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정국과 혼란스러운 사회
: 1978년 제11회 월드컵이 아르헨티나에서 열린다고 국제축구연맹(FIFA)
에서 발표했을때 아르헨티나를 제외한 모든 국가들이 얼굴을 찌푸렸다.
아르헨티나는 1976년 군사혁명으로 군사혁명위원회가 정권을 장악하면
서부터 강압적인 잔혹성과 인권유린으로 악명이 높은 나라였다. 76년
까지 정치적 음모에 휘말려 암살되고 실종된 사람들의 숫자는 가히 천
문학적이었다.
게다가 국민들은 초특급 인플레이션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으며, 생활에
찌들린 국민들의 광란적인 축구열기는 언제나 폭력으로 물들수 있으며
일촉즉발의 위협성을 내두르고 있었다.
모든 나라들이 월드컵의 개최지로 아르헨티나가 결정되는데 반대하고
나선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게다가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를 약속하며 발족한 국가재건위원회의 지
도자가 기자회견 도중에 암살당하는 사건이 벌어져 세계 여론은 크게
악화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네덜란드와 벨기에 중에서 월드컵이 열린다는 소문이
아주 근거있는 이야기처럼 세계 언론에 흘러나왔고, 만약 아르헨티나에
서 월드컵이 열릴경우, 세계 최강의 팀인 네덜란드가 보이콧 을 선언할
것이라는 말도 설득력 있게 나돌았다.
그러나 국제축구연맹(FIFA)은 아르헨티나의 월드컵 개최를 허용했고,
<아르헨티나의 월드컵 개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락 공식적으로 발
표함으로써 이 월드컵을 강행하겠다는 자세를 보였다.
결국 아르헨티나 월드컵은 계획대로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1978년 5월 25일, 월드컵 개막 1주일을 앞둔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프레스센터에서 엄청난 폭음이 불꽃처럼 일어났다.
미리 폭탄이 장치되어있었다 는 정보를 입수한 경찰이 기자들을 긴급히
대피시켰기에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경찰 한 명이 죽고, 한 명이 부상
당하는 결과는 빚었다.
누가 무엇때문에 폭탄을 장치했을까?
당시 취재기자들은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의 자작극일 공산이 크다고 입
을 모았다. 각국의 축구스타들은 국제사면위원회에 아르헨티나의 정치
범 석방을 탄원하고 있었고, 기자들은 축구보다 아르헨티나의 정치문제
에 매달리는 상황에서,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이 각국의 기자들에게 <경
고장> 이 일환으로써 폭탄소동을 일으켰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범인은 끝내 잡히지 않았고, 다만 <위험한 아르헨티나>라는 말
이 전세계로 퍼지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혼란스러움 속에서 네덜란드의 축구스타 요한 크라이프 와 서
독의 주장 프란츠 베켄바워 가 대회참가를 거부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그러나 축구는 축구.
1978년 6월 1일 제 11회 월드컵은 서독과 폴란드의 경기를 시작으로
막이 올랐다. 본선 16개 팀들은 유럽 10개국과 중남미 4개국, 그리고
아시아의 이란과 아프리카의 튀니지 가 올라왔다.
A : 아르헨티나,프랑스,헝가리,이탈리아
B : 멕시코,폴란드,튀니지,서독
C : 오스트리아,브라질,스웨덴,스페인
D : 네덜란드,이란,페루,스코틀랜드
: 월드컵의 시작이 어수선했던 것과 똑같이 1차리그도 어지러웠다.
1그룹에 편성된 아르헨티나는 홈그라운드의 잇점을 이상한 방향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들이 아무리 거칠고 난폭하고 비열한 플레이를
해도 심판의 호루라기는 침묵했다.
헝가리와 마주한 아르헨티나의 첫 경기에서 아르헨티나의 난폭함은
극에 달해 있었다. 관중들은 처음부터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동점으로 계속되는 상황에서 아르헨티나는 경기를 마치 싸움으로써
풀어가고 있었으며, 이에 헝가리도 조용히 당하지만은 않았다. 경기
는 폭력장으로 변하였고, 심판은 광란하는 관중들이 두려워 조용히
도망다니기에 바빴다.
아르헨티나가 2-1로 승리했지만, 결코 진정한 승리는 아니었따.
