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월요시편지_1058호
집의 마술
김은순
서귀포항, 수평선으로 지어진 백 년 된 집
밤마다 멍텅구리배로 몸을 바꾼다
그물을 쥐고 수평선을 찾고
물결을 쥐는 멍텅구리배
맑고 고운 뱃고동을 지녔다
뱃고동은 푸르기만 해서 섶섬과 새섬으로 가고
문섬과 범섬까지 우렁차다
고등어 떼 울음소리 들린다
멍텅구리배는 먼바다를 걷는다
어제는 옥돔과 도미
오늘은 물구나무서는 삼치를 가지고 온다
파도가 박명을 휘감을 때까지
배의 둘레가 비린내로 끼얹어졌다
저 해 뜨는 집
굳게 다문 철문 하나 갖고
멍텅구리배였던 기억을 금방 잊는다
마당에 파닥이는 아가미들 숨들,
그때 신발 한 켤레가 나와 눈을 휘둥그레 뜬다
천사백 개의 비늘에 자자해지는 아침이다
서귀포항을 끼고 살아가는 집들이
밤마다 고기 잡으러 마실 나온다는 마법,
여태껏 마술사를 본 적은 없다
- 『자두나무와 여름 창문과 엄마의 정물』(달아실, 2026)
*
노벨 문학상을 받은 앤 카슨의 이야기로 또 세상이 도배되고 있습니다.
대형 서점은 물론 전국의 서점들마다 주요 매대들마다 앤 카슨의 책들로 속속들이 채워지고 있습니다.
하필이면 이때 세상에 나온 신간 시집들은
운이 없어도 너무 없는 걸까요?
나 세상에 나왔다고 아무리 소리쳐도 그 외침이 가닿지 못합니다.
노벨 문학상이 가로막고 있으니
앤 카슨이 가로막고 있느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지요.
오늘 띄우는 시편도 그렇습니다.
2023년 남구만신인문학상, 2024년 제주 4·3평화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세계를 다져온
김인순 시인의 첫 시집이 드디어 세상에 첫발을 내딛었는데
하필이면 사방이 노벨문학상이라는, 앤 카슨이라는 벽으로 꽉 막혔으니 말입니다.
그래도 모르지요.
위대한 마법이 펼쳐질지도요.
보세요. 언빌리버블 매직을!
서귀포항의 백 년 된 집은 밤마다 멍텅구리배로 변신해 바다로 나가고, 새벽이면 다시 집으로 돌아옵니다.
이 기발한 마술은 마술을 넘어 집이란 결국 그곳에 살아온 사람들의 생애와 노동으로 지어진 것임을 일깨운다.
보세요. 펄떡거리는 문장을!
“마당에 파닥이는 아가미들 숨들”이랍니다. “천사백 개의 비늘에 자자해지는 아침”이랍니다.
보세요. 마술사 없이 벌어지는 매직을!
서귀포항의 집들은 매일 밤 멍텅구리배로 변신해 고기를 잡으로 먼바다를 나갑니다.
마술사는 없지만 마술은 매일 밤 일어납니다.
그렇게 김은순만의 마법을 펼쳐보이는 시집이 바로
『자두나무와 여름 창문과 엄마의 정물』입니다.
한글날에 맞춰 세상에 나왔는데
하필이면 노벨문학상이라는 거대한 벽에 막힐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모르지요.
그마저 넘어버릴 일루셔니스트 김은순의 매직이 펼쳐질지 말입니다.
2026. 10. 12.
달아실 문장수선소
문장수선공 박제영 올림