아름다운 풍광에
감탄하여 노래한 시 는 물론, 1662년(현종 3) 도호부사였던 미수 허목은
죽서루기(竹西樓記) 에서 “조선의 동쪽 경계에는 경치가 좋은 곳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여덟 곳은 가장 뛰어나다.” 라고 표현하는 등 죽서루를 찬양한 글들이 많다.
화려한 벗꽃속의 삼척 죽서루
차 죽서루판상운(次 竹西樓板上韻) ~ 삼척부사 심영경(沈英慶)
관동에서 제일가는 죽서루 / 관동제일죽서루(關東第一竹西樓)
누각 아래 푸른 물 도도히 흐른다 / 누하용용벽옥류(樓下溶溶碧玉流)
오랜 세월 돌과 물이 어우러진 경치 / 백년천석여상대(百年泉石如相待)
천고의 문장으로도 다 표현할 수 없도다 / 천고문장불진유(千古文章不盡遊)
석양빛에 반짝이는 죽서루 벗꽃
죽서루라는 이름은 를 건립 당시 동쪽에 죽장사(竹藏寺)라는 절이 있었고
그 서쪽에 지은 누대라 해서 죽서루(竹西樓 )라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보물 제213호인 죽서루는 조선 태종 3년(1403) 중창(重創)된 이후
그 모습을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어 역사적 가치를 높게 평가받는다.
관동팔경 중 유일하게 바다가 아닌 강(오십천) 하류에 위치해 강과 산, 바다를
함께 즐길 수 있는 명승이기도 하다.
송강 정철 가사의 터(담양 식영정의 석비와 같은 형태이다)
삼척 도호부 관아 진주관 객사 (신축 후 미개방, 2023.3.30현재)
지난 2010~2016년 죽서루 주변 유적 발굴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옛 삼척도호부 관아지가
2021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됨에 따라, 삼척시에서는 보물인 죽서루를
국보로 승격시키코자 시민들의 뜻을 모으기 위해 국보기원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한편 문화재청에서는 2023.3.24일 죽서루의 국보 가치 조사를 위한 현지실사를 진행했다
오죽(烏竹)
석양이 반사되어 빛을 피하여 촬영
죽서루 측면
죽서루옆 절벽아래 오십천
해서체로 쓴 죽서루와 관동제일루라는 현판은 조선 숙종 36년(1710년)에
삼척부사를 지낸 이성조(李聖肇,1662~1739)가 쓴 글씨이다.
해선 유희 지소(海仙遊戱之所)란 정조임금의 어제시(御製詩)로써
"바다의 신선이 노딜던 장소" 라는 뜻으로, 정조가 죽서루를 정말 보고싶어해서
김홍도에게 그림을 그려오라고 시켜 그림을 보고, 이 어제시를 내리고는
"삼척 태수는 뉘집 아들이기에 매일 아름다운 곳에서 풍류를 즐기냐" 하고
부러워하였다 하며, 글은 삼척부사를 지낸 이규헌(李圭憲)이 썼다고 한다.
제일계정(第一溪亭)이라 적힌 현판은 "시냇가에 있는 첮째가는 정자"라는 뜻으로
남인을 대표하는 유학자이자 삼척부사를 지낸 허목이 1662년(현종 22) 쓴 글씨이다.
정조어제 편액(상)
1789년(정조13) 정조대왕은 김홍도가 바친 죽서루 그림을 보고
다음과 같은 어제(御製) 시 한편을 내렸다.
조석전애기일루(彫石鐫崖寄一樓)
돌을 쪼고 절벽 깎아 누각 하나 세웠구나
누변창해해변구(樓邊滄海海邊鷗)
누각 옆에는 푸른 바다, 해변에는 갈매기
죽서태수수가자(竹西太守誰家子)
삼척고을 태수는 어느집의 아드님이신가
만재홍장복야유(滿載紅粧卜夜遊)
기생을 가득히 싣고, 밤 뱃놀이 하겠구나
죽서루 시(詩) 편액
죽서루는 고려부터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유명 시인묵객들이
죽서루에 올라 그 아름다운 풍광을 노래하고 시판을 누각에 걸었다.
위는 이승휴(李承休), 중간은 천곡 안성(泉谷 安省), 아래는 송강 정철(松江 鄭澈)의 시판이다.