아르헨티나의 <추악한 축구>는 두번째 경기인 프랑스전으로 이어졌다.
이탈리아의 <떠오르는 태양> 파울로 로씨(Paolo Rossi)에게 뼈아픈
실점을 허용해 2-1로 역전패당한 프랑스이지만, 그 실력만큼은 정상
급이었다.
전반 40분경, 아무런 상황도 발생하지 않은 프랑스의 문전에 페널티
킥을 선언하는 심판을 바라보는 프랑스 선수들은 답답함을 가슴을 쳤
다. 프랑스 선수가 헨드링을 했다는 것이었다. 추악한 <심판 매수설>
이 사실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1-0으로 전반을 마감한 프랑스가 후반전에 대반격을 시도하면서 경기
는 더욱 치열하게 변하고 있었다.
아르헨티나의 추악한 심판 매수설
프랑스의 떠오르는 별 미셜 플라티니(Michel Platini)가 동점골을 성
공시켰으며, 아르헨티나의 루케가 다시 골을 성공시켜 다시 2-1로 돌
아갔다. 그 상황에서 프랑스는 절대적인 사건을 하나 맞는다. 아르헨
티나의 수비수 디디에르 가 플라티니의 옷자락을 잡고 늘어졌고 플라
티니는 페널티박스 안에서 쓰러졌다. 모두가 페널티킥이라고 생각했
지만 아르헨티나 관중과 주심, 선수들은 이내 그것을 정당화시켰다.
결국 이 경기도 아르헨티나의 승리였다.
1그룹에서 아르헨티나의 횡포가 있었다면 2그룹은 아프리카의 <최초
돌풍>이 이었다. 우승확률 500:1 이라는 튀니지가 관록의 멕시코에게
3-1로 이긴것이다. 2차전 독일에게 0-0으로 비겼으니 얼마나 많은 갈
채를 받았겠는가?
튀니지의 미드필더 다이압은 서독을 압도하고 있었고 경기가 0-0 무
승부로 끝난뒤, 안도의 한숨을 내쉰 것은 서독이었다. 그러나 튀니지
는 아깝게도 폴란드에게 1-0으로 패배해 2차리그에 진출을 잘하고도
실패한다.
4그룹에 속한 영연방의 자존심 스코틀랜드 는 쿠비야스 의 페루에게
3-1로 얻어맞고 아시아에서 한국을 꺾고 올라온 이란에게 1-1로 비기
는등 초라한 모습을 보였지만 네덜란드를 3-2로 꺾는 파란을 연출했
다. 그렇지만 그 스코틀랜드 역시 탈락.
1차리그 를 모두 끝낸 상황에서 8강에 진출한 팀은 이탈리아,아르헨
티나,폴란드,서독,페루,오스트리아,브라질,네덜란드 였다.
2차리그를 위한 조편성도 아르헨티나는 그 위력을 발휘했다.
지난 대회 준우승팀 네덜란드,지난대회 우승팀 서독, 월드컵 2회 우
승의 관록의 이탈리아, 그리고 옛날의 <분더>의 후예 오스트리아 모
두 1조에 편성시키는 재주를 보인것이다.
아르헨티나 자신은 페루,폴란드,그리고 지코 와 디르세우, 넬링요가
버티는 브라질과 맞붙은것이다.
쉽게 말해서 처리하기 어려운 유럽의 강호보단 일단 같은 스타일의
남미 국가를 손쉽게 잡아가자는 아르헨티나의 치밀한 계산이었다.
과연 그 계산은 쉽게 먹혀들어갔을까?
) 또다시 강호들을 제치고 결승에 진출한 네덜란드
: 2차리그 1조 최대의 관심은 서독과 네덜란드의 격돌이었다.
전대회 결승전의 재판으로써 가장 주목받았던 경기.
이제는 결승 진출의 관문에서 만난것이다. 그러나 지난 대회에서
게르만의 '뚝심'에 밀렸던 네덜란드는 새로운 저력을 보여주었다.
서독이 1-0으로 앞서가면서 1-1로 따라붙었고 다시 서독이 2-1로 도망
가면, 또 2-2로 달라붙는 새로운 응집력과 투지를 나타냈다.
