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중독!
- 정일근
잘 익은 대봉감 홍시를 먹고 둔 감 찌꺼기에
정체불명의 날벌레 떼가 빼곡히 몰려들었다
크기가 한글 10포인트 온점의 반의반 정도 될까?
출처를 알 수 없는 점의 군단이 날아와
남아 있는 단맛을 공격하듯 빨아먹는다, 저들의 본향이
단것인지 태어나 단맛의 유혹을 안 것인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중독의 시작이었다
어디에 숨어 나와 같이 사는지 단맛이 있는 곳에는
마지막 장면의 주인공인 듯 떼로 날아와 점령했다
그 작은 점들이 먹어야 얼마나 먹을까마는
내 잔신경에 점들이 튀는 것 같아 내가 조심할 수밖에
먹을 것이 없으면 저들 또한 지워지듯 사라지리라 믿으며
잘 치우며 정리하며 살았는데, 그러다가 보고 말았다
내가 쓰는 치약이 묻은 흔적에까지 앉아 단맛을 빠는
미물의 저 중독을! 살기 위해 단맛을 빠는 저 열중울!
나는 탓할 수 없었다, 온종일 폰을 들여다보는
자다 깨면 폰부터 찾는, 이미 폰과 한 몸이 된 나 역시
중독자다, 죽지 않으면 끝나지 않을 수많은 세상 중독과
살려고 발버둥 치면 더욱 빠져드는 중독자들 속에 나 또한
작디작은 한 점에 불과한 날벌레이니, 내가 저 점들을
파리채를 들어 모조리 두들겨 잡고 싶었던 분노처럼
신이 있다면 회초리를 들어 나의 중독을 때려 주었으면
독이 풀려 약이 될 수 있도록 피멍 들도록 패 주었으면.
ㅡ계간 《가히》(2024,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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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어지러울 때면 요설과 궤변을 쏟아내는 헤살꾼이 나타납니다
하나 둘의 진실에 여덟 아홉의 거짓을 섞어 그럴듯하게 포장합니다
알콜이나 니코틴 혹은 약물에 중독된 이들이 알면서도 끊어내지 못하는 것처럼......
SNS에 중독되어 휴대폰을 놓지 못하고, 남들이 놀라는 게 좋아 폭언을 쏟아내기도 합니다
날파리떼와 하루살이 군무를 볼 때마다 소르이 살짝 돋는다면 감각이 정상이겠네요
모든 중독 현상은 단순하지 않아 스스로 깨닫지 못한 상황에서 버릇이 되어 버립니다
세상 모든 잘못을 오로지 사법의 위력만으로 퇴치할 수 없어서 종교가 살아남았나 봅니다
'오, 하느님 세상 독이 풀려 약이 되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