등진주 죽서루 차판상운(登眞珠 竹西樓 次板上韻)
~ 이승휴(李承休)
높은 하늘 고운 색채 높고 험준함을 더하는데
햇빛 가린 구름조각 용마루와 기둥에서 춤추는구나
푸른 바위에 비스듬히 기대어 날아가는 고니 바라보고
붉은 난간 잡고 내려다보며 노니는 물고기 헤아려보네
산은 들판을 빙 둘러싸 둥그런 경계를 만들었는데
이 고을은 높은 누각 때문에 매우 유명해졌구나
모든 벼슬 버리고 노년을 편안하게 보내고 싶지만
작은 힘이나마 보태 임금 현명해지기를 바라네
반공금벽백가쟁영(半空金碧駕崢嶸) / 엄영운단무동영(掩映雲端舞棟楹)
사의취암간곡거(斜倚翠岩看鵠擧) / 부림단함수어행(俯臨丹檻數魚行)
산위평야원성계(山圍平野圓成界) / 편욕투잠료송로(便欲投簪聊送老)
현위고루별유명(縣爲高樓別有名) / 서장형촉조군명(庶將螢燭助君明)
~ 이승휴(李承休)
* 이승휴(李承休, 1224~1300)의 자는 휴휴(休休), 자호(自號)는 동안거사(動安居士).
경산부 가리현(京山府 加利縣) 사람으로 가리(加利) 이씨(李氏)의 시조이다.
고려후기 우정언, 우사간, 전중시사 등을 역임한 관리. 문신으로
1252년(고종 39) 4월 과거에 급제하였고 다음해에 홀어머니를 뵈러
삼척현(三陟縣)으로 갔다가 마침 몽고의 침략으로 길이 막히자
그 곳 두타산 구동(頭陀山 龜洞)에서 농사를 지으며 홀어머니를 봉양하였다.
눈속의 죽서루(2012.2.27)
송강 정철(松江 鄭澈1536~1593)은 45세에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했다.
그는 내금강과 외금강, 관동팔경을 유람한 뒤,
조선 가사문학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히는 관동별곡(關東別曲)을 지었다.
竹西樓(죽서루) ~ 송강 정철(松江 鄭澈)
관동에서 경치 좋기로 소문난 척주의 누각 / 關東仙界陟州樓(관동선계척주루)
빈 난간에 위태로이 기대니 여름 또한 가을 같구나 / 虛檻憑危夏亦秋(허함빙위하역추)
하늘 위 옥황상제 궁전이 북쪽 왼편에 이웃해 있고 / 天上玉京隣北左(천상옥경인북좌)
꿈속에서 은하수 서쪽으로 흐르는 소리 들리네 / 夢中銀潢聽西流(몽중은황청서류)
성긴 주렴 걷으려 하니 영롱한 이슬에 젖어있고 / 疏簾欲捲露華濕(소렴욕권로화습)
새 한 마리 날지 않으니 강물 빛은 수심에 잠겼네 / 一鳥不飛江色愁(일조불비강색수)
난간 아래 외로이 떠있는 배 바다로 들려 하는데 / 欄下孤舟將入海(난하고주장입해)
낚싯대 던지니 놀란 갈매기 울릉도로 날아가네 / 釣竿應拂鬱陵鷗(조간응불울릉구)
*정철(鄭澈,1536~1593)의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계함(季涵), 호는 송강(松江)이다.
조선시대 우의정, 좌의정, 전라도체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문인이다.
*안성(安省,1344~1421)의 본관은 광주(廣州). 초명은 소목(少目).
자는 일삼(日三), 호는 설천(雪泉)·천곡(泉谷)이다.
조선전기 참지의정부사, 강원도도관찰사, 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죽서루 옆 기암괴석들
용문
신라 제30대 문무왕이 사후 호국용이 되어 동해바다를 지키다가 어느날
삼척의 오십천으로 뛰어들어 죽서루 벼랑을 아름답게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호국용이 오십천으로 뛰어들 때 죽서루 옆 바위를 뚫고 지나갔는데
그것이 용문바위이며, 그후 용문바위는 아름다움과 장수,
다복의 기원처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용문을 드나들며 소원을 빌었다.
오십천과 죽서루
회화나무(보호수, 수령 350년 이상)
오십천 절벽위의 죽서루
백합나무와 꽃
백합나무는 높이가 30m, 지름은 50 ~ 100cm로 자라며
꽃은 5~6월에 피며 녹황색이고 가지 끝에 튜울립같은 꽃이 1송이씩 달리며 지름은 6cm이다.
나무가 너무 높아 꽃이 언제 피는지 유심히 보지 않고는 잘 모른다.
햇빛을 받으면 연두, 노랑 그리고 주황빛이 꽃잎에 베어 나오며, 그 모습이 마치 등잔 같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