화鵽나 기술에 투지까지 접목시킨 네덜란드는 세계 최강으로 성장해 있
었다. 결국 서독과 2-2로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네덜란드는 새로운 자
신감을 가슴속에 충전시킬수 있었다.
기세가 오른 네덜란드는 파울로 로씨(Paolo Rossi)의 이탈리아를 아리
한(Ari Hahn)의 활약으로 2-1로 역전하는 무서운 기세로 결승전 티켓을
움켜잡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2차리그 2조의 경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르헨티나의 조작으로
일관되었다. 약체 폴란드를 3-0으로 가볍게 제친 아르헨티나는 '하얀
펠레' 로 불리는 지코(Zico)의 브라질과 맞붙었다. 가장 어려울 때
언제나 심판의 힘을 빌렸던 아르헨티나는 어김없이 그 카드를 뽑았다.
주심의 편파 판정에 허덕이던 차라리 0-0 무승부가 기쁜 일이었다. 그
러나 그 게임을 스스로 시나리오 그대로 풀어가던 아르헨티나 앞에도
어려움이 찾아왔다.
브라질과 폴란드, 아르헨티나와 페루의 경기가 남은 현재,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1승 1무로 브라질이 아르헨티나보다 골득실차로 가려야
했다.
<최선을 다한다> 라는 각오는 온데간데 없고 아르헨티나의 돈보따리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페루 골키퍼에게 넘어갔다.
브라질 대 폴란드의 경기는 브라질이 3-1로 폴란드를 누름으로써 브라
질은 거의 확정적이었다. 이로써 아르헨티나는 브라질을 누르고 결승
에 진출하기 위해선 페루를 4점 차 로 이겨야 했다.
그렇지만 아르헨티나 앞에선 불가능 이란 없었다. 페루 에게 6-0으로
이기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이 발생했던 것이다. 격분한 브라질 기
자는 <아르헨티나가 500골이 필요했다면 그것도 문제되지 않았을것이
다.> 라고 말했을 정도이고 아르헨티나 출신의 페루 골키퍼가 뇌물을
먹었을것이란 소문이 만무했다.
그렇지만 아르헨티나는 드디어 결승전이란 곳에 올랐다. 실로 48년만
의 눈물겨운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것이 비열한 방법이라는 것은 세
계가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생활고에 찌들고 정치적 탄압에
병들은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그 이유나 뒷거래를 따지지 않았다. 오
직 그들은 <승리>가 마약처럼 달콤했던 것이었다.
판파 판정이 되었던지, 상대팀을 매수했던지, 그것은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다혈질의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그저 승리에 광분했고, 결승
전진출이라는 눈앞의 음식에 침을 흘릴 뿐이었다.
바로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이 노리던 결과가 그대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8) 아르헨티나를 위한 추악한 월드컵 시나리오
: 음모를 꾸민자는 언제나 끈적한 오만감으로 자신을 치장한다.
1978년 6월 25일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의 리버 플레
이트의 홈구장 리베르티 스타디움은 광란적인 아르헨티나 응원단으로
정신이 없었다.
허공을 향하여 권총을 발사하는 아르헨티나 시민들은 "만약 우리의 우
승을 가로막는다면 이 총이 용서하지 않을것이다"라고 외치는 것처럼
보였다.
4년전, 74년 서독 월드컵 2차리그에서 네덜란드와 아르헨티나의 대결
은 요한 크라이프 의 맹활약으로 네덜란드가 4-0으로 아르헨티나를 가
볍게 눌러 이긴 경험이 있었다.
4년이 지난 78년 네덜란드는 화려한 기술 위에 강인한 투지를 올려 엄
청난 파워를 지닌 축구 최강팀으로 더욱 성장해 있었다.
그러나 리베르티 스타디움에 들어서는 네덜란드 선수들은 몸이 이상하
게 움츠려들고 있었다. 위험을 감지하는 본능적인 육감이었을까?
네덜란드 선수들은 그라운드에 나와 몸을 풀면서 경기 시작을 기다렸지
만 약속된 시간이 훨씬 지나도 주심과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입장하지
않았다.
광란의 수많은 관중들은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에게 엄청난 야유를 퍼
붓기 시작했다. 네덜란드 선수들은 자연히 야유와 기다림에 위축되어
있었다.
바로 아르헨티나의 힘빼기 작전에 말려드는 순간이었다.
뒤늦게 아르헨티나 팀은 모습을 나타냈지만 배짱을 부리며, 경기를 계
속 지연시키고 있었다. 네덜란드의 케르호프 가 착요한 헤어밴드가 규
정 위반이라고 억지를 부리는 것이었다. 네덜란드는 경기를 치루기 전
에도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따.
이탈리아 주심 고넬라의 호각소리가 아주 어렵게 경기 시작을 알렷으
며, 그 소리를 시작으로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공> 이 아니라 네덜란드
의 발목을 향하여 깊은 태클을 감행했다. 참 더러운 플레이였다.
그러나 관중들은 아르헨티나의 <폭력>에 환호했다. 마음이 약한 고넬라
주심은 분위기에 압도당하여 아르헨티나의 파울에 호각 한번 제대로 불
지 못했다.
오히려 전후반 90분 네덜란드에게만 50회가 넘는 파울을 선언했다. 주
심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폭력이 난무하던 전반 38분, 위축된 네덜란드 수비를 뚫고 아르헨티나
의 슈퍼스타 마리오 켐페스(Mario Kempes)가 결정적인 찬스를 만들었
다. 두 명의 수비수를 제치고 오른쪽 페널티 라인을 파고들면서 때린
멋진 슛이 강하게 튕겨나와 위축된 네덜란드의 골네트를 흔들었다.
컴페스는 특유의 포즈로 관중들에게 달려가 요란한 춤을 추었다.
감격에 울부짖는 광란의 관중들은 마치 사이비 종교를 믿는 광신자처
럼 보였다. 몇 발의 총성이 부에노스아이레스 상공에 울려퍼졌다,.
그러나 당시 세계 최강 네덜란드는 이대로 주저앉을수 없었다. 반격에
나선 네덜란드는 렌젠브렝크 의 슛을 필두로 아르헨티나의 목을 실력
으로써 제압하기 시작했다.
아르헨티나의 골키퍼 필롤 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렌젠브렝크의 슛을
멋진 슬라이딩으로 잡아낸 필롤은 잠시후 네덜란드의 영웅 크라이프의
파트너 요한 네스켄스(Johan Neeskens)의 왼발 슛을 펀칭하는 등 아르
헨티나를 응원하는 광란자들을 위한 멋진 수비를 펼치기 시작한것이다.
네덜란드의 총고세는 엄청났다. 중앙돌파 및 측면돌파가 계속 필롤에
게 막히자 다양한 작전을 구사하는 네덜란드는 공중전으로 전법을 바
꾸었다. 한편 경기 시작전 "경기 종료 10분을 남기고 내가 아르헨티나
골문에 골을 넣겠다" 라고 말하고 들어간 교체선수 나닝가 가 아르헨티
나 문전 깊숙히 박아놓고 높은 센터링을 계속 시도했다.
결국 네스켄스 의 절묘한 센터링이 포물선을 그리면서 아르헨티나 문전
에 포진한 나닝가 머리를 맞고 아르헨티나 골문을 뒤흔들어버렸다.
돌고래처럼 솟아오른 나닝가의 양미간 사이의 이마에 정확한 헤딩슛은
연속된 방어를 숨돌린 틈도 없었던 아르헨티나 골키퍼 필롤을 땅을 치
게 만들었다.
네덜란드의 황금의 동점골이 터진것이다.
지난 74년 서독의 투지에 밀려 패배했던 기술만의 네덜란드가 아니었
다. 혹독한 아르헨티나 물결 속에서 끈질기게 동점을 성공시키는 투
지와 응집력을 지닌 네덜란드였다.
후반 경기종료 5분전, 기세가 오른 네덜란드는 총력전을 펼치며 아르헨
티나 골문에 집중포화를 가했으나 아르헨티나의 골키퍼 필롤은 고국의
관중들의 광란적 응원에 힙입어 신기에 가까운 방어능력을 보여줬다.
9) 아르헨티나 투우스 마리오 켐페스의 대활약
: 연장전에 들어간 네덜란드와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모두 지쳐있었다.
두 팀 선수 22명 가운데 유독 한 명만이 길고 검은 머리를 휘날리며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었다. 등번호 10번의 마리오 켐페스라는 23세의
어리고 젊은 선수였다.
이번 대회에서 모두 5골을 터뜨려 득점왕 1순위를 눈앞에 두고 잇던
그는 그의 등번호 <10번>은 아르헨티나에게 행운을 가져오는 숫자였
다. 당시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이름을 알파벳 순으로 나열하여 등번
호를 붙이는 희한한 방법을 쓰고 있었는데 켐페스의 맨 앞의 글자
<K> 는 공교롭게도 아르헨티나 선수들 중에서 10번째가 되었던 것이
다. 그후 <10번>은 아르헨티나 최고 축구스타를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승계되는 전설을 만들었다. 그 등번호를 이어받은 선수가 바로 <축구
신동> 디에고 마라도나(Diego Maradona)였다.
당시 스페인의 발렌시아 CF 에서 활약하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에 합류
한 켐페스의 특징은 놀라운 스피드와 과감한 돌파력이었다. 전반전의
1골도 그의 몫이었다.
연장전의 시작과 함께 놀라운 체력으로 그라운드를 누비는 켐페스를
확인한 아르헨티나 관중들은 입을 모아 켐페스를 연호했다.
긴 머리를 휘날리며 그라운드를 달리던 켐페스 귀에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는 관중들의 외침이 들렸다. 그의 속도가 더운 빨라지기 시작했
다.
지친 네덜란드 수비수들을 현란한 드리블과 적절한 돌파로 모두 따돌린
켐페스가 슛팅, 자신의 6번째 득점을 기록하며 득점왕에 오르는 골과
함께 조국 아르헨티나 의 우승을 안겨주는 순간이었다.
네덜란드 선수들은 경기를 이미 포기하기 시작했다. 24분, 아르헨티나
의 베르토니가 다시 한골을 추가, 스코어는 3-1로 굳혀졌다.
아르헨티나의 우승, 네덜란드의 불운한 2회 연속 준우승 이 결정되었
다. 주최국이 우승하는 5번째 월드컵으로 기록되었으며, 남미 와 유럽
의 우승 싸움에서 남미가 6-5로 우세를 결정하는 승부이기도 했다.
아르헨티나가 우승을 확인하기까지 120분은 아르헨티나의 모든 업무가
중단되어 있었다. 미델라 아르헨티나 물론 고위 관료들까지도 모두 운
동장에 나와 있었기 때문. 우승을 차지한 아르헨티나 선수들에게 개인
당 5만달러의 우승 보너스가 지급되었다. 마치 큰 일을 하고 보수를 주
는 것처럼....
한편 또 다시 어이없는 패배를 한 네덜란드 선수들의 입술은 경기 종료
후 락커룸으로 나오면서 쉴새없이 중얼거리며 있었다.
" 우리도 월드컵 개최하자 "
카페 게시글
인문/사회- 상식
무언가를 깊이 느끼게 해주었던 아르헨티나와 네덜란드의 월드컵 결승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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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3.24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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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혼란 속에서도 아르헨티나는 월드컵을 개최하고야 말았습니다. 그래서 더 간절한 마음으로 지켜본 월드컵 대회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이네트님 축구 지식 상당하신데요? 켐페스, 지코, 로시... 다 잊을 수 없는 70년 대 후반 축구계를 장악했던 별들..
특히 네덜란드는 74년 서독대회와 함께 연속 2회 결승 진출을 성공했지만 역시나 홈 그라운드의 이점을 받고 있는, 대 스타 켐페스가 이끄는 탱고 축구 아르헨티나에게 피파컵의 기회를 빼앗기게 되죠. 네덜란드.. 그때 세계 축구팬 들은 네덜란드의 두번 연속 실패에 얼마나 안타까워했는지...
아직도 생각나는 것.. 당시 8강 아르헨과 페루의 경기서 아르헨이 큰 점수차로 페루를 꺾었죠. 근데 그 페루 골키퍼가 사실 아르헨티나 출신이었다는 사실.. 그 대회 이후로 그 골키퍼는 곧바로 아르헨티나로 돌아갔다는 참 웃을수도 없는 어이없는 후